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신학측과의 대화(2) - 세대주의 이단 논쟁
- 관리자
- 6391
- 1
개혁 신학측과의 대화(2)
- 세대주의 이단 논쟁
이 글은 먼저 세대주의 혹은 언약 신학을 지지하는 것이 정통 혹은 이단이 되는 문제는 아님을 말하고자 합니다. 또한 형제회와 교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세대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사실 두 성경 교사는 세대주의가 중요시하는 몇 가지 핵심 항목들에서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과 견해를 달리 합니다. 이들이 생명과 생명의 체험,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자신들의 사역의 초점으로 삼는 점도 세대주의와 차별화 된 부분입니다.
1. 세대주의 관련 이단 논쟁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1]는 한국의 개혁신학 쪽 분들에게 주로 종말론과 관련해서 이단성 시비가 있어 왔습니다.[2] 그런데 이것은 무천년설만이 유일한 정통 종말론이라는 전제에 기초한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무천년설은 같은 장로교 진영에서도 이견과 비판이 있는 터라, 그와 다르면 곧 이단이 되는 절대 진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3]
한편 언약 신학 쪽에서는 종말론 외에, 세대주의 구원론[4]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한 예로 존 걸스트너(John H. Gerstner)는 ‘거듭나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칼빈의 가르침인데, 세대주의자들은 ‘믿어야 거듭난다’고 정 반대로 말하니 이단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요20:31)고 말하는 것은 성경 자체라고 반박합니다.[5] 이외에도 계시록의 특정 구절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 문자주의 해석과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다른 견해, 시대 구분 등이 세대주의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6]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세대주의 안에도 여러 유형들이 있어 이들을 어떤 고정틀로 뭉뚱그려 비판하기 어렵게 되어 있고[7], 언약 신학 안에도 수정노선이 등장하는가 하면[8], 언약의 정의와 그 성경근거 제시에도 학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9] 따라서 균형잡힌 신학자들은 언약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을 정통과 이단의 차원이 아니라 보수 신학계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두 가지 다른 틀로 보고 있습니다. 이 점은 항목을 달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2. 세대주의 신학과 언약 신학의 관계 설정
이 연구를 위해 다양한 자료수집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약교회 김성주 목사님이 쓰신 <언약신학에서 본 세대주의 신학>과 장두만 박사님이 쓰신 <세대주의 신학에서 본 언약신학> 이라는 글이 가장 눈에 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자기계시서로 인식하며 이를 신앙과 삶의 절대가치와 최고의 규범으로 삼아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이며 두 교리체계이다. 그러므로 이 두 신학의 성경 해석적 관점의 차이는 정통과 이단의 관계로 규정해 비판하기보다는 정통신학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론의 차이로 분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모름지기 신학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관점을 집대성한 학문적 논리체계로서 인간의 주관적인 사상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없지 않다. 그러므로 특정 신학을 절대화시키거나 신봉하기보다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부단히 연구 정진함으로 신학의 체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선의적인 작업이 부단히 요청된다고 하겠다.”[10]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더 언급해야 될 것은 세대주의와 언약신학과의 관계는 이단 대 정통신학의 관계가 아니라 정통신학 안의 신학적 차이임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수 신학계에서 상호대립 관계에 있는 두 신학 조류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 하면서 학문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된다”[11]
위 두 분은 공통적으로 상대방의 신학체계를 이단으로 보는 견해에 강하게 반대하고, 둘은 상호 보완 관계가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특히 장 박사님은 위 논문 서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정죄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의 신학과 다르면 모두 '사탄의 종'이고 '적 그리스도'이고 '거짓 선지자'이고 '이단’”이라고 함부로 정죄한다면서 “필자는 그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언사는 양식 있는 학자라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점잖게 충고합니다.
그는 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에 대해 그러한 식으로 매도해 왔다. 그런 논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일부 세대주의적 견해에 동조하는) 챨스 스윈돌(Charles Swindoll),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 크리스웰(W.A. Criswell) 등이 모두 이단이거나 사이비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책을 출판하거나 읽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위 지적은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부 같은 것을 말해도 즉각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이단시 하는 경향이 있는 개혁신학 전공자 분들과 일부 이단감별사들이 한번 쯤 귀를 열고 경청해 볼 만 합니다.
3. 세대주의와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워치만 니는 폐쇄파 형제회와 일정기간 교류가 있다가 성만찬 문제로 교제 단절을 당한 바 있습니다. 또한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와 만나기 전 7년 반 동안 형제회 모임에 몸 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성경 해석 안에서 소위 ‘세대주의의 특징들’이 일부 발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세대주의 핵심 특징들에 있어서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과 견해를 크게 달리합니다.
