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사도들의 지속되는 역할에 대한 사역의 말씀 발췌문(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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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사도들의 지속되는 역할에 대한 사역의 말씀 발췌문
2020년 10월 26일에 게시됨
워치만 니 전집, 개정판, 22권, 집회 생활
1장, 43쪽
디모데전서는 우리에게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5:19). 그러므로 이 일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서면(書面)의 송사가 있어야 한다. 구두(口頭)의 송사는 송사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왜냐하면 말로 하는 것은 근거가 없고, 자주 식언할 수 있으며, 변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두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증언은 믿을 만하지 못하다. 성경에서 두세 사람은 증거의 입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하는 형제나 그들이 특별히 보낸 사람은 이러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
워치만 니 사역 재개 메시지 기록(상), 개정판
44장, 414쪽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다른 교회들을 감독할 수 없다. 그러나 일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를 감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는 결코 또 다른 교회를 감독하지 않았지만, 안디옥으로부터 나간 사도들은 분명히 다른 교회들을 감독했다. 어떤 지방에 있는 교회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문제를 일꾼들에게 가져가야 한다. 디모데전서는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5:19). 고발은 소문이나 전해 들은 말을 근거로 할 수 없었고, 반드시 증인이 있어야 했으며, 또한 디모데에게 제시해야 했다. 디모데는 일꾼이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한 지방에 있는 장로들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65년, 4권, 주님의 회복의 일
18장, 277-280쪽
사도는 교회를 설립하고 그 교회의 행정을 위하여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 여전히 교회에 대하여 책임과 권위가 있음
지방 교회에서 장로의 입장은 지방 교회의 행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행정은 독립되어 있지만 이 독립이 사도에 대한 것은 아니다. 한 면에서 교회의 행정은 독립적이지만 고린도전서에서는 최소한 두 군데에서 교회에 대한 사도의 책임과 권위를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고린도전서 5장에 있는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악을 행한 형제를 용납한 것에 대해 그들의 실수를 책망하고 그 악을 행한 자를 제하라고 했다(1-5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한 것이다. 두 번째는 11장의 마지막 한 절로서 사도 바울은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사도가 장로들에게 그 지방 교회를 다스리고 돌보는 일을 넘겨주었지만, 사도는 교회에 대하여 여전히 책임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방 교회의 행정이 독립적이라는 말을 장로가 사도에게서 독립적일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곳에 여전히 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5장 19절에서는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장로들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알려준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장로의 문제를 여전히 사도 앞에 두고 사도가 판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는 교회가 사도를 향해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만일 교회가 성립되고 장로가 세워진 후에 교회가 완전히 독립적이 되어 사도조차 관여할 수 없다면, 위와 같은 사례들도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행정이 독립적이라고는 해도 사도에 대해서는 아니며, 장로들은 마땅히 사도의 인도에 따라 지방 교회를 돌보아야 함
위의 세 군데 성경 구절은, 사도가 한 지방 교회를 세우고 장로를 세워 교회를 다스리고 돌보는 권위를 장로들에게 넘겨주어 장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돌볼 책임이 있고, 지방 행정 역시 독립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사도에 대하여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교회가 사도에 대하여 독립적이 된다는 것은 사도를 거절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독립이라고 하는 대신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교회가 만일 규율에 따라 즉, 사도의 인도에 따라 행한다면, 행정적으로 독립적이라는 점에 있어서 조금도 문제가 없다. 달리 말해서, 지방 교회는 사도의 인도에 따라 행해야 하고, 장로들은 마땅히 이 원칙에 따라 교회를 돌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일은 사도가 하는 것이고, 교회는 사도가 세운 것이자 인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규율을 따라 행하여 표준이 될 때 사도는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도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의 인도가 비록 장로에게 위임되었다고는 해도, 만일 그곳의 장로나 교회가 사도가 인도하는 올바른 길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사도는 여전히 관여해야 한다.
사도는 교회를 인도하고 돕고 바로잡으며 세워야 하지만, 교회를 통제해서는 안 됨
고린도전서 5장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악한 형제를 격리하라고 한 것이 고린도 교회와 가진 교통이 아닌 고린도 교회에게 내린 그의 명령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좋은 근거이다. 심지어 바울은 그가 이미 주님의 이름 안에서 이와 같은 사람을 징계받도록 사탄에게 내어주었노라고 말한다. 만일 고린도 교회 장로들이 사도 바울의 인도에 따라 이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좋은 본이 아닌, 곧 사도의 인도를 거절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달리 말해서, 한 지방 교회의 장로들은 마땅히 사도의 일을 따라서 합당하게 교회를 인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당연히 사도가 관여할 필요도 없고, 사도 역시 관여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만일 어떤 교회의 장로들이 합당하게 행하지 않고 사도의 일을 따라 전진하지 않는다면, 사도에게는 마땅히 관여할 수 있는 지위가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사도의 일은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여는 교회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요, 교회를 인도하고 돕고 바로잡으며 세우기 위한 것이다.
