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권위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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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의 권위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
2022년 2월 14일에 게시됨
성경의 모든 진리에는 두 방면이 있으며, 이것들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사실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자연법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자연 법칙에는 균형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 어느 것도 양면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지구는 두 가지 힘 때문에 존재한다. 즉, 원심력은 지구를 밀어내고, 구심력은 지구를 끌어당긴다. 이것이 힘의 균형이다. 성경의 모든 진리도 양면을 가지고 있다. 진리를 합당하게 붙잡으려면 반드시 진리의 양면을 붙잡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5-1976년, 3권, 청년들을 위한 훈련, 6장, 519쪽)
따라서 말씀을 사역하는 이들은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잘라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딤후 2:15). 성경의 어떤 진리든 균형을 잃고 한쪽 면만 취하면 극단적이고 오류에 빠지게 되며, 영적 파멸을 초래합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지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을 때, 사탄이 주님을 시험하려고 왔습니다. 주님께서 신명기를 인용하시어 첫 번째 시험에 응답하시자, 사탄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다시 그분을 시험했습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말씀하셨다. 또한 성경에 ‘주 그대의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마 4:7)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아래와 같이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다시 기록되었으되”라는 원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따라 행하기를 원한다. 마귀는 우리가 성경을 따르거나 성경을 따라 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는 다만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사람이 편협한 방식으로 성경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극단으로 치우쳐 “또한 성경에 … 기록되어 있다.”라는 말씀을 잊어버리게 된다.
‘또한’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큰 말이다. 우리는 이 말에 동그라미를 쳐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따를 때 편협한 방식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양면을 다 고려해야 하고, 할 수 있다면 모든 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 집의 한쪽 면이 집 전체를 나타낼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의 한 부분이 진리 전체를 나타낼 수 없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59년, 3권, 영문판, 393쪽)
우리는 권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마 28:18).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자신의 몸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세워 함께 일하게 하시고, 지방 교회들 안에서 사람들을 감독자로 세워 자신의 양 떼를 먹이게 하십니다(행 20:28, 벧전 5:2). 예수님께서 그분의 어떤 권위도 그들에게 넘겨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분명 교회 전체와 각 지방 교회 안에서 그분의 권위를 표현하고 대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임된 권위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 스스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형제가 그 자신의 권위를 주님의 권위로 삼는다면, 그는 본질적으로 디오드레베의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요삼 9). 일반적으로 올바른 권위는 사역을 통해 실행되며, 때때로 행정적으로 실행되기도 합니다.
교회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지방 교회의 사역에서 우리는 올바른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몸은 많은 지방 교회들 안에서 실질적으로 나타나며, 각 교회는 주님 앞에서 독립적인 행정을 가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느 지방 교회도 다른 교회들로부터 완전히 자치적이거나 독립적일 수 없으며, 그 교회의 장로들은 주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과 몸 전체의 느낌을 고려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장로들이 지방 교회에서 주님의 권위를 표현하고 대변하긴 하지만, 그들이 권위를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지방 교회는 한 가족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합당한 가족에서는 부모가 주님의 권위를 표현하고 대변합니다. 이는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훈계할 때는 사랑으로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가 권위를 행사할 때도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부모가 학대적이거나 자녀들의 필요를 무시한다면, 적절한 당국이 개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결정은 항상 어려운 일이고 예외적인 경우여야 합니다.
장로들은 사도들과 성령의 동역에 의해 한 지방 교회에서 주님의 권위를 표현하고 대변하도록 세워지지만(행 14:23, 20:28. 딛 1:5). 그러나 이 권위는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으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장로들은 개인적인 분쟁에 편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교회 전체의 목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며,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공급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벧전 5:3). 만약 어떤 형제가 지방 교회에서 장로들이 그들의 지방에 있는 교회와 관련된 일에 절대적이고 무한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심지어 사역의 발췌물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경우, 우리는 성경과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물을 균형 잡히고 공정하게 읽어 보면 그의 이런 주장이 맞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가족 안에서 부모는 일정한 훈계를 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가능한 한 적게 훈계해야 합니다. 또한, 장로들이 권위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규정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고린도전서에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글로에의 집안 사람들이 사도 바울에게 알렸습니다(고전 1:11).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상황을 해결할 분량이나 입지가 없음을 알았고, 바울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받은 여러 보고에 대한 그의 응답이었으며(5:1), 편지에서 그는 여러 가지 지시를 포함하고, 책임 있는 형제들에게 죄를 짓는 성도를 훈계하라고 명령합니다(5:13하). 후에 그는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11:34)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개입할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부분은 디모데전서 5장 19절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그의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명령에는 사도들이 장로를 임명할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로가 잘못된 행동을 할 경우 그들을 다룰 책임도 있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사도들이 지방 교회의 행정을 인수해야 한다는 표시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도들은 교회에서 성도들을 괴롭히고 실족하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만, 교회의 행정은 여전히 장로들의 손에 맡겨둡니다.
개입이 상황을 일시적으로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사도로서 사역하는 동역자들은 이러한 조치를 자주 취하지 않으며, 성도들에 대한 대우나 사무 처리에 있어 문제가 있는 이들이 조정될 수 있도록 돕는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인 후에야 그 행동을 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입이 때때로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언급한 대로이며,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그들의 사역을 통해 언급한 바입니다. 니 형제님은 교회 생활에 대한 첫 번째 광범위한 강의에서 디모데전서 5장 19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형제나 그들이 특별히 보낸 사람은 이러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또한 “그들이 장로를 책임지므로 어떤 때 장로를 처리하는 것 또한 그들의 책임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22권, 집회 생활, 1장, 43쪽). 나중에 그의 사역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들을 세우는 권위가 사도들에게 있을 뿐 아니라 장로들을 폐하는 권위도 사도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방 교회는 장로를 쫓아낼 수 없다. 그러나 사도들이 장로들을 폐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두세 사람의 송사가 디모데에게 보내진 것이다.”(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51권, 교회의 사무, 9장, 184쪽)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그의 사역 동안 스무 번 이상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으며, 특히 1965년에 동아시아와 1980년대 후반에 미국과 다른 지역에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1965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규율을 따라 행하여 표준이 될 때 사도는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도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의 인도가 비록 장로에게 위임되었다고는 해도, 만일 그곳의 장로나 교회가 사도가 인도하는 올바른 길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사도는 여전히 관여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65년, 4권, 주님의 회복의 길, 18장, 279쪽)
1988년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히 사도들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가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도 장로들이 여전히 사도의 권위와 관리 아래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사도들이 사람들을 장로로 임명한 후에도 장로들을 다룰 권한이 있으며, 심지어 장로들을 심판하고, 정죄하며, 책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명확한 말씀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영문판, 281쪽)
이런 문제들은 성경의 중심 노선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에서 주요한 초점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것은 교회에 때때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