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실행에 관한 우리 형제님들의 완전한 사역에 대하여 신실함(2)(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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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의 실행에 관한
우리 형제님들의 완전한 사역에 대하여 신실함(2)
2023년 6월 12일에 게시됨
최근에, 사도직을 수행하는 이들은 한 지방의 교회 행정에 개입할 입지가 없다는 다른 가르침이 유포되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진리 메시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인용됩니다.
사도들은 권위를 갖고 있는가? 신약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사도들 스스로는 교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지 않다. 오직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만이 권위를 갖고 있다. 만일 교회들과 성도들이 말씀에 따라, 곧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에 따라 전진해 나간다면 사도들에게는 교회들을 다룰 권위가 없다. 그러나 교회가 길을 잃고 잘못 인도될 때에는 사도들이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상황을 다룰 의무와 책임이 있다. … 사도들의 권위는 영적인 것이며 그것은 그들의 말씀의 사역 안에 있다. 사도들은 교회의 문제들을 간섭하는 지위상의 권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8년, 3권, 진리 메시지, 3장, 477쪽)
이 인용문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인용문에서 사용하는 표현은 신약 성경과 우리 형제님의 완전한 사역에 비추어 신중하게 읽고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은 1978년 말에 주어진 메시지로서, 당시 미국 교회들은 한 형제로 인한 혼란을 막 겪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형제가 자신이 ‘한 새 사람의 우주적인 코디네이터’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지방을 돌며 장로들을 해임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 임명하며 강한 계층 구조를 도입하려고 해서 생겼던 혼란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사역의 이름으로 다양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배경을 알면 리 형제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는 권위가 없음” – 사역은 수십 년간 일관되게 어떤 사람도 스스로에게는 권위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왔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한 권위자이시며, 그분은 모든 권위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십니다. 사역이나 교회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권위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된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권위가 드러나는 통로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에게는 권위가 없습니다.’(기울임꼴은 강조하기 위한 것임, 참조: 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22권, 집회 생활, 1장, 24-25, 29쪽; 권위와 순복, 개정판, 어떻게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는가, 1장, 150-151, 153-154, 163-164쪽) 장로들에 대해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 자신에게는 권위가 없고 다만 하나님의 권위가 있을 뿐이다.”(워치만 니 전집, 22권, 집회 생활, 1장, 42쪽) 따라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권위는 동일한 기초 위에 있습니다. 즉 권위는 그들 스스로 소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스스로에게서 나온 권위를 행사한다면, 그것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 권위만이 진정한 권위입니다.
“교회를 통제함” – 사도들이든 장로들이든 어떤 형태의 통제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 권위를 강탈하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장로들은 성도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고후 1:24, 벧전 5:3).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진리 메시지〉에서 말한 ‘통제하다’의 의미는 그 교회를 관리하는 지방 교회의 장로들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최고 경영자”가 맨 위에서 지시하고 아랫사람들이 그 명령을 실행하는 계층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유기적인 본성과는 맞지 않으며, 주님의 회복 안에서는 결코 실행된 적이 없습니다.