18장, 283쪽
전시간 봉사자가 모두 사도는 아님
주의할 가치가 있는 것은, 모든 전시간자들이 다 사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형제가 구원받은 지 사오 년이 되어 마치 디모데와 같이 막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는 사도가 될 수 없다. 바꿔 말해서, 주님의 일 가운데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사도는 아닌 것이다. 바울의 동역자들을 예로 들자면, 누가가 사도인가 아닌가? 누가가 바울과 함께한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성경에서 누가를 사도라고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디모데가 사도요, 실라 역시 사도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도와 함께 동역했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사도요, 어떤 이들은 반드시 사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8장, 284쪽
교회를 일으킬 수 있고 교회를 전반적으로 인도할 수 있는 봉사자라야 사도임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장로는 사도에 의해 세워진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라야 사도라 칭해질 수 있는가? 원칙은 매우 분명하다. 즉, 교회를 일으킬 수 있고 교회를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전시간 동역자 한 명이 사도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가 교회를 인도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주의 깊게 보면 된다. 만일 그가 전반적으로 교회를 인도할 수 없다면 그는 단순히 전시간 봉사자이며, 일에서 몫을 가지고 있는 것일 뿐, 사도의 지위에 설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전시간 봉사자 한 명이 비록 일에서 몫이 있다 할지라도 사도와 같은 방식으로 교회와 연관이 있는 장로들의 일에 관여할 수는 없다.
18장, 286-287쪽
앞선 형제의 안배를 존중하고 주장하지 않음
1932년부터 나는 이 사역의 일에서 몫이 있었고, 항일전쟁 승리 이후까지 이어졌다. 1946년 나는 난징(南京)으로 갔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오직 옌타이에서만 한 명의 장로를 세웠고, 그 지방의 책임에 대한 안배는 초기에 모두 워치만 니 형제님이 하셨던 지시를 따랐다. 항전 기간이 되어 교통이 중단된 데다가 그곳의 교회가 확장되어 필요도 커졌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했고, 다른 몇 명의 형제들을 장로로 세웠다. 1946년까지 내가 장로를 세운 것은 그 정도에 불과했고, 다른 어떤 지방에서도 장로를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일에 참여하게 될 때 모두 니 형제님의 지시를 받았다.
사역의 일 안에 들어온 모든 전시간 봉사자들이 다 장로를 세우거나 장로의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이 공과를 배워야만 하는데, 그 가운데는 많은 측면들이 있다. 삼십 년 전의 체험을 돌이켜볼 때, 나는 교회 안에서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내가 장로를 세우고자 했다면 아마 착오를 일으켰을 것이다. 이 사역의 일이 사람의 손에 놓이므로, 우리는 체험이 필요하다. 미국에 있는 어떤 보험 회사는 막 면허증을 딴 사람이 보험에 드는 것을 받지 않는다. 받더라도 높은 보험료를 받는다. 막 면허증을 딴 사람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이 아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이 있고, 주님 앞에서 진보가 있고,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다고 해서 다 동역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장로를 세울 수 있는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18장, 290-291쪽
어떤 사람들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의 표현을 근거로, 장로가 사도를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니 형제님이 이 책을 쓴 본래 의도는 여기에 있지 않다. 만일 어떤 장로가 이 책의 논점을 따서 사도를 거절하려 한다면, 이러한 장로는 주님 앞에서 이미 장로로서의 그의 참된 지위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성경조차도 교회의 조직적인 법규가 될 수 없으며, 우리에게 하나의 표준과 하나의 길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영 안에서 배워야 하며, 모든 것이 다 영 안의 문제이고, 모든 것이 마음에 품은 것과 주님을 경외하는 것의 문제이다.
