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성경 진리를 나누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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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자라고 싶어요.

 

다음과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보신 분들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신앙생활 연수에 비해 왜 생명이 안 자랄까?'

'어떻게 하면 생명이 자랄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조점은 많이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생명이 자라는 비결'을 강조하는 내용의

교제를 좀 하고자 합니다.

 

2.

우선 이런 주제는 과연 '무엇이 생명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 놓고 답에 접근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따른다면, 하나님이 생명이시고(엡4:18, 요5:26),

아들 하나님이 생명이시며(요11:25), 성령이 생명이요

(롬8:2),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요6:63).

 

그러므로 '생명이 자란다'는 개념은 거듭난 사람들인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자란다' 또는 '생명이 증가한다'

는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골2:19, 요10:10).

 

그리고 이것은 쉽게 말해서 우리 안에서 말씀이 축적되고

그 말씀이 역사한 결과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자라는 문제는 '말씀'을 떠나서는 말하기

어려운 주제인 셈입니다.

 

3.

생명이 자라려면, 먼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첫 단추이며 매우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이 '바르게 이해되어야 하고',

 

이어서 우리 안에 '기억된 말씀이 우리 존재 안에서 말씀과

상반된 우리의 혼의 조성을 이기고 우리의 행동을 통해 생활

속에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많은 때 성경본문 말씀에 대한 기억(암송)은 없이 그것을

해석하는 주석이나 설교나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데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삶 속에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이거나

환경의 어려움이 닥쳐올 때 이겨나갈 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은 들은 말씀(본문 말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말씀을 설명한 사람의 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 풀이는

본문을 익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

하도록 돕는 면에서 유익할 뿐입니다.

 

4.

오늘 새벽에 몇분 지체들과 함께 베드로 전서 1장 5절을

여러 번 읽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고 또 암기했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에 이르기

까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오늘 따라 이 말씀이 금방 외워졌고, 또 많이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사실은 이미 약 한달 전에 한번 외웠던 말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이 까맣게 잊었다가 한 두번 읽으니

옛 기억이 되 살아 난 것입니다.

 

생명이 자라고 싶은 분은 이처럼 자기 생각 속에 기억해

낼수 있는 로고스의 말씀이 많이 축적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본문 말씀을 문맥에 따라 제대로 이해하는

절차가 꼭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님께 매달려 기도로

해결하거나 영적으로 앞선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있는 분들은 스타디 바이블의 각주와 관주를 봄으로

이런 필요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하는 것일 수 있으나 사실 이 단계는

생명이 자라기 위한 준비 단계일 뿐입니다.

 

생명이 자라는 쪽으로 이 이해되고 기억된 말씀이 역사할지

아니면 이 단계에서 그쳐버리고 말지는 그 다음 단계에서의

우리의 반응에 전적으로 좌우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다음 단계에서 포기하고 맙니다.

 

5.

아침에 마가복음 4장 '씨뿌리는 비유'를 읽으며 새삼 알게된

것은 네 가지 유형 모두 일단 말씀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시련이 오거나, 안에서

말씀이 요구하는 것을 대응하는 단계에서,

 

시련을 이기고 말씀의 요구에 순종하는 쪽으로 반응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생명이 자라고 안 자라고 가 결정되었습니다.

 

6.

워치만 니 형제님의 '이기는 생명'이란 책자에 보면

베드로 전서 1:22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씀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즉 한 여자 전시간 사역자가 자신의 동료이면서도 일마다

트집을 잡고 훼방을 놓는 동료 사역자 한 사람을 겨우 겨우

인내하며 짊어지고 가는 상황인데,

 

어느 날 말씀을 읽다가 위 말씀이 마음에 박혀왔습니다.

주님 저는 그 자매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할 수는

있으나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속으로 대항하며 위 말씀이 요구하는 것을 거절했지만

주님은 계속 이 말씀이 그 안에서 그를 며칠 째 괴롭게 하는 것을

허락했고(그가 그 말씀을 놓고 내적으로 씨름했고)...마침내

그는 그 말씀에 굴복했습니다.

 

그 후 상대는 변한 것이 조금도 없었으나 그 말씀이 그 존재를

통과하자 안으로 부터 뜨거운 사랑이 솟구쳐 그 동역자를

사랑하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여러분이 1) 진리에 순종하여 2) 자기의 혼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3)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라고 한 베드로 전서 1:22 말씀이 그대로 체험된 셈입니다.

 

즉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생명의 성장은 1) 우리 안에 기억된 진리의 말씀이

2) 내적으로 역사하여 우리의 혼의 저항을 이기고 3) 우리

존재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가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또는 기억되고 이해되고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되고 우리 옛 존재가

감소되는 것입니다.

 

(우리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끝났지만

그런 사실에 대한 체험은 점진적입니다(엡4:22-24 참조)

 

이 모든 것의 첫 단추는 우리 기억 속에 성경본문 말씀이

많이 그리고 오래 축적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즉 비결은

소위 '누리는 것' 못지 않게 말씀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각주: 물론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주님자신이

말씀이시고(계19:13), 그분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의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순복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체험적인 간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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