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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 - 성령이 삼위일체 전체를 가리킬 때가 있다

 

어거스틴 - 성령이 삼위일체 전체를 가리킬 때가 있다.


“한편 거룩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이름이 ‘영’처럼 삼위일체의
다른 위격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라(요4:24)는 말씀에 따라서 삼위일체를 전체적으로 ‘거룩한 영’
으로 부를 수는 있다. 성부께서 영이시고 성자께서 영이시요 성부께서 거룩하시며 성자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하나님이시고 물론 하나님
께서는 거룩하시며 영이시므로 삼위일체를 ‘거룩한 영’ 즉 ‘성령’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위일체 안에 계신 것으로 이해되는 제3위 ‘성령’에
대해서는 관계적, 상대적으로 그 고유명사로 ‘성령’이라고 부른다. 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영으로서
성부와 성자에 관련되시기 때문이다.”
(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314-315쪽).

 


 

paul77 12.01.31. 04:50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하나님이시고 물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며 영이시므로 
삼위일체를 ‘거룩한 영’ 즉 ‘성령’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어거스틴

삼위를 세 사람들처럼 분리시키는 최삼경 목사님의 신학 안에는
위 삼위일체를 성령으로 부를 수 있다'는 어거스틴의 견해를 담을 공간이 없습니다.
역시 어거스틴이 살아서 한국 교계에 나타나면 이단감별사들에게는 양태론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 모 감리교 권사님은 이미 그런 시각을 인터넷상의 글에서
나타낸 바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정통교부를 삼위일체론에서 이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사실 이상으로 대단한 사
 
paul77 12.01.31. 04:51
람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교계 이단/정통을 내어 맡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paul77 12.01.31. 04:54
"그렇더라도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위일체 안에 계신 것으로 이해되는 제3위 ‘성령’에 
대해서는 관계적, 상대적으로 그 고유명사로 ‘성령’이라고 부른다. 
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영으로서 성부와 성자에 관련되시기 때문이다.” -어거스틴

매우 균형잡힌 삼위일체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성부의 영과 성자의 영과 동일시하는 어거스틴의 위 관점 역시
최삼경 목사의 각기 다른 세영들의 사상과 충돌합니다.
이곳에서 자꾸 이런 최목사의 각기 다른 세 영들의 하나님 사상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개혁신학이 지금까지 가르쳐 온 것(성령=성자의영=성부의 영)이 틀렸다고 선언해야 하고
더 나아가
 
paul77 12.01.31. 04:56
동일한 것을 가르친 어거스틴도 잘못되었다고 선언해야 공정합니다.

한 위격은 그 고유위격인 방면이 있고, 또한 위 성령과 주기도문의 성부에서처럼 
다른 두 위격을 포함한 삼위일체 전체를 가리킬 때도 있다...이것이 성경적인 삼위일체요, 정통 삼위일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는 정통 삼위일체가 '결코'아닙니다.
 
hoooo 12.01.31. 07:36
도대체 김석환교수의 책을 제대로 보셨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서론부터 제발 다시 좀 보시길 기대합니다. 이런 글 자꾸 올리면, 이제 정말 화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번 반복해서 강조한 욧점을 놓치고 이런 글 자꾸 올리는 의도가 불순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제 욧점이 뭔가 아십니까?
  paul77 12.01.31. 09:07
지난 주말에 김석환 교수님 책 오랫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김석환 교수는 제3장 교의적 평가 부분에서 '페리코레시스' 부분을 매우 냉철하게 평가하고 있더군요.
즉 바실과 닛사..의 <유적 단일성>보다는...<분할불가한 동일실체>를 말한 아타나시우스의 견해가 "더 정통적이다" 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벌콥의 견해를 <현재의 개혁주의 신학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각주에서는 벌콥과 반틸의 견해를 밝힌 자신의 논문 각주도 밝히구요.
분명히 홀OOO님의 시각과는 '온도차'가 느껴지는 차이입니다.
  paul77 12.01.31. 09:09
저는 홀OOO님이 틀렸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홀OOO님의 의견을 '절대화'해서 다른 쪽의 입장을 결론적으로 단정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홀OOO님의 의견이 개혁신학을 '전적으로 대변하지 않기' 때문임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hoooo 12.01.31. 09:26
저의 견해가 뭔지도 제대로 정리도 못하면서 어떻게 저의 견해를 안다고 하십니까?
  hoooo 12.01.31. 10:51
아타나시우스나 벌콥이 도대체 <완결된 삼일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다는 투이군요. 참으로 놀랄 일입니다. 숫적 단일성에서 접근하든, 유적 단일성에에서 접근하든......하여튼 <완결된 삼일 하나님>은 불가합니다. <완결된 삼일 하나님을 버리고 오시면>, 유적 단일성의 접근이 훨씬 낫다는 것을 벌콥을 제가 비판하면서 토론을 전개하겠습니다.
 