만일 각지 교회를 통제하는 어떤 일이 있다면, 그 일은 아마도 주님 앞에서 거절될 것이다. 동역자들의 일은 각지 교회를 부축하는 것이지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서 아무렇게나 행한다면, 동역자는 반드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교회 안에 어려움을 가져온 사람에 대한 것을 예로 들면, 그는 그러한 것을 반드시 처리했고, 그의 태도는 매우 확고하고 엄중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는 어떤 사람도 교회를 주관하지 못하게 했고, 그리스도의 몸을 손상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조금도 교회를 통제할 뜻이 없었고, 그가 교회에게 준 모든 것은 부축과 인도와 가르침이었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6년, 3권, 장로 훈련, 9권, 장로 직분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1)
4장, 85-86쪽
사도들과 각 지방에 있는 교회의 관계에 대해 니 형제님이 말해 준 또 다른 방면이 있는데, 바로 디모데전서 5장에 있는 말씀이다. 디모데전서 5장 19절과 20절은 이렇게 말한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죄를 짓는 사람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하여 나머지 사람들도 두려워하도록 하십시오.” 디모데는 어떻게 장로에 대한 고발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해 사도 바울에게서 지시를 받았다. 이것은 사도들이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도 그들을 다룰 권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장로들 가운데 문제가 있다면 이런 일은 사도들에게 가야 했고 사도들이 판결해야 했다. 사도들은 죄악이 가득한 장로를 다른 이들 앞에서 꾸짖을 권위가 있다. 사도들은 교회의 행정에서는 손을 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장로들이 세워진 후에 사도들이 각 지방에 있는 교회와 절대적으로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악이 가득하고 잘못된 장로는 성도들에 의해 고발될 수 있으며 이런 고발은 사도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결국 사도들은 그 상황을 판결하는 작은 법정이 된다. 고린도전서 6장에 따르면, 심지어 성도들도 그들 가운데 있는 송사를 판결하기 위해 작은 법정이 될 수 있다(1-3절). 사도들은 어떤 장로를 가리켜 잘못 행했다고 주장하는 소송에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장로들을 의롭다 하거나 유죄판결 하는 것은 사도들에게 달려 있다. 디모데전서 5장 20절에 따르면, 장로가 죄가 있다는 판결을 받을 경우 다른 이들 앞에서 책망받을 수 있었다. 죄를 범한 장로가 공개적인 책망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의 공적인 위치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에 근거할 때, 사도들이 장로들을 세워 그들에게 교회를 인계하고 나면 교회나 그들과 무관해진다고 우리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고린도전서 전체가 ‘성가시게 하는 책’이다. 서신을 쓴 사도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를 성가시게 했다. 책 전체를 그 지방에 있는 교회에게 주는 명령으로 여길 수도 있다. 고린도전서 11장 34절은 이렇게 말한다.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집에서 먹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을 받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처럼 많은 것을 주의하라고 교회에게 명령한 후에도 그 남은 것을 자신이 갈 때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말씀은 우리의 최고의 권위 곧 우리의 헌법이다. 이 절은 사도 바울이 어떤 것은 바로잡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그의 서신에서 결혼,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는 것, 머리를 덮는 것, 주님의 상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바울의 명령에 의해 바로잡혔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과의 교통에서 그들에게 최소한 열한 가지의 문제를 처리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교회에게 많은 것을 행하라고 명령했다. 사도인 그는 교회의 행정을 수행할 위치는 없었지만 그것을 행하도록 장로들에게 명령할 위치와 권리와 책임이 있었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몸, 영문판
1장, 120-121쪽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에 따르면, 은사 있는 사람들—사도들, 신언자들, 복음 전하는 이들, 목자들 및 교사들—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수고한다. 이것은 그들이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즉 단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만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들과 신언자들과 복음 전하는 이들과 목자들 및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에 주신 은사들이므로,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완전히는 자치적일 수 없다. 그들은 비록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서 수고하지만, 그들의 일은 우주적인 한 몸의 건축을 위한 것이다. 16절은 은사 있는 사람들이 몸에 풍성한 공급을 하는 마디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에 관한 형제회의 가르침도 옳은 것이 아니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연맹으로 조직화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단지 자치적인 지방 교회들만을 건축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2장, 126쪽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은 사도들이 어느 지방에 장로들을 세우고 그 교회를 그들에게 넘긴 후에는 교회의 사무를 관리하는 데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939년에 이 책이 출판된 후 어떤 성도들은 이 말을 오용하여, 사도들은 교회를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1948년에 니 형제님은 쿠링 산에서 동역자들과 장로들을 위한 공식적인 훈련을 했다. 거기에서 그는 어떤 사람들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에 있는 그의 말을 오해했다고 말했다. <교회의 사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니 형제님은 이와 같이 말했다. “한커우(漢口)에서의 집회(<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로 출판된 메시지들을 가리킴) 후에 어떤 형제들은 오해했다. 그들은 장로들이 비록 사도들에 의해 세워지기는 하지만 사도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영문판, 143쪽)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생활과 연관된다.
4장, 136쪽
사도들이 교회들을 관심한 것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자치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강한 표시이다. 사도행전 14장 23절에서, 바울은 그가 최근에 세운 여러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다. 그 교회들은 일 년도 안 되었으므로, 장로로 세워진 이들은 성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들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사도들로부터의 계속적인 돌봄이 필요했다. 사도들이 쓴 모든 서신은 교회들을 돌보기 위한 것이었다. 사도들은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 교회를 관심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바울은 투옥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교회들을 돌보았다.
