요 7:39의 그영과 앤드류 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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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39절의 난제를 푸는 열쇠는 사실 성경 본문 자체에 나와 있습니다.
즉 본문이 그영이 안 계신 이유로 "예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음"을 들은 것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 여기서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즉 성경에서 '영'그러면 무조건 '성령'을 의미한다는 선입관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앤드류 머레이는 여기서 말하는 '그영'은
주 예수님께서 성육신 때 입으셨던 '인성'(humanity)이 부활(영광받으신) 후에는
'죽을 인성'에서 '죽지 않을 인성'으로 바뀌신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신인(하나님-사람)의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마지막 아담(부활 전 예수님)은 생명 주는 영(부활 후 예수님)이 되셨나니"(고전 15:45하)에서
생명 주는 영이 바로 '신인의 영'인 셈입니다.
앤드류 머레이의 관점이 맞다면, 믿는 이들은 인성이 포함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즉 '생명 주는 영'을 영접하여 거듭나고(요 3:6, 1:12),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됩니다(고전 12:27).
화란 개혁교회 총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한 바 있고 추구하는 경건한 믿는이들에게 존경받는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의 영>(기독교문서선교회)' 제 5장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영'에서
요7:39의 '그영'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대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표현은 매우 기이해 보인다. 그래서 '삽입된' 말씀('저희에게', 혹은 'given')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나서야 비로소 성령이 임하시라는 사실의 참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이끌 것이다"(p.41).
" 또한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아들이 육신이 되심으로 새로운 현존의 무대에 등장하신 것도 알고 있다. 그 아들이 하늘로 되돌아가셨을 땐 하나님의 독생자로서는 변함이 없으셨지만 이미 예전과 같은 존재는 아니셨다. 그는 인자로서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나신 자였으며 스스로 완전하게 하시고 깨끗케 하신 영광스런 겸손으로 옷입으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도 실상 새로운 존재이셨다"(pp.41-42).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그는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의 영, 즉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후 높이 들림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임하신 것이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 안에서 인간성으로 짜여진 생명을 지니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것이다...그리스도가 오심은 인간의 죄와 그 저주에서 구원하시기 위함 뿐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하나님의 생명과의 교제로 다시 돌이키셔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었다"(p.42).
"그 죽으심 안에서 죄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자신을 마치 곡물의 씨앗처럼 드리심으로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셔야만 했다. 부활과 승천으로 영광을 얻은 그리스도의 성품에서 그의 영은 그의 인간적인 생명의 영으로서 임하셨다. 그 생명이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개인적으로 수행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 즉 그 자신과 그의 영광스런 생명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안에 새로운 거룩한 인간성을 완성하심으로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생명을 이제 전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성령은 하나님의 인격적 생명이셨던 것처럼 인간들의 인격적 생명이 되실 수 있게 된 것이다."(p.43).
보통 전도할 때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구속 뿐 아니라 위 부활 후에 영이 되신 예수님 자신을 우리 존재 안에 영접하는 것을
포함합니다(포함해야 합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경우 말은 이렇게 해 놓고 속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 멀리 삼층천에만 남아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요일 5:12).
한국 교계 내에서 제대로 된 신앙인 혹은 주님의 몸으로서의 바른 교회 간증을 배출하려면
우리가 믿을 때 누구를 영접한 것인가 라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그 첫 단추를 꿰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을 해 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에 관한 좋은 책도 많이 펴냈습니다.
그러나 이 요 7:39에 대해 심도 있게 설명한 책인 <그리스도의 영>은
구원론 혹은 성령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국교계에 이 점이 아직 충분히 홍보가 안 된 것입니다.
또한 한국어 번역에서 핵심 용어들 중 일부가 다소 모호하게 번역된 것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가 되시는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무료로 제공하는 영어 원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