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순수한 말씀'만 읽음 –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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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Only the ‘Pure Word’ – A Dangerous and Unbiblical Notion
오직 '순수한 말씀'만 읽음 –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생각
From time to time a brother will trumpet the misguided notion that saints should read only the Bible, the “pure Word”, “untainted” by anyone’s interpretation. Some have used this notion as a ploy to entice the saints to reject the ministry of Watchman Nee and Witness Lee as “man’s interpretation.” On the surface, the teaching that we should read the Bible exclusively and without any interpretation may sound laudable. Actually, this notion is both unbiblical and impractical. It casts aside a crucial means by which God perfects men in this age, and, conversely, inflates the self and makes a person subject to being misled into serious errors.
이따금 어떤 형제가 성도들은 성경, 즉 누군가의 해석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말씀”만 읽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퍼뜨릴 것입니다. 일부는 이 생각을 성도들이 “사람의 해석”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거부하도록 부추기는 책략으로 사용했습니다. 언뜻 보면 우리가 어떤 해석도 없이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칭찬받을 만하게 들립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비성경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시대에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주요 수단들을 저버리고, 반대로 자아를 부풀리고 사람을 잘못 인도하여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Interpretation Is Biblical
해석은 성경적임
Nehemiah 8:1-6 tells us that because of the great need for the returned Hebrews to hear and understand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the Scriptures were brought forth and read publicly. However, verse 7 names thirteen men in addition to uncounted Levites who “helped people understand the law.” What the helpers said is not recorded, but the Bible approves of their service, saying in verse 8, “And they read in the book, in the law of God, interpreting and giving the sense, so that they [the people] understood the reading.” Thus, not only was the law (the “pure Word”) read to the people, but the helpers also interpreted the law and gave the sense of the reading so that the people could understand it.
느헤미야기 8장 1절부터 6절까지는 귀환한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율법책”을 듣고 이해할 긴급한 필요가 있었기에 공개적으로 성경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7절에는 “백성이 율법을 이해하도록 도운” 13명의 이름과 다수의 레위인들이 나옵니다. 돕는 이들이 했던 일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성경은 그들의 봉사를 인정하여 8절에서 “그들이 그 책 곧 하나님의 율법을 읽으면서 뜻을 밝혀 주었기 때문에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말씀”)인 율법을 낭독했을 뿐 아니라 또한 돕는 이들이 율법을 해석하고 낭독하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어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In Acts 8 Philip the evangelist met an Ethiopian man who was reading the prophet Isaiah (vv. 26-28; cf. 21:8). Philip asked him, “Do you really know the things that you are reading?” (v. 30). The Ethiopian responded, “How could I unless someone guides me?” (v. 31) and later, “I beseech you, concerning whom does the prophet say this?” (v. 34). Philip did not tell him that it was adequate for him to read the “pure Word” or that he did not need human exposition to understand it. Rather, “Philip opened his mouth, and beginning from this Scripture he announced Jesus as the gospel to him” (v. 35). The Bible does not record what Philip said, but through his speaking he led the eunuch to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and baptized him (vv. 37-38). The eunuch was not saved through merely reading the “pure Word”; he needed Philip’s teaching to open the Word to him.
사도행전 8장에서 전도자 빌립은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에티오피아 인을 만났습니다(26-28절, 21:8 참조). 빌립이 그에게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30절). 에티오피아인은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31절), 그리고 이어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신언자가 한 이 말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34절)라고 물었습니다. 빌립은 그에게 “순수한 말씀”을 읽으라거나 그것을 이해하는 데 사람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복음으로 전하”였습니다”(35절). 성경은 빌립이 한 말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로 내시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고”(37-38절) 침례를 받았습니다. 내시는 단지 “순수한 말씀”을 읽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열어주는 빌립의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Paul strongly stressed the need of teaching in his Epistles to his young co-worker Timothy (1 Tim. 3:2; 4:11, 13, 16; 5:17; 2 Tim. 2:2, 24). Such teaching refers to the speaking of the Lord’s servants and the leading ones in the churches based on the teaching of the apostles concerning God’s New Testament economy (Acts 2:42; Titus 1:9; 1 Tim. 1:4). Ephesians 4:11-12 tells us that God gave gifts to the church in the form of gifted members— apostles, prophets, evangelists, and shepherds and teachers—to perfect the members of His Body. Through their ministry these gifted members perfect the saints by teaching the truth in God’s Word. To reject their ministry is to reject God’s way of perfecting His people.
