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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과 야고보서와 성경의 신성한 영감(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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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의 출처는 https://shepherdingwords.com 입니다.
 
 
시편과 야고보서와 성경의 신성한 영감
 
 
일부는 위트니스 리가 시편의 일부와 야고보서의 일부가 신성한 영감을 받지 않았다고 가르친다고 비난했습니다. 정말 위트니스 리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성경은 완전하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정통 기독교의 기본 확언들 중 하나를 부인하는 통탄할 만한 주장일 것입니다.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은 시편이나 야고보서에서 전달된 모든 것이 신성한 관념을 표현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리 형제님의 진술에 성급하게 달려듭니다. 이러한 진술은 오직 문맥에서 따로 떼어내고 원래의 의미를 왜곡시킬 경우에만 어떻게든 경각심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 책들에 대한 리 형제님의 사역의 말씀과 그가 성경 각 책이 신성한 영감에 의한 것임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확증한 것을 공정하게 평가해 보면, 리 형제님의 위의 진술의 핵심과 그런 진술의 근거가 매우 분명해질 것입니다.
 
성경의 신성한 영감에 관하여
 
성경의 신성한 영감과 관련하여 리 형제님의 사역에는 모호한 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진리 공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성경의 각 책은 매 줄과 각 단어가 성령의 영감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은 오류가 없다.”(진리 공과, 1단계 제1권, 16-17쪽).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또한 사무엘기하 23장 2절과 베드로후서 1장 21절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성경이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영이고,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성경은 성령께서 사람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내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무엇인가? 성경은 성령께 이끌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성경을 앎에 관하여, 영문판 16쪽).
 
같은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매우 명확하고 간단하며 정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입을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와 같은 인용문은 리 형제님이 성경의 모든 책, 심지어 모든 단어가 하나님을 근원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신성한 영감을 받은 것이며, 성령을 통해 저술가들에게 전달하신 것임을 강력하게 믿었음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따라서 반대되는 이런 분명한 언급을 고려해 볼 때, 리 형제님이 이른바 성경의 축자 영감을 믿지 않았다는 비난을 계속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시편과 야고보서는 혼합물을 포함함
 
시편이나 야고보서와 같은 책에 대해 말씀을 공급할 때 리 형제님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즉 성경과 거기에 담겨 있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에 있는 각각의 말씀이 신성한 관념을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에서 그는 “성경이 신성한 영감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성경 안에 있는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은 아니다.”(메시지 8, 영문판 75쪽)라고 말했습니다. 구별이 명확해야 합니다. 성경에 담긴 모든 말씀은 그분의 영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호흡해 내어진 것이었지만, 그러나 매 단어가 하나님 자신의 사상을 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4절과 5절에서 뱀의 기만적인 말이나 욥과 그의 세 친구의 혼돈스러운 토론(욥 2:11-32:1), 그리고 마태복음 16장 22절에서 베드로가 주 예수님을 책망한 것은 모두 이것에 대한 분명한 예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성령의 신성한 영감에 따라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아니며, 이 말을 따로 분리시켜 놓고 보면 신성한 생각과 개념을 전달하지도 않습니다.
 
이 중요한 차이를 염두에 둔다면 시편 기자들의 저술에 하나님의 관념과 인간의 관념이 혼합되어 있다는 리 형제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편과 2편에 대해 리 형제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두 시편 안에는 두 종류의 선포가 있다. 하나는 기자의 인간의 관념에 따른 선포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중심과 전부로 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관념에 따라 하나님께서 하신 선포이다. 우리는 시편 2편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한 관념에 아멘 해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고 그분과 입맞추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과 입맞춤 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약의 신성한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복을 받는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 10쪽)
 
