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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이 옳고 그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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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의 출처는 https://shepherdingwords.com 입니다. 이 번역문은 영어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비공식 자료’이며, 원문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원하는 분은 영어 원문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번역 자료는 영어원문 없이 한글 번역본만 다른 곳에 재인용될 수 없습니다.

 

 

The Elders Avoiding Entanglement in Right and Wrong

 

장로들이 옳고 그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함

 

 

The elders in a local church must deal with all kinds of issues, including complicated situations involving the saints. A great temptation the elders face is getting entangled in determinations of right and wrong in disputes between saints. The proper function of the elders is to shepherd all the saints and minister Christ as life to them (1 Pet. 5:2; 1 Tim. 4:6). When a problem occurs between saints, the elders run a great risk of losing their ground to perform this function if they get entangled in assessing who is right and who is wrong.[1] Brother Lee counseled the elders to minister life to the saints to deliver them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한 지방 교회의 장로들은 성도들이 관련된 복잡한 상황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장로들이 직면하는 한 가지 큰 유혹은 성도들 간의 다툼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에 휘말리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합당한 기능은 모든 성도를 보살피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공급하는 것입니다(벧전 5:2, 딤전 4:6). 그런데 장로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에 휘말리면 성도들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기능을 수행할 근거를 잃을 위험이 큽니다.[1] 이 형제님은 장로들에게 선악 지식의 나무로부터 성도들을 구원하도록 그들을 생명으로 섬기라고 아래와 같이 권고했습니다.

 

Immediately after the creation of man, God placed man in front of two trees (Gen. 2:8-9). The first tree was the tree of life, and the second tree was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If we are to serve the Lord in a deeper way, we must know that both good and evil are versus life. In our contact with people, we should not help them merely to distinguish between good and evil. Rather, we should minister life to them to save them out of the realm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Elders’ Training, Book 11: The Eldership and the God-ordained Way (3), 29)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직후에 사람을 두 나무 앞에 두셨다(창 2:8-9). 첫째 나무는 생명나무요, 둘째 나무는 선악 지식의 나무이다. 우리가 주님을 더 깊이 섬기려면, 선과 악 모두 생명과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과 접촉할 때 단지 선과 악을 구별하도록 도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선악을 아는 영역에서 구원하도록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장로 훈련, 제11권: 장로 직분과 하나님이 정하신 길(3), 영문판 29쪽).

 

Brother Lee then illustrated by describing a case in which a dispute involving two parties comes to the elders and what the effect is of addressing such a problem in the realm of right and wrong:

 

그런 다음 이 형제님은 쌍방이 관련된 분쟁이 장로들에게 전해진 사례와 그러한 문제를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In such a case the elders often measure and weigh the case to see who is right and who is wrong. This is a temptation. If the elders determine that one of the parties is wrong, they may condemn him inwardly, and in their talk with him they may not be able to avoid criticizing and judging him. This spoils the situation. The elders may then ask the other party to exercise his patience while they do their best to help the first person to have a change and be adjusted. Such a way of speaking with the two parties is in the realm of good and evil. No life is ministered to either person under the cross. Rather, the negative situation may be intensified. (30-31)

 

이 경우에 장로들은 종종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보려고 그 사건을 가늠하고 판단한다. 이것은 유혹이다. 장로들이 당사자 중 어느 하나가 잘못이라고 판단하면 속으로 그를 정죄할 수 있고, 대화할 때 그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이 상황을 그르치게 한다. 그런 다음 장로들은 첫 번째 사람이 변화되고 조절되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동안 상대방에게는 인내심을 가질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쌍방과 대화하는 것은 선악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십자가 아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생명이 공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만 악화될 수 있다(30-31쪽).

 

Brother Lee then reminded the elders that their responsibility is to address the saints’ real need, which is to come to the Lord to gain Him:

 

그런 다음 이 형제님은 장로들의 책임은, 성도들의 진정한 필요가 주님을 얻도록 그분께 나아가는 것임을 그들에게 말해 주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습니다.

 

Regardless of who comes to us, we should wait for a chance to minister Christ to them. Whether they are right or wrong, they are short of Christ. In the elders’ contact with people, they must have the full realization that what the people need is the Lord and what can solve the people’s problem is to meet with the Lord. (31)

 

누가 우리에게 왔든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들이 옳든 그르든 그들은 그리스도가 부족하다. 장로들이 사람을 대할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임을 온전히 깨달아야 한다(31).

 

Brother Lee warned against making judgments in a dispute based on right and wrong. There is a real danger if the elders are drawn into taking sides in a dispute. To do so is to usurp the headship of Christ and to rob the Lord of an opportunity to address a deeper, spiritual need.

