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성경 진리를 나누는 곳^^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지방교회 구원관에 대한 재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1).

 

간략한 답변입니다.  답변은 굵은 파란색을 칠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서 질문이 있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혹시 있으면 빨간색 등을 칠해 놓겠습니다.

 

 

성경이 명확히 말씀하시는 구절에 근거하여 질문 드립니다.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를 가진 일반적인 신자 수준에서 해석하지 못하는 지방 교회만의 특별한 성경 해석 혹은 높은 진리나 용어 정의가 있다면 직접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말씀은 회개하여 하나 안으로 부르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17장 30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20장 21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한 것이라


(베드로후서 3장 9절)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회개는 죄로 부터 떠나는 것인데,


(사도행전 3장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누가복음 24장 47절)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인간의 일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된 은혜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8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꼐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디모데 후서 2장 25절)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이것은 마음의 변화이지만 진정한 회개는 행동의 변화를 또한 만들어 냅니다.


(누가복음 3장 8절)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사도행전 26장 18절~20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 을 가르치며 회개가 단순히 믿음과 동의어라고 부르며 죄로부터 떠나는 것이 구원에 요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나요?


답변: ‘회개’는 “생각을 바꾸어 뉘우치는 것이며 목적을 전환하는 것입니다”(마3:2 각주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질화입니다”(히11:1 각주 1의 '믿음'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참조). 따라서 둘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저희는 죄(단수)와 죄들을 구분합니다. 복수의 죄들은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해결하고(밷전2:24, 엡1:7), 단수의 죄는 우리 옛사람이 죄에 대하여 죽은(롬6:11) 실재 안에 머물므로 해결합니다. (요일1:8-10이 죄문제와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 부분을 섭리님은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둘째, 말씀은 구원이 모두 하나님의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믿는 사람은 어떠한 스스로의 노력과는 별개로 구원을 받습니다.


(디도서 3장 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심지어 믿음 조차 하나님의 선물이며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1절~5절, 8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질문: 이 구절이 위 언급을 어떻게 지지하나요?


진정한 믿음은 그러므로 결함이 있거나 일시적이지 않으며 영원히 견딥니다. 질문: 사람마다 믿음에 분량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시는지요? 거듭난 사람은 항상 믿음으로 삽니까?


(빌립보서 1장 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11장 요약) 믿음의 선진들은 그 믿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아벨은 제사로 믿음을 증명하였고,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믿음을 증명하였고,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함으로써 믿음을 증명하였고, 아브라함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아감으로 믿음을 증명하였을 뿐 아니라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고 장막에 거함으로 믿음을 증명하였으며, 사라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으로 잉태하여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은 수많은 후손이 나오게 함으로써  믿음을 증명하였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침으로 믿음을 증거하였고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과 에서의 장래를 축복하였고 믿음으로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일일이 축복해 주었고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했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출에굽을 말하고 자신을 가나안땅에 묻도록 지시했고,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애굽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믿음으로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과 죄의 쾌락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통을 선택했습니다. 모세는 메시아를 위해 고난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기고 장차 상 받을 것을 기대하였고 유월절과 피 뿌리는 의식을 행하였고 홍해를 건넘으로  그 믿음을 증명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7일간 돌아 믿음으로 증명하였고, 기생 라합은 정탐자들을 멸망으로 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다른 예언자들과 같은 끝 없는 믿음의 선진들은 나라를 정복하고, 옳은 일을 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았고,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고, 칼날도 피했고, 약한 사람이 강해지고, 적을 무찌르고, 부활을 목격하고, 고문을 자처하고, 조롱받고, 채찍으로 맞고, 사슬에 묶이고, 갇히고, 돌로 맞고, 시험 당하고, 톱으로 잘리고, 칼날에 죽음을 당하고 , 가죽으로 옷을 대신하고,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고, 온갖 학대를 견뎠으며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찾아다니며 지냈던 이들은 모두 믿음의 조상들 입니다.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 을 가르치며  믿음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거나 진정한 크리스천이 믿음의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인내하여 승리하지 못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나요?