5장, 160쪽
사도들이 교회들을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하며 교회들을 장로들의 손에 맡겼을 때, 그들은 그 교회들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사도들은 교회들만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자치제라는 틀린 가르침이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계속해서 교회들을 돌보았다.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서, 바울은 모든 교회들에 대한 그의 염려에 대해 말한다. 그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안디옥에 머물렀다. 사도들은 교회들을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도, 계속해서 그 교회들 안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고 가르쳤다. 그들은 또한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서신들을 썼다.
1937년 한커우(漢口)에서, 워치만 니 형제님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로 출판된 메시지들을 전했다. 십일 년 후인 1948년에 쿠링 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커우에서의 집회 후에 어떤 형제들은 오해했다. 그들은 장로들이 비록 사도들에 의해 세워지기는 하지만 사도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교회의 사무, 영문판, 143쪽)라고 말했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자치적이라는 사상은 영국 형제회에서 왔다. 니 형제님은 이러한 오해를 명확히 바로잡았다. 그는 사도들이 장로들과 함께 머물며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다고 말했다. 이것이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들은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 그 장로들 다루는 것을 끝내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사도들과 교회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도들이 성도들을 온전하게 함, 영문판,
1장, 165-166쪽
어떤 성도들은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나 의견 같은 것이 보일 때 교회의 부정적인 상황에 낙심하고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사도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라고 권유한다. 에베소서 4장 32절은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사실상 교회는 부정적인 상황에 연루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므로 사도들에게서 분리될 수 없고 사도들의 빛 비춤과 지시와 책망과 교정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4장에서 바울은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매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가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사랑 안에서 온유한 영으로 가야 하겠습니까?”(21절)라고 말했다. 사실상 바울은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그 서신을 쓸 때 그들에게 매를 가지고 가지 않고 사랑 안에서 온유한 영으로 가기를 바랐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의 많은 문제들을 다뤘다. 1장부터 4장까지에서 그는 고린도 사람들 가운데 있는 분열의 문제를 다뤘다. 5장에서는 그 악한 사람을 그들 가운데서 격리시키라고 명령하면서 죄 지은 형제의 문제를 다뤘고, 6장에서는 성도들 가운데서의 법정 소송의 문제를, 8장에서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것을 먹는 것을, 11장에서는 머리를 덮개로 가리는 것과 주님의 만찬을 다뤘다. 그리고 11장의 끝에서 바울은 아직도 고린도 교회에 명령할 다른 많은 것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그들에게 쓸 수 없어서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34절)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바울의 말은 그가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돌볼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해 그 문제들을 직접 안배하기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 이미 고린도 교회의 행정을 돌보는 장로들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여전히 그 교회를 위해 직접 안배하기를 원했다. 이것은 사도가 장로들을 세운 후에 교회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대로 사도는 여전히 영적인 면에서 교회를 가르치고 양육하고 감독할 책임을 졌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기도를 통한 주님의 회복에서의 부흥의 필요성, 영문판
1장, 213쪽
어떤 오해로 인하여 몇몇 사람들은 지방 교회가 자치적이라고 합당치 않게 말한다. 신약에는 자치제나 연맹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린도전서는 교회 안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바울이 교회를 떠나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서신에는 지침이 가득한데,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여전히 그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의 가르치고 건축하는 손아래 있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심지어 악한 지체에 관해 그 교회에 명령을 했다(5:1-5, 11). 이것은 교회의 행정의 문제였고, 이 문제에 있어서 바울은 교회의 일에 간섭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지방 교회의 일에 결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서 바울은 그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같은 것을 가르쳤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가르침에 있어서 모든 교회들이 같기를 강하게 의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에게 정확한 지침을 준 후에 11장 34절에서 그는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직접 고린도에 왔을 때 계속해서 교회의 일에 관여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서신들이 지방 교회들에게 쓰인 것이다. 심지어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것도 교회에 관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지방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사도들이 떠난 것이 아니라는 강한 증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도들이 성도들을 온전케 할 수 있겠는가(엡 4:11-12)? 사도행전 16장은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 교회에서 바빴음을 보여준다. 사도들이 교회를 떠났다면 자기 자녀를 보살피며 양육하는 어머니나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버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살전 2:7, 11). 지방 교회들은 자치적인 것이 아니다. 게다가 모든 교회들의 총체는 연맹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한 몸이다. 그러한 유기체의 어떤 부분도 자치적일 수 없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하나 안에서 몸을 건축함, 영문판
3장, 254쪽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의 끝에서 바울은, 그들이 그의 편지를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편지를 그들도 읽으라고 말했다(4:16). 바울의 서신들 중 많은 것들은 특정 교회에 쓴 것들이었지만, 결국 그 서신들은 모든 교회에 쓴 것이었다. 결국 바울이 각 교회에 특별히 쓴 것은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온 몸에 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것은 단지 지방적으로 우리의 교회만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각 지방 교회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다. 우리가 몸을 나눈다면 몸은 실지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지방 교회들 안에서, 그리고 지방 교회들 가운데서 실지적으로 하나를 지켜야 한다. 만약 모든 성도들이 그들이 어떤 도시에 있는 교회이고 다른 교회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몸을 나눌 것이다. 그러면 많은 지방 교회가 있다 할지라도 실재에 있어서는 몸이 없을 것이다. 몸은 산산조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 교회들이 자치적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사실 한 교회는 절대적으로 자치적일 수 없다. 고린도 교회에 두 서신을 씀으로써 사도 바울은 분명히 그 교회의 일에 ‘관여했다.’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그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1:12)라고 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일 교회의 어떤 은사 있는 사람에게 속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관여했을 뿐 아니라 죄 짓는 형제를 격리하라고 교회에 명령했다(5:13). 주님의 만찬에 관해서 그들이 무질서하게 행하는 것에 대하여 성도들을 꾸짖은 후 11장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34절)라고 말했다.
