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오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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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만에서 장오신 형제님이 오셔서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CCC 회관에 모여 며칠 동안 특별집회를 하였습니다.
집회에서의 메시지나 문 두드리기 실행도 인상적이었지만 '장오신 형제님'이란 '사람'을 많이 누렸습니다. 주님을 오래 섬긴 분이면서도 제가 교파에서 지금까지 보았던 분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마치 매일 보는 이웃집 할아버지같이 수수하고 자연스럽고 친근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회복 안에서 생명을 오래 누리신 형제님들의 모습들이 다 그랬습니다.
니 형제님은 임종 8일 전에 처형에게 쓴 편지에서, '핑칭 처형: 내일 아침이면 저는 풍수령을 떠나 산하파 농장으로 옮겨집니다. 오실 때 풍수령까지의 표를 끊지 마시고 그곳보다 두 정거장 더 들어간 산하파까지의 표를 끊으셔야 합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위 짤막한 글에서도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형제님은 어느 메시지에서 선물을 줄 때 대충 포장만 하지말고 '예쁜 리본'도 그 위에 잘 달으라고.... 집회소에서 있었던 그분의 손자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식이 다 끝났다고 광고하려는 순간 한가지가 빠졌다고 신랑 할아버지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데 빙그레 웃으시며 '왜 신랑 신부 키스 안 시키냐'고 말하자 하객들은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사실 서양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키스'가 빠지면 어색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 외의 지체들에게서도 이런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에피소드들은 많이 보았고 알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에서 묘사된 예수님의 모습은 하늘을 찌를만큼 높고 웅장하여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나무가 아니라 낮고 친근하여 어린아이들도 쉽게 올라가 놀 수 있는 그런 나무와 같은 분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요4:7) 하실 때, '이는 그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마13:55)라는 말을 들을 때 주 예수님은 참 인간이셨습니다. 유별난 괴팍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얼마나 치우친 사람이었던지요. 한 번은 주님을 더 알고 배우기 위해 떠나는 작별의 장소에서 교파에 있는 손아래 여동생이 '사람이 되어 가지고 오라'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화가 났지만 내색을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주님의 빛 가운데 나아갈 때, 주님은 사람들에게 특히 가까운 가족들에게 '합당한 사람'으로 살지 못했던 자신을 낱낱이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위하기는 커녕 오히려 복음을 막았습니다. 많은 회개와 자백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방면이 제겐 약함이지만 그러나 제 안에서 깊은 인식의 변화를 체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믿는 이들은 일단 주님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특별하고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의 평범한 인간과 똑같이 평범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집회에 참석하고, 하나님을 섬기지만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사람의 모습이고, 우리의 얼굴은 여전히 사람의 얼굴이다. 복장에서 우리는 합당하지만 평범하며 독특하거나 괴상하지 않다...
우리는 천사들이 아니며 사람이다. 사실상 우리가 영적이 되면 될수록 더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서신서들에서도 사도들은 합당한 인간, 특히 합당한 남편, 아내, 부모가 되는 법(엡5:22-6:9, 골3:18-4:1)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로 그분의 나타남과 움직임과 행정을 위하는 합당한 사람들이 되게 한다'(에스겔LS(보급판), 59쪽).
그렇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정체입니다(계3:12).
글쓴이 : 갓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