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에 대하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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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에 대하여(2)
3. 합일을 위한 노력들, 지방교회
이 중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달리 분열되어 있음을 보고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고자 한 최초의 시도는 1670년경 영국에서 일어난듯 합니다. 이들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교파를 떠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고 각처에서 그들의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진젠돌프가 자신의 모라비안 교회에 이런 운동을 수용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19세기 초, 성직계급과 종파조직이 성경에 없는 것임을 발견한 형제들이 아일랜드와 더블린에서 자신의 교파를 떠나 집회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조직과 사람이 아닌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J. N. 다비, 윌리엄 캘리, 맥킨토쉬(모세오경의 저자), 뉴톤, 벨렛, 죠지 뮬러, 죠지 커팅, 찰스 스탠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졌습니다. 이들은 한동안 주님께 크게 쓰임 받았고 막대한 영적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십년 후, 놀랍게도 이들은 다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각 모임의 일치된 행동을 주장하고, 어떤 형제들은 각 모임마다 독립적인 행정을 주장했던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20세기 초 중국에서는 워치만 니라는 젊은이가 하나님에 의해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강력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15여년간의 그의 사역을 통해 적어도 7만여명의 영혼들이 구원을 얻고, 중국과 동남아 각지에 600여개의 지방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워치만 니는 생명의 말씀사와 한국복음서원에서 번역된 수많은 책들로 인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 한 지방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하나의 예배당이 아닌 하나의 교회)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성경대로 이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형제운동의 중요한 과오가 바로 지방의 범위를 명백히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각 모임의 일치된 행동을 주장한 형제들은 지방의 범위를 넘어서 연합회적인 과오에 빠졌고, 각 모임의 독립을 주장한 형제들은 지방의 범위에 이르지 못하여 한 지방에 여러개의 교회를 만드는 과오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대로 한 지방(시, 읍, 면 등 사람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사는 곳)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 하나의 행정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어떤 교파나 혹은 국가에 속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교회 안에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는 계급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점에 있어서는 형제운동과 견해를 같이했습니다. 그는 문화 혁명 때 투옥되었으며,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교회의 길』, 『교회의 정통』(한국복음서원) 등의 책을 읽어보면 교회에 대한 그의 사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지방교회에 대한 요약된 이해 및 개인적 의견
글의 첫 부분에서 밝힌대로 지방교회는 어떤 교파나 분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나뉠 수 없고, 지방 외에는 어떤 것도 교회를 세우는 입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에 대한 '그들'의 주장입니다. 바울조차도 지방교회 이외의 교회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도 교회를 세우는 입장이 되기에는 불충분했습니다. 오늘날은 창시자가 루터냐 웨슬레냐, 침례를 받느냐 약세를 받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느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느냐 등의 수많은 이유로 교파가 갈리워지지만, 성경은 지방 이외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어떤 입장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방교회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가르침도 아니고, 특별한 가르침도 아닙니다. 더구나 이단적 가르침이라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개교회'―성경에 없는 말이지만―의 유일한 유형(The one and only type of each church 영어가 맞는지 모르겠군요?)일 뿐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읽어볼 때, 사람의 전통과 권위―교황과 카톨릭―를 떠나 성경으로 돌아간 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단'이라는 것이 우리의 교황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영적인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해도 반대해야 합니다. 종파는 참 편리합니다. 열광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순절교회로 가면 되고,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싫은 사람이라면 구세군이나 퀘이커 같은 교단을 찾아가면 됩니다. 자기 구미에 맞춰서 선택할 수 있고, 만나고 싶은 형제들끼리 모이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이야기한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교회가 '몸은 하나'라는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심하게 찢어져 있음을 겸손히 자인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해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5. 지방 교회에 대한 몇가지 의문
지방교회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은 분명히 옳으며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역시 몇가지 의문점은 남습니다.
첫째로 "합일을 한답시고 또다른 분열을 만드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대답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성경은 한자도 빼거나 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방을 교회의 경계로 정하셨으면 인간이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방의 경계가 분열을 막는 성경의 방법이라면, 성경대로 해야지요. 성경대로 하는 사람이 적을지라도 말입니다.
둘째로 "기존 교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천천히 교파간의 영적 교제 등으로 하나가 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말입니다. 교파가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겠지만, 잘못된 것이면 헐어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현대의 성직계급인 목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워치만 니는 이런 '영적 합일'을 '담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있어서 미지근하면서, 미지근하지 않은 축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째로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고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교파 안이냐 밖이냐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는 견해입니다. 사실 워치만 니도 하나님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며 침례, 방언, 성결, 종파를 떠나는 것 등을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런 부수적인 진리들도 다 합당한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저 자신도 이 점에 대해 전혀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다 중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성령의 권위가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사실 '지방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영적 실재가 있고 없고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지방교회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이 아무리 옳고 성경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성령의 권위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자신들을 하나의 또 다른 종파로 만들어버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특별함과 풍성함을 자랑거리로 여기고, 어떤 영적으로 뛰어난 개인―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의 견해를 성경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들은 이미 또다른 하나의 종파로 자신들을 변질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저는 그들의 집회에 참석해 본 적도 없고 그들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이만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글을 마칠까 합니다. 지방교회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지방적 합일의 입장에서 모이고 있는 형제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그런 분이 계시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의 교회가 나아갈 길을 밝히 제시할 수 있는 선지자적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으로 돌아갈 때 우리 눈의 수건이 벗겨질 것입니다. (끝)
글쓴이 : 그리스도의 몸 안의 한 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