5장, 280-281쪽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사도의 일에 있어서 바울을 대표한 디모데에게,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5:19). 그는 또한 디모데에게, 죄를 짓는 장로를 온 교회 앞에서 책망하라고 지시했다(20절). 장로에 대한 고발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은 사도들에게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사도가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 장로들은 여전히 사도들의 권위와 관리 아래 있다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강한 증거이다. 사도들은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 여전히 장로들을 다룰 권위가 있었고, 심지어 장로들을 판단하고 유죄판결하고 책망할 권위가 있었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말씀이다.
5장, 282-283쪽
신약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도들과 신언자들과 복음 전하는 이들과 목자들 및 교사들은 교회들을 떠날 수 없다. 은사 있는 이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계속해서 교회들을 온전하게 해야 한다. 새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교회들에 더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새 사람들은 은사 있는 지체들에 의해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 한 반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교수들은 은퇴하지 않으며 대학은 문을 닫지 않는다. 매 학기에 새로운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고, 이러한 학생들은 반드시 대학교수들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장로들을 포함한 지방 교회는 매년 그들을 온전하게 하는 사도들과 신언자들과 복음 전하는 이들과 목자들 및 교사들이 필요하다.
장차 교회생활에 폭풍이 밀려와, 장로들이 세워진 후에는 사도들이 더 이상 교회를 만질 수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 모두는 진리에 관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사도들이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 여전히 그 교회들을 거듭 방문하러 올 수 있으며, 그 교회들에 편지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이 한 지방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들은 다른 지방 교회들에 편지를 쓸 수 있다. 사도들은 교회들과 장로들을 접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명령하고 당부할 수 있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직접 와서 안배할 수 있다. 사도들과 교회들과의 관계가 끝나는 그러한 것은 없다.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은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신언자들과 복음 전하는 이들과 목자들 및 교사들을 주신 것은 일시적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장기적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임을 매우 분명히 밝힌다. 바울은 어떤 시점에 에베소에 삼 년 동안 머물렀다(행 20:31). 고린도전서 4장 21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매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가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사랑 안에서 온유한 영으로 가야 하겠습니까?”라고 썼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요 2:15). 사도가 매를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한 것은 그에게 사도로서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온전하게 됨
1장, 16-17쪽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는 그 교회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이들은 각 지방에 있는 교회가 사도들이나 다른 교회들과는 무관한 자치적인 독립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신약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신약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고 그 교회들에게 서신을 썼다(행 18:18-21상, 23, 19:1-7, 20:13-38, 엡 1:1).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많은 문제들에 관해 고린도 성도들을 훈계하고 책망했다(고전 4:14, 6:5, 15:34). 4장 2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징계하기 위해 매를 가지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서신에서 그는 고린도 교회에게 분열(1:10-13)과 악한 형제(5장)와 믿는 이들 사이의 소송(6:1-11)과 자유의 남용(12-20절)을 포함하여 교회 안의 많은 문제들을 처리하라고 권유한다. 11장 34절에서 바울은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집에서 먹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을 받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많은 문제를 처리하라고 명령한 후에 나머지 일은 자신이 다음에 그들을 방문할 때 안배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어떤 교회를 세운 후에 그 교회를 방문하고 그 교회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그 교회를 계속 돌보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1장, 18-19쪽
