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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양태론 시비의 실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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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양태론 시비의 실상(3)

 

 

지방교회 측이 양태론을 믿는다고 비판한 사람들 중에 최삼경 목사, 이인규 권사, 김홍기 목사가 있습니다. 지방교회 측은 그동안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론은 성경적이며, 오히려 비판자들의 삼위일체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여러 차례의 토론을 통해 한국교계 앞에 폭로해 왔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직간접적인 결과로, 최삼경 목사는 한기총과 본인이 소속된 장로교 통합교단에 의해, 이인규 권사는 장로교 합동 교단에 의해 각각 삼위일체론에서의 이단으로 공식 규정되었습니다(그런데도 문제가 많은 이 분들의 주장 내용은 문서 혹은 유튜브 형태로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확산되고 있음).

 

최삼경 목사 이단 규정 기사: https://www.localchurch.kr/defense/29851

이인규 권사 이단 규정 기사: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43974

김홍기 목사 삼신론 이단 사상: https://www.youtube.com/watch?v=AVC34QhFLyY

 

과거에 스스로 한국 교계를 대변한다며 여러 단체와 개인에게 이단 시비를 걸어 이단으로 정죄되게 한 것에 비춰볼 때, 오히려 그러한 장본인들이 공교단에 의해 삼위일체론에서의 이단으로 규정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비진리를 기준으로 남을 정죄한 것에 대한 사필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계는 주로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억울하게 양태론자로 정죄된 선의의 피해자들(지방교회 측 포함)에 대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지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론에 관해 위 세 사람이 모두 오해했던 진리 항목들에 대해, 김홍기 목사와 토론 내용을 중심으로 그 실상을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할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중 세 번째로서 주로 ‘본질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요 8:16)을 오해하여 성경적으로  믿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측을 부당하게 ‘양태론자’로 정죄한 것을 다루고자 합니다.

 

 

3. 김홍기 목사는‘본질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에 무지함으로, 위트니스 리를 오해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일반 독자들은 이런 전문 용어들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토론 주제 자체가 불가피하게 전문 용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 이 점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이 단락을 시작하겠다. 백충현 박사는 자신의 학위 논문을 책으로 펴낸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새물결 플러스, 2015) 서문에서, 위 두 개념을 “일반적으로 내재적 삼위일체는 삼위일체 내의 내적인 관계들을 가리킨다. 반면 경륜적 삼위일체는 창조, 구속, 완성의 활동을 통해 계시된 삼위일체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21쪽)라고 각각 정의했다. 이제 이렇게 정의된 주제가 연관된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서론적인 언급을 한 후에 이어서 관련 성경 본문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1) 본질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정의에 대한 약간의 보완 설명


우리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위 백 박사의 정의에 조금 더 사족을 붙여 보겠다. 내재적(혹은 본질적) 삼위일체(the Essential Trinity)는 하늘과 땅과 사람(슥12:1)을 포함한 그 어떤  피조물도 없이 오직 하나님만 계셨을 때 그분은 어떤 존재(Being)이신지를 다룬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공인된 명제는 1) 한 신격(神格)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영원토록 구별되나 분리됨이 없이 존재하신다(삼위가 상호 내주하심). 2) 삼위께서는 동일 본성을 공유하시며 존재하신다(본질적으로 어떤 ‘종속 관계’도 없음)라는 것이다.


반면에 경륜적 삼위일체(the Economical Trinity)는 본질적 삼위일체께서 영원 전에 계획하신 뜻을 성취하려고 일(Work)하시는 방면을 다룬다(엡1:9-10). 참고로 그분의 일은 크게 볼 때 창조(창2:2), 구속(요19:30), 그리고 그분의 몸이자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의 건축(마16:18, 고전14:4)이다. 이에 대한 성경 근거는 에베소서 1장 4-5절인데, 그 핵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한 단체적인 아들들 즉 ‘휘오데시아’(5206)로 만드시는 것이다(갈4:4-5, 롬8:23). 정통 교부인 아타나시우스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함”(https://www.localchurch.kr/2663)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 본질적인 삼위일체와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관계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설명하는 이러한 두 개념 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위 백충현 박사는 지금까지의 관련 자료들을 철저하게 수집(책 뒤의 도서목록 참조)하여 분석한 후, 양자의 관계를 총 일곱 가지(상호상응, 동일, 종말론적 일치, 더 큼, 침지, 흡수, 상호포월)로 요약하여 소개하고 있다(위의 책, 22쪽). 우리는 여기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추가적으로 강조하고 싶다.


