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유주의는 대교단의 대다수 목사들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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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은 20세기 초만 해도 작은 세력이었으나 20세기 말에는 큰 세력이 되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는 단지 몇몇 신학자의 문제가 아니고 대교단들의 목사들 다수의 문제이다. 유럽의 교회들은 일찍이 배교적이었고 미국의 교회들도 1920년대 이후 점점 포용적이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며, 성경말씀을 믿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보수적 교회들은 수적으로 소수인 것 같다.
100년 전에 주로 미국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들의 영향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특히 미국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은 오늘날 미국교회들과 한국교회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신학자들
자유주의 신학은 유명한 신학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외의 여러 신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1985년, 미국에서 약 125명의 개신교와 천주교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하였다. 1994년 초까지 이 세미나의 대략적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1) 예수의 말들의 20%만 실제로 그의 말로 생각되며, 요한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 그에게 돌려진다.
2)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3)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4) 예수는 결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5) 예수는 자신의 재림(再臨)을 약속하지 않았다.
1999년, 예수 세미나의 주도적 인물인 로버트 펑크는 미국의 한 연합그리스도교회의 강연에서 ‘예수 세미나’의 결론인 21개의 명제들을 배부하였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물질 세계 바깥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다윈의 사상은 창조의 교리를 영원히 말살시켰다.
3) 신적인 기적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에 대한 모욕이다.
4) 저 밖에 있는 신에게 말해지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기도는 명상이다.
5) 예수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6) 예수를 구속자(救贖者)라고 하는 것은 낡아빠진 생각이다.
7) 예수가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현대 지성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8) 속죄의 교리는 이성적이지 못하고(sub-rational) 또한 윤리적이지 못하다(sub-ethical).
9)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10) 모든 계시적 요소들은 기독교 주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11) 예수 자신은 기독교 신앙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비전이 그를 대치해야 한다.
12) 성경은 객관적 행동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은 지극히 배교적이며 이단적이다.
우리나라의 목원대 은퇴교수인 송기득(조직신학) 교수는 기독교 사상 2001년 1월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 교리들, 즉 성육신(成肉身)과 신인양성(神人兩性)과 대속의 진리들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심지어 부정할 수 있는 주제로 보았다. 또 그는 한신대 대학원장이었던 안병무 박사가 위의 교리들을 명백히 부정하였고 예수를 민중해방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한 사람이며 단지 그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신학생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은 신학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또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Hollyfield)는 미국의 남침례교 신학교 신학석사 논문에서 남침례교 신학생들의 신앙 상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 (중략)
헬라정교회 대주교 드미트리 로이스터는 연합감리교 소속 퍼킨즈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칠 때의 일을 회고하며 말하기를,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믿는지 물었다. 내가 말뜻을 정의하여 예수께서 단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선생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분명히 하자, 그 반의 학생들 중 한 명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였다”고 했다.
교회 지도자들
자유주의 신학은 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몇몇 인물들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감독교회(Episcopal Church)에 소속한 존 스퐁(John Spong) 감독은 인격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였다. 1999년 4월 26일자 뉴 아메리칸지에 의하면, 그의 판단에, 기독교가 생존하려면 기독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육신(成肉身), 처녀 탄생, 부활, 승천, 및 기적들과 같은 교리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또 스퐁은 “나는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신을 숭배하기보다 증오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모든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6백명 이상의 감리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경에서 읽는 모든 내용을 다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감독교회에서 감독은 목사보다 높은 고위 성직자인데, 미국 감독교회의 감독인 자의 사상이 이렇게 자유주의인 것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속한 박대선 감독은 1974년 6월 14일 고(故) 홍종철 특별보좌관 장례식 설교에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신으로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고, 성경이 그들을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의 이미지가 그들의 제자들과 가족들에게 생생하게 심어졌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경의 증언에 대한 불신앙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조향록 목사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화여대 신약학 교수 허혁 교수는 “저는 성서에 부활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활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이것을 학자들은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 그것은 신앙을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지요 ... 저는 내가 믿는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말하지 않고 단지 부활 신앙만 말하는 것은 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대교단들
자유주의 신학은 미국의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장로교회의 배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1923년 12월 26일, 미 북장로교회에 속한 150명의 목사들이 뉴욕주 어번시에 모여 한 문서를 발표했다. 후에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로 불린 이 문서는 곧 1,293명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 내용은,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하고 1916년, 1923년에 재확인한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한 내용이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의 대속(代贖), 그의 육체 부활, 그의 기적들의 사실성 등의 다섯 가지 교리가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말하였고, 특히 성경 무오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선언서는 1924년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1967년, 미 연합장로교회(오늘날의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유일 충족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다 ...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수락되고 순종된다 ...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서 주어진 것이지만 역시 사람들의 말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장소와 시대의 언어, 사상 형식, 문학 형태들의 지배를 받는다. 성경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인생관, 역사관, 우주관을 반영한다”고 진술하였다(1. 3. 2). 그것은 성경의 초시간적 진리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사상이다.
