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33 '오늘'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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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2015-03-17 14:40
부활이 언급될 때 사도행전 13:33이 말하는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라고 하신 말씀도 함꼐 묵상되길 소망합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의 오늘을 별다른 생각없이 성육신 시점으로 생각하고 읽지만 앞 뒤 문맥은 이 오늘이 '부활'의 때임을 말해 줍니다.
"1)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2)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13:33) . 행13:33절은 1)결과와 2)원인의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은 물론 부활과 관랸된 것이지만 2)는 성육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은 하늘로부터 오신 오직 한 분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성육신 없는 부활은 없다는 것이지요. .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행1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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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이 부활의 원인이라는 말은 좀.... | 66.xxx.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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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말씀하신 두 문장이 '이것은..'이라는 말씀으로 연결된 것을 볼 때 뒤의 문장은 앞의 문장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전후 문맥은 그분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지요.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복음이십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시기도 합니다. | 66.xxx.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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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이 부활의 원인이라는 말이 걸리셨나 봅니다. 그래서 성육신 없는 부뢀은 없다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렸는데요.. . 결과와 원인, 즉 결과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설명하는 부연 설명이 맞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오늘을 부활에 촛점을 둬서 성육신한 사실까지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칫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뿌리를 뒤 흔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그래야만, 성경대로님이 말씀하신 ((우리의 구주이시기도 합니다))라는 말에 객관적인 확증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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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죽음을 전제하고 죽음은 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니 그렇게 보면성육신과 부활이 아주 연관성이 없다고 볼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3장 위 본문의 전후 문맥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즉 그분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런 큰 틀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라는 말보 부활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후에 부활시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하는 점을 기도하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이 문제에 있어서 히2:11도 연관이 있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님이 믿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실 수 있는 뭔가가 부활 때 발생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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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을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인용한 시편 말씀의 오늘을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근거인 사실(진리) 자체가 없어지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행13:33절에서 강조하는 것도 아래 말씀처럼 참 부뢀에 이르기 위한 죄사함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행1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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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실체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 그 생명은 죄사함, 즉 성육신 하셔서 어린양으로 오신 오직 예수를 힘입음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208.xxx.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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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님이 말씀하시려는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이런 꼬리글을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행13:33 전후 문맥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즉 다윗은 썩었지만 주 예수님은 썩지 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육신이나 십자가 아니라 '부활'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38절의 죄들의 용서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인 38절의 '이 분 안에서 의롭게 됨'도 그분의 부활로 인해 효력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근거는 로마서4장 25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때문에 넘겨지셨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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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멘님이 말씀하신 죄 사함도 예수님을 힙입어 생기지요.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전한 메시지의 중심은 그분의 십자가가 아니라 그분의 부활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대로 부활의 실체가 생명인데,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사함이 아니라 생명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은 갈4:4-5와도 부합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구속하신 것은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요. 아들의 명분은 죄사함 만으로 얻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영접되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날 한국교계에서 죄사함과 십자가가 강조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부활과 그 부활의 실재이신 주 예수님 자신을 우리는 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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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내용은 히브리서 1장 5절에서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6절에서 히브리 기자는 '맏아들'이신 주 예수님을 언급합니다. 이 두 사건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신 시기가 성육신 때일까요 아니면 부활의 때일까요...이것이 쟁점입니다. 히2:11는 예수님이 많은 아들들인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 안하셨다고 말합니다. 맏아들인 예수님과 많은 아들들인 우리의 '형제관계'가 성립되는 사건이 언제 있었는가 하는 것이 요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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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부활 때이지요. 그러나 바울이 인용한 시편 말씀의 "오늘"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지금 우리가 부활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오늘"로 보기에는 문제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돈을 주고 받은 영수증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께 열납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그럼 부활이 없으면 주님의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은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성걍대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성경대로님께서 제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시기에 묻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토론을 하고 있는 "오늘"에 대한 더 바른 접근을 위한 것입니다. | 107.xxx.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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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예수님께서 맏아들로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된 우리들과 '형제관계'를 맺으신 때가 부활시점(히1:5-6, 2:11)이라는 저의 견해에 공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 이제 시편2:7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라는 말씀에서 오늘(this day)이 부활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따를까요? 그렇다면 이 '오늘'을 성육신 시점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없을런지요? 만일 이 오늘이 성육신시점이라면 주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셨을 때 그분이 '맏아들'이 되셨고, 많은 아들인 우리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다(롬8:29)는 말씀이 되는데....아무 문제가 없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타자 실력이 좋지 못해서 글에 오타가 생기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
66.xxx.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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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신 부활이 없으면 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께 열납이 안 되느냐..는 문제는 아멘님과 견해를 같이 합니다. 그분의 보혈이 구속의 근거이고 부활은 '영수증'이지요. 그러나 지금 사도행전 2장의 이 본문들 특히 38절은 "이 분을 통하여" 죄들이 용서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성부 앞에 열납된 구속의 방면이 아니라 죄인들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구속을 증거하는 본문이지요. 이미 구속은 성취되었지만 부활하신'이 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바로 '이 분'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의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그분의 피로 구속받고.."(엡1:7). 구속의 실재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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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에서 '오늘'을 성육신 시점으로 보는 것 역시 영적인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영적인 해석들이 충돌하면 전후 문맥을 통해 성경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을 읽어내는 일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도 이 오늘은 '부활'이어야 합니다. 맏아들이 되신 시점을 말하니까요. 우리는 하나님 눈에 "죽은 사람들가운데서 일읔켜지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거듭났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벧전1:3). 엡2:5는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함으로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지요. 6절은 이어서 " 우리가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다 그분의 부활을 말하지 아멘님의 주장처럼 '성육신 시점'이 아니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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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말씀하고 계시는 행2장의 베드로는 분명 부활에 근거한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가 나누고 있는 "오늘"에 대한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 행13장에서 바울이 인용한 "오늘"은,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3:20), 곧 성육신을 말하는 겁니다. . 물론, 히5장에서 "오늘날"로 번역된 "오늘"은 부활과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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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사함이 아니라 생명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 아멘! . 이 말씀에는 성경대로님과 전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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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죄송합니다. 계속 오타가 나오네요. 위 행 2장은 행 13장의 오타입니다. 그리고 13:33의 '오늘' 이 부활의 날인지, 아니면 아멘님의 말씀처럼 '성육신' 때를 가리키는지는 어느 정도 양쪽의 말을 들으신 독자분들이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 76.xxx.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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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좋겠습니다. 또 뵙도록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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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멘넷 독자마당 / 자유게시판 http://www.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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