경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삼위의 존재와 본질은 변치 않으심: 위 ‘본질적인 삼위일체’의 특성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이심으로 경륜적인 단계인 성육신, 죽음, 부활 등을 거치더라도 결코 손상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부께서 성자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서로 안에 거하시는 상호 내주의 특성이 깨지고 성자가 성부와 ‘분리되어’ ‘홀로’ 오시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분리 불가인 다른 두 위격들은 아들 하나님 안에서 함께 오신다. 이러한 이유로 주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분께서(경륜적 삼위일체 방면)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본질적 삼위일체 방면)”(요8:29, 16, 16:32도 참조) 라고 하시고, 또한 지상 사역시 내 안에 아버지가 거하신다(본질적 삼위일체 방면)(요14:10)라고 말씀할 수 있으셨다. 김홍기 목사는 위 ‘내 안에 아버지가 거하신다‘라는 말씀을 ‘본성’의 상호 내주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 안에 내주하시는 ‘아버지’는 ‘본성’이 아니라 ‘위격’을 가리키는 용어라는 것은 상식이다.


존재의 동등성, 역할의 종속성: 웨인 그루뎀은 자신의 조직신학 책에서 “존재론적인 동등함과 경륜적인 종속” 혹은 “존재에 있어서는 동등하지만 역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라고 말한다(노진준 번역, 361쪽). 또한 그는 “놀랍게도 최근에 삼위 간의 종속적인 역할을 부인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부에 대한 영원한 종속을 솔직히 인정하지만, 동시에 이 종속은 질서와 직분과 기능의 종속이지 본질의 종속은 아님을 믿는다”고 한 A.H. 스트롱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위의 책, 362쪽). 이런 말은 하나님을 이해할 때 위 두 방면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삼위일체 진리 인식에 큰 혼란이 있게 될 것을 암시해 준다.


교회와 신앙측도 최근에 이 문제와 관련된 앨버트 몰러 박사(남침례교 신대원 총장)의 글을 기사화 했다(2016, 7.8일자). 우리는 삼위일체의 위 두 방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을 때, 김홍기 목사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바른 신앙의 소유자들을 부당하게 비판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3) 경륜적인 삼위일체 관련 성경 본문들에 대한 검토


지금부터는 그동안의 토론 과정에서 쟁점이 되어 왔던 성경 본문(사9:6, 고후3:17)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성취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개의 본문들(요1:14, 골 2:9, 7:39, 고전15:45, 계5:6)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사야 9장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구절과 뒤의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성경 본문 자체가 ‘위격 간의 동일시’를 말한 대표적인 구절이다. 노먼 가이슬러를 포함한 다수의 신학자들은 금기사항처럼 여기는 ‘위격간의 동일시’를 피하려고 이 구절에 대해 전후 문맥을 무시하고 무리한 해석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진리 왜곡일 뿐이다. 우리는 본 토론 중에 일관되게 이 본문을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에서의 ‘기능적인 동일시’라고 주장해 왔다. 자세한 내용은 지방 교회측이 펴내는 ‘확증과 비평’(A&C)에 소개된 케리 로비쇼우(헬라어 박사)의 ‘성경적 삼위일체의 몇 가지 난제들’(http://www.btmk.org/proof/?mode=proof_lst&p=1&i=69&f=&w=)이라는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둘째, 고린도후서 3장 17절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이신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의 본문이다. 즉 이 본문은 주님과 그 영께서 ‘기능적으로 동일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의 ‘주님’은 구약의 ‘야훼’이며 신약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 가이슬러를 반박하며, 여기의 주님을 지방 교회측처럼 ‘예수 그리스도 ’로 보고 있는 다수의 정통 신학자들을 소개했다(http://www.contendingforthefaith.org/korean/responses/Geisler-Rhodes/scholars-on-Christ-being-the-Spirit.html). 그리고 같은 취지로, 주님을 ‘야훼’(Dunn의 견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한 박형용 박사의 논문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럼에도 김홍기 목사는 이러한 쟁점에서 크게 벗어나서, “박형용 박사는 ‘위격의 경륜적 동일시’를 말하면서 ‘위격의 동일함’을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지방교회는 ‘위격의 경륜적 동일시’라는 말을 사용하나 실제로는 ‘위격의 탈바꿈’ 혹은 ‘위격의 진화(進化)’ 혹은 ‘위격의 전환(轉換)’ 및 ‘위격의 동일함’을 말한다”(김홍기, 재반론 #6)는 등 엉뚱한 말로 반응했다. 그러나 “위격의 진화” 운운은 뒤에서 보겠지만 사실이 아니며, 단지 김 목사 혼자의 착각이요 오해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박형용 박사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본문 퀴리오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문맥을 통해서 증명하였다. 문맥의 뜻에 비추어 생각할 때 퀴리오스는 여호와를 가리키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https://www.localchurch.kr/23379)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의 성육신의 주체가 ‘아들 하나님’(갈4:4)이시며, 동시에 삼위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한 신격(골2:9)이심으로 이 분은 ‘삼위 전체’이시기도 하다.’라고 말해 왔다. 이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로레인 뵈트너: 칼빈주의 신학자인 로레인 뵈트너 역시 다음과 같이 삼위 중 ‘특정 위격’(성부)을 가리켜 ‘삼위 전체’(Triune God)이시라고 지방 교회측과 동일한 말을 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예에서처럼, 우리의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그것은 배타적으로 삼일성의 첫 번째 위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When the word "Father" is used in our prayers, as for example in the Lord’s prayer, it does not refer exclusively to the first person of the Trinity, but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 The Triune God is our Father.)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그런데 이에 대해 김홍기 목사는 뵈트너가 아버지가 삼일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위격’이 아닌 신성한 ‘본성’을 가리킨다고 반론했다. 그러나 김 목사의 이런 주장은 Father … refer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라는 영어 원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금방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참고로 여기서 ‘one God’은 ‘한 신격’(골2:9)의 의미이며, 김 목사의 오해처럼 ‘한 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뵈트너는 또한 위 책 바로 다음 장(p.109)에서 아래와 같이 ‘특정 위격은 삼위 중 한 위격임과 동시에 세 위격 전체이기도 하다. 성부, 성자, 성령은 구별되시지만 분리되지 않으신다’라는 취지로 말함으로써 지방 교회측의 같은 주장을  지지해 주고 있다.


