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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순수한 말씀'만 읽음 –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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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의 출처는 https://shepherdingwords.com 입니다.

 

 

오직 '순수한 말씀'만 읽음 –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생각

 

 

이따금 어떤 형제가 성도들은 성경, 즉 누군가의 해석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말씀”만 읽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퍼뜨릴 것입니다. 일부는 이 생각을 성도들이 “사람의 해석”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거부하도록 부추기는 책략으로 사용했습니다. 언뜻 보면 우리가 어떤 해석도 없이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칭찬받을 만하게 들립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비성경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시대에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주요 수단들을 저버리고, 반대로 자아를 부풀리고 사람을 잘못 인도하여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해석은 성경적임

 

느헤미야기 8장 1절부터 6절까지는 귀환한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율법책”을 듣고 이해할 긴급한 필요가 있었기에 공개적으로 성경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7절에는 “백성이 율법을 이해하도록 도운” 13명의 이름과 다수의 레위인들이 나옵니다. 돕는 이들이 했던 일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성경은 그들의 봉사를 인정하여 8절에서 “그들이 그 책 곧 하나님의 율법을 읽으면서 뜻을 밝혀 주었기 때문에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말씀”)인 율법을 낭독했을 뿐 아니라 또한 돕는 이들이 율법을 해석하고 낭독하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어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전도자 빌립은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에티오피아 인을 만났습니다(26-28절, 21:8 참조). 빌립이 그에게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30절). 에티오피아인은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31절), 그리고 이어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신언자가 한 이 말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34절)라고 물었습니다. 빌립은 그에게 “순수한 말씀”을 읽으라거나 그것을 이해하는 데 사람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복음으로 전하”였습니다”(35절). 성경은 빌립이 한 말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로 내시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고”(37-38절) 침례를 받았습니다. 내시는 단지 “순수한 말씀”을 읽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열어주는 빌립의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가르침의 필요성을 강하게 강조했습니다(딤전 3:2, 4:11, 13, 16, 5:17, 딤후 2:2, 24). 그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주의 종들과 교회들 안의 인도자들이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행 2:42, 딛 1:9, 딤전 1:4).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은 몸의 지체들을 온전케 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 및 교사 같은 은사들을 교회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진리를 가르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합니다. 그들의 사역을 거부하는 것은 그분의 백성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헛되고 위험한 제안

 

“순수한 말씀”을 주창하는 가르침을 따른다 하면, 우리가 그 '순수한 말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멀리 가야 합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라는 마틴 루터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시간을 종교개혁 이전으로 되돌려야 할까요? 성경 번역은 번역자들의 이해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고 따라서 하나의 해석이니 우리는 원어 성경만 읽어야 할까요? 가장 권위 있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본문을 모으기 위해 사용 가능한 고대 사본을 샅샅이 살펴보았던 기존의 작업을 무시하고 대신 우리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해야 할까요? 정경에 포함된 책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수 세기 전에 인정되고 확증되었음에도 어떤 기록을 성경에 포함시킬지를 우리가 재평가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인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그것을 점진적으로 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수한 말씀"을 주창하는 가르침의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된 자신감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순수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니 형제님이 <성경을 연구하는 법> 첫 장에서 설명했듯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의 문화와 배경과 견해에 물들어 읽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성경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리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예 안 읽는 것이 아닌 한, 성경을 읽을 때 의견을 갖지 않기는 어렵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성경을 손에 들고 있지만 그것을 읽은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한 사람이 성경을 읽은 것과 내가 읽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이것이 믿기지 않으면 실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같은 장, 같은 절, 심지어 같은 구를 읽게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른 것을 생각해 낼 것이다. 읽기도 전에 이미 우리 자신의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발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성경에 담는다. 예를 들어 보겠다. 물 자체는 무색이지만, 만일 우리가 녹색 렌즈 안경을 쓰고 보면, 물이 녹색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은 물에 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색안경으로 물을 보았다는 것이다(우리의 생명이 자라는 경로, 영문판 67쪽).

 

우리가 우리의 결점들과 편견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주님께서 그분의 몸에 은사로 주신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온전케 되기를 허락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의견에 대한 평가를 부풀릴 것입니다(롬 12:3, 빌 2:3-4).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열기를 거부하고 어떤 이의 개인적인 이해를 높이는 것은 오만한 자만심의 행위이며 역사적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많은 큰 이단들을 초래했습니다. 이단의 위험성 외에도, 통제하는 이상이나 원칙 없이 성경을 해석하면 교통과 상호성 안에서 몸을 건축하는 지체로서 온전케 되는 삶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엡 4:11-12, 16).

 

합당하고 균형 잡힌 접근

 

어떤 사람이 말씀의 해석만 읽고 말씀 자체는 읽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성경만 읽어도 지난 20세기에 걸쳐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주셨던 축적된 모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또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회복 안의 가르침은 앞서간 이들의 어깨 위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 중에서 그분의 사역에 쓰신 사람들, 특히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이 지난 세기 동안 있었던 위대한 기독교 교사들의 저술들을 부지런히 연구했고 그중 성경과 일치하는 것을 지켰음을 의미합니다. 진리에 대한 그러한 확고한 기초로 인해 그들은 앞선 이들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리 형제님은 우리에게 니 형제님이 개인 도서관에 3,000여 권의 기독교 고전을 소장하고 있었고, 그와 니 형제님은 그 저술들로부터 배우려고 그것들을 꼼꼼히 훑어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봉사를 시작할 때부터 다음처럼 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기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려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우리는 우리의 실행을 단독으로 발전시킬 수 없고 다른 이들의 저술들을 읽어서 시야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독교 2천 년 역사로부터 뛰어난 모든 저술들을 수집하여 연구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치우치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을 기준 삼아서, 성경에 근거한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배척했다(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지식, 영문판 54쪽).

 

'순수한 말씀'인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적극 선전하는 이들은 두 형제님들의 수고가 가치가 없고 열매가 없어서 제쳐 놓아야 함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수고 없이도 진리를 분별할 능력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고 주님께서 이미 주신 빛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공간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리 형제님은 또한 우리를 성경의 순수한 말씀으로 되돌아가게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성경이 계시하는 것을 보도록 사람의 천연적이고 피상적이며 전통적인 해석들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기도로 그리고 영과 생명으로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엡 6:17-18, 요 6:63). 그는 또한 성경 해석의 합당한 원칙을 적용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중 핵심은 성경의 명료한 말씀에 우선권을 두고, 어떤 구절도 따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 전체에 비추어 해석하고, 늘 성경의 중심 계시, 곧 그리스도를 그 중심과 전부로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딤전 1:3-4, 엡 1:10, 골 1:15-20)이라는 계시에 기초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법은 성경을 읽고 또한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수단으로 말씀의 사역물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말씀의 사역물을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서도 안 되지만, 니 형제님과 리 형제님의 사역이 성경에 있는 신성한 계시를 신실하고 정확하게 제시했다는 것은 시간과 우리의 경험을 통해 거듭 입증되었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관한 성경의 중심 계시로 인도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확신이 서지 않으면, 간단한 시험을 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의 일부를 읽고 도움 없이 그 내용을 파고들어가 보십시오.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 후에 그 구절을 설명하는 사역물인 <로마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57을 읽어보십시오. 그런 다음에 읽은 사역물이 그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대답이 ‘그렇다’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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