바울은 그의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가르침의 필요성을 강하게 강조했습니다(딤전 3:2, 4:11, 13, 16, 5:17, 딤후 2:2, 24). 그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주의 종들과 교회들 안의 인도자들이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행 2:42, 딛 1:9, 딤전 1:4).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은 몸의 지체들을 온전케 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 및 교사 같은 은사들을 교회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진리를 가르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합니다. 그들의 사역을 거부하는 것은 그분의 백성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A Vain and Dangerous Proposition
헛되고 위험한 제안
According to the “pure word” teaching, how far must we go to arrive at the “pure Word”? Do we rewind time to before the Reformation, so as not to be influenced by Martin Luther’s teaching of justification by faith? Recognizing that every translation of the Scriptures is influenced by the translators’ understanding and is hence an interpretation, do we read the Bible only in the original languages? Do we ignore the work already done to sift through the available ancient manuscripts to assemble the most authoritative Hebrew and Greek texts and instead make that determination ourselves? Do we reevaluate which writings constitute the Scriptures, even though the books included in the canon were acknowledged and confirmed by godly men centuries ago as being written under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 Or, should we not rather recognize the divine guidance moving throughout human history to bring us the Bible and to progressively open it through God’s servants?
“순수한 말씀”을 주창하는 가르침을 따른다 하면, 우리가 그 '순수한 말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멀리 가야 합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라는 마틴 루터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시간을 종교개혁 이전으로 되돌려야 할까요? 성경 번역은 번역자들의 이해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고 따라서 하나의 해석이니 우리는 원어 성경만 읽어야 할까요? 가장 권위 있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본문을 모으기 위해 사용 가능한 고대 사본을 샅샅이 살펴보았던 기존의 작업을 무시하고 대신 우리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해야 할까요? 정경에 포함된 책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수 세기 전에 인정되고 확증되었음에도 어떤 기록을 성경에 포함시킬지를 우리가 재평가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인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그것을 점진적으로 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The root problem underlying the “pure Word” teaching is misplaced self-confidence. The Lord’s word is surely pure, but we are not. As Brother Nee explained in the first chapter of How to Study the Bible, the problem of the person is paramount when coming to the Bible. No one can initially approach the Bible without his reading being colored by his own culture, background, and opinion. As Brother Lee explained,
"순수한 말씀"을 주창하는 가르침의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된 자신감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순수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니 형제님이 <성경을 연구하는 법> 첫 장에서 설명했듯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의 문화와 배경과 견해에 물들어 읽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성경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리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It is hard for us to have no opinions when reading the Bible, unless we do not read the Bible at all. We all have the same Bible in our hands, yet the results of our reading are altogether different. What one person reads in the Bible is one thing, and what I read may be another thing. If you do not believe this, we can do an experiment. We can let everyone read the same chapter, the same verse, and even the same phrase. In the end we will all come up with different things. This is because even before we read, we already have our own opinions. We do not simply discover the things in the Bible; rather, we put our own opinions and thoughts into the Bible. We may use an illustration. Water itself is colorless, but if we are wearing a pair of glasses with green lenses, we may insist that water is green. The fact is that it is not the water that is colored but that we looked at it through a pair of colored glasses. (The Path of Our Growth in Life, 67)
우리가 성경을 아예 안 읽는 것이 아닌 한, 성경을 읽을 때 의견을 갖지 않기는 어렵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성경을 손에 들고 있지만 그것을 읽은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한 사람이 성경을 읽은 것과 내가 읽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이것이 믿기지 않으면 실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같은 장, 같은 절, 심지어 같은 구를 읽게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른 것을 생각해 낼 것이다. 읽기도 전에 이미 우리 자신의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발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성경에 담는다. 예를 들어 보겠다. 물 자체는 무색이지만, 만일 우리가 녹색 렌즈 안경을 쓰고 보면, 물이 녹색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은 물에 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색안경으로 물을 보았다는 것이다(우리의 생명이 자라는 경로, 영문판 67쪽).