 

이 형제님은 시비(是非)에 따른 논쟁에서 판단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장로들이 분쟁에서 편을 들면 정말 위험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 직분을 찬탈하고 주님께서 더 깊고 영적인 필요를 다룰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If you do this, you will have joined the battle and will be drawn into the dispute of right and wrong. If you really love the Lord and love the brothers, you will surely take their problem as your own pressing problem and will try to solve it before God. You will say to the Lord, “Lord, what shall we do? I do not know how to help these brothers. How should I help them without hurting them? How can they be perfected? How can they know themselves? And how can they have a more desperate pursuit after You?” Right away you can see that the matter is not so simple. This is more complicated than a doctor diagnosing an illness. You cannot base your judgment on right and wrong. (The Elders’ Management of the Church, 104)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당신도 전장(戰場)에 끼어들어 시비(是非) 안에 휘말리게 된다. 당신이 만약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어려움으로 삼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해결해야 한다. 당신은 주님께, “주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이 형제를 도와야 할지 모릅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야 그들이 상처받지 않고 영 안에서 온전케 함을 얻으며 자신을 인식할 뿐 아니라 당신을 더욱 추구하게 됩니까?”라고 말씀드린다. 당신은 즉시 이러한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당신은 단지 시비(是非)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장로치회, 110쪽).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making judgments based on right and wrong damages the saints, including those whom the elders side with.

 

옳고 그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장로들의 편을 드는 이들을 포함하여, 성도들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I would like the brothers and sisters to know that if we in the church try to take care of such disharmony, disputes, and arguments, and we make judgments based on right and wrong, we will be damaging the brothers and sisters. You will surely say that the brother who has all the reasons is right, but this judgment will damage him. (105)

 

당신과 내가 교회 가운데서 형제 자매 사이의 이런 불화(不和)나 다툼이나 분쟁의 일을 해결하려 할 때 다만 시비에 따라 판단한다면, 결과적으로 형제 자매를 해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모든 이유를 가진 형제를 옳다고 확신있게 말할 것이지만, 이런 판단은 그를 해칠 것이다(110쪽).

 

The elders’ taking sides in a dispute may damage much more than just the parties directly involved; it may lead to the entire church being embroiled in the issue and being divided into factions.

 

장로들이 분쟁에서 어느 편을 드는 것은 관련된 당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교회 전체가 이 문제에 휘말려 파벌로 분열될 수 있습니다.

 

Suppose a brother and his wife have a fight one day. Because both are believers, they cannot divorce each other. Nevertheless, the sister may come to the elders, recount everything, and ask if her husband was right. Normally, when we hear about arguments, we ask who initiated the argument, and if this sister is asked, she would probably say that her husband initiated everything. Some of the elders may agree with her according to the saying: “A fight between two eventually becomes a fight among three.” At first one fights against one, and then two fight against one. Not only so, if some other elders do not agree with her, they may be dragged into the argument as well, so that the argument becomes two against two. Soon, the argument will spread to other brothers and sisters, and they will all become involved in the argument. (The Collected Works of Witness Lee, 1950-1951, vol. 1, 156-157)

 

어느 날 형제와 그의 아내가 싸웠다고 가정해 보자. 둘 다 믿는 이임으로 서로 이혼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자매는 장로들에게 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남편이 옳았는지 물을 수 있다. 보통 말다툼을 하면 누가 먼저 말다툼을 했는지 묻는데, 이 자매에게 물으면 아마 남편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말할 것이다. “두 사람의 싸움은 결국 세 사람의 싸움이 된다”는 속담에 따르면, 일부 장로들은 그녀의 말에 동의할지 모른다. 처음에는 하나가 하나와 싸우고 두 사람은 하나에 맞서 싸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로들이 그 자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도 논쟁에 휘말려 논쟁이 2대 2가 될 수 있다. 머지않아 이 논쟁은 다른 형제자매들에게까지 번져 그들 모두가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50-1951, vol. 1, 영문판, 156-157쪽).

 

In Serving according to Revelation Brother Lee explained that those who serve the Lord should avoid being drawn into the realm of right and wrong but instead should help the saints to come back to life and the light of life:

 

<계시에 따른 봉사>에서 이 형제님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영역으로 이끌리는 것을 피해야 하며 대신에 성도들이 생명과 생명의 빛으로 돌아오도록 도와야 한다고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When we encounter matters that are related to right and wrong among the saints, we should not try to solve these matters by being in the realm of right and wrong. Instead of paying attention to matters according to right and wrong, we should bring the saints into the light of life in order that they would accept the dealing of life. Right and wrong always cause us to touch death. Even if problems related to right and wrong are seemingly resolved, the issue will always be death. We can touch life only by being in the light of life and by accepting the dealing of life. Life always swallows up death. If we touch life, life will swallow up any death related to right and wrong. This is a clear principle. (32)

 

우리가 성도들 간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룰 때, 옳고 그름의 영역 안에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에 따라 문제를 다루는 대신에 우리는 성도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생명의 다루심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은 항상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옳고 그름과 관련된 문제가 겉보기에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 결과는 항상 죽음이다. 우리는 생명의 빛 안에 있고 생명의 다루심을 받아들일 때만 생명을 만질 수 있다. 생명은 항상 죽음을 삼킨다. 우리가 생명을 만진다면 생명은 옳고 그름과 관련된 모든 죽음을 삼켜버릴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원칙이다(32쪽).