The singular pronouns I, Thou, He and Him are applied to each of the three Persons; yet these same singular pronouns are applied to the Triune God who is composed of these three persons. Hence too much stress must not be laid on the mere term.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can be distinguished, but they cannot be separated.


장막을 치심: 위 요한복음 1장 14절에 따르면, 주 예수님께서 육체가 되신 것은 그분 자신이 이 땅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집’(장막)이셨음을 말해 준다. 즉 개역 성경이 위 구절에서 ‘거하시매’라고 번역한 단어는 원문이 ‘스케노오’(4637)로서 계시록 7장 15절의 ‘장막을 치시리니’와 같은 단어이다. 이 외에도 주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신 사실은 “성전된 자기 육체”(요2:21)와 “이 예수를… 화해 장소로 세우셨으니”(롬3:25)라는 말씀으로도 입증된다. 특히 개역 성경이 ‘화해 제물’로 오역한 로마서 3장 25절의 ‘힐라스테리온’(2435)은 같은 단어가 쓰인 히브리서 9장 5절처럼 ‘속죄소’(시은좌) 혹은 ‘화해 장소’로 번역되어야 한다(변종길 박사도 동일한 이유로 이 본문의 오역을 지적했다(https://www.localchurch.kr/2638).


따라서 지상 사역시의 하나님의 장막(성전)이셨던 주 예수님 특히 그분의 인성 안에는 성자 하나님만 아니라 하나님 전체, 즉 성부와 성령이 다 포함되신 삼위 전체가 내주하셨다고 보아야 한다. 즉 주기도문의 성부께서 제 1격이시자 또한 삼위 전체(로레인 뵈트너)이신 것처럼, 성육신하신 주 예수님도 제 2격이시자 삼위가 다 포함되신 ‘완전한 하나님’(fully God)이시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그 영도 제 3격이심과 동시에 삼위 전체이시다. 왜냐하면 한 신격의 하나님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위격들이시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개념은 김홍기 목사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일관되게 제시된다. 즉 그가 어떤 한 위격을 언급할 때 그 위격은 김 목사의 착각처럼 1/3하나님이 아니라 삼위 전체를 가리킨다. 이 점을 바로 이해한다면, 현재 김 목사가 말하는 소위 위격의 진화 혹은 위격의 탈바꿈 혹은 위격의 전환은 구조적으로 생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왜 김홍기 목사는 이런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에서 다룰 요한복음 7장 38-39절과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이 전달하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그에게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째, 요한복음 7장 38-39절: 나를 믿는 사람은 …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에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위 말씀이 다루고 있는 내용인, 우리가 믿을 때 어떤 영을 영접했는가 하는 문제는 언뜻보면 쉬운 질문같다. 그러나 사실 위 구절은 대표적인 난해 구절 중 하나이다. 즉 사본학적인 논쟁도 있고 해석도 다양하다. 결론은 위 본문이 말하는 ‘그 영’(the Spirit) 혹은  영(Spirit)은 제 3격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은 세 위격 전체와 영광스럽게 된 예수님의 인성이 포함된 ‘복합적인 영’이다(빌1:19의 ‘예수 그리스도의 영’, 출 30장의 ‘거룩한 관유’ 참조). 이 점은 뒤의 고린도전서 15장 45절 설명에서 조금 더 보충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 구절을 심도있게 검토한 두 믿을 만한 신학자와 김병국 교수의 견해를 간략히 소개하겠다.


