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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구원관에 대한 재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2).

 

다섯째, 말씀은 하나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이 단순히 천국 티켓이 아닌, 모든 신성한 것과 생명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다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에 따라 구원의 법리적인 측면(칭의, 양자됨, 위치적 성화) 만이 신자에게 먼저 주어지고, 실제적인 성화나 은혜안에 성장은 회심 이후의 신앙 생활 속에서의 헌신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지 않나요?


답변: 구원은 일차적으로 순간적으로 받는 방면(죄사함, 거듭남)이 있고, 그후 시간 안에서 생명의 성장에 따라서 받아가는 면(생명의 성장의 결과인 변화됨, 성분상의 거룩, 새롭게 됨, 영화롭게 됨 등)이 있습니다. 만일 위 질문이 주재권 구원론에서 구원이 한 순간에 죄사함 생명은 물론 생명의 성숙까지 일시적으로 받는다는 주장에 근거한다면 위 질문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한 예로 변화나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음, 영광에 이름이 거듭나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거듭난 이후 우리가  너울을 벗은 얼굴의 상태에서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 점진적으로 성취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이 고후3:18입니다.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거듭날 때 우리 영 안에 오신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이 우리 안에서 혼으로 또 몸 안으로 자라가시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어떤 형태로건 우리의 동역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박영선 목사님은 거듭나는 시점에 성화도 동시에 얻는다는 주장은 “구원파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이어서 “신앙에서 실패하면 구원 못 받은 것으로 이해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바로 주재권 구원론의 결정적인 약점이기도 합니다. 섭리님은 지금 그 약점을 절대기준으로 삼아 그와 다른 구원론을 비판하고 계십니다. 아래  인터뷰 기사 내용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http://www.sewoondol.org/sd_re_1_2_ckarh1i67/sdre1ghqu004.html


 

여섯째, 말씀은 예수께서 모든 것의 주이시며, 주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무조건적인 굴복 이라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6장 17절~18절) 하나님꼐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10장 9절 ~10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굴복은 성경적인 구속에 대한 추가적인 부록이 아닙니다. 굴복에 대한 부르심이야 말로 성경 전체에서 복음으로의 초대의 핵심입니다.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의 '쉬운 믿음'은 그리스도의 으뜸 되시는 권위에 대한 굴복을 구원의 요건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나요?


답변: 역시 구원의 정의를 무엇으로 하시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에베소서 4:1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일에 겸허하고 온유하며 또 오래참음으로써 사랑 안에서 서로를 짊어지고 화평의 매는 띠로 그 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라’고 말합니다(2-3절). 그런데 만일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위와 같이 못살면 처음부터 아예 구원도 받지 못한 것일까요?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듭남 이후 보좌의 권위에 불순종하면 즉시로 수직적인 교제(코이노니아)가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생명 강물이 우리 존재 안에 흐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거역과 불순종의 죄를 자백하고 그분께 용서를 구할 때 그분은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우리는 다시 빛과 생명의 영역 안에 참여하고 유기적인 구원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따라서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구원은 권위에 순종(굴복)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말씀은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9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로마서 8장 28절 ~ 30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꼐서 임하시느니라


그들은 그러므로 그 분을 순종하기를 갈망할 것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장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의 '쉬운 믿음' 은 그리스도인 중에 일부는 일생 동안 육적인 상태로 살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답변: 거듭난 사람은 몸 안의 지체로서 단체 생활 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만일 어떤 지체가 생명이 어려서 육체 안에 사는 일을 지속하고자 할 때 그는 교회 안의 빛비췸과 주님의 내적인 말씀하심 때문에 괴로움과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다른 치체들이 그를 방문하여 주님께 돌이켜 그분을 누리도록 권면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한 두 번은 거절하더라도 결국 이런 사랑의 강권함에 굴복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부담스러워 지체들을 안 만나려고 하고 오히려 세상과 어울린다면 그리고 그 일이 일생동안 게속된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드러낸 것입니다. 위 질문에 대해서는 거듭난 후 죽기까지 단 한번의 영의 만져짐이 없이 살다가 죽을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판단하여 그를 불신자 취급하는 일은 매우 신중한 사안입니다.