미 연합장로교회는 목사의 임직 서약도 변경하였다. 변경된 임직서약에서는,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선언되지 않고,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지도 아래 행한다고 선언된다. 1965년 5월 17일자 자유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앤드 크라이시스(Christianity and Crisis)는 말하기를, “새 신앙고백서는 1924년 어번 선언서의 교리적 노선으로 내려간다. 40년 전에 겨우 허용되었던 소수파 견해가 이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로 제안되고 있다”고 하였다.
1981년, 미 연합장로교회 총회재판국은, 그 총회 내에서 사역하던 연합그리스도교회 소속 맨스필드 케이스맨(Mansfield M. Kaseman)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무죄성(無罪性), 대리적 속죄, 육체 부활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지노회가 케이스맨의 견해를 새 임직 서약에 의해 허용된 ‘용납할 만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에 있어서 옳았다고 판결하였다. 미 연합장로교회는 이단을 제거할 뜻이 없음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배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 연합감리교회(UMC)는 일찍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그 교단의 자유주의적 문제점들은 수없이 많이 열거될 수 있겠지만, 최근의 한 예를 보자. 미국 시카고의 연합감리교회 감독 스프라그(C. Joseph Sprague)는 2002년 덴버 신학교 강연에서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물질적 몸의 회생을 내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에게 그의 견해를 취소하든지 그의 직책을 사임하라고 요청하는 그 교단 내의 28명의 보수주의자들의 고소를 다룬 위원회는 그 고소가 잘못이며 그는 이단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그것은 그 교단이 배교적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영국의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크리도우(Credo)’ 프로그램은 1984년 영국교회 39명의 주교들 중 31명에게 질문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11명).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9명).
2) 신약성경의 기적들은 후대의 삽입이다(15명).
3) 예수의 부활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살아계시다”고 확신시켰던 그의 죽음 후의 ‘일련의 경험들’이다(9명). 이것은 영국교회의 배교적 상황을 보인다.
캐나다 연합교회(UCC)는 일찍부터 자유주의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 사상은 캐나다 연합교회가 파송한 서고도(William Scott) 선교사 같은 이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최근의 한 예를 보자. 캐나다 연합교회의 총회장 빌 핍스 목사는 1997년 10월 24일자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셨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감신대학의 학장이었던 변선환과 조직신학 교수이었던 홍정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의 좌경된 모습의 생생한 증거이다. 변선환은 기독교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심을 부정했다. 그는 기독교 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저들의 종교[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299호, 155쪽).
또 그는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같은 책, 156쪽).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0년 12월 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도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하여서 돌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그는 “예수를 절대화, 우상화시키며,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마에서 벗어나 . . .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명백히 종교다원주의의 이단이다.
홍정수는 첫째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는 “만일 신은 계신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베짜는 하나님, 52, 56쪽). 둘째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속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한 몸, 7권, 16, 17쪽). 또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베짜는 하나님, 190쪽). 셋째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1년 3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같은 신문 6월 8일자의 글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은] 빈 무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한 잡지에서 “나는 단연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말했다(우먼 센스, 1991. 12월호).
1992년 5월 7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 연회 재판위원회는 이들에게 출교를 선고했지만, 어떻게 이런 신학자들이 감신대학의 학장이 되고 조직신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또 이런 자들에 대해 감신대학의 교수들 중에는 비평하는 자들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의 감리교회는 신학적으로 너무 넓어졌고 변질되었다고 보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 되어 있다. 그 교단의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사상에서 보듯이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이다. 장로회신학대학은 오래 전부터 성경의 무오성(無誤性)과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하고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아닌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사상을 용납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는 합동측 신학교와 다르다고 알려져 왔다.
1977년, 예장합동측 기관지 기독신보의 주필이었던 채기은 목사는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 통합측은 반반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은 절대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고 증거하였다. 1984년 이동렬은 “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라는 장로회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의 결론에서 말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라고 했다.
1994년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안수안을 통과시켰다. 그 총회는 사도적 교훈을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여자 목사를 세우는 오류를 택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김명용은 1997년에 쓴 열린 신학 바른 교회론이라는 그의 책에서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을 옛시대의 신앙 사상이라고 주장하며 오늘날의 개혁신학은 바르트와 브룬너와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차원높은 신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다. 물론 그 교단에도 성경을 믿는 많은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단의 목사 양성원인 장로회신학대학이 자유주의적이며 그 교단의 지도자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장통합측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출처 :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