니 형제님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이라는 책을 읽은 어떤 사람들은, 일단 사도들이 특정 지방에 있는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고 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교회의 일에 관여할 권리가 없다는 관념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니 형제님의 말을 오해한 것이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에 있는 메시지들을 전한 후 십일 년이 지난 1948년에 니 형제님은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교회의 사무〉라는 제목의 책에 수록된 메시지들을 해방했다. 이 책에서 니 형제님은 장로들이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후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 안에서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장로들이 다른 사람들을 빗나가게 하거나 어떤 방식에 있어서 틀렸다면, 성도들은 그에 대해 사도들에게 고발할 수 있다. 만약 교회들 안의 인도하는 형제들이 사도들이 교회들을 계속 돌보는 것에 관한 진리를 보지 못한 채 교회들이 완전히 자치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혼란과 분열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이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에 관한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진리와 생명 위에 건축되어 왔으므로 우리가 회복 안에 보존되려면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8년, 3권, 주님과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새 길에 따라 교회를 돌봄, 영문판
1장, 439쪽
어떤 오해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합당치 않게 지방 교회들의 자치제를 말했다. 신약에는 자치제나 연맹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린도전서는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바울이 교회를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서신에는 가르침이 가득한데,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여전히 그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의 가르치고 건축하는 손아래 있었음을 보여 준다.(5:1-5, 11). 바울은 심지어 어느 악한 지체에 관해 교회에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교회의 행정의 문제였고, 이 문제에 있어서 바울은 교회의 일에 개입했다. 그러므로 사도가 지방 교회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서 바울은 그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같은 것을 가르쳤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교회가 가르침에 있어서 똑같기를 바울이 강하게 의도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교회에게 명백한 지침을 준 후에 11장 34절에서 바울은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고린도에 직접 왔을 때 그 교회의 일에 계속해서 개입할 것임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서신들이 지방 교회에 쓴 것이다. 심지어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서신들까지도 교회에 관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도들이 지방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떠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만약 사도들이 떠난다면 어떻게 성도들을 온전하게 할 수 있겠는가(엡 4:11-12)? 사도행전 16장은 바울이 루스드라와 더베에 있는 교회들로 바빴음을 보여준다. 사도들이 그 교회들을 떠났다면 자기 친자식을 보살피며 젖 먹이는 어머니나 권유하고 위로하는 아버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살전 2:7, 11). 지방 교회들은 자치적인 것이 아니다. 게다가 모든 교회들의 총체는 연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이라는 유기체이다. 그러한 유기체의 어떤 부분도 결코 자치적일 수 없다.
성도들을 온전하게 함과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함
2장, 25-26쪽
지난 일이 년 동안 교훈의 바람이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대만에서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해외로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 교훈의 바람은, 사도가 장로를 세운 후에 사도는 더 이상 어떤 지방 교회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신약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신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사도가 장로를 임명한 후에 비록 사도가 장로에게 교회를 돌보고 인도하는 책임을 위임했다 하더라도 사도들이 그들 스스로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계속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심지어 장로들을 가르쳤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의 기록에 따르면, 사도가 장로를 임명한 후에 그들은 교회들을 방문하고 강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볼 수 있다(행 15:36, 40-41, 고전 4:17, 11:34하). 바울은 심지어 고린도에 일 년 반 동안 머물렀으며 에베소에는 삼 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마지막 전도 여행중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도중 에베소의 장로들이 그에게 오도록 편지를 보냈는데, 이는 그들에게 깨닫게 하고 명하고 훈계하고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그는 고린도인들을 거듭거듭 책망하고 가르쳤다. 심지어 그 남은 것은 그가 갈 때에 귀정(歸正)하리라고 했다(11:34하). 이것은 분명히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사도가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장로를 임명한 후에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사도가 교회와 연관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릇된 가르침이다. 어떤 이들은 이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으며, 심지어 이것을 공개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우리 가운데서 문제가 되었다.
복음의 확장을 위한 예비
4장, 45-46쪽
실제에 있어서, 사도들은 장로들을 세운 후에 교회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았다. 바울은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고 방문하였으며, 에베소에는 삼 년간 머무르기도 하였다. 사도행전 20장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그의 마지막 여행 기간의, 바쁜 일과 중에, 그는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청하여 그들을 대하며, 그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그들을 가르쳤다고 말했다(18-20절). 바울의 권고 속에는 권면과 훈계도 있었다. 그는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도 이렇게 하였다. 사실상 바울의 각 서신은 장로들이 이미 세워진 교회들에 보내어졌다.