“교회의 일에 간섭함” – ‘교회의 사무’라는 용어는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말한 것처럼, “사도들은 사무적인 일에 있어서 각 지방에 있는 교회의 행정에서 손을 떼어야 했을 뿐, 사도들의 가르침과 지시와 명령에 대한 필요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기울임꼴은 강조하기 위한 것임, 위트니스 리 전집, 1986년, 3권, 장로 훈련, 9권, 장로 직분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1), 4장, 84쪽) 이 말은 장로들이 부적절하게 행동할 때 사도들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했던 첫 번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길을 잃고 잘못 인도될 때에는 사도들이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상황을 다룰 의무와 책임이 있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8년, 3권, 진리 메시지, 3장, 477쪽)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사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상황을 처리하려고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것을 두고 그들이 권위나 통제를 부당하게 행사한다고 비판하는 근거로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진리 메시지〉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이는 신약 성경과 리 형제님의 사역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있는 대부분의 서신서는 교회에서 발생한 오류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쓰였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5장 2절과 13절, 그리고 디모데전서 5장 19절은 사도들이 그들의 책임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절들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을 격리시키라고 명령하고, 11장 34절에서는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를 다룬 후에,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 19절에서는 젊은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장로에 대해 고발은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리 형제님의 〈진리 메시지〉의 말씀을 좁은 시각으로 적용하는 사람은 바울 사도가 권위를 잘못 행사하고 교회를 통제하며 고린도 교회 일에 간섭했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신약 성경이나 리 형제님의 사역과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리 형제님은 1960년대 중반과 1980년대 후반에 성경의 이 부분들을 길게 다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1965년에 고린도전서 두 말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방 교회에서 장로의 입장은 지방 교회의 행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행정은 독립되어 있지만 이 독립이 사도에 대한 것은 아니다. 한 면에서 교회의 행정은 독립적이지만 고린도전서에서는 최소한 두 군데에서 교회에 대한 사도의 책임과 권위를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5장에 있는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악을 행한 형제를 용납한 것에 대해 그들의 실수를 책망하고 그 악을 행한 자를 제하라고 했다(1-5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한 것이다. 두 번째는 11장의 마지막 한 구절로서 사도 바울은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안배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사도가 장로들에게 그 지방 교회를 다스리고 돌보는 일을 넘겨주었지만, 사도는 교회에 대하여 여전히 책임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방 교회의 행정이 독립적이라는 말을 장로가 사도에게서 독립적일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안배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곳에 여전히 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65년, 4권, 주님의 회복의 길, 18장, 277-278쪽)
〈진리 메시지〉를 전한 후 10년이 지난 1988년에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디모데전서 5장 19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누구에게 해야 할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도들에게 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도, 장로들이 여전히 사도의 권위와 관리 아래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그들은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도 여전히 그들에게 장로들을 다룰 권위가 있고, 심지어 그들을 판단하고, 유죄판결 하고, 꾸짖을 수 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말씀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영문판, 281쪽)
이러한 예시는 한 번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진리 메시지〉가 전해지기 이전과 이후에도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에서 그 문제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많이 다루어졌습니다.[1] 1965년에 리 형제님이 한 아래의 간략한 말은 어떤 동역자도 교회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동역자들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도록 개입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만일 각지 교회를 통제하는 어떤 일이 있다면, 그 일은 아마도 주님 앞에서 거절될 것이다. 동역자들의 일은 각지 교회를 부축하는 것이지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서 아무렇게나 행한다면, 동역자는 반드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65년, 4권, 주님의 회복의 길, 18장, 290-291쪽)
따라서 인도하는 동역자들이 교회들과 주님의 증거를 돌보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고 할 때 그것을 부당한 간섭이라며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납니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을 들을 때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고립되고 단편적인 발언들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신의 결론과 모순되는 다른 부분들은 도외시하고,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의 말씀에서 문맥을 무시한 채 발췌한 내용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인용하는 이들은 이 사역의 신실한 청지기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현재의 인도 직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제시된 인용문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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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WWN, vol. 22, 30; vol. 51, 143; vol. 57, 74, 309; CWWL, 1950, vol. 2, 287; 1956, vol. 2, 487, 511; 1965, vol. 4, 170, 185-186; 1967, vol. 1, 203-204; Life-study of First Timothy, 84; CWWL, 1984, vol. 1, 405, 410; 1984, vol. 4, 248, 271, 274, 496; 1985, vol. 2, 69; 1985, vol. 3, 337; 1986, vol. 1, 304; 1986, vol. 3, 63; 1987, vol. 2, 90; 1987, vol. 3, 187; 1988, vol. 1, 594; 1988, vol. 3, 144, 165-166, 202, 203, 213, 254, 277, 280-281, 292-293, 439, 543; 1988, vol. 4, 8, 12-13, 95, 209-210; 1989, vol. 4, 327, 507; 1991-1992, vol. 4, 315; The Conclusion of the New Testament: The Church, the Kingdom, and the New Jerusalem (Msg. 189-204), 2169; 보다 많은 발췌문의 예시는 [여기](https://shepherdingwords.com/pdf/Ministry Excerpts Pertinent to Facing a Recent Situation.pdf)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