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교회 생활을 찾아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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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회 생활을 찾아서(2)
2. 숨겨진 건전한 교회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재침례파가 있었다. 그들은 카톨릭의 잘못을 좀더 자세히 온전히 강하게 개혁하고자 카톨릭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침례를 행하기를 주장하였으나 루터, 즈빙글리, 칼빈 등의 개혁자들은 미지근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 이미 형성된 그들 교파의 추종자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크게 약화되어 시작한 교파의 존립 자체가 어려웠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개혁파 교회들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재침례파의 사람들을 심하게 핍박하여 마치 카톨릭이 자기네 개혁교회들을 핍박한 것처럼 재침례파를 핍박하였다.
그 결과 재침례파에서 여러 형태의 교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소수 모임으로 핍박을 피하여 숨기도 하였으나, 그들 중 일부이겠지만 신대륙 아메리카로 피신하여 그 존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메노나이트, 아미쉬 등이 그들이다. 또 독일 진젠돌프 백작의 영향으로 건전한 모라비아 경건주의 그룹이 있었다. 모라비안 신앙은 참 좋은 것이어서 영국 존 웨슬리도 구원받지 못하여 거듭나지 못한 종교적 열심으로 인디언 선교에도 실패했었지만, 모라비안들의 신앙을 보고 깨달아 알았으며 거듭남의 체험도 하게 되었다 하지 않는가?
그후 특이한 것은 1810년대에 영국의 존 넬슨 다아비에 의해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다같이 고질적인 병폐인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반대하여 다같은 형제라고 주장하여 형제교회가 생겨났다. 거기서 영향을 받기도 한 교회, 중국에서 지방교회가 일어나 다 한 형제이면서 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성경 원칙을 주창하고 실행하는 무리가 있다. 탁월한 성경 진리의 해석을 받은 그들은 초대교회에서 손상되어 변질된 것을 원래의 것으로 회복하는 교회라고 하기도 한다. 이 교회는 특히 주목하여야 할 교회라고 본다.
또 가정교회는 초대교회에 가정이나 어떤 숨어서 모일 수 있는 지하 동굴같은 데서 모인 무리가 있었는데, 카톨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그후 지속적으로 모인 교회이다. 오늘날은 미국같은 데서 기존 교파교회의 변질되고 타락한 현상을 떠나, 차라리 가정에서 성직자없이 신자들이 자유롭게 모여 믿음을 유지해 나가는 모임이 늘어난다고 한다.
가정교회는 전에 중공의 공산주의 핍박하에 비밀리에 지하에서 번져 나간 교회로서 잘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중국교회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중공의 핍박 속에서 가정교회로 작은 수가 비밀리에 모인 경험이 있는 중국인들은 거대한 예배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 점도 있다. 사실 가정교회는 교파가 타락한 현대에서도 장점이 많다. 미국같은 나라에 많이 생겨난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등에서 강변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룰 수가 없는 한계가 결정적 문제이다. 이점을 워치만 니는 경계하였다. 가정교회는 핍박을 숨어서 견뎌내는 모임으로 그 사명을 다하는 것 같다. 돈의 힘으로 핍박하는 현대 기독교에서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방교회에서 추구하는 몸으로서의 교회는 어렵지 않을까?
'종들의 모임'은 강력한 영적 지도력이 있다. 일생을 독신과 무소유로 절대 헌신한 지도자들이 앞장 서서 전도하고 목양하는데, 그들의 생활이 무소유의 철저한 가난, 검소, 경건생활을 지향하기에 지금처럼 돈의 문제에 빠져 심각하게 맘몬의 영향력 아래에서, 어느 정도 확실하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독신과 무소유로 강하게 자기를 부인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남녀 종들을 직접 보고 대면하면서 신앙 생활의 순수함을 맛보며 산다. 신자들이 사랑으로 종들을 돕고 있기 때문에 상 파울로의 경우, 종들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산다고 할만하다. 여기서 종들은 외국에 여행가서 말씀을 전하고 오기도 하니 경제력이 뒷받침된다고 할만하다.
독신 남녀 종들은 카톨릭의 종교화되었음을 개혁교회 식으로 가르치고 교리 때문에 신부나 수녀와의 삶과 다르다. 그들은 기록 역사를 남기지 않는 전통이어서 오직 구전으로만 내려 오고 있어서 기원이나 신조, 교리같은 것을 알아내기가 용이하지 않다. 잘 조직화된 카톨릭의 사제들은 성당 종교조직의 보호와 지탱해주는 안심할 보장과 혜택이 있지만, 무소유 독신 종들은 오직 성도들이 은밀히 도와 줌으로, 거처도 성도들이 자기네 집의 방을 제공함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지낸다. 카톨릭에 비교하면 약하지만 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103년이 된 브라질에서 그들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종들 2씩 함께 지내는 원칙이 있다. 노쇠한 남종이어도 자기들이 스스로 빨래하고 밥해 먹는다. 식사는 거의 신자들이 초청하여 대접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주는 시대이니 제공받은 방만 편리하게 되어 있다면 별 불편함은 없을 듯하다.