바울은 각 곳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그곳을 친히 방문할 수 없었을지라도, 그들과 교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게, “나머지 일은 내가 가서 바로잡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전 11:34). 장로들이 세워진 후 사도들이 교회에서 손을 떼었다면, 신약의 모든 서신들은 누구에게 보내어졌겠는가? 바울은,“이 밖에 언급하지 않은 것들은 그만두더라도, 날마다 나를 억누르는 많은 염려가 있는데, 곧 모든 교회들을 위한 염려입니다.”라고 말했다(고후 11:28). 어떤 사람들은 워치만 니 형제님의 저서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에 있는 그의 말을 잘못 적용하여 주장하기를, “사도는 어떤 지방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는 그 교회에 관하여 아무것도 만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십 년 후에 쓰여진 니(Nee) 형제님의 저서인 <교회의 사무>를 읽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니 형제님은, 사도들이 장로들을 세운 후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해 주기 위해서 그곳에 머물면서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 부합함이 없고 사실들에서 확증을 얻지 못한다면 각종 풍문들을 쉽게 취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9년, 1권,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관한 주님의 현재의 회복, 영문판
5장, 109쪽
우리는 지방 교회들의 자치제라는 가르침이 교회생활 안으로 기어들어 오게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들을 손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는 그 교회에서 손을 떼고 그 교회를 자치적인 것이 되게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치제에 관한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세우도록 돕고 그곳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그 교회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어느 시점에 삼 년간 그 교회에 머물면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의결을 선포하고, 밤낮 눈물로 그들을 권유하고,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 그들을 가르쳤다(행 20:18-38). 이것은 에베소 교회에서 손을 떼기보다 사도 바울이 그들을 계속 온전하게 하기 위해 그 교회에 머물렀다는 것을 가리킨다. 자치제라는 가르침은 틀린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거절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9년, 1권, 새 길의 유기적인 실행에 관한 질문과 답변과 교통, 영문판
6장, 400-401쪽
질문: 지방 교회들이 자치적이라는 관념은 은사 있는 이들이 여러 다른 지방에서 온전케 하는 일과 반대되는 것입니까?
답변: … 자치제라는 다른 가르침은 지방 교회들을 나눠놓고 은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은밀히 들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사도들이 일단 어느 지방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하면 그 교회를 혼자 두고 그들의 손을 떼어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에베소서 4장 12절에 있는 온전케 함이 이뤄질 길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사도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어느 지방에 머물거나 좀 더 오랜 기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계시이고, 이것은 여러 해 동안 우리의 실행이었습니다(행 20:20, 27, 31). 예를 들어, 워치만 니 형제님은 1927년에 상하이로 이주하여 그곳에 있는 교회를 세우도록 도운 후에 이십오 년 이상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투옥되기 전까지 머물렀습니다. 만약 어느 교회가 자치제를 주장하고 은사 있는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면 그 성도들은 온전케 될 수 없을 것이고 영적 빈곤과 결핍을 겪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길의 훈련과 실행
23장, 277-278쪽
몇몇 형제회 교사들에게서 유래한 ‘자치권’에 대한 다른 가르침이 있다. 자치권의 가르침은 일단 사도들이 어떤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하면, 사도들은 그들의 손을 교회에서 떼고 성도들에게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도들이 어떻게 성도들을 온전케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전적으로 이상한 가르침, 교훈의 풍조이다. 온전케 하는 자들이 그들에게서 떠난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신약을 읽어 봄으로써 사도들이 항상 성도들과 함께 있었고 교회들을 접촉하고 있었다는 것이 진리임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서 장로들을 임명했지만 그는 결코 에베소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에베소를 거듭거듭 방문하였다. 한때 그는 삼 년 동안 거기에 머물기까지 하였다(행 20:31). 분명히 그는 그의 손을 교회에서 떼지 않았다. 이러한 자치권의 가르침은 한 형제회 교사에 의하여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우리는 수년 전에 그것을 거절하였다.
바울은 교회들을 떠나 거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들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들에게 많은 서신들을 썼다. 교회들을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 사도들은 거듭거듭 그들이 세웠었던 교회들로 되돌아 갔다. 그들이 한동안 방문하러 갈 수 없었을 때, 그들은 편지를 써서 교회들을 돌보았다. 그들은 결코 교회들을 돌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을 때 그는 그들에 대해 많이 수고했던 에베소 교회를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을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밀레도에 이르렀을 때 그는 사람을 에베소에 보내 교회 장로들을 청하였다(17절). 그는 “그리고 나는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 주저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가르쳤으며”(20절)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왜냐하면 내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의결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으며(27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라고 하였다(31절). 분명히 사도는 그의 손을 교회에서 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항상 그들을 가르치고, 훈계하여 계속 그들을 온전케 하였다. 자치권의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우리는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91-1992년, 2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일과 전쟁, 영문판
3장, 120-121쪽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은 또한 사도들은 장로들을 세운 후에 손을 떼고 교회들을 장로들의 감독에 맡겨야 한다고 그릇된 강조를 했다. 그들의 주장은 그들에게 성경의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했다는 표시였다. 사도행전 20장 17절부터 31절까지에 있는 신약의 기록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 에베소 교회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히려 그는 삼 년 동안 에베소에 있는 각 사람을 눈물로 권유하기를 멈추지 않았다(31절).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이 성경에서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들 중 몇몇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에서 워치만 니 형제님이, 사도들이 교회를 세운 후에는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말한 것을 지적했다. 나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니 형제님의 책에 있는 그 메시지는 1937년에 전한 것이고 그다음 해에 중국어로 출간된 것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약 십 년 후에 그는 지금 ‘교회의 사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메시지들을 해방했다. ‘교회의 사무’의 첫 번째 장에서 니 형제님은 임명된 장로들이 책임을 지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사도들이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91-1992년, 4권, 남가주 장로 동역자 집회, 영문판
4장, 308쪽
어떤 사람들은 니 형제님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이라는 책을 이용하여 지방적 자치제를 위해 논쟁하지만 니 형제님의 후기의 책들은 사도들과 교회들의 관계를 분명히 밝힙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사무’에서 그는 “여러분은 지방 교회들의 장로들이 책임을 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두고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는 장로들을 세운 후에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그들에게, 장로들을 세우고 어떻게 합당한 장로가 되는가를 가르치고 훈련시켜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까지 도우라고 말했다.”(제1장)라고 말합니다. ‘지방 교회와 일과 사도들의 관계’라는 장에서 니 형제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들은 장로들에게 권위를 주고, 장로들은 지방 교회의 행정을 직접 관리한다. 그러므로 장로, 감독인 각 사람은 반드시 사도들의 말을 듣기를 배워야 한다. 그들이 장로들인 것은 사도들로 인한 것이므로 사도들의 권위를 뒤엎을 수 없다.”(제9장).
