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에 관하여(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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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에 관하여
2022년 12월 13일에 게시됨
현대 사회에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발광체로서 주님을 나타내려면(빌 2:15), 이러한 주제들에 관한 하나님의 마음과 방법을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주제에 대해 우리 자신의 편견과 성향을 강요하기 쉽고, 하나님의 형상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 자신의 형상에 맞추어 하나님을 왜곡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동정심이 많으면 하나님의 의와 그분의 증거에 타협을 가할 수 있습니다(시 89:14, 롬 1:32 참조). 우리가 너무 엄격하게 판단한다면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습니다(마 23:13). 한 편으로,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다른 한 편으로, 그분은 동정심이 많고 마음이 부드러운 분이십니다. 이러한 것들에서 주님의 증거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창조에 따른, 또 인류에 대한 그분의 정하심에 따른 성경적 표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늘날의 어두움과 혼란 가운데서 우리의 태도와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남성과 여성
성경은 일관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성과 성별이 달라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성과 여성의 두 성별로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첫 번째 언급에서 이것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 1:27) 창세기 5장 2절 상반절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라고 말하면서 이 점을 확증합니다. 신약에서 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이 사실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께서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라고 말씀하신 것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까?”(마 19:4, 막 10:6 참조) 따라서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성경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두 성별만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제3의 성별, 하이브리드 성별, 성별 스펙트럼, 출생한 성별을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형태의 성별 혼란을 포함하여 그 밖의 다른 모든 개념도 인간의 타락의 산물입니다(마 19:12 참조). 생물학적으로 모호한 사례가 있는 소수의 경우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른 결혼과 성
더욱이 성경은 오직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합하는 것을 결혼으로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른 결혼이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입니다(창 2:24, 마 19:4-5, 막 10:6-7, 고전 7:2).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혐오스러운 짓”(레 18:22, 20:13 상)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유죄판결 아래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해 설명하면서 바울은 그러한 행위를 “비정상적인 것” (롬 1:26-27)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또한 음행, 즉 혼인 외의 모든 성행위(동성애든 이성애든)는 하나님의 의에 위배되고 따라서 죄가 되기 때문에 그런 일에 참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출 20:14, 히 13:4, 딤전 1:8-10). 믿는 이들은 “음행을 멀리하라”(살전 4:3, 벧전 2:11 참조)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모든 형태의 음행은 육체의 일이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일에 반대됩니다(갈 5:19, 고전 6:9, 11, 살전 4:3, 살후 2:13).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신약의 아래 두 부분은 이에 대해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특별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미혹당하지 마십시오. 음행하는 사람들이나, 우상 숭배자들이나, 간음하는 사람들이나, 남창이나,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들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이 많은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욕하는 사람들이나,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또 우리 하나님의 영 안에서 씻어졌고 거룩해졌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네 가지 핵심 요점이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라는 말은 복음이 음행을 하는 사람들, 우상 숭배자들, 간음하는 사람들, 남창, 동성애자를 포함하여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같은 단어인 "더러 있었습니다.."는 이것이 그들의 과거 상태였고 현재 상태나 실행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셋째, 이 구절은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또 우리 하나님의 영 안에서 씻어졌고 거룩해졌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넷째, 9절은 그러한 행위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과 에베소서 5장 5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는 것은 믿는 이들이 받은 초기 구원에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세우실 천년왕국에 이기는 이로 참여하게 되는 상급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은 고린도전서 5장 11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쓴 것은 형제라 불리는 어떤 사람이 음행을 하는 사람이거나, 탐욕이 많은 사람이거나, 우상 숭배자이거나, 남을 욕하는 사람이거나, 술 취하는 사람이거나, 약탈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러한 행위를 계속하는 믿는 이들은 교회의 교통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이 장에 나오는 한 형제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격리시키십시오”(13 하반절)라고 명령할 만큼 심각하게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형제였습니다.
교회는 오늘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마 16:18, 19, 고전 4:17, 20, 롬 14:17 비교).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데로 완전히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심을 행위의 기준으로 삼아 다스림 받는 것이 포함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행정 아래 있는 합당한 질서에 대해 증언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엡 1:22, 5:23, 골 1:18)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인도하여 그분 안에서 통일되도록 합니다(엡 1:10, 4:15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하심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것을 교회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그 기능과 증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것이 조건부인 것처럼 교회의 교통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조건부입니다.
교회의 교통과 왕국 보상의 상실에 대해 말할 때 행위가 아니라 인격에 강조점을 둔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죄 많은 행동이 그 사람의 특징이 되는 지속적인 실행의 문제입니다. 이 형제님은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단지 어떤 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을 다룬다.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간음을 행하는 것과 간음하는 자 곧 그 죄 가운데 살며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다. 간음하는 자는 단지 구약에서 다윗이 간음을 행한 것과 같은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 그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그 죄가 그의 생활이 된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간음하는 자가 된다(고린도전서 라이프 스타디, # 36, 영문판 325쪽).
자신의 부도덕함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동정과 부드러운 마음이 가득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방면만을 말하면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그분을 왜곡함으로써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온전한 계시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물론 동정과 부드러운 마음도 하나님의 본성의 한 방면이지만 그분은 또한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의로우십니다(계 4:8, 벧전 1:15-16, 계 15:3). 자신의 취향과 타락한 사람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왜곡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롬 1:21-23). 로마서 2장 4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인자와 관용과 오래 참음은 모두 죄인을 회개하게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또한 벧후 3:9, 15 참조). 하나님께서 부도덕한 행위를 용납하신다는 것을 넌지시 내비치려는 의도로 하나님의 그러한 속성들을 들먹이는 것은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는 진정한 회개에는 로마서 1장에 묘사된 부도덕한 행위를 버리는 것이 포함됩니다(참조, 고후 12:21).
한 마디가 더 필요합니다. 빛나는 금등잔대인 교회들은 이 비뚤어진 시대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을 증언합니다(계 1:12, 20, 빌 2:15). 우리의 개인적인 느낌이 어떠하든 교회가 “성경적 도덕관”을 장려하는 사회 운동에 관여할 근거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교회는 주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로마 제국에는 성적 도착이 드물지 않았지만, 주님이나 사도들은 그러한 성적 도착에 맞서 사회 캠페인을 시작하거나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복음과 주님의 구원의 의미가 모호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롭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따라서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 3:16)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목적이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엡 1:9-10, 3:11). 그분의 구원은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시어,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골 1:13).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여 타락한 죄인으로서 가련한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그분의 긍휼이 복음과 함께 도달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신부로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도록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려고(살전 5:23, 엡 5:27, 1:4 참조), 그분의 파괴되지 않은 생명 안에서 그리고 그 생명에 의해 우리를 철저히 구원하고 계십니다(롬 5:10, 히 7:25). 우리는 이 시대를 본받기 위해 그처럼 높고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엡 4:1, 롬 12:2, 딛 2:12).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신실한 사람들로 그분께 발견되기를 바랍니다(계 3:8,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