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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로마서 8:7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관대한 사람은 원수 만들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친화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가급적이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처신을 해서
모든 사람과 좋게 지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보다 속이 좁아서
원수를 만든 것일까요? 그리고 여기서 쓰인 원수라는
단어는 어떤 정도의 원수를 뜻하는 것인지...



롬8:7의 원수는 원문상 '에크트라'인데 미움과 증오심
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말은


눅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더라'.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갈5:19-20,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원수 맺는 것과'
엡2:15, '원수 된 것 ...계명의 율법'
엡2: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등등으로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에게 원수관계인
육신의 생각은 왜 원수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사사건건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간섭하고, 방해하고,
다른 것으로 대치시킴으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훼방하고 좌절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훼방받거나 좌절되는 분이 아니지만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주의 종들이
그리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위 일반적인 교회생활
또는 적당히 육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실패한 믿는이의 생활을 할 때는
육신의 생각의 방해가 그처럼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헌신된 길을 가고자하면
육신의 생각(들)의 방해가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하고,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원흉인 것을
뼈저리게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자기 연민으로
때로는 이견으로
때로는 노골적인 반대로
때로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때로는 세상에 속한 일들에 대한 의무감을 요구함으로
(예를 들면, 물질적인...)


때로는 더러운 생각을 넣어줌으로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때로는 낙심케 하는 일로
때로는 염려와 걱정으로
때로는 원인 모를 두려움으로....



육체는 죄의 몸이요 사망의 몸입니다.
죄와 사망을 주관하는 자는 사탄 마귀입니다(히2:14).


그러므로


그가 아무리 곱게 화장하여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도
그가 아무리 예전에는 주님께 헌신되었던 주의 종이었다 해도
그가 아무리 학식과 교양과 인격이 점잖은 평판을 가졌다 해도
그가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들어 (다 너를 위해서라는 등)
설득한다 해도


그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에는 사탄의 대리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원수로 행동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십자가에서 죽지 마소서)!'라고 말함으로
주님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소릴 들을 때
베드로는 "육신의 생각"(사람의 일만 생각함) 안에
있었습니다(마16:22-23).


이게 <육신의 생각>이 원수 짓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왜 어째서 하나님의 원수인지
그래도 도저히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은
이 시간 자신의 남은 일생을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주님께 절대적으로 헌신하십시오.
그리고 그 길을 가보십시오.


그러면 왜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원수인지를
날마다 순간마다 실감하실 것입니다.



글쓴이 : 갓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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