 

The light of life will help the saints resolve disputes not according to right and wrong but according to the inner sense of the Lord. In this way the problem is solved and the saints gain the Lord and grow in life.

 

생명의 빛은 성도들이 옳고 그름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님의 내적 감각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성도들이 주님을 얻고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If we understand that both right and wrong are the opposite of life, we will not attempt to solve problems that are related to the realm of right and wrong. Instead, we will bring people to the Lord so that they may see whether the Lord within them approves of their dispute. Then it will be easy to lead them to accept the dealings of life in the light of life. When the light of life shines on the saints and when they are dealt with in life, they drop their arguments, their problems are solved, they gain life, and they grow in life. (32)

 

만일 우리가 옳고 그름 모두 생명과 반대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옳고 그름의 영역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어 그들 안에 있는 주님께서 그들의 논쟁을 허락하시는지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생명의 빛 안에서 생명의 다룸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기가 쉬울 것이다. 성도들에게 생명의 빛이 비치고, 그들이 생명 안에서 다룸을 받을 때, 그들은 논쟁을 그치고, 문제들은 해결되고, 그들은 생명을 얻고 또한 생명이 자란다(32쪽).

 

Brother Lee then gave an extended example of how he helped a sister who came to him with a complaint against her husband (32-34). He said that although he sympathized with her, the Lord would not allow him to take her side in the dispute. Rather, he asked her whether she had taken the issue to the Lord in prayer and what His feeling was. Brother Lee then led her to pray. In her prayer she admitted to the Lord that she felt wrong before Him. She touched Him in a fresh way and death was swallowed up by life. Her husband was then “moved to go to the Lord in prayer, to confess his sins, to meet Him, to touch life, and to admit his wrongdoing to his wife” (34). In this way the problem between them was resolved by life and they were filled with the Lord. Brother Lee concluded, “When a person meets God, he can recognize right and wrong, transcend right and wrong, conquer right and wrong, and experience life swallowing up right and wrong. The Lord does not want to solve problems in the realm of right and wrong. He wants to swallow up right and wrong with His transcending life” (34).

 

그런 다음 이 형제님은 그에게 찾아와 남편에 대해 불평하는 자매를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한 더 전진된 예를 들었습니다(32-34쪽). 그는 그 자매를 동정했지만, 주님은 그가 논쟁에서 그 자매의 편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형제님은 그 자매에게 그 문제를 기도로 주님께 가져갔는지와 그때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물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그 자매를 기도로 이끌었습니다. 그 자매는 기도하면서 자신이 주님 앞에서 잘못했음을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그 자매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분을 만졌고 죽음은 생명에 의해 삼켜졌습니다. 그 후 그 자매의 남편은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을 만나고, 생명을 만지고,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게 되었습니다”(34절). 이런 방식으로 둘 사이의 문제는 생명에 의해 해결되었고 그들은 주님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초월하며, 옳고 그름을 이기고, 옳고 그름을 삼키는 생명을 체험할 수 있다. 주님은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초월적인 생명으로 옳고 그름을 삼키기를 원하신다”(34절).

 

The elders need to see that to entangle the church in disputes over right and wrong is to bring the church into death, resulting in strife and ultimately division. Unchecked, such death and its byproducts will spread to other local churches as well. In the Lord’s earthly ministry, He never answered questions according to right and wrong; He always turned questions to the tree of life. May we learn of Him. Only life and the light of life can effect an inward change and preserve us in oneness in fellowship with the Lord and with one another (John 1:4; 8:12; 17:11; 1 John 1:7).

 

장로들은 교회를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에 얽매이게 하는 것은 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분쟁과 궁극적으로 분열을 초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어하지 않으면 그러한 죽음과 그 부산물이 다른 지방 교회들에도 퍼질 것입니다. 주님은 지상 사역을 하실 때, 결코 옳고 그름에 따라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항상 그런 질문들을 생명나무로 돌리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생명과 생명의 빛만이 내적 변화에 영향을 주고 주님과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교통에서 우리를 하나 안에 보존할 수 있습니다(요 1:4, 8:12, 17:11, 요일 1:7).

 

Further reading: Watchman Nee, Two Principles of Living

 

추가로 읽을 것: 워치만 니, <생활의 두 가지 원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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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is does not override the responsibility of leading ones to refer cases involving accusations of abuse or other criminal behavior to the appropriate secular authorities (see “Handling Allegations of Abuse”).

 

[1] 이것은 학대 혹은 기타 범죄 행위를 포함한 사건들을 해당 세상 권위에 회부하는 인도자들의 책임을 무시하지 않습니다("학대 혐의 처리" 관련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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