paul77 12.01.31. 09:13
저도 나름대로 이곳의 흐름과 운영자의 의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홀OOO님이 객관적인 관리자의 위치가 아니라 진리 토론의 상대방으로 나설 경우에는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상대방과 다른 견해를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더구나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수용되는 견해와도 어느 정도 차이가 느껴지는 것일 때는
더욱 말입니다.
  hoooo 12.01.31. 09:29
저의 견해는, 셋에서 시작하든, 하나에서 시작하든, 류적 단일성을 강조하든, 숫적 단일성을 강조하든....모두 정통교부들의 신학이면 그 신학안에서, 개혁신학이며 그 신학안에서 신학적 공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통교부신학이고, 또한 개혁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이런 정통교부들의 신학과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정통교부들과 개혁신학과는 공통성이 없는 윗트니스 리의 <완결된 삼일하나님>은 비록 비슷한 용어들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정통교부들이나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이들과 상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귀가 있으면 들으시기 바랍니다. 상종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완결된 삼일하나님>의 정체를 분명히
  hoooo 12.01.31. 09:30
설명하십시오. 위트니스 리의 1차자료로 말입니다.
  hoooo 12.01.31. 09:31
저의 요청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고 이곳 저곳에 댓글을 다는 식이라면, 저는 경고했던 조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님께서 자초하신 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저도 댓글 달 시간 없습니다. 의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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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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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6.25. 09:43
위 꼬리글에서 언급된 '완결된 삼일 하나님'은 위에서 다룬 '삼위일체'와는 별개의 주제입니다.
삼위일체 자체는 완결되고 말고 할 것이 없이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완결'이라는 말이 들어갈 때는 '인성'을 전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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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6.25. 09:48
보통 조직신학은 '아들 하나님'(기독론)과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는 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1:14가 말하는 성육신 되신 성자이신 아들 하나님은 성부와 성령이 제외된 1/3하나님이 아니시고,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신을 입으신 분입니다(골2:9). 따라서 성육신의 '주체'는 아들 하나님(갈4:4)이시지만, 그 아들이 아버지와 성령을 포함한 분이시라는 점에서는 삼위 전체이십니다. 이 점이 분명해져야 소위 '완결된 삼일 하나님'이 이해되는 첫단추가 꿰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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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6.25. 09:53
두번째 단추 측 완결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아들 하나님(그 안에 삼위 전체가 계신)이 성육신 때 입으셨던 '육신'(flesh)이 부활시 '영적인 몸'(고전15:44)이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 예수님이 입으셨던 육신이 영적인 몸이 되신 사건은 기존의 조직신학은 그렇게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은 항목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 깊은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즉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똑같은 인성(humanity,혹은 flesh)을 입으신 분이 어떻게 죽지 않는 존재가 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부활했다가 다시 죽은 나사로의 부활체와 비교하면 두 부활은 다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말해주는 성경구절이 바로 행13:33의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는 시2:7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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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6.25. 09:57
여기서 '오늘'은 소위 성육신 시점 또는 크리스마스날이 아닙니다. 문맥은 이 '오늘'이 부활시점임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부활시 성부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하신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결론만 말한다면 그분이 롬8:29가 말하는 '맏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이 맏아들이 바로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거듭난 우리가 본받아 가는 대상입니다. 기존의 신학은 또는 목회현장에서는 예수 믿고 천국간다는 장소 이동적인 목표만을 제시할 뿐 이처럼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방면에 대한 성경의 깊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음으로 신앙생활이 바른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현상이 대거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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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6.25. 10:00
우리는 거듭난 이후 주님이 몸 또는 새예루살렘이 되는 것(to be)이 목표입니다. 이것은 생명되신 주님을 우리 존재 안에 얻고 더 풍성히 얻어감으로 이뤄집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십자가 지는 것이 필요하고 자기 부인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런 계시를 알고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빌3:8은 그 핵심 요점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또 얻어가는 것...이것이 그리스도의 충만인 몸을 건축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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