답변: ‘쉬운 믿음’은 어떤 믿음을 의미하는지요? 거듭난 사람도 일시적으로 믿음에서 떠나고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5:4(은혜에서 떨어져 나가있고), 7(진리를 믿지 못하게 하고 순종하지 못한 상태에 빠져 있음)의 상태가 그것입니다. 이것을 불신자의 증거로 보는 시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으로 믿음으로 재차 돌아오도록 사랑으로 호소하며 목양하고 있지만, 주재권 구원론자들은 이들을 불신자 취급하지요. 이 점이 가장 큰 약점입니다. 당연히 이들도 멸망치 않고 결국에는 구원이 완성되어 새 예루살렘의 일부 즉 어린양의 신부가 됩니다.


 

셋째, 말씀은 믿음의 대상이 신조나 약속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은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포함합니다. 질문: 믿음이 있으면 무조건 헌신 믿음이 없으면 헌신이 없다고 보시고 ‘믿음의 분량’의 방면(롬12:3)은 고려하지 않으시나요?


(고린도후서 5장 15절)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다시 말해, 모든 진정한 신자는 예수를 따릅니다. 질문: 예수를 따른다는 말이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예를 들어 “모든 진정한 신자”는 ‘항상’ “성령을 좆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를 체험한다고 보시는지요?


(요한복음 10장 27절~28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을 가르치며 '구원하는 믿음'이 단순히 복음의 진리에 납득 되거나 혹은 신뢰를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확인하는 것을 포함시키지 않지는 않습니까?


답변: 믿음의 대상은 당연히 믿음의 주이신 주 예수님 자신이지요(히12:2). 그분이 우리 안에 은혜로 들어오시고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구원이 이뤄집니다. 구원은 주님 자신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의 존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대치물들을 배설물로 내어 버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이신 그분을 얻어 유기적인 구원이 이뤄지게 합니다(빌3:8). 따라서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오’입니다.


 

넷째, 말씀은 진정한 믿음이 필연적으로 변화된 삶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속사람의 변화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인의 본성은 새롭고 다릅니다.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깨어지지 않은 죄의 속성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은 신자가 거듭났을때 더 이상 지속되지 않습니다. 질문: 롬8:7은 “육체에 둔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참되게 거듭난 사람은 거듭난 그 순간 육체에 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게 된다는 주장을 하시는 것인지요? 만일 그러하시다면  ‘육체’가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9절 ~ 10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요한복음 10장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형제를 사랑하며,


(요한일서 3장 14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요한일서 2장 3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한복음 15장 14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마태복음 12장 50절)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며,


(요한복음 8장 31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요한복음 17장 6절)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선행을 하며,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지속적으로 믿음안에 거합니다. 질문: 아래 말씀들은 ‘만일 …하면’라고 하는 ‘조건절’이지 지속적으로 믿음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이미 위에서 잠시 믿음 에서 떠나 있는 갈라디아 교회들의 상태에 대해서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1절~23절)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히브리서 3장 14절)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질문입니다. 혹시 지방 교회는 '쉬운 믿음'을 가르치며 어떤 영적인 열매는 자라기도 하지만, 또한 열매는 겉으로나 타인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으며 지속적인 신앙적 삭막함이 있는 크리스천도 있을 수 있어서 이러한 것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가르치지는 않나요?


답변: 신앙인은 당연히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겨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라는 것이 항상 기쁘고 걱정을 안 하고 관대하고.. 등등으로 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 넣으실 때는 ‘천연적으로’ 기뻐하고 사랑을 베풀던 사람이 기쁨을 잃고 슬퍼하며 때로는 인색하고 이기적인 면을 보이게 되는 것 역시 ‘열매’입니다. 천연적인 자아가 파쇄되는 실패의 체험은 결과적으로 그 존재 안에서 선한 자아가 아니라 ‘실재되신 그리스도’의 표현이 증가하는 식으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따라서 위 질문에 ‘아니오’이지만 ‘지속적인 신앙적 삭막함’에 대해서는 어느 한 부분만 보고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붙입니다.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