위트니스 리 전집, 1993년, 1권, 애너하임 교회와의 다양한 교통, 영문판
2장, 54쪽
최근에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반역에서 자치제에 관한 가르침을 선전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어느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는 그 교회에서 손을 떼고 그 교회를 자치적으로 돌아가게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치제에 관한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과 반대되는 것이며 지방 종파를 산출한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93년, 1권, 남가주 장로 동역자 집회, 영문판
18장, 268쪽
최근 우리 가운데 있었던 반역에서, 그들의 타고난 생각에서 구출되지 못한 어떤 사람들은 자치제에 관한 가르침을 선전했다. 의견을 달리하는 이 사람들은 각 지방 교회가 완전히 자치적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안에 있는 계시와 반대된다. 예를 들어, 에베소 교회는 절대적으로 자치적이지 않았다. 에베소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도(행 20:17, 비교 14:23),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고 삼 년 동안 그 교회에 머물렀다(19장, 20:31, 고전 16:8). 나중에 예루살렘으로 갈 때 그는 밀레도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그에게 오라고 불렀다(행20:16-17).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신언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파자로, 또 어떤 사람들은 목자 및 교사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은 최근의 반역에서, 사도들이 교회들을 세운 후에는 그 교회들과 그 교회들 안의 성도들에게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도들이 교회들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수고함으로 교회들을 돌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에베소서 4장에 있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수행될 수 있는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선택하여 세운 후에 교회에서 손을 떼고 교회가 자치적으로 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변명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주님의 회복 안의 사역을 끝내기 위해서 지방 교회들의 자치제라는 교리를 선전했다. 우리는 반드시 자치제에 관한 가르침을 거절해야 하고, 속 생명과 그리스도의 몸을 관심해야 한다.
25장, 317쪽
의견을 달리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는 그 손에서 손을 떼고 자치적으로 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치제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신약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신약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고 그 교회들에 서신을 썼다(행 18:18-21상, 23, 19:1-7, 엡 1:1). 에베소에 장로들을 세운 후(행 20:17, 비교 14:23),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고 삼 년 동안 그 교회에 머물렀다(19장, 20:31, 고전 16:8). 이 기간에 그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을 밤낮 눈물로 권유하고,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 성도들을 가르쳤다(행 20:20, 31). 나중에 예루살렘으로 갈 때 그는 밀레도에서 몇몇 사람들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그에게 오도록 불렀다(16-17절).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절대적으로 자치적이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만약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다면 지방 교회들의 절대적인 자치제를 감히 가르치거나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93년, 1권, 활력 그룹을 실행함으로 교회를 돌봄, 영문판
1장, 514쪽
공개파 형제회에서 교사였던 랭(G. H. Lang)은 교회에 관한 다비(John Darby)의 관점에 반대하여, 각 지방 교회는 자치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에서 워치만 니 형제님은 일꾼은 한 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는 다른 도시로 가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이것은 그의 가르침의 한 면에 불과했다. 사람의 말의 완결은 그의 처음의 말이 아니라 마지막 말이다. 여러 해 후에 니 형제님은, 일꾼은 교회를 돕고 어떻게 장로가 되며 성도들을 돌보는가를 장로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그 도시에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 삼 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렀다(행 20:31). 지방 교회들은 자치적이라고 가르치고, 교회를 세운 사람은 그 교회에서 떠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모든 사도들은 결국 할 일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