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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4) - 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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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4) - 여리고

 

 

성경말씀


(신 9: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수 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히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돌았더니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수 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수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수4:19) 1월 10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수 5: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열왕기상 L/S 메시지 12>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갔을 때, 무찔러야 할 첫번째 성은 여리고였다. 여리고는 하나님의 대적의 머리, 즉 사탄을 상징한다.


<창세기 L/S 메시지 6>


여호와의 군대는 여리고와 싸움을 할 참이었고 여호수아는 그들의 인도자로서 싸움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바로 그러한 상황을 생각하고 있던 저녁 때에 어떤 사람을 본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 사람은 말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3-14).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 5:15). 그 곳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다.


<여호수아 L/S 메시지 3>


두 정탐꾼이 여리고에 왔을 때, 라합은 그들을 접촉하였고, 그들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숨겨 주었다. 그녀가 그들에게 그녀의 아버지 집을 선대하여 죽음으로부터 그들의 목숨을 구출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정탐꾼들은 그녀에게 창에 붉은 줄을 매라고 말했다.


<여호수아 L/S 메시지 7>


여호수아는 라합과 그 아버지 집과 그녀의 모든 소유를 보호하였으며, 그녀는 이스라엘 중에 남아 있었다(수 6:25). 그들이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나자 눈에 보이는 대장이 명령을 내렸다. 『외치라!』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고, 백성들은 외쳤으며, 성벽은 무너져 내렸다. 요단을 건넌 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전투에서의 여리고에 대한 승리는 이스라엘이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팔을 불고 외침으로써,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궤를 증거하고 선포함으로써 얻은 것이었다(수 6:2-5).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승리를 얻을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요인들이었다.


<이사야 L/S 메시지 26>


여호수아 6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리고에서는 승리를 얻었지만, 아이에서의 싸움에서는 패배했다. 아간이 바벨론 의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수 7:21), 하나님의 백성이 패배했다. 바벨론의 어떤 것도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패배시킬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벨론적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순수한 백성으로서 그분을 섬기려면, 우리는 먼저 모든 바벨론적인 것들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Ⅰ. 위치 및 지형


여리고에 대하여 일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한다.


A. 히브리어의 달을 뜻하는 ‘야레아’에서 예리호, 즉 여리고라는 성읍의 이름이 생겨났다. 따라서 여리고는 ‘달의 영향을 받는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리고를 가리키는 말 중에 최고(最古), 최저(最低)의 도시라는 말이 있다. 최고란 사람들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살아온 가장 오래된 도시, 최저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에 있는 도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왜냐하면 여리고는 지구 표면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로 해저 240m에 위치하며, B.C. 10,000-7,000년 정도에 이미 거대한 성벽과 망대가 건축된 성곽 도시였으므로 B.C. 4,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앞서는 지구상에서 최고로 오래된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예리고(여리고)라고 불렸으며, 현지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부른다.


B.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거의 1만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그 위치도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세 개의 도시로 나타난다. 즉 구약의 도시, 신약의 도시, 오늘날의 소도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C. 구약 시대의 여리고는 텔 에스-술탄(Tel es-Sultan)으로 알려진 길게 늘어진 한 폐허지로 판명되었다. 이곳은 텔 여리고라고도 부르며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 성터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사진2. 텔 에스-술탄(텔 여리고) 참조). 요단 평원에서 24m 정도로 솟아있는 텔 여리고는 길갈에서 남쪽으로 약 3Km 사해 북쪽으로 11km 지점,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8km,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요단 계곡에 위치해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최대의 샘(엘리사의 샘)이 있는 수원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이 곳은 아열대성 기후의 오아시스 지역으로, 여름에는 매우 더운 반면 겨울은 포근한 날씨를 형성하고 있다. 여리고에서 재배되는 식물로는 열대 과일들이 많은데 망고, 파파야, 바나나, 종려 열매, 오렌지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열대성 식물인 ‘종려나무’를 많이 길러 성경에서는 여리고를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신 34:3, 삿 3:13) 불렀으며, 대추야자로도 유명해 옛날에는 대추야자의 도시라 불리기도 했었다. 이 지역은 강우량이 100mm 밖에 되지 않는 아주 건조한 지역이지만, 여리고 안에 물이 흐르는 개천이 약 3개정도 있어서 물 공급이 원활하고 기후가 뛰어나 고대부터 살기 좋은 장소로 여겨져 왔다.


