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하나님의 하나(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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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ness of the Triune God
삼일 하나님의 하나
3. The Interchangeable Scriptures
상호 교환 가능성을 말하는 성경 구절들
This type of Scripture reveals the one operation or function of the Triune God within man’s experience. This one operation is seen in several passages where “the Father,” “the Spirit of the Father,” “the Lord,” “Christ,” and the “Holy Spirit” are used quite interchangeably in reference to the believer’s experience.
이러한 유형의 성경은 사람의 체험에서 삼일 하나님의 한 운행 또는 한 기능을 계시합니다. 이 한 운행은 “아버지”, “아버지의 영”, “주”, “그리스도”, “성령”이 믿는 이의 체험과 관련하여 자주 교환적으로 사용된 여러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a) The fact that all Three in the Godhead operate as One in man’s experience can be seen by comparing Matthew 10:20, Mark 13:11, and Luke 21:15. Each Gospel reveals One of the Three doing exactly the same thing under the same set of circumstances.
a) 신격의 셋 모두가 사람의 체험에서는 한 분으로 운행하신다는 사실은 마태복음 10장 20절, 마가복음 13장 11절, 누가복음 21장 15절을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각 복음서는 동일한 상황들에서 똑같은 일을 하시는 세 위격들의 하나를 계시합니다.
Concerning those brought before the councils and synagogues Matthew 10:20 says, “For it is not ye that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Then, Mark 13:11 (comp. Luke 12:12) says, “…for it is not ye that speak, but the Holy Spirit.” And again Luke 21:15 says, “For I [Christ] will give you a mouth and wisdom…” Thus, the Spirit of the Father, the Holy Spirit, and Christ Himself are used interchangeably in relation to the same experience of the believer. The operation of One is interchangeably ascribed to Another, because the Father, Son, and Spirit function as One within the inseparable oneness of the Godhead.
공회와 회당 앞에 끌려온 자들에 대하여 마태복음 10장 20절은 “왜냐하면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아버지의 영께서 ….”라고 하고, 마가복음 13장 11절(비교 눅 12:12)은 "말하는 이가 여러분이 아니라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누가복음 21장 15절은 “내[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구변과 지혜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영과 성령과 그리스도 자신은 믿는 이의 동일한 체험에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됩니다. 신격의 분리할 수 없는 하나 안에 계신 한 분(One)인 아버지, 아들, 그 영의 기능이시므로 어느 한 분의 운행은 다른 한 분에게 상호 교환적으로 귀속됩니다.
b) John 14:17-18 also reveals how the Lord and the Spirit are used interchangeably in their coming to the disciples: “Even the Spirit of truth: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for it beholdeth him not, neither knoweth him: ye know him; for he abideth with you, and shall be in you. I will not leave you desolate (orphans): I come unto you.” When the Spirit comes to the disciples, the Lord Himself also comes to them, that is, the “him” and the “he” (the Spirit) in verse 17 become the “I” (Christ) in verse 18. The coming of the Spirit is the coming of Christ. In the experience of the disciples there is no separation between the Lord and the Spirit. They are interchangeably used in the disciples’ experience so that the coming of One is the coming of the Other.
b) 요한복음 14:17-18 역시 그분들이 제자들에게 오실 때 주님과 그 영께서 어떻게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분은 실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고아처럼 벼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그 영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주님 자신 역시 그들에게 오십니다. 즉 17절의 “그분”과 “그”(그 영)는 18절의 “나”(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 영의 오심은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제자들의 체험에서는 주님과 그 영 사이에 전혀 분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체험에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됨으로써 한 분의 오심은 다른 분의 오심입니다.
The interchangeable Scriptures reveal that in man’s experience the Father, Son, and Spirit operate as one. R. C. Moberly in his classic work, Atonement and Personality (pp.168-169) also comments on this one function and operation of the Godhead in the believer’s experience:
상호 교환 가능한 성경 구절들은 사람의 체험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께서 하나로 운행하심을 계시합니다. 로버트 캠벨 모벌리(R. C. Moberly)도 그의 고전적인 저술인 <속죄와 인격>(Atonement and Personality)에서 믿는 이의 체험에서 신격의 한 기능과 운행을 이렇게 설명합니다(pp. 168-169).
Observe, it is not for an instant that the disciples are to have the presence of the Spirit instead of having the presence of the Son. But to have the Spirit is to have the Son. Again it is not for an instant that this is a sort of indirect or secondary mode of having the presence of the Son; as we, in our bodily existence in space and time, are forced into current phrases which make “presence in the spirit” a sort of apology or substitute (and sometimes a very lame one) for “reality” of presence: quite the contrary: this is the only mode of presence which could be quite absolutely direct, and primary, and real. Any presence of the Son other than this; any presence of the Son other than as Spirit, within, and as, ourselves, characterizing and constituting the very reality of what we ourselves are; would be, by comparison, remote, ineffective, unreal; nay, it would be, after all, a form of absence, a substitute for the presence which alone can be called true or real.
자세히 살펴보라. 제자들이 아들의 임재를 갖지 않은 채로 성령의 임재를 갖게 되는 경우는 한순간도 없었다. 성령을 소유하는 것이 아들을 소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간접적이거나 보조적인 형태로 아들의 임재를 갖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몸을 갖고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들의 임재의 ‘실재’에 대한 일종의 임시변통으로서 또는 대역(그것도 종종 매우 변변찮은 대역)으로서 ‘영 안의 임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로 내몰리게 된다. 현재 그런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임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이다. 이것은 아주 전적으로 직접적이고 우선적이고 실지적일 수 있는 유일한 임재 양식이다. 이런 것이 아닌 아들의 임재라면 그 어떤 것이든 희미하고 비효과적이며 비실지적일 것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라는 존재의 바로 그 실재를 특징짓고 구성하는 것처럼, 안에서 영으로서 임하는 것이 아닌 아들의 임재라면 그 어떤 것이든 희미하고 비효과적이며 비실지적인 것이 된다는 말이다. 아니, 그것은 결국 부재의 한 형태일 뿐이고, 유일하게 참되고 실지적이라 할 수 있는 임재에 대한 대역에 불과할 것이다.
There are not, then, three separate spheres of spiritual operation upon us, which the good theologian is to be careful to demarcate exactly, and not confound: the sphere of the operation of the Father, and the sphere of the operation of the Son, and the sphere of the operation of the Holy Ghost. The operation is the operation of One God, Father at once and Son: and both in and through Spirit.
그렇다면 우리 위에 작용하는 영적 운행에 세 가지 서로 분리된 별개의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신학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아버지가 운행하는 영역과 아들이 운행하는 영역 그리고 성령이 운행하는 영역, 이 세 가지 사이를 혼동하지 않고 신중을 기해 정확히 구별해야 한다. 이 운행은 한 분 하나님, 곧 아버지이시자 동시에 아들이신 분이 그 영 안에서 또한 그 영을 통해 운행하시는 것이다.
By examining the Scriptures that reveal the oneness of the Triune God, we see there are three aspects of their oneness. As to their inner existence, they interpenetrate each other; as to their outward expression, they are identical; as to their operation in man’s experience, they are one. These three types of Scripture reveal the oneness of our Triune (Three-One) God.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하나를 계시하는 성경 구절들을 검토함으로써 삼위의 하나에는 세 방면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내적 존재에서, 그들은 상호 침투합니다. 그들의 외적 표현에서, 그들은 동일시됩니다. 사람의 체험 안에 있는 운행에서, 그들은 하나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성경은 삼일(셋-하나) 하나님의 하나를 계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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