내가 본 바로는 상 파울로의 독신 종들은 크게 궁핍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도록 성도들이 적극 돕는다. 남종 Aldo 에게 듣는 바로는 북쪽 시골에서 선교적 개척 교회를 여는 종들은 열악한 모양이다. 이들이 모이는 교회에는 십일조나 일절 헌금이 없다. 은밀히 서로 도와주는 사랑의 구제와 도움만 있을 뿐이다. 가정의 응접실에서 20명 정도 매주 모이지만, 어떤 때는 60명 정도 단위로 차고같은 데나, 가끔 어떤 더 넓은 장소를 빌려 모여 250명 정도 특별집회를 한다. 그들은 모여도 조용한 것이 특징인데, 말을 아끼고 순종 실천을 중요시하며 독신 종들의 강력한 권위에 즐거이 복종한다. 장로교 침례교같은 교파들은 쇠하고 망해도 종들의 모임 교회는 조용하나 강력히 지속될 것 같다.
'지방교회'는 중국의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형제들의 사역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형제교회'의 실행을 많이 가지고 있다. 둥그렇게 모인다든지, 조직이 성직자 평신도 구분을 하지 않는다든지, 헌금을 강조하지 않고 서로서로 돌보는 상호 목양한다는 방식이다. 탁월한 성경교사였던 두 사람의 말씀이 자세하게 가르쳐지고 있는데, 대단히 심오하다고 할만하다. 오늘날 두 사람이 다 죽은 후에 그 제자들이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더 개발되고 파 헤쳐진 말씀의 해석 내용은 놀랄만할 정도로 심오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비밀스런 내용들, 특히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예수님으로 사람되심은, 사람으로 변화하고 성숙하여 하나님처럼 되게,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바울의 진술처럼, 잘 정리된 설명은 탁월하다. 나는 이 교회처럼 높은 수준의 성경 해석을 가지고 있는 어떤 주석이나 말씀을 실행하는 교회를 본 적이 없다.
성경해석이 대단히 수준이 깊기도 하지만 실행 면에서 애써 말씀이 구체화되게 힘쓰며, 개인으로 되지 못하고 교회로서 서로서로 몸의 각 지체로서 작용하고 섞여서 주님이 거하시는 단체적 교회가 되어야 말씀이 실현된다는 점 등등... 수많은 놀라운 진리를 가르치며 실행한다. 교회생활은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들인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붙들어 주어 성숙하게 한다는 것... 그들은 지식으로 머무는 것을 경계하고 실제로 실행하도록 애쓰며 기도하며 가르친다. 불행히도 이단 시비로 은근히 의심을 받게 교파들에서 경계하지만, 감추인 보화라 아니할 수 없다.
현대의 이단 시비는 정치적인 이유가 많으니 혼란 가운데 있다. 교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지방교회는 실상은 이단이 아니다. 성경을 잘 깨닫지 못하고 얕은 정도로 밖에 모르는 카톨릭이나 개혁교회에서 소위 신화 사상같은 것을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너무 무지한 웃기는 일이다. 확실히 하나님의 계시는 열어 보여 주셔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방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의 내용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비밀스런 것을 열어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제야 시작 단계에 불과한 나 자신이지만 얼마나 개혁교회의 수준과 다른 깊고 높은 수준인지 나날이 알아가며 누리고 있는 중이다.)
교파들은 교회 구조 시스템이 비성경적이어서 그들보다 더 목사가 횡포적으로 목회하여 악한 일들이 많이 벌어져 실천적으로 이단적 요소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 등등의 직급같은 것들을 만들어 장로직과 함께 돈으로 매관매직하는 것 같은 현대 개신교회는 더 이단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치사한 정치를 일삼는 당회, 노회, 총회의 행태는 교회라기 보다 무슨 흉악범들의 집단 같은 때도 있다. 어디 성령론, 교회론, 말세론 등이 명확하게 정리된 신학이 있는가? 하나님의 비밀이 잘 보이지 않으니 다 불분명하게 두리뭉실 얼버무려 가르친다.(계속)
글쓴이 : Jin Yoon Song,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7296585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