D. 또 다른 여리고는 ‘와디 켈트(Wadi Qelt)’에 있는 신약 시대의 여리고로 오늘날 영어로는 헤로디안 제리코(Herodian Jericho), 아랍어로는 투루 아부 엘-알라잌(Tulu abu el-alayiq)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사진3. 헤로디언 여리고(신약 시대의 여리고) 참조). 구약의 여리고인 텔 에스-술탄에서 남서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곳은 예수님 시대 당시의 헤롯의 ‘겨울궁전’이 위치해 있던 주변지역이다. 헤롯은 추운 겨울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의 별궁에서 따뜻한 여리고 날씨를 즐겼다고 한다. 헤롯 왕에 의해 세워진 신약의 여리고에는 지금은 고고학적 흔적만이 남아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 장대한 도시였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이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역할을 하여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가실 때에는 이곳을 거쳐서 올라가셨다.


E. 마지막으로 오늘날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여리고는 구약의 여리고에서 남동쪽으로 1.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암만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는 소도시이며 비잔틴 시대의 터 위에 세워져 있다.


여리고는 가나안 시대, 헤롯 시대, 아랍 시대를 거쳐 다시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으나 현재는 팔레스타인의 자치 지구로서 아랍인들에게 속해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여리고 성의 흔적 탐구


A. 요새였던 여리고


1.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그들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성벽이 하늘에 닿는 큰 성읍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신 9:1). 고고학자 캐슬린 캔욘(Kathleen Kenyon)의 세심한 조사는 여리고가 정말로 강력하게 요새화되었고 그것이 불탔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그 유적들의 연대를 잘못 추정한 결과,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의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는 청동기 시대의 여리고 성은 B.C. 1550년 경에 이집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증거물들을 심층 분석해 본 결과, 파괴는 B.C. 1400년 경에 (후기 청동기 I기 말에)발생했고, 이것은 성경에서의 정복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2. 여리고 성이 있던 구릉은 아래쪽이 돌로 된 거대한 옹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옹벽은 무려 4-5m의 높이에 달했다.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 - 8m의 진흙벽돌로 된 외벽이 있었다. 이 진흙벽돌의 제방 위로는 외벽과 유사한 진흙벽돌로 된 내벽이 있었는데, 그 내벽의 기저부위는 외벽의 바깥쪽 땅에 비해서 14m나 높았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7일동안 매일 성 주위를 돌면서 행진할 때 그들 위에 아스라이 보였던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의 이 굳건한 요새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3. 여리고 성 내벽 안쪽의 도시 면적은 약 6에이커(1에이커=1에이커=약1224평)정도이지만 안쪽 도시와 요새화 된 성벽들이 차지하는 면적들을 다 합하면, 전체 넓이가 50% 넓어져 약 9에이커 정도가 된다. 1에이커에 200명이 거주한다는 고고학자들의 기준에 따르면 여리고의 내벽 안의 인구는 대략 1,200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세기 초 독일 팀의 발굴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은 외벽과 내벽 사이의 제방에서도 살았다. 또한, 성 주변의 마을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도 성 안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했을 때에는 수천 명이 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4. 여리고 성의 거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위에 대해 잘 대비하고 있었다. 고대는 물론이었고 현재에도 여리고 성내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샘이 성벽 안쪽에 있다. 공격 시점은 수확이 막 끝난 시기였으므로(수 3:15), 그들은 충분한 식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1930년대 존 가스탕(John Garstang)의 발굴 자료와 캐슬린 캔욘의 발굴에서, 가나안 인의 집들에서 곡식이 가득 찬 항아리들이 발견된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풍부한 식량과 충분한 물이 있었으므로, 여리고 백성들은 아마 몇 년 동안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었다.


B. 여리고의 무너진 성벽


1. 성경의 기록들에 의하면, 7일째에 성 주위를 일곱번 돌고 난 후에,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fell down flat)”로 기록되어 있다(수 6:20). 여기서 히브리어의 의미는 성벽이 “성벽 아래로 무너졌다(fell beneath itself)”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리고 성이 종말을 맞았을 때, 진흙벽돌 성벽이 무너져 내려서 외벽의 아래 부분에 쌓였다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캔욘의 조사는 여리고 성벽에 대한 조사 중 가장 상세한 것이었다. 그녀는 성이 있던 구릉의 서쪽 부분에서, 외벽의 거의 꼭대기에 쌓여있었던 붉은 진흙벽돌들이 외벽의 기저부에 떨어져서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마도 제방의 정상부 또는 외벽 위쪽의 진흙벽돌들이 무너져 내림으로서 쌓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꾸어 말하면, 캔욘은 성벽이 무너져 내려 쌓인 벽돌더미를 발견한 것이었다. 1997년 이탈리아 팀에 의한 발굴작업에서도 성이 있던 구릉의 남쪽끝에서 같은 것을 발견했다.


