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 새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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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하나님은 창세 전에 택한 백성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 즉 맏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많은 아들들로 만드시기로 미리 정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1:4-5, 롬8:29).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이 실제적으로 택한 백성들 안에서 이뤄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 내지는 인간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된 토론 주제입니다.
이 글은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어떤 사람이 그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그 사람에게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그 영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쪽으로 자원하여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성경은 우리가 한 모든 말(마12:37)과 우리가 몸으로 한 모든 행동에 따라 되갚음을 받을 것임을 엄중 경고하고 있습니다(롬14:10, 고후5:10).
(어떤 성경 교사들은 이것을 '경륜적인 징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징계는 일시적이며(고전3:15), 다시 구원이 취소되어 지옥에 가는 영원히 멸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참되게 거듭난 모든 성도들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으로 단장될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계21:2).)
이제 이 원칙을 구체적인 말씀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8장 13절입니다.
"여러분이 육체를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위 말씀은 우리가 거듭난 이후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속에서 '육체를 따라 살 것'인지 아니면 '영으로써 그 육체(몸의 행실)을 죽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누군가가 이 일에 있어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주권적인 돌보심과 공급으로 인해 결코 육체를 따라 살 수는 없고, 오직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따라 살도록 강권적으로 몰아가심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가 발동할 여지가 없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위 본문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체험과도 맞지 않습니다.
존 맥아더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관계가 영원히 평행선을 긋는 관계라고 했지만, 지방 교회측의 주된 인도자 중 한 명인 위트니스 리는 회복역 성경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인간의 의지적 선택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여야 하는 것은 몸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몸의 행실이다. 몸은 구속받아야 하지만(롬8:23), 몸의 행실은 죽어야 한다. 이러한 행실은 죄와 관계된 일들뿐만 아니라, 그 영을 떠나 우리의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롬8:13, 각주2).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지만, 반드시 그 영으로써 해야 한다. 한 명으로는 우리가 먼저 주도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그 영은 우리를 위하여 그 일을 하시지 않으신다. 다른 한면으로는 우리는 성령의 능력도 없이 우리 자신이 노력하여 몸을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영과 우리가 동역하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주님께서 우리의 죽을 몸에 생명을 주실 수 있도록(롬8:11)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도록 해야 한다. 외적으로는 우리가 살 수 있도록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우리가 먼저 주도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일 때에 그 영께서 오셔서 그러한 행실에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능을 적용하며 몸의 행실을 죽인다."(롬8:13, 각주 3)
이 점은 다음 로마서 8장 6절에서도 확인 될 수 있습니다.
"육체에 둔 생각은 죽음이지만,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위 말씀 역시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생각을 육체에 둘 수도 있고(육체의 일들을 생각 할수도 있고), 반대로 생각을 영에 둘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결과인 영적 죽음 혹은 영적 생명과 평안은 자신의 의지적 결단의 결과이지 결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렇게 결정하도록 예정하거나 강제하신 결과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참되게 거듭난 후 소위 성화 과정을 거칠 때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은 최대한 단순화시키면 위 두 개의 인용구절에 나오는 두 가지 선택의 반복으로 특징지워질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말은 최선을 다해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생각을 영에 두는' 결정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