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째 강, 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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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마이클 잭슨이라는 미국 흑인가수가
얼굴 피부색을 성형수술을 통해서 하얀 피부로 바꿔보려고 하다가
피부가 다 문드러지고 얼굴 한쪽이 무너진 사진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속에서부터 얼마나 섬뜩하던지...
검은 피부의 흑인이 백색피부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우리 악한 본성을 개선하려는 것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한 면에서 다 구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렘13:23)
아, 생각은 어느 정도 바뀔 수 있고
행동도 조금은 바뀌게 할 수 있을지라도
근본적인 본성을 깨뜨리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많은 메시지들을 대할 때 이해한 몇 마디의 말들로
마치 나의 본성이라도 바뀌고, 존재가 변한 것처럼
큰 착각 속에 빠진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몇 마디의 말씀과 함께 오는 승리 뒤에
번번히 다시 찾아오는 실패는 어김없이 좌절입니다.
표범의 반점(렘13:23)과도 같은 죄있는 본성은
결코 어떤 자기 노력으로는 변케 할 수 없다는 진리만
또다시 머리 속에 각인시키면서 보낸 세월이 많습니다.
첫째 강 '비손'은 '값없이 흐른다'(사55:1, 계22:17)는 뜻이지만,
둘째 강인 '기혼'은 '물의 격류'(요4:14, 7:38)입니다.
또한 셋째 강 '힛데겔'은 '신속한 힘'을 의미합니다.
처음엔 값없이 흘러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격류로서 세차게 흐르고
또 신속하게 흐릅니다.
특히, 둘째 강은 검은 얼굴, 즉 죄인들의 변할 수 없는
악한 본성을 상징하는 구스(렘13:23) 온 땅을
격류로서 둘러서 흐르고 흐릅니다(창2:13).
지난 여름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뒷자락
수해복구 현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직접 피해가 없는 저로서는 남 얘기나 다름없었지만,
아마 남쪽 지체들이 느낀 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한결같이
넘어진 나무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간 피해복구현장은 개천이
S자 모양으로 굽이쳐 돌아가는 곳인데
비스듬하게 곡선을 이루는 쪽으로 물들이 몰아쳐
제방을 무너뜨리고 논 수백 평을 깎아내렸습니다.
또 미처 깎이지 않은 쪽 논 위로는
급격하게 쏟아져 내린 물들이 커다란 돌들을
논바닥 여기 저기 위에 올려놓은 곳이었습니다.
무너진 제방과 논이야 그렇다고 쳐도
논 위에 올려진 수많은 돌들, 아니 커다란 바위들이 신기했습니다.
다서 여섯 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굴려 움직일 수 있는 돌을
어떻게 물이 옮겨놓을 수 있었을까..?
한 두 개도 아니고, 수백 수천 개나 되는 바위와 같은 돌들을
제방까지 무너뜨리고 그 너머 멀리 있는
논 위에까지 옮겨놓은 것이 볼수록 물의 힘을 알게 했습니다.
그날 내내 여기저기 논 위에 널러져 있는 바위와 돌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우면서 격류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의 격류'를 의미하는 둘째 강 기혼은
단순하게 흘러가 적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평화롭게 잔잔히 흘러 생명을 공급한다기 보다는
구스 온 땅을 '격한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애를 써서 움직이려 해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와 같은
구스의 악한 본성을 흘러 떠보냅니다.
처음엔 값없이 흘러왔지만, 언젠가부터 격류로서 흐르며
나의 노력, 개선으로는 꿈쩍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그 강한 흐름이 흘러 떠 보냅니다.
원한다고 해서 검은 피부가 흰 피부로 바뀔 수 없고
표범의 얼룩점들이 바뀔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는 가능합니다.
처음에 이 생명은 값없이 잔잔히 흘러왔습니다(비손).
검고 죄많고 본성이 악한 자들 안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신성한 생명입니다(사1:18, 벧후1:4).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의해서
우리의 검은 피부와도 같은 악한 본성이 완전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를 깨고 싹이 나오는 것은 뿌려진 한 알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때로 커다란 바위를 움직이는 것은 격한 흐름입니다.
구스 땅에 이르러서는 천천히, 잔잔히 흐르지 않았던,
그 격류는 빠르게 흘러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떠내려보냅니다.
이 둘째 강을 많이 누리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자주 좌절시키는 악한 본성은 무엇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첫째는 생명의 어떠함으로이지만,
두 번째는 역동적이고 힘있는 생명의 흐름 안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맞다, 혼자서 속 들여다보고
작은 줄기 따지다가 세월 다 보내지 말고
성령의 크고 거센 중심 흐름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이 힘있는 흐름이 큰 바위와 같은 악한 본성을 떠내려보낸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크고 생생한 물결 속에 주저없이 뛰어들자.
지금까지는 잔잔하게 누렸을지라도
이제는 격류로서, 거센 흐름으로서 누릴 때다.
언제든지 역동적인 생명의 큰 흐름 안에 자신을 두자.
결국 생명이 사망을 삼킨다.
첫째, 둘째, 셋째 강 이후에 넷째 강이 옵니다.
이 넷째 강은 '달고 풍부하고 결실이 많은' '페라스'입니다.
글쓴이 :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