1) 이스라엘, 교회, 왕국 :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나누면서, 교회는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이고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 연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하와로 예표된 교회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 목표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신약 교회의 ‘예표’라고 말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교회의 실재가 바로 왕국이라고 가르침으로 소위 ‘왕국 연기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12]
2) 대환란 전 휴거 : 알려진 대로 세대주의는 <대환란 전 휴거>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극소수 이기는 자들 외에, 대다수 거듭난 성도들은 <대환란 후 휴거>될 것을 가르칩니다.[13]
3) 7년 대환란 : 세대주의의 <7년 대환란 교리>는 그 내용과 개념이 두 성경교사와 다릅니다.[14]
4) 알레고리 해석 : 비판자들은 워치만 니 특히 위트니스 리가 <알레고리 성경해석>을 한다고 정죄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문자적 해석이 특징인 세대주의자일 수는 없어야 합니다.[15]
5) 산상수훈 해석 등 : 어떤 세대주의자는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은 유대인들에게 해당되어 신약 교회와 무관하며, 대환란 때 이방인들에게 전해질 ‘천국 복음’(마24:14)을 지금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6]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마태 복음 5-7장은 왕국 백성인 우리에게 헌법에 해당되고, 천국 복음은 대환란 전에 온 땅에 확산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6) 시대의 구분 : 두 성경 교사는 전형적인 세대주의자들처럼은 아니지만, 시대를 구분합니다.[17] 그러나 대표적인 언약 신학자들인 찰스 핫지와 루이스 벌콥 역시 시대를 구분합니다.[18] 따라서 시대를 구분한 자체가 곧 세대주의자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4. 결론
찰스 C. 라이리는 언약 신학이 체계화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로 극히 최근의 일이고, 초기 교회의 공인된 교리가 아님을 지적합니다.[19] 장두만 박사님은 언약 신학의 행위 언약, 은혜 언약의 석의적(釋義的,exegetic) 근거가 불충분하고, 언약 체결 시기와 언약 당사자에 관해 신학자마다 혼란이 있는 것은 성경 근거가 희박함을 말해준다고 주장합니다.[20] 심지어 믿음이 없는 유아들을 세례주는 근거로 언약 신학이 고안되었다는 혹평도 있습니다.[21] 만일 이런 지적들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언약 신학과 다른 것은 이견일뿐 이단일 수는 없습니다.
필자는 양 쪽 지지자들 모두가 구 프린스턴 신학교에 광풍처럼 몰아쳤던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싸웠던 무기였던 <근본주의 5대 강령>[22]을 다시 함께 고백함으써 WCC, 번영신학 등 신종 자유주의가 한국 교계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함께 영적 싸움을 싸울 것을 제안합니다.[23] 이런 영적 전쟁에서 자유주의가 적군이라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우군입니다.[24]
--------------------------------------------------------------------------------
[1] http://www.duranno.com/sl/detail.asp?CTS_ID=2177 (목창균 박사님, 세대주의 논쟁)
[2] 한국교계 내에서는 ‘시한부 종말론’ 비판(ftp://203.230.114.4/DLIIMG/009/009/T0211401.PDF) 또는 선교 단체인 인터콥의 종말론 비판(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02)과 관련하여 세대주의가 자주 거론된다.
[3] 그런데 무천년설만이 정통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 또한 만만치 않다. 1) 차영배 박사님은 그의 <성령론>(도서출판 엠마오, 1997)에서 “대부분의 교부들은 역사적 전천년설자들”이었는데, “이젠.. 무천년설이 득세하여 한국교계의 전천년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탄식하고 있다 (12쪽). 2) 미국의 Faith 신학교를 졸업한 이광복 목사님도 종말론 토론에서 “무천년설은 어거스틴의 알레고리 해석법에 기원하며”, “무천년설에 의존한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은 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비판한다.<천년왕국, 사실인가 상징인가> (생명의 말씀사, 1996, 201, 203쪽) 3) 특히 덴버 신학교 정성욱 교수님은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6267)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이 더 성경적인 종말론임을 역설한다.
[4] <세대주의 구원론>과 관련해서는 추후 별도의 글로 다룰 예정이다.
[5] http://sharperiron.org/forum/thread-dispensationalism-cult (영문)
[6] 이단감별사인 이인규님(감리교 권사)은 <세대주의 비판>이라는 인터넷 상의 글에서 “세대주의자들의 보편적 특징”으로 “1) 배타적 폐쇄적이며, 2) 오직 자신들 교리만 진리라고 주장하며, 3)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1)과 2)는 언약신학 쪽도 자유롭지 못하고, 3)의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라는 주장이 세대주의자들의 보편적 특징’이라는 이인규님의 말은 명백한 거짓이다.
[7] 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36&wr_id=16 이 자료는 세대주의를 “고전적 세대주의, 수정 세대주의, 점진적 세대주의, 대중적 계시주의”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찰스 C. 라이리는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전도출판사)에서 블링거로 대표되는 ‘극단적 세대주의’를 말하며, 이를 다시 ‘극단적인 유형’과 ‘온건한 유형’으로 분류한다(218쪽).