신성한 관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전부로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의 선민 안으로 분배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확대인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하시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표현이 되게 하시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에 근거해 볼 때, 우리는 왜 리 형제님이 일부 시편을 혼합물이 있는 것으로 인식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약의 가르침과 명백하게 모순되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높입니다(롬 6:14, 갈 2:16). 많은 다른 곳에서 시편 기자들은 자신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원하거나 자신의 의를 자랑합니다. 이 또한 신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신약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의와 유일한 자랑이시라고 말합니다(마 5:43-48, 고전 1:30-31, 눅 18:9-14, 빌 3:3). 시편 기자들이 율법을 높이고, 그들의 원수들이 잘못되기를 소원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은 모두 시편 안에 참으로 인간의 천연적인 관념과 신성한 관념이 섞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의 신성한 계시는 점진적이므로, 시편 기자들이 보고 표현한 것 중 일부는, 예를 들어 주님 자신이 사복음서에서 가르치셨던 것들이나 사도 바울에게 계시되어 그의 서신서들에서 전달된 것들과 같은 표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리 형제님과 함께 모든 시편이 예외 없이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고, 그 모든 말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성령의 영감 아래 기록되었음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전체적으로 시편은 주님의 연인들이 그분을 추구할 때, 주님께서 그들을 율법에서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땅을 차지하실 수 있도록 그들을 하나님의 거처와 왕국을 건축하는 데로 돌이키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실행적인 완전함을 말하는 자신의 서신에서 구약의 율법을 높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 믿는 이들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약 1:25, 각주 1, 2:8-12). 그러나 신약의 상당 부분은, 유대인인든 이방인이든 믿는 이들을 율법의 원칙에 따라 그분의 백성을 다루신 옛 언약에서 철저히 끌어 내어 은혜의 원칙에 따라 그분의 백성을 다루고 계시는 새 언약 안으로 이끌어 들이려는 엄청나고 지속적인 분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율법의 마침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지금은 더 이상 율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강조합니다(갈 2:19, 5:1-4, 롬 10:4).
 
갈라디아서 2장 1절부터 10절까지와 사도행전 15장은 일부 사람들이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어떻게 설득했으며,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이러한 유대교의 영향력에 대항하여 얼마나 절대적으로 싸웠는지를 보여줍니다(갈 2:5). 그들은 모든 교회들인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해 진리를 명확히 하려고 사도들과 장로들을 만나기 위해 심지어 예루살렘까지 갔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회의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 모두는 자신이 여전히 율법의 멍에 아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7-11절). 그런데 야고보가 제시한 해결책은 그의 관념이 여전히 최소한 부분적으로 모세의 율법과 자신의 유대교적인 배경에 따른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20-21절, 〈회복역 신약성경〉각주 1 참조). 이것은 그가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는 율법에 열성적인 이들을 자랑한 데서 더욱 분명해집니다(21:20). 더욱이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분명한 입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야고보의 영향력은 믿는 이들이 율법 아래서 완전히 빠져 나오게 하는 일을 계속해서 좌절시켰습니다(갈 2:11-12, 행 21:21-26).
 
시편과 마찬가지로, 야고보서에 대한 신성한 영감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와 야고보서 결정 연구에서 리 형제님은 바로 이 요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중심 노선인 하나님의 경륜의 빛 안에서, 리 형제님은 신실하고 담대하게, 야고보의 저술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분명한 관점이 결여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이 경륜에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움직임이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구약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약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포함되는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야고보서가 포함된 것은 다른 모든 성경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과 야고보서에서의 목적은, 경건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분명하고도 하늘에 속한 이상이 부족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호흡이며 모든 것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기록된 것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라!”(〈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4번, 영문판 132쪽) 리 형제님의 시편과 야고보서에 대한 감상은 그가 이 두 권의 책과 관련하여 해방했던 수백 개의 메시지를 볼 때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책들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 즉 그리스도의 충만과 표현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시고 또한 믿는 이들을 통해 살아내어진 그리스도를 전적이고 절대적으로 중심 삼는 분명한 이상이 결여된다면, 경건이나 실행적인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를 목표에서 빗나가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성경에 포함되었다는 위트니스 리의 위대한 통찰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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