앤드류 머레이: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이 쓴 <그리스도의 영>(기독교문서선교회, 2000년) 제 5장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영‘에서 위 해당 본문을 깊이 다뤘다. 그가 한 말들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 아들이 하늘로 되돌아가셨을 땐 하나님의 독생자로서는 변함이 없으셨지만 이미 예전과 같은 존재는 아니셨다(41쪽).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도 실상 새로운 존재이셨다(42쪽). “그는 영광 받으시는 예수님,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인자의 영이시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그렇게 되실 수 있었다”(42쪽). “그래서 성령은 신인(神人)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으로서 임하실 수 있었다”(43쪽).


변종길 교수: 고신대 총장인 변종길 교수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즉 그는 교부들과 개혁 신학자들이 이 요한복음 7장 38-39절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최대한 원출처를 참고하여 소개하고, 본인의 의견도 결론적으로 제시했다. 그의 해당 논문은 현재 <성령과 구속사>(개혁주의신행협회, 2006)라는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김병국 박사: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 구절의 본문에서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에)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the Spirit was not yet)라는 말이 ‘ 영의 ‘존재’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영의 어떤 ‘기능’의 유무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이다. 선입관을 떠나 본문 자체만을 고려할 때, 이것은 앤드류 머레이처럼 ‘존재’ 의 유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김병국 박사(백석대)도 자신의 “요한복음 성령론의 새로운 해석:역사적 배경을 기초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동일한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많은 주석가들은 (필자가 본 바로는 모든 주석가들은)이 부분(요7:38-39)을 성령의 역사의 ‘정도’의 차이로 해석한다. 즉 구약 시대에도, 예수님 당시에도 성령은 있었으나 오순절 이후의 성령과는 그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7:39은 ‘성령의 역사가 아직은 미약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말씀한다. 즉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것이다(김병국, (백석대) 진리논단 제13호-기독교 학부 편, 140-141쪽).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영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복음 7장 39절의 성취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의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그 해답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의 the Spirit처럼 ‘holy’라는 말이 원문에 없어도 개역 성경처럼 무조건 ‘성령’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것이 제 3격만을 가리키는 영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 영’은 제 3격이 아니라 위 요한복음 7장 39절이 말하는 복합적인 영이다. 킹제임스 흠정역은 이것을 ‘령’으로 번역하여 ‘성’자를 이태릭체로 표시했다.


다섯째,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위 구절에서 ‘생명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과연 무엇인지는 역시 난해 구절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 영은 마지막 아담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한 후의 영이시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이신가? 그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성육신하셨던 주 예수님(성부, 성자, 성령)이시다(요1:14). 그렇다면 ‘마지마 아담’(요1:14)과 ‘생명주는 영’(고전15:45)의 같은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같은점은 두분 모두 삼위 전체(성부, 성자, 성령)이시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주로 인성(humanity)에 있는데, 전자는 죽음 전의 인성의 상태라면, 후자는 그 인성이 죽음과 부활 후 ‘죽지 않는 인성’(계1:18) 즉 ‘영광의 몸(인성)’(빌3:21)의 상태가 되신 것이다.


여섯째: 요한계시록 5장 6절: “한 어린양이 섰는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더라. 그(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5:6).