 

여덟째, 말씀은 행위가 믿음의 중요한 테스트라고 가르칩니다. 순종은 그 믿음이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요한일서 2장 3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반면에 완전히 그리스도에 도무지 순종하지 않으려는 자는 진정한 믿음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2장 4절)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 을 통해 불순종과 연장된 죄들이 자신의 구원하는 믿음을 의심할 근거와는 상관없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까?


답변: ‘불순종과 연장된 죄들’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예를 들어 한국의 모 대형교회 담임 목회자는 중학교를 졸업한 그 이후의 행적에 지속적인 거짓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은처음부터 구원받지 않은 것일까요? 적지 않은 목회자분들이 자신들이 평신도 위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럴 때 그분들의 ‘구원하는 믿음’을 의심해야 하는지요?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불순종과 죄악의 상태에 있는 한 그들의 유기적인 구원(생명의 성장)은 멈춥니다. 상관이 있고 그것도 매우 큽니다.


 

아홉째, 말씀은 진정한 신자는 떄로는 넘어지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결국 믿음안에서 인내하고 견딘다고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장 8절)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완전히 주께로 부터 멀어진 자들은 그들이 거듭난 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9절)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을 통해 한 번 믿은 신자라 할 지라도 나중에 그리스도를 버리고 믿지 않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십니까?


답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 “은혜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율법준수(할례)를 통해 의롭게 되려고 하다가 바울에게 책망을 당했습니다(갈5:4). 섭리님은 이 성경기록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처음부터 거듭나지 못한 것인지요? 데마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으나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몬24, 딤후4:10, 골4:14). 그렇다면 데마는 처음부터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였을까요? 그래서 바울이 영적 분별도 없이 불신자와 하나님의 신약경륜을 함께 수행하는 사역을 했을까요? 특정인의 사역을 떠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믿지 않는 것”과는 구별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천부교를 세운 ‘박태선 장로’라는 사람은 말년에 예수를 부인하고 욕하는 책을 펴내고 죽었습니다. 저는 그가 참으로 예수님을 구주와 생명으로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상 최선을 다해 답변을 드렸습니다.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거나 추가로 토톤할 주제가 있으시면 제가 제시했던 토론 원칙에 부합하게 문제제기해 주시면 더 추가적인 대화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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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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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3. 06:02
다음은 한국교계에서 최고 정통임을 자부하는 합동신학교에서 오래 가르치시다가 은퇴하신 박영선 목사님의 말입니다.

"구원파는 칭의를 얻듯이 성화도 단번에 얻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앙 생활에서 실패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본다. 점진적인 성화 과정에서 나오는 시행착오나 실수를 용납지 않고 구원의 실패로 정죄한다. 그런데 구원파를 정죄한 한국 교회도 이러한 구원파적 신앙관이 만연해 있다."

그런데 섭리님이 '주되심 구원'이 정통구원관이라며 이곳에 오셔서 위 인용문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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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3. 06:07
새예루살렘
계속 박영선 목사님의 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 학자들은 모두 즉각적인 성화와 점진적인 성화로 나눈다고 입을 모았다. 신분의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지고 영원히 변치 않는다. 그러나 수준의 구원은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실수도 무수히 일어난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이들이다. 신분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수준은 내팽개칠 수 없다."

성화가 전짐적이다. 신분상의 구원과 달리 "수준의 구원은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 되심 구원'은 이런 성화과정 조차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함으로 '노력'자라도 들어가면 질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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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3. 06:09
새예루살렘
같은 출처에서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위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노력과 맞물려 있다. 잘못 얘기하면 신인협동론이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성화에 대해 상급을 걸었다는 것은 우리 몫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으로 나뉘어 진다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발하라고 격려하기 위해 상급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노력과 맞물려 있다" 이 말과 "우리의 노력은 전혀 필요없다"라는 말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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