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39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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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약 절반을 쓴 사도 바울은 우리 존재와 밀착된 그리스도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골3:4),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1:27),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 (갈2:20),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음”(빌3:8),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됨” (빌3: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심”(롬8:29), “교회는 그의 몸임” (엡1:23)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국교계는 사람 가까이 오신 하나님을 주로 ‘제3격 성령님’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배경에는 성부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아들은 지상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신 다음, 하늘에 머무시면서 자신을 대리하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개혁 신학의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큰 틀만 본다면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을 너무 절대시하여 어느 한 위격 안에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다른 두 위격이 함께 상호내재 하신다는 정통 삼위일체의 고전적인 원칙을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즉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3격)만 계시고 성자와 성부께서는 안 계신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전후 문맥에 대한 고려없이 성경에 언급된 ‘푸뉴마’ (πνεῦμα)를 ‘제 3격 성령 만을 가리킨다’고 성급하게 단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개역 성경이 원문에 ‘성(聖, holy)이란 단어가 없을 때도 무조건 ‘푸뉴마'를 ‘성령’ 으로 번역한 것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안에 오신 분이 바울이 서신서에서 말한 그 ‘그리스도’ (골 1:27) 이신지 아니면 ‘보혜사 성령’ 이신지를 놓고 이견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관련 성경본문 이해와 하나님을 삶속에서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방면 모두에서 다소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글은 요한복음7:37-39이 말하는 예수님께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외치셨던 ‘믿는 자가 받을 영’이 제 3격 성령님만을 가리키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쓰였습니다.
즉 오리겐 이후 지금까지 난해 구절 중 하나로 취급되어 온 위 구절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이들 안에 내주 하시는 분이 제 3격 성령님만이라는 기존의 일부 시각과 위 사도 바울의 관점 사이의 부조화를 해소하려는 시도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1) 난해 본문 중 하나임.
일각에서는 해당 본문에서 언급된 ‘영’(푸뉴마)은 당연히 ‘제 3격 성령님’인데 공연히 복잡하게 만든다는 시각도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신약 신학자들은 요7:37-39이 요20:22 등과 함께 해석이 쉽지 않은 난해 구절임을 인정합니다.
한 예로 J. Sidlow Baxter는 성경난제 해설(Studies in Problem Texts)(서울:생명의 말씀사, 1976) 제 1장에서 이 본문을 성경 난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대표적인 개혁신학자들인 존 칼빈과 H.N 리델보스는 요 7:39에서 말하는 영이 제 3격 성령의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 현현, 또는 선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변종길, 성령과 구속사, 개혁주의신행협회, 204쪽, 2006). 즉 칼빈에 따르면, 요7:39의 영은 ‘제 3격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은혜”(gratia spiritus) 혹은 “성령의 충만한 현현”(plena spiritus exhibitio)입니다. 이것은 최소한 이 영이 ‘제3격 성령님’이라는 통상의 견해와 상반됩니다.
2) 성경본문에 대한 정밀 검토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그영( the Spirit)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요7:37-39)
τοῦτο δὲ εἶπεν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οὒ / ὃ ἔμελλον λαμβάνειν οἱ πιστεύσαντες εἰς αὐτόν· οὔπω γὰρ ἦν πνεῦμα, ὅτι Ἰησοῦς οὔπω / οὐδέπω ἐδοξάσθη.
위 헬라어 원문에서 보듯이 요한복음 7:39 본문에서 ‘영’(푸뉴마)은 두 번 언급됩니다. 그런데 이 영이 어떤 영인가를 놓고 크게 볼 때 두 가지 관점 즉 ‘성령’(Holy Spirit)으로 읽는 경우와 ‘성’ 자를 빼고 읽는 견해가 존재합니다.
구체적으로, KJV (the Spirit/the Holy Ghost) 외에, 미국 표준역(the Spirit/the Spirit), Darby 역 (the Spirit/(the) Spirit), 확대역(the Spirit /the (Holy) Spirit), Ryrie스터디 바이블(the Spirit/the Spirit) 등 거의 모든 영어 성경은 ‘Holy’ 를 빼고 번역했습니다. 참고로 헬라어 성경 단어 연구의 대가인 마빈 빈센트는 해당 구절의 ‘the Holy Ghost’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최상의 원문들은 ‘성’(holy)을 생략하며, 원문에는 정관사도 없다. 따라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단지 영이다. 원문대로는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임(The best texts omit αγιον, holy, and the definite article is not in the text, so that the strict rendering is simply spirit. Lit., spirit was not yet. (M. 빈센트, 신약 단어연구, 16쪽)
위에서 보듯이 많은 주석가들이 ‘하기온’ (αγιον)’이 없는 것을 원본으로 간주하나(변종길, 위 책, 203쪽), TR 등의 원문에는 ‘하기온’(αγιον)’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공정하게 말한다면, 현재 두 견해 중 어느 한 쪽만이 절대적으로 지지를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 내에서 오랫동안 주된 성경으로 읽혀 온 개역 성경이 번역한 원문은 위 빈센트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며 ‘하기온’(聖)(αγιον)’이 없습니다.
또한 백보 양보해서 KJV 계열 원문을 따라 ‘성령’으로 읽더라도 그러한 원문 자체가 여기서의 성령이 다른 두 위격은 제외된 제 3격 하나님만을 가리킨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요7:39 헬라어 원문에 대한 더 심도있는 분석자료가 필요한 분은 아래 싸이트에 소개된 영어 논문 pp.6-7를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affcrit.com/pdfs/1997/01/97_01_a2.pdf)
보혜사 성령에대해 요15장26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에고 파테르 (파라) 휘민 펨포
파라클레토스"
=>내가 아버지 (곁에) 계신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것인데....
"파테르 (파라) 에크포류마이
알레세이아 프뉴마 에르코마이
호탄 에케이노스 에무 페리
마리튀레오"
=> 아버지 (곁에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때 그가 나에 대해
증거할것이타
파라= 곁에....
두번이나 곁에계신 분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아버지곁에 계시는데 아버지로부터
나오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은
아버지곁에 계신 분이 맞습니다
이분이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가장 잘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진리의성령이라고 하신것입니다
그러므로 ....
예수께서 진리의성령이 오시면
에케이노스 = 그가 나에 대해
증거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아들 이세분이
세오스 인격으로 계신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고
하셨으므로 2위 1영이시죠.....
그리고
아버지는 또다른 보혜사가 될수없는
분이십니다
오직 한분이신데 또다른 보혜사가
될수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