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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태동 이유 (오은환 목사)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부터 시작된 지방교회는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요?
중국에서 시작된 지방(회복)교회는 다른 교단들과 차별성을 가진 이름일까요?
두 지도자들은 교회 앞에 다른 이름(교단)이 붙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장로교, 감리교, 천주교, 성결교 등, 왜 그런 이름들이 붙어야 하는지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지방의 이름만으로 교회 이름을 부릅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 에베소, 서머나, 라오디게아 교회 등입니다.


"어느 도시에도 하나 이상의 교회가 없었다.
 이것이 가(街)의 범위나 구역의 범위가 아닌 <도시 범위의 지방교회>이다.


 한 지방 교회의 관할 지역은 그 교회가 있는 온 도시를 망라해야 하며, 도시의 경계보다 더 크거나 작아서는 안 된다.
 그 경계속에 있는 모든 믿는이들은 그 도시 안에 있는 유일한 하나의 지방 교회를 구성해야 한다"(p. 89)


이들이 그런 이름을 선택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서구 선교사들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중국에 들어왔고, 여러 교단에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감리교 밑에서 교육을 받던 워치만 니는 고린도 전서 1장을 읽다가 바울, 게바, 아볼로, 그리스도로
당이 나뉘는 것을 보면서, 여러 교파들로 나뉜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젊은 청년이었던 '워치만 니'는 친구, 가족들과 더불어 감리교를 나올 것인지 고민을 합니다.
고린도 전서 1장과 교단은 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의 영지주의의 미혹으로 인한 나뉘어짐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지방교회는 여러 교회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방의 이름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맞습니다.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1:2)


혹은 예수님의 말처럼 <예수 교회>가 근원입니다.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하며,
성경의 근본적인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지방이란 것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도시, 시, 군, 면, 리, 동) 역시 제시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삼아 서로 반목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쉐키나 16.08.12. 10:57
워치만니의 책 "영에 속한 사람"을 보면서 영혼육을 구분을 잘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성령님의 역할이 무엇일까 의문이 들더군요. 그리고 영의 생각을 직관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자의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혼에 대해 육의 일부로 봐서 영처럼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 것이 한계로 보입니다. 벧전2:2의 "믿음의 결국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는 말씀에 위배가 되지요.
  오은환 16.08.12. 20:04
요한이 영으로 계시와 환상을 보고 들었다고 해서, 
사람들도 영으로 준비하면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단 말에 놀랐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자신이 영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벽이 벽옥으로 된 것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김바울 16.08.13. 03:02
오은환 본문에 대해 별도의 해명 글을 올렸습니다.
  김바울 16.08.13. 03:03
김바울 새예루살렘 성의 벽이 벽옥이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이지요.
  김바울 16.08.13. 03:12
혼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타락한 사람 자체를 가리킵니다. 
창46:27은 애굽으로 간 야곱 집안의 식구들을 "칠십 혼"(모든 혼들은 칠십 명이었더라)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말씀하신 벧전 1:9처럼 "믿음의 결과인 혼의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하여
영과 혼과 몸 중 어느 한 면을 지칭할 때 쓰입니다.

많은 분들이 벧전1:9의 '혼의 구원'을 불신자를 구원시키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거듭난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그들의 혼도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점은 1:9의 '여러분'이 그 앞절을 볼 때 '그리스도를 본적이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들'(8절)
부활로 이미 거듭난 사람들(3절)이라는 점
 
김바울 16.08.13. 03:14
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워치만 니의 어떤 면을 귀히 여기면서도
이처럼 저자의 의도를 다소 오해함으로 간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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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스티븐 2016.09.15. 16:00
행2:42... 날마다 이집 저집에서 떡을 뗄려면 낮에 일하고 저녁에 모여야 하는데 도보 1~2시간의 거리로 읍면단위가 맞다고 봅니다. 세상의 차량편을 이용하지 않고 모일 수 있는 범위가 적정 실행 단위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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