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이 옳고 그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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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이 옳고 그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함
한 지방 교회의 장로들은 성도들이 관련된 복잡한 상황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장로들이 직면하는 한 가지 큰 유혹은 성도들 간의 다툼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에 휘말리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합당한 기능은 모든 성도를 보살피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공급하는 것입니다(벧전 5:2, 딤전 4:6). 그런데 장로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에 휘말리면 성도들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기능을 수행할 근거를 잃을 위험이 큽니다.[1] 리 형제님은 장로들에게 선과 악의 지식나무로부터 성도들을 구원하도록 그들을 생명으로 섬기라고 아래와 같이 권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직후에 사람을 두 나무 앞에 두셨다(창 2:8-9). 첫째 나무는 생명나무요, 둘째 나무는 선과 악의 지식나무이다. 우리가 주님을 더 깊이 섬기려면, 선과 악 모두 생명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접촉할 때 단지 선과 악을 구별하도록 도와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을 선악을 아는 영역에서 구원하도록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장로 훈련, 제11권: 장로 직분과 하나님이 정하신 길(3), 영문판 29쪽).
그런 다음 리 형제님은 쌍방이 관련된 분쟁이 장로들에게 전해진 사례와 그러한 문제를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런 경우에 장로들은 종종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알아보려고 그 사건을 가늠하고 판단한다. 이것은 유혹이다. 장로들이 당사자 중 어느 하나가 잘못이라고 판단을 내리면 속으로 그를 유죄판결 할 수 있고, 대화할 때 그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것이 상황을 그르친다. 그런 다음 장로들은 첫 번째 당사자가 변화되고 조절되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동안 다른 당사자에게는 인내심을 가질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쌍방과 대화하는 것은 선악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십자가 아래 있는 두 당사자 누구에게도 생명이 공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만 악화될 수 있다(30-31쪽).
그런 다음 리 형제님은 장로들의 책임은 성도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필요가 주님을 얻도록 그분께 나아가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왔든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들이 옳든 그르든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부족하다. 장로들이 사람을 대할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주님을 만나는 것임을 온전히 깨달아야 한다(31).
리 형제님은 시비(是非)에 따른 논쟁에서 판단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장로들이 분쟁에서 편을 들면 정말 위험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찬탈하고 주님께서 더 깊고 영적인 필요를 다루실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당신도 전장(戰場)에 끼어들어 시비(是非) 안에 휘말리게 된다. 당신이 만약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어려움으로 삼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것이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이 형제를 도와야 할지 모릅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야 그들이 상처받지 않고 영 안에서 온전케 함을 얻으며 자신을 알게 됩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당신을 더욱 추구하게 됩니까?” 당신은 즉시 이러한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당신은 단지 시비(是非)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장로치회, 110쪽).
옳고 그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장로들이 편을 들어주는 이들을 포함하여 성도들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과 내가 교회 가운데서 형제자매 사이의 이런 불화(不和)나 다툼이나 분쟁의 일을 해결하려 할 때 다만 시비에 따라 판단한다면, 결과적으로 형제자매를 해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느 형제가 어느 모로 보나 옳다고 확신 있게 말하겠지만, 이런 판단은 오히려 그를 손상할 것이다(110쪽).
장로들이 분쟁에서 어느 편을 드는 것은 관련된 당사자들만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교회 전체가 이 문제에 휘말려 파벌로 분열될 수 있습니다.
한 형제가 어느 날 자기 아내가 싸웠다고 가정해 보자. 둘 다 믿는 이이기 때문에 서로 이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 자매는 장로들에게 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남편이 옳았는지 물을 수 있다. 보통 말다툼을 하면 누가 먼저 말다툼을 했는지를 묻는데, 이 자매에게 물으면 아마 남편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부 장로들은 그녀의 말에 동의할지 모른다. “두 사람의 싸움은 결국 세 사람의 싸움이 된다.”는 속담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싸우고 이어 두 사람이 한 사람에 맞서 싸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로들이 그 자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도 논쟁에 휘말려 2대 2의 논쟁이 될 수 있다. 머지않아 이 논쟁은 다른 형제자매들에게까지 번져 그들 모두가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50-1951, vol. 1, 영문판, 156-157쪽).
<계시에 따른 봉사>에서 리 형제님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영역으로 이끌리는 것을 피해야 하며 대신에 성도들이 생명과 생명의 빛으로 돌아오도록 도와야 한다고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도들 사이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룰 때, 옳고 그름의 영역 안에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에 따라 문제를 다루는 대신에 우리는 성도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생명의 다루심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은 항상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옳고 그름과 관련된 문제가 겉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 결과는 항상 죽음이다. 우리는 생명의 빛 안에 있고 생명의 다루심을 받아들일 때만 생명을 만질 수 있다. 생명은 항상 죽음을 삼킨다. 우리가 생명을 만진다면 생명은 옳고 그름과 관련된 모든 죽음을 삼켜버릴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원칙이다(32쪽).
생명의 빛은 성도들이 옳고 그름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님에 대한 내적 감각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성도들이 주님을 얻고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옳고 그름 모두 생명과 반대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옳고 그름의 영역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어 그들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들의 논쟁을 허락하시는지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생명의 빛 안에서 생명의 다룸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기가 쉬울 것이다. 성도들에게 생명의 빛이 비치고, 그들이 생명 안에서 다룸을 받을 때, 그들은 논쟁을 그치고, 문제들은 해결되며, 그들은 생명을 얻고 또한 생명이 자란다(32쪽).
그런 다음 리 형제님은 그에게 찾아와 남편에 대해 불평하는 자매를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한 더 전진된 예를 들었습니다(32-34쪽). 형제님은 그 자매를 동정했지만, 주님께서 형제님에게 논쟁에서 그 자매의 편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형제님은 그 자매에게 그 문제를 기도로 주님께 가져갔는지, 그때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물었습니다. 리 형제님은 그 자매를 기도로 이끌었습니다. 그 자매는 기도하면서 자신이 주님 앞에서 잘못했음을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그 자매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분을 만졌고 죽음은 생명에 의해 삼켜졌습니다. 그 후 그 자매의 남편은 마음이 움직여져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을 만나고, 생명을 만지고,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게 되었습니다.’(34쪽) 이런 방식으로 둘 사이의 문제는 생명에 의해 해결되었고 그들은 주님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리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초월하며, 옳고 그름을 이기고, 옳고 그름을 삼키는 생명을 체험할 수 있다. 주님은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초월적인 생명으로 옳고 그름을 삼키기를 원하신다.”(34쪽).
교회를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에 얽매이게 하는 것은 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분쟁과 궁극적으로 분열을 초래하는 것임을 장로들은 알아야 합니다. 제어되지 않으면 그러한 죽음과 그 부산물이 다른 지방 교회들에도 퍼질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질문에 대해 결코 옳고 그름에 따라 답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질문들이 제기될 때 주님은 항상 생명나무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생명과 생명의 빛만이 내적 변화에 영향을 주고 주님과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교통에서 우리를 하나 안에 보존할 수 있습니다(요 1:4, 8:12, 17:11, 요일 1:7).
추가로 읽을 것: 워치만 니, <생활의 두 가지 원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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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학대 혹은 기타 범죄 행위를 포함한 사건들을 교회 인도자들이 적절한 세속 권위에 회부하는 책임을 도외시하지 않습니다("학대 혐의를 처리함" 관련 글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