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터를 공격함 (3) –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지역” 교회였습니까?(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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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터를 공격함 (3)
–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지역” 교회였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지역 교회, 즉 도시의 경계보다 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하나의 교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제안이 나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성경과 일치합니까? 만일 비성경적이라면, 왜 그것이 장려되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지역 교회?
이 이상한 해석은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전체에 걸친 교회”를 말하는 사도행전 9장 31절을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여기의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 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졌던 박해받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8:1). 그들은 이 흩어진 성도들이 더 이상 예루살렘에 살지 않는 데도 여전히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로 인정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9장 31절에 있는 교회, 이 경우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지방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행정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지역 교회를 가리킬까요?
회복역 성경 각주 1은 사도행전 9장 31절의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만 확산되었고, 이 구절의 ‘전역’이라는 단어는 교회가 있었던 모든 곳을 포함하기 때문에, 비록 이 세 지역의 여러 도시에 지방적인 의미로 많은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여기서는 단수의 ‘교회’가 우주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위트니스 리는 이 구절에 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를 멸시받는 곳으로 여겼고, 사마리아는 혼합이 가득한 곳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 9장 31절은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전역에 있는 교회를 말한다. 이것은 비록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갈릴리가 멸시받고 사마리아가 배척당한다 해도, 이들 지역에서 일어난 교회들은 모두 한 교회로 여겨졌음을 보여 준다. 지방적인 의미에서 그들은 교회들이지만, 우주적인 의미에서 이 교회들은 모두 교회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우주적으로 하나인 것에 대한 기본적인 계시를 본다(신약의 결론-교회, 97-98쪽).
그러므로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전역에 있는 교회라는 문구는 존재에 있어서는 하나이지만 지구상의 많은 지방들 안에서 나타난 우주적인 교회를 가리킵니다. 또한 신약에서 로마 제국의 한 지역 혹은 도(道) 안에 있는 교회들은 “아시아의 교회들”(고전 16:19), “갈라디아의 교회들”(갈 1: 2, 고전 16:1), “마케도니아 교회들”(고후 8:1)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결코 한 도시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확장된 하나의 지방 교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지역 교회라는 비성경적인 개념은 성경적인 선례를 어기고, 한 교회 안의 권위가 다른 교회들에게까지 미치고 또 다른 교회들 위에 있게 하는 집중화를 촉진하여 교회에 계급 질서가 들어오게 합니다.
하나의 행정적인 권위가 지방의 범위를 넘어서는가?
이런 가르침은 이방인 교회들이 보낸 원조 물질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장로들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은 예루살렘 자체를 넘어서는 행정적인 권위를 가졌다는 이상하고 억지스러운 논법을 수반합니다(행 11:28-30).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억측입니다. 사도들이 “각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한 성경의 분명한 본에 의하면(행 14:23), 각 교회마다 고유의 장로 직분, 즉 고유의 지방적인 행정을 가졌습니다. 더구나 사도들이 “각 도시에 장로들”(딛 1:5)을 임명한 것은 “각 교회”가 “각 도시”(참조, 계 1:11)와 동등하고 한 지방 교회 안의 장로 직분 행사는 그 교회가 위치한 그 도시에 제한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1장 28절부터 30절까지에 따르면,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은 “큰 기근”이 예상되는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나눠주도록 헌물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러한 안배가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이 예루살렘 도시 너머까지 미치는 어떤 행정적인 권위를 가졌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초기에 교회 재정이 장로들의 관리 아래 있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행 11:30, 각주 1). 따라서 사도행전 11장 29절과 30절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한 지역 교회로서 유대 전역과 그 이상의 지역에 행정적인 권위를 행사했다는 사상을 입증한다는 주장은 가정과 추측에 따른 논리의 비약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9절과 30절에 나오는 성경적인 선례는 오늘날 지방 교회들에 의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종종 교회들은 자연재해에 따른 복구 노력을 돕기 위해 지구 전역의 성도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보냅니다. 그 원조는 종종 한 지방의 장로들에게 보내져서 더 넓은 지역의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분배됩니다. 한 예로 1998년에 많은 지방 교회들이 대북 시 교회 장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어, 대만 섬 전역의 성도들이 강력한 지진 피해에서 복구되도록 지원했습니다. 실질적인 안배로 대북 시 장로들에게 보내진 기금은 대만 섬 내의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배분되어 긴급한 필요들이 때맞추어 채워졌습니다. 대북 시 장로들은 다른 교회의 장로들을 대신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정적인 권한도 대북 시를 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들 사이에 달콤하고 축복된 동역이 있었습니다. 대북 시 장로들과 동역자들 사이의 많은 교통을 통해 교회들과 성도들의 필요가 채워졌습니다. 해외에 있는 교회들이 직접 기금을 나누어 주어 필요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대북 시 교회는 성도들과 교회들이 보낸 성물들이 실제적이고 신속하게 목적지에 닿게 하는 통로로 쓰였습니다. 기만적인 해석을 장려하는 이들이 상상했을, 소위 지역 교회에 의한 어떤 식의 통제가 없이, 이런 식으로 교회들은 성도들이 보낸 물질을 다루면서 교통을 누렸습니다(고후 8:4, 빌 4 :14-15). 대만의 교회들은 대북 시 교회의 관할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유대나 갈릴리나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의 관할 아래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결론
지방적인 터, 즉 하나의 터 위에서 교회 생활을 합당하게 실행하는 것은 워치만 니를 통해 일으켜진 현재의 주님의 회복이 서 있는 성경적인 기초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의 가르침과 일을 신실하게 이어 갔고, 그들이 수고한 열매는 오늘날 전 세계에 세워진 수천 개의 지방 교회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역 교회라는 인위적인 가르침은 하나의 터를 공격하지만 성경으로 입증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중심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통제하는 계층 조직을 낳습니다. 그것은 지방 교회들이 하나의 교통을 실행하는 성경의 본을 대체하는 지역적인 행정을 발명해 냅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방의 터 위에 서 있는 지방 교회들의 특성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눈에 옳은 대로 행할 자유를 얻고자 합니다(삿 17:6, 21:25). 이처럼 성경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뒷받침하려고 성경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한 분 참되신 하나님의 증거나 그분의 말씀의 확증에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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