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교회 생활을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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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회 생활을 찾아서(1)
현대 기독교인들의 신앙 혼란이 안타깝다. 나 자신도 그 흙탕물 속에 있지 않은가?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고자 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하고 있다. 혹은 그런 것 상관하지 않고 그저 복받으려고만 하는 거짓교인들, 종교인들, 얌체족들이 많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야 한다.
어떤 개신교 목사들은 알듯 모를 듯 막연하게 잘못된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지만, 먹고 살 생활난에 얽매여 그런 근본적인 것에는 애써 눈감는다. 어쩌다 얻은 목사직책에 일종의 자부심까지도 느끼며 교만한 자세로 넥타이 매고 다니는 한심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목사들은 목사 양산의 결과인지, 이런 깊은 것을 알지도 못하고 고민하지도 않는 형편없이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다.
카톨릭 신부들의 사정도 그럴까? 많이 다를 것이다. 개신교 목사가 나이들고 자녀들 성장하고 생활비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그 문제, 심각한 근본 문제를 다루어 보지만 기가 막히게 잘못되어 있는 현상에 아연 실색하고 고민하는 목사들도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1. 카톨릭에서 개혁한 루터 이후의 개혁교회의 실패상
카톨릭의 부패에서 고행이나 선행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음의 진리를 깨닫고 기치를 들어 개혁에 성공하여 루터교, 개혁교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회 등을 세워 보았지만, 개혁 이후 약 500년 지나는 지금 거의 다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여, 성경적 교회를 이루지 못하고 타락하여 부끄러운 짓거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을 쓰고 있으면서 교회이기를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이 그 유럽에서부터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16세기초 500년전 독일의 루터가 발견한 이신칭의 교훈이 지금은 일부 대교회 지향 목사들에 의하여 악용되어 값싼 은혜로 복음을 팔고 사는 정도로 변질되었다. 그냥 오직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고, 믿음이 강하게 발동되면 하나님의 기적도 얻는다는 식이어서 말씀 순종 생활은 뒷전이 된다. 땅에서 복받아 잘살아 보겠다는 요행심리와 잘 맞물려 삼류 따라지 동물적 수준의 인생으로 전락하는 개신교인들이 많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범죄의 방법으로라도 세속적 복을 받아 누리려고 애쓴다. 강단에서 잘못 전하는 메세지가 그런 식으로 이끌고 간다. 차라리 선행과 함께 믿음을 가르치는 카톨릭은 그런 현상이 없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개신교 오순절 주의 같은 데서는 교묘한 관념적 심리적 믿음 원리를 기도나 기적 출현 같은 것과 혼합하여 기복적이며 신비주의적 신앙으로 변질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주의 개신교도 성장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있는가하면 목사가 목회에 성공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먹사가 되는 현실 환경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신교의 시스템이 나쁜 구조적 제도의 결함에서 오는 심각한 오류이다. 교회 키우기에 수단 방법이 고려되지 않는다. 목회를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생존을 위한 다른 직업을 가지기가 불가능한 목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식이 가난에 굶는 목사 아버지는 교인 쟁탈전에 적극 끼어 들어 자기 교회의 헌금을 높이는데 전력한다. 그러자니 가난하거나 늙고 어리거나 헌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교회 등록에 환영받지 못하나, 다른 교회에서 잘못하여 치리를 받아 나온 교인이 자기네 교회에 오면 대 환영하여 받고 어쨌든 헌금이나 많이 해 주었으면 하는데, 그후 또 범죄하는 그 교인 때문에 교회가 박살이 나기도 한다.
개신교 기독교의 혼란과 다툼과 타락 현상은 전세계적이다. 어느 대륙의 나라이든지 문화만 조금 다를 뿐 그 근본 문제는 다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정 문제 때문에 교인 쟁탈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목사가 다른 생활비 버는 직업이 있고 목회하면서 재정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있게 바른 교회를 지향하고 목회하면 조금 나을런지 모르나, 재정 방면 말고도 목사는 잘못할 소지가 많은 직책이다.
목사는 그 직책상 제멋대로 육신이 이끄는대로 범죄하고 교회내에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독재하기 십상이다. 영성이 잘 준비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개신교에 그런 영성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영적 교훈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이 절제하여 범죄하지 않고 윤리 도덕적으로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정도이다. 이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개신교의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교회에서는 그 방면에 탁월한 말씀 해석이 있어서 성도들이 높은 수준의 신앙을 가질 길이 열려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은 루터 이후 개신교가 실패한 종교개혁의 부산물임이 밝혀진 셈이다.(계속)
글쓴이 : Jin Yoon Song,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7296585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