If we realize our shortcomings and bias, we will humble ourselves and allow ourselves to be perfected by those whom the Lord has constituted as gifts to His Body. Otherwise, we will inevitably inflate our assessment of ourselves and our opinions (cf. Rom. 12:3; Phil. 2:3-4). To reject the opening of God’s Word through His faithful servants and to exalt one’s own private understandings is an act of arrogant self-conceit that has historically led to many great heresies, such as those of the Jehovah’s Witnesses. Apart from the peril of heresy, interpreting the Bible with no governing vision or principles leads to an individualistic, self-centered Christian life rather than to a life of being perfected as a member for the building up of the Body in the way of fellowship and mutuality (Eph. 4:11-12, 16).
우리가 우리의 결점들과 편견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주님께서 그분의 몸에 은사로 주신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온전케 되기를 허락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의견에 대한 평가를 부풀릴 것입니다(롬 12:3, 빌 2:3-4).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열기를 거부하고 어떤 이의 개인적인 이해를 높이는 것은 오만한 자만심의 행위이며 역사적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많은 큰 이단들을 초래했습니다. 이단의 위험성 외에도, 통제하는 이상이나 원칙 없이 성경을 해석하면 교통과 상호성 안에서 몸을 건축하는 지체로서 온전케 되는 삶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엡 4:11-12, 16).
A Proper and Balanced Approach
합당하고 균형 잡힌 접근
It is surely wrong to read only the interpretation of the Word and not the Word itself, but it is also misguided to believe that a person can read only the Bible and receive from it all the accrued insights the Lord has given to His people over the last twenty centuries. We often say that the teaching in the Lord’s recovery stands on the shoulders of those who have gone before, but what does that mean in practical terms? It means that those whom the Lord used in His ministry among us—particularly Brother Nee and Brother Lee—diligently studied the writings of the great Christian teachers throughout the centuries and kept that which matched the Bible. With such a solid foundation in the truth they were enabled to see even more than what their predecessors saw. Brother Lee told us that Brother Nee had a personal library of three thousand Christian classics, and that he and Brother Nee pored through those writings to learn from them. He said that from the beginning of their service:
어떤 사람이 말씀의 해석만 읽고 말씀 자체는 읽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성경만 읽어도 지난 20세기에 걸쳐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주셨던 축적된 모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또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회복 안의 가르침은 앞서간 이들의 어깨 위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 중에서 그분의 사역에 쓰신 사람들, 특히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이 지난 세기 동안 있었던 위대한 기독교 교사들의 저술들을 부지런히 연구했고 그중 성경과 일치하는 것을 지켰음을 의미합니다. 진리에 대한 그러한 확고한 기초로 인해 그들은 앞선 이들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리 형제님은 우리에게 니 형제님이 개인 도서관에 3,000여 권의 기독교 고전을 소장하고 있었고, 그와 니 형제님은 그 저술들로부터 배우려고 그것들을 꼼꼼히 훑어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봉사를 시작할 때부터 다음처럼 했다고 말했습니다.