김홍기 목사는 우리의 질문에 대해 위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도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답변했다(김홍기, 재반론 #5). 그렇다면 그리스도라는 “일곱 영”은 누가 언제 이 땅에 보내셨는가? 그리고 제 3격 성령과 ‘일곱 영’의 관계는 무엇인가? 김 목사는 이러한 추가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이상에서 압축적으로 요약한 내용들이 위트니스 리가 이 구절들(요1:14, 고전15:45)을 토대로 삼위일체의 어떤 경륜적인 국면의 전환를 언급할 때의 참된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기본 개념을 염두에 두고 김홍기 목사가 말한 ‘위격의 탈바꿈’ 혹은 ‘위격의 진화(進化)’ 혹은 ‘위격의 전환(轉換)’ 및 ‘위격의 동일함’이라고 오해한 부분들을 하나씩 해명 또는 반론해 보도록 하겠다.


(1) “…위에서 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이 되셨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위격의 진화(進化)’ 혹은 ‘위격의 탈바꿈’ 혹은 ‘위격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다.”(김홍기)


반론: 위 내용은 위트니스 리가 고전 15:45에 관련하여 언급한 것의 비판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본질적 삼위일체의 제 2격이 제 3격이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마지막 아담’을 삼위 전체로 보고 ‘생명주는 영’도 삼위 전체로 보고 있음으로 이런 구조에서는 위격이 ‘진화’하거나 ‘탈바꿈’ 하거나 ‘전환할’ 수도 없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되셨다’는 말은 ‘위격의 진화’와 무관하고 주로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인성’이 부활 후에 ‘영화롭게 되신 것’을 내포하는 표현이다. 앤드류 머레이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거듭날 때 받은 영은 바로 이러한 영이시다. 단지 제 3격 성령만이 아니다.


(2) 리는 여기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삼위(three Persons)가 아닌 세 가지 단계(three stages)라고 표현한다. … 위격의 진화(그리스도가 성령이 됨)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화와 동일시된다. 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보라.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즐기기 위한 ‘한 하나님의 세 가지 단계’(three stages of one God)인 것이다. 예를 들면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된다. 한 본질이 세 가지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수증기 단계가 될 때 그것은 우리가 들이마실 수 있게 된다.”(김홍기)


반론: 이 역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본질적인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께서 거치신 경륜을 말하는 것이지, 삼위의 존재 자체가 세 단계로 발전했다는 말이 아니다. “세 가지 단계”라는 말은 삼위께서 1) 육신을 입으시기 전, 2) 육신을 입으신 후, 3) 육신이 부활 후 죽지 않는 인성으로 변형되신 단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얼음-물-수증기’ 비유도 변치 않으시는 한 분 삼위 하나님께서 입으신 ‘육신’(인성)이 거친 단계를 설명한 것일 뿐, 신성한 위격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죽고 부활하신 과정을 ‘진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3) 워치만 니의 입을 빌려서 그리스도와 성령이 동일한 분이라고 말한다. 즉 이것은 ‘위격의 동일함’을 말하는 것이다(워치만 니는 찬송가 490장 5절에서 ‘주님, 당신은 전에 아버지로 칭함을 받으셨지만, 지금은 성령으로 칭함을 받으신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찬송에서 주님을 성령으로뿐 아니라 아버지로도 칭했다(김홍기)


반론: 김 목사가 위 영어 찬송가 490장의 5절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 앞의 3절은 “이전에 성부 오실 때 예수 안에서 오시듯 지금 주님 영 안에 왔네”라고 함으로써 본질적인 삼위일체 내에서는 세 위격들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위 5절에서의 위격의 동일시는 ‘경륜적인 동일시’(사9:6, 고후3:17)로 보아야 한다.


(4) 즉 그리스도는 삼위이시고 삼위는 그리스도이시다. 일위(一位)가 삼위(三位)이며 삼위가 일위라는 말은 결국 양태론의 개념이다. 이러한 추론은 다음과 같은 리의 말에 의해 확증된다. 하나님이 육체가 되셔서 여러 과정들을 거치시고 마침내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시기 위하여 부활로 들어가셨다. 그 생명을 주시는 영은 그의 신성과 인성 및 그의 성육신과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포함한다”(Witness Lee, Vessels Useful to the Lord, Chapter 12, Section 1)(김홍기)


반론: 이 역시 힐라리우스, 로레인 뵈트너 등의 정통 신학자들과 성경(골2:9, 요8:29, 고전8:6)이 가르치는, 어느 한 위격은 특정 위격임과 동시에 삼위 전체라는 점을 무시하고, 김 목사가 특정 위격은 1/3 하나님만 이시라는 자신의 이단 사상을 붙들어서 온 오해일 뿐이다. 김홍기 목사는 성급한 정죄를 그치고 요한복음 7:38-39, 고린도 전서 15:45가 전달하는 그 영 관련 논의들을 좀 더 시간을 들여 깊이 연구해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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