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선악을 분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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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선악을 분별함
간증
1925년에 나는 '기독도보' 제2기를 펴내며 다니엘서 2장, 4장, 7장과 데살로니가 전서와 계시록을 언급했다. 그때 이런 예언들을 말한 것은 배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쓴 것도 아주 간단했었다.
서문도 써서 인쇄했었다. 나 자신은 이것을 좋다고 느꼈고 또한 후회해야 할 것도 별로 없었다. 또한 독자들에게서 삼백 몇 십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읽은 후에 좋다고 느꼈으며 도움과 격려와 경계를 얻었다고 말했다. 나 스스로도 아주 의기양양했었다.
어느 날 나는 화수은(和受恩) 자매와 함께 있을 때 그녀에게, "내가 쓴 '기독도보'를 받아 보셨습니까? 내용이 어떻다고 느끼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다만 나에게 그녀의 차(茶)와 계란빵 등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나는 몇 차례 나의 '기독도보'에 대해 그녀의 주의를 끌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녀의 차와 과자와 사탕에 대해 말했다.
후에 내가 떠나려고 할 때 그녀는 비로소 나에게 한 마디를 했다. 그녀는, "형제, 어느 날 형제는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기독도보' 제2기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러하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내가 만약 열 기의 '기독도보'를 써야 하더라도 그것들을 거기에 집어넣기를 원치 않네. 나는 다른 것들을 쓸 것이네."라고 말했다.
당시에 나는 이런 말들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는 우리가 무엇을 해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하셨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말재주든지 지혜나 능력이든지 사람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다 무용한 것이다.
또 한 번은 내가 한 자매를 데리고 화수은 교사를 만나러 갔다. 이 자매는 잘못한 일들이 있었는데, 화수은 교사가 한 말로 인해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해서 울었다. 나는 화 교사에게 가서, "그녀가 계속해서 운다는 것을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아주 좋은 것처럼 생각했지만 화 교사는 내 말을 듣고도 냉랭했다. 나는 힘을 다해 그녀에게 이 자매가 회개하고 통곡하고 있는 광경을 알게 했다. 화 교사는, "그녀는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네! 나는 이러한 사람 돕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당시에 나는 이 말을 따를 수 없다고 느꼈고 화 교사는 사랑이 없어서 다른 사람을 양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일이 년이 지난 후에 나는 화 교사가 옳았음을 알았다.
나로서는 회개하고,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죄를 후회하는 이 많은 표현들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정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비평이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문제이다. 본 사람은 영적으로 선악을 분별함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았다.
언젠가 나는 육십여 명의 동역자들을 데리고 화 교사에게 갔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 사람들 중에서 만약 대여섯 사람이 주님을 잘 따라 갈 수 있다면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에 와서 볼 때 다만 이 정도의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게 된 듯싶다.
화수은 자매에게는 영적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있었다. 이 선악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선악이 아니다. 사람들의 선악은 하나님이 볼 때 많은 경우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비평을 잘하는 사람은 많은 때 그의 영이 옳지 않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의 보는 눈은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눈이 빛을 보았으므로 그가 말하는 것은 영적인 분별이며 비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스팍스 형제의 한 가지 - 그에게 영적으로 선악을 분별함이 있다는 것에 대해 경탄한다. 한 사람이 나와 함께 몇 개월을 거했는데 스팍스 형제는 그와 얼굴을 대면한 것이 아주 적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나보다 깊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평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분별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선악을 분별함은 사람을 아는 데 적용할 뿐 아니라 일에도 적용해야 한다. 일을 단정하는 데 있어서 빛이 있는 사람은 또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 이미 빛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조차도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제 25권, p. 220-222,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