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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릴백의 “칼빈의 언약적 성경해석…”을 읽고(1)

 

피터릴백의 “칼빈의 언약적 성경해석…”을 읽고(1)

 

 

- 아들인가, 백성인가

 

- 검토해 보고자 하는 내용

 

이곳 OOO교회개혁 카페에 소개된 피터릴백의 논문 “칼빈의 언약적 성경해석과 언약 신학으로부터 추론된 세대주의 비평”은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의 차이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대주의 신학이 이스라엘과 교회를 둘로 보는 것을 반박하기 위하여 아래에서 보듯이 저자는 하나님에게는 오로지 한 백성만 있다는 점을 매우 강조합니다.

 

“언약의 실체에 대하여 언급하는 다른 방법은 언약의 공식으로 요약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경륜이 시간이 흘러 변화가 되어도 항상 성령의 핵심으로 남아 있었다.”

 

“언약의 공식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들이 되리라" 가 아닌 점에 유의하라. 그것은 단수로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을 주시려 이 땅에 오셨다(눅 17;10). 언약 안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행동하시며 그의 주도권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즉 위에서 <언약의 공식>이라고 소개된 “…백성이  되리라” 는 내용은 세대주의 신약의 두 백성(이스라엘과 교회) 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차용된 개념인가, 아니면 언약신학의 언약의 주된 내용 자체가 “…백성이 되리라” 인가 하는 점입니다. 전자라면 과연 언약신학이 말하는 그 언약의 내용은 과연 압축적으로 무엇인지를 더 들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라면 그리고 그것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보는 해석 원리라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게 됩니다.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과 비교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세우신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휘오데시아)이 되는 것”입니다(엡1:4-5). 그리고 이러한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은 (장성한) 많은 아들들이 되는 것은 이미 인류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내용입니다(롬8:29).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죄인들을 속량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휘오데시아)에 이르는 것입니다(갈4:4-5). 이것을 아는 사도 바울은 거듭난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뤄지기까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갈4:19).

 

그런데 언약신학은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됨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됨을 강조함으로 둘 사이에 간격을 보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언약공식이라고 할 만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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