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목적을 다시 생각합니다(2)
- 새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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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우리를 안 좋은 것들로부터 건져내는 방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구원의 더 적극적인 방면을 말하는 성경본문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생명 안에서/에의해(in/by) 구원 얻을 것이니라'(롬5:10)
위 구절은 소극적인 방면으로부터의 구원에서 좀더 적극적인 방면의 구원으로 더 전진하는 접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을 구원의 영역과 방편으로 삼는 것입니다.
위 구절에서 말하는 <생명 안에서의 구원>은 사실상 로마서 전체가 말하는 적극적인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거듭남/거룩케됨/새로워짐/변화됨/형상을 본받음/영화롭게 됨/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짐 등등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나니,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롬8:29)
우리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본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엡1:4-5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갈4:4-5는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거듭난 이후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본받을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입니다.
일부는 율법 즉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일부는 우리 안에서 내가 아니요 주님이 사시게 하면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도록'(doing) 하시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being)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어떤 존재가 되면 그 존재는 그 존재의 생명과 본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무엇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후3:18)
위 구절이 '어떤 존재가 되는 비결'입니다. 즉 매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는 주님 자신을 앙망하고 그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유지할 때 주님의 영이 우리를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존재는 그분이 사시는 것처럼 우리로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이후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무는 단 하나 뿐인 셈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영과 연결/연합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즉 엡4:3(그영의 하나를 힘써 지킴), 갈5:25(그영으로 살고, 행함)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둘째 문제, 또는 이러한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일뿐 그 자체가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사 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머리이시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