We began to read the Bible diligently and to study Christianity. We laid everything down to serve the Lord. We realized that we could not develop our practice in isolation and that we needed to broaden our view by reading others’ writings. Therefore, we labored to collect and to study all the prominent writings from the two-thousand-year history of Christianity. We were not biased. Using the Bible as our standard, we accepted whatever was according to the Bible and rejected whatever was not according to the Bible. (The Full Knowledge of the Word of God, 54)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기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려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우리는 우리의 실행을 단독으로 발전시킬 수 없고 다른 이들의 저술들을 읽어서 시야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독교 2천 년 역사로부터 뛰어난 모든 저술들을 수집하여 연구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치우치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을 기준 삼아서, 성경에 근거한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배척했다(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지식, 영문판 54쪽).
Those who aggressively promote the teaching that we should read only the Bible as the “pure Word” imply that the labor of our two brothers has no value, has borne no fruit, and should be set aside. They presume to have the capacity to discern the truth apart from such labor. In fact, these ones merely seek to make room to advance their own opinions and to free themselves from the constraints of the light that the Lord has already given.
'순수한 말씀'인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적극 선전하는 이들은 두 형제님들의 수고가 가치가 없고 열매가 없어서 제쳐 놓아야 함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수고 없이도 진리를 분별할 능력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고 주님께서 이미 주신 빛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공간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Brother Lee also called us back to the pure word of the Scriptures, by which he meant that we should drop man’s natural, superficial, and traditional interpretations in order to see what the Bible reveals. He emphasized receiving the words of the Bible by prayer and as spirit and life (Eph. 6:17-18; John 6:63). He also stressed the need to apply proper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Key among these is giving precedence to the Bible’s plain words, not interpreting any passage in isolation but in the light of the Bible as a whole, and always basing our interpretation on the central revelation of the Bible, which is God’s eternal economy with Christ as its centrality and universality (1 Tim. 1:3-4; Eph. 1:10; Col. 1:15-20). We believe the proper way is to read the Bible and to use the ministry of the word as a means to enter into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Bible. We should take the ministry of the word as a tool for apprehending the truth in the Bible. While we should not accept things uncritically, time and again our experience has been that the ministry of Brother Nee and Brother Lee has proven to be faithful and accurate in its presentation of the divine revelation in the Bible. Moreover, it has brought us to the central revelation of the Bible concerning the eternal purpose of God.
리 형제님은 또한 우리를 성경의 순수한 말씀으로 되돌아가게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성경이 계시하는 것을 보도록 사람의 천연적이고 피상적이며 전통적인 해석들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기도로 그리고 영과 생명으로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엡 6:17-18, 요 6:63). 그는 또한 성경 해석의 합당한 원칙을 적용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중 핵심은 성경의 명료한 말씀에 우선권을 두고, 어떤 구절도 따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 전체에 비추어 해석하고, 늘 성경의 중심 계시, 곧 그리스도를 그 중심과 전부로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딤전 1:3-4, 엡 1:10, 골 1:15-20)이라는 계시에 기초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법은 성경을 읽고 또한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수단으로 말씀의 사역물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말씀의 사역물을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서도 안 되지만,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의 사역이 성경에 있는 신성한 계시를 신실하고 정확하게 제시했다는 것은 시간과 우리의 경험을 통해 거듭 입증되었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관한 성경의 중심 계시로 인도했습니다.
If you are not convinced, try a simple test. Read a portion of the Word—for example, Romans 1:16-17—and dig into it with no other assistance. Take as much time as you want. Then read a portion from the ministry that expounds that passage—say, Life-study of Romans, message 57. Then consider whether the ministry you read has helped you to understand the verses. We are confident that the answer will be yes.
만일 여러분이 확신이 서지 않으면, 간단한 시험을 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의 일부를 읽고 도움 없이 그 내용을 파고들어가 보십시오.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 후에 그 구절을 설명하는 사역물인 <로마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57을 읽어보십시오. 그런 다음에 읽은 사역물이 그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대답이 ‘그렇다’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