3. 성경에 따르면, 라합(Rahab)의 집은 요새화된 성벽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었다(수 2:15). 만일 성벽이 무너졌다면,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피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조되었다(수 2:12-21, 6:17;22-23). 여리고 성의 둔덕 북쪽 끝에서 고고학자들은 라합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4. 1907-1909년 독일팀의 발굴에서, 북쪽 성벽의 짧은 구간은 다른 부분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음이 발견되었다. 그 진흙벽돌 성벽의 일부분은 아직도 2m 이상의 높이로 서 있었다. 더구나 이 성벽에 잇대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성벽이 집의 후면 벽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정탐꾼은 쉽게 도주할 수 있었다. 도시의 북쪽인 이 위치로부터 정탐꾼이 3일간 숨어있었던(수 2:16;22) 유대 광야의 산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위쪽의 내벽과 아래쪽의 외벽 사이의 제방에 위치한 이곳은, 전쟁이 났을 때는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므로 집값이 낮았을 것이다. 이 지역은 도시 내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으로, 아마도 빈민촌이었을 것이다.


5. 성벽이 무너지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5m 높이의 하부 옹벽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발굴결과에 의하면 무너져 내린 외벽의 진흙벽돌들이 옹벽 옆에 쌓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ramp)를 형성했던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도시에 들어갔던 방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즉, 똑바로 위로 넘어서, straight up and over)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수 6:20). 이스라엘 백성은 올라가야만 했고, 그것이 바로 고고학이 밝혀낸 것이다. 그들은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 구릉의 바닥부분인 지상에서 방어벽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수 6:5).


C. 방화에 의한 파괴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수 6:24). 고고학적 발견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파괴된 성의 동편 일부분이 발굴되면서 다시 한 번 이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고고학자들은 어디에서든 발굴이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1m정도 두께의 재와 불에 탄 잔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캔욘은 이 철저한 파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2. “파괴는 철저했다. 벽과 바닥들은 화재로 인해 검거나 붉게 타 있었고, 방마다 쏟아진 벽돌, 목재들, 가재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의 방에 떨어져있는 파손된 잔해들은 심하게 불탔지만 동쪽 방들의 벽들은 화재의 영향을 받기 전에 붕괴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3. 가스탕(Garstang)과 캔욘(Kenyon)은 둘 다 불에 의해서 파괴된 곡물로 가득한 많은 저장 항아리들을 발견했다. 이것은 고고학적 기록에서 매우 특별한 발견이다. 곡물은 단지 식량일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기 위한 화폐로서의 가치도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곡물과 같은 귀중품은 정복자에 의해 약탈되는 법이다. 여리고에서는 왜 곡물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가? 그 해답은 성경에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여호와께 바치라고 명령했다(수 6:17). 여리고에 남아 있어서 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곡물은 3500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아간(Achan)만이 순종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된 대로 아이(Ai)성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던 것이다.


4. 그런 많은 곡물들을 손대지 않고 남겨둔 것은 성경기록의 또 다른 면의 진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풍부한 식량과 물의 공급이 있고 강력하게 요새화된 성을 정복하는 데에는 통상 몇 달, 심지어는 몇 해가 걸릴 것이다. 성경은 여리고가 단지 7일 후에 함락되었다고 말한다. 여리고의 폐허에서 발견된 곡물 항아리들이 가득 차 있음은 성 안의 백성들이 곡물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포위기간이 짧았던 것을 나타낸다.


D. 우리의 관점


1. 고고학과 성경 사이의 외견상 불일치 때문에, 여리고는 한때 성경 속의 이야기로만 여겨졌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정확한 해석을 했을 때에는 바로 정반대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사항에서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고학적 발견은 여리고 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하였던 것이다.


2. 여리고의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해석들이 있다. 가스탕과 캔욘은 둘 다 도시가 종말을 맞았을 때에 지진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지진을 사용하셨더라도, 지진이 필요한 정확한 시점에 일어났고, 라합의 집을 보호했던 것은 여전히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든지,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신 것이다. 백성들이 7일 동안 성벽 주위를 행진하고 난 후에, 여리고의 벽은 믿음으로 인해 무너졌던 것이다(히 11:30).


3. 여리고는 세속적 학문의 결과가 성경과 일부 일치하지 않더라도 성경의 기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영적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도 때로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요새와 같은 성벽에 직면하곤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일(great and mighty things)을 행하셔서(렘 33:3)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아인 에스-술탄(Ein Es-Sultan)의 샘


현재 여리고의 약 2마일 북서쪽에 있는 “술탄의 샘”은 옛날부터 초목들로 무성한 오아시스이다. 이 샘은 열왕기하 2장에 기록된 엘리사의 샘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왕하 2:19-22). 이것은 요단강 부근 여리고에서 일어났던 일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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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여리고(텔 에스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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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여리고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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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위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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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디언 여리고(신약시대의 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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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샘(현재 여리고 유적지 성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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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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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와 아이성의 점령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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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샘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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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여리고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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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유적지에서 바라본 시험산(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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