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회복―개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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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회복―개혁의 역사
II. 개혁의 역사
다른 웹사이트에서 마르틴 루터와 개혁에 관하여 별도로 언급하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개혁의 몇 가지 결과에 대하여 다루겠습니다.
A. 국가 교회-한 나라, 한 교회 (주후 1517-현재까지)
개혁의 결과로 교회에 관한, 혹은 교회를 조성하는 것에 관한 새로운 태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국가 교회들이 형성되어 나라마다 한 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루터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 교회가 형성되어 성공회(Episcopal or Anglican Church)라고도 불리우고 독일에서는 루터교회가 형성되었고 네델란드와 스위스에서는 개혁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교회들은 모두 국가의 원조 아래서 국가의 지원을 받고 국가가 장려했습니다.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자동적으로 그 나라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개혁으로 인해 카톨릭 교회의 멍에로부터, 특별히 구원에 관한 멍에로부터 벗어남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카톨릭 안에 존재하던 교회와 국가간의 부정한 연합이 계속된 것 뿐 아니라 국가 교회들로 넓어진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B. 독립 교회들-유일한 교리, 한 교회 (주후 1520-현재까지)
거의 동시에 다수의 독립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회들의 입장이나 근거는 특별한 교리, 교회 관리의 유형, 특별한 생활 방식, 혹은 어떤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교회의 길이란 그의 책에서 이 독립 교회들, 또는 사교회들, 국교에 반대하는 교회들, 자유 교회들 혹은 오늘날 우리가 교파들이라 부르는 교회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후에 사립 교회가 일으켜질 때 먼저 앵그리칸 교회를 떠나야 했다. 이 사립 교회들의 이름은 이의자(dissenters)들로서 국교회에 대해 이의가 있다는 뜻이다. 본래 그들은 국교회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안에서 나오려 하니 먼저 거기에서 벗어나야 다른 것에 가입할 수 있었다. 웨슬레교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앵그리칸 교회를 떠나야 했다. 그들은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원래 있던 곳에서 나올 리가 없다.
워치만 니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침례교의 사람들은 국교회의 그릇된 것을 일어나 반대했었다. 장로교 사람들도 일어나 반대했고 웨슬레교 사람들도 일어나 반대하였다. 웨슬레교 사람들은 어디서 어디서나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이의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이 제창하는 의의에 근거하여 진리를 지키기 위해 교회를 세웠다. 이러므로 침례교가 일어났고, 장로교, 웨슬레교, 퀘이커교가 일어났고, 후에는 수천 개나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그들을 이의자(dissenters)라고 부른다. 러시아 제국시대에는 국교회를 그리이스 정교회라 부르고 다른 것은 다 종파라고 불렀다. 이 형제들은 다 진리를 위해 일어난 사람들이다. 이것은 좋은 것이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교회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수천 갈래, 수천 조각으로 나누었으므로 우리는 안타깝게 느낀다.
그는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 그런 교회들이 이미 세워졌다. 침례를 주장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침례교가 되었고, 한 사람 루터로 인하여 루터교가 되었고, 한 사람 칼빈으로 인하여 장로교가 되었고, 한 사람 웨슬레로 인하여 감리교가 되었으며, 한 사람 심프슨으로 인하여 오순절교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에는 교리로 교회를 세운 적이 없다. 성경 전체에 특별한 교리로 세워진 교회는 한 지방도 없다. 또한 사람들이 가장 심하게 다툰 교리도 바울이 보기에는 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은, 어떤이는 이날을 지키려 하고 어떤이는 저 날을 지키며 어떤이는 두 날을 다 지켜도 된다. 이들은 다 믿음이 약한 사람인 고로 교리로 나누지 말아야 한다.
C. 개혁 역사에서 나온 관념들
1. 무형교회와 유형교회의 교리
개혁의 결과로 유형교회와 무형교회의 교리를 포함한 새로운 교리들이 나타났습니다. 형제 자매들은 국가나 영토의 모든 인구가 로마 카톨릭 교회나 국교회들에 포함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그 일원이 되는 자격이 시민권으로서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이 유일한 요구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많은 이들이 참된 믿는이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근심하고 걱정하던 중 어떤 이들은 유형 교회안에 무형교회가 있다는 교리를 전개했습니다. 진젠돌프조차도 이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교회 안에 우리가 볼 수 없지만 교회의 어떠함의 참 본질이 있는 교회, 즉 교회속의 교회(ecclesiolae)를 말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 곡식과 가라지가 같은 밭에서 자라 추수때까지는 나뉘지 않고 함께 자라는 비유를 언급했습니다(24-30절). 그러나 이 단락에서 보면 밭은 세상이지 교회가 아닙니다(38절). 성경에는 교회 안에 곡식과 가라지 둘 다 있어야 한다는 암시가 없고 오직 곡식만 있어야 합니다.
2. “영적” 교통
개혁의 또 다른 부산물은 “영적” 교통이라는 개념입니다. 교파들이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 몸의 분열이라는 것을 깨달은 교파 안의 많은 믿는 이들은 모든 믿는이들간에 교통을 유지해야 할 필요를 보았습니다. 비록 교리적인 차이를 포기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영적 기초 위에서 서로서로 교통을 지속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영적 하나됨이 있었지만 영의 하나됨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입장인 하나됨의 영뿐 아니라 하나됨의 실행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시했습니다.
3. 조합교회주의(Congregationalism)
개혁의 세 번째 결과는 조합교회주의입니다. 이 원칙아래 각 독립적인 조합을 교회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어떠한 모임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교회들이나 로마 카톨릭 교회와는 다릅니다. 국교회나 로마 카톨릭은 지방을 벗어나 영향력의 범위가 아주 커서 한 나라 전체이거나 로마 카톨릭의 경우에는 전 세계를 포함합니다. 하지만 조합교회주의는 지방보다 더 작아 한 지방에도 여러 개의 모임이 있고 각각 독립적으로 자치하며 그들만의 장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교회들이 이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교회의 크기 때문에 여러 개의 가정 집회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한 교회였고 여러 개의 작은 자치권이 있는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한 도시에 한 교회라는 통제하는 원칙 없이는 분열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조합교회주의는 한 교회가 한 길 가에 또 다른 교회가 다음 길에 또한 그 옆길에 있게 합니다. 이런 원칙을 적용한다면 분열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