[8] 포이쓰레스는 <세대주의 이해>(총신대 출판부, 1992)에서 언약 신학의 수정노선과 관련하여, “성경신학”의 등장, 안토니 후크마 종말론의 “지상적”인 영원상태, 그리고 Willem Van Gemeren의 로마서 11장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특별한 역할” 등을 지적한다(54-55쪽을 보라).
[9] 각주 11이 소개한 논문은 언약 신학자들이 제시한 성경 근거들이 왜 무리한 인용인지를 밝히고 있다.
[10] http://blog.daum.net/7gnak/15718380 (김성주 목사님, 언약신학에서 본 세대주의 신학-특강 자료 중 일부이다)
[11] http://blog.daum.net/lbts5857/4245 (장두만 박사님, 세대주의 신학에서 본 언약신학), 이 논문은 <목회와 신학> 1995년 2월호에도 게재되었다.
[12] 위트니스 리는 <신약의 결론-왕국>(한국복음서원, 1992)에서, “어떤 성경교사들은 왕국이 연기되었다고 잘못 가르쳤다…로마서 14장에 따르면, 왕국은 오늘날의 교회생활이다. 교회생활의 실재가 왕국이다.”라고 말한다(21-22쪽).
[13] 위트니스 리는 계14:4의 ‘첫열매’ 관련 각주에서, 대부분의 믿는이들의 대환란 끝 휴거를 주장한다. http://rv.or.kr/include/flex2/viewer2/recovery_low.php 해당 구절 각주 2를 보라.
[14] 위트니스 리는 계11:2 ‘마흔 두 달’에 대한 각주에서, 다니엘 9장 27절의 “후반부 삼년 반이 대환란의 기간일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7년 대환란>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인한다.
[15] 이인규 권사님은 위트니스 리의 ‘알레고리 성경 해석’이 문제라고 자주 주장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성경을 읽을 때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읽되, 필요시 상징적인 의미를 따져 보는 것을 원칙삼으라고 가르친다(한국복음서원이 발간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을 참조). 이것은 성경을 대하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태도일 뿐, 세대주의자와 무관하다. 성경에는 ‘문자주의’(사7:14)와 ‘알레고리’(갈4:24)가 혼재한다.
[16] 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43&wr_id=25 이송오 목사님은 이 자료에서, “무천년 주의자들은….유대인의 왕국 복음을 이 시대의 구원 계획으로 붙들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17] 위트니스 리는 로마서 5:14 주석에서, ‘아담부터 모세까지’(롬5:14),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요1:17), ‘그리스도 초림부터 만물의 회복까지’(행3:20-21), ‘그리스도 재림부터 천년왕국 끝까지’(계11:15, 20:4, 6)로 시대를 구분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경 자체의 구분일 뿐 세대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워치만 니에게서도 시대 구분의 흔적을 볼 수 있다(<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II, 한국 복음서원, 2002, 88쪽 참조).
[18] 찰스 핫지도 ‘different Dispensations’이라는 소제목 아래 ‘아담에서 아브라함’, ‘아브라함에서 모세’, ‘모세에서 그리스도’, ‘그리스도에서 마지막’으로 시대들을 구분한다(Systematic Theology II, pp. 373-377). 핫지와 벌콥의 시대구분은 찰스 라이리의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 (전도출판사) 48-49, 54쪽도 보라.
[19] 언약 신학의 상세한 역사는 위 라이리 박사님의 책 200-205쪽을 참조하라. 혹자는 어거스틴의 "구약은 숨겨진 신약이다. 신약은 드러난 구약이다."라는 말을 빌려 언약 신학 기원을 초대 교회까지 소급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대주의 쪽도 역시 어거스틴의“시대를 구분하여라. 그러면 성경은 그 자체와 조화를 이룬다”는 말을 세대주의 기본원칙 중 하나로 인용한다(위 각주 16의 제공자료 참조).
[20] http://blog.daum.net/lbts5857/4245
[21] 박만수 형제님은 “칼빈은 유아들이 믿음의 선택을 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섭리에 의해 그들이 이미 은혜 계약 안에 있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세례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것이 소위 언약 신학의 출발점이었다”라고 주장한다(http://blog.naver.com/hjxch/80036289026).
[22] 근본주의 5대 강령은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인 죽음, 육신입은 부활, 기적의 인정(또는 재림 신앙)’이다.
[23] http://blog.koreadaily.com/korea3927/695125 김명도 박사님은 이 글에서 “개혁주의와 신근본주의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바른 믿음을 지키려는 교단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24] 중국 난징소재 ‘진링(金陵)연합신학대학’의 왕애명 박사님은 최근에 10년(2002- 2012년) 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및 지방 교회들을 연구한 결과, 이들이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고백하는 개신교 표준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공개 증언한 바 있다(https://www.localchurch.kr/localchurchnews/7957). 이것은 미국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와 풀러 신학교 측이 장기간 연구한 결과와 일치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