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39의 그영과 김병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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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39절이 말하는 '믿는 이들이 받을 그영'이 제3격 성령이라고 생각했는데,
성경 본문이 그영이 어떤 시점까지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하자, 이에 대한 돌파구로
몇 가지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는 KJV이나 개역 성경 번역처럼, 성령은 영원한 분이지만 어떤 시점 전까지는
믿는 이들 '안에는' 안 계셨다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given' 혹은
'저희에게'라는 말을 끼워 넣어 번역했습니다. 즉 장소의 차이로 보는 견해입니다.
또 하나는 칼빈처럼 오순절 전의 성령보다 그후의 성령의 '기능'에 더 강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이 특정 '장소'나 '기능'이 아니라 어떤 시점 전까지
그영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 말임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변종길 박사님과 같은 깜뻔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김병국 교수님은
자신의 논문에서 변 박사님의 논문 내용을 다룬 바 있습니다.
김병국 교수님은 변 교수님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오순절의 성령은 그 이전의 역사에 비해 풍성하게 주어졌다.
둘째, 39절의 ‘받을’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받게 될 성령의 역사가 성령의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활동과는
다른 어떤 것임을 시사한다.
셋째, 십자가 전의 성령은 영광받으신 예수님의 성령은 아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신 예수님의 성령은 아니다.
넷째, ‘아직’이라는 단어는 구속사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단어는 성령의 오심과 역사하심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이후에 시작될 시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김병국, 요한복음 성령론의 새로운 해석: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진리논단 제 13호-기독교 학부 편, 142쪽).
그리고 김 교수께서는 자신의 논문에서 “많은 주석가들은 (필자가 본 바로는 모든 주석가들은)
이 부분을 ‘성령의 역사의 정도’의 차이로 해석한다”고 전제하고,
이어서 위 네 가지 요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평합니다.
“첫째와 둘째의 지적은 성령의 역사의 정도 혹은 그 양태에 관한 것이다.
즉 오순절 이후의 성령의 역사는 그 이전의 역사와는 다르게 매우 강하고 독특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39절에 대한 설명으로는 미흡하다.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는 표현은 존재론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정도나 양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와 넷째 설명은 오순절 이후의 성령이 그 이전의 성령에 비해
어떤 존재론적인 차이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 차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위 논문집, 142쪽).
물론 김 교수님은 자신의 해석에 대하여 “배타적으로 옳은 것”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본문 자체는 선입관을 배제하고 본다면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현재 한국 신학계에서 요한복음 7장 39절이 말하는 성령(혹은 그영)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룬 분은 변종길 박사님과 김병국 교수님이 유일합니다.
믿는 우리가 어떤 영을 받은 것인가 라는 중요한 진리에 대해서 이처럼 논의나 연구가 적은 것은
의아할 정도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뜸을 들인 소결론으로
화란 출신 개혁주의 신학자인 앤드류 머레이의 견해를 소개드려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