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걷는 연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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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삽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부득이 하게 남을 위해 자신이 제한받아야 할 때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이는 불평과 불만으로 이런 환경을 받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잘 받아 주되 나중에 생색을 내거나 공치사를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묵묵히 자기 희생을
하되 그런 환경이 자꾸 반복되면 나중에 폭발해 버리는 식으로 받습니다.
가끔씩 어떤 이는 이 모든 과정에서 어울려 살 줄을 알며 남을 사랑으로 배려합니다.
1.
미국에 와서 1년 있다가인가 두 번째 이사 간 아파트는 12 유닛 밖에 없는 작고 아담한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로 옆 집이 LSM에서 봉사하시는 미국 형제님 댁이었습니다.
그 부부가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배움과 돌이킴이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퇴근 하고 들어오면 자매님으로부터 아이를 인계 받습니다.
늦게 얻은 아이라 귀엽기도 하겠지만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했을 자매님을
배려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를 유모차에 끌고 세 식구가 가까운 공원으로 저녁 산책을 나가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이런 저런 가족의 필요를 채우다가 자매님과 아이가 일찍 잠 자리에 든 후 형제님은 추구를 하시다가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저에겐 형제님의 가족에 대한 배려가
깊은 인상을 새겨주었습니다.
2.
결혼 전에 여행을 할만큼 한 사람과 여행이라곤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나 살았습니다. 해 본 사람에겐 그거 그리스도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만', 안 해 본 사람에겐 '별 것'일 수 있습니다.
총각 때는 '싸 돌아 다니기'를 좋아 했습니다. 군대 있을 때도 휴가 보름을 나오면
집엔 왔습니다 하는 첫날과 갑니다 하는 마지막 날만 머물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친구들 만나고 혼자 폼 잡고 여행다니고 그랬습니다. 한번은 군복에 군화를 신고 쌕 (자루) 안에 양말 두 켤레, 시집 두어 권, 원고지와 볼펜을 넣어 달랑 짊어 지고 강원도 쪽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 차림으로 울산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영랑호 수면 위로 석양 빛이 물든 모습을 혼자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군복입은 군인이 버스 안에서 원고지를 꺼내어 끄적거리는 자기 모습이 꽤냐 특이하고 고상하다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빛 가운데 되돌아 볼 때 그게 다 객기를 부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인생을 살아 가는 동안 거치면 좋았을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식의 '고상한 방황'이 더 이상 고상해 보이지 않음을 본 이후 오랜 동안의 '나 다님'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되었습니다.
3.
'그거 예전에 나 다 해봤는데, 별거 아니야 '로 누르고 모르는 척 넘어가길 십 수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엔 잘 참는 것 같더니 어느 시점이 지나니까, '당신은 다 해 봤으니까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난 안 그래' 식으로 나왔습니다. 교회 생활이 다 바쁜데 그럼 나 더러 어떡하라구. ...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었습니다. 주위 지체들의 자문도 받고 또 길을 찾아 보니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새벽 집회를 마치면 아침 6시 15분 정도입니다. 주말이라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잠자리에 있을 시간이 아니면 깨어 있어도 주말 아침 한 두 시간은 어영 부영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 40분 만 차를 몰고 나가면 태평양이 나옵니다. 같은 장소라고 해도 이른 아침에 그런 곳에 가면 또 색 다른 맛이 있습니다. 둘이 한적한 해변을 걷다가 아침을 먹고 집에 돌아와도 오전 9시 밖에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노동절 연휴지만 새벽에 집회소에 갔다가 아침을 먹고 둘이 인근 공원을 걸었습니다. 공원 호수 위로 뿌연 물 안개가 피어 오르는 모습이 일품이었습니다.
"우리 이번 겨울에 언니(형부) 오면 이곳에 모시고 올까? "
"아휴 모시고 갈 곳도 많네...."
이 정도의 아부성(?) 발언은 예전의 저라면 꿈도 못 꿀 것임을 아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본은 오래 전에 보았지만 정작 실행은 이처럼 뜸을 들이고 시간이 흘러야 조금 맛 볼수 있으니...'무뚝뚝한 한국 남자'는 죽고 둘이 걷는 연습을 하는 '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그 이름하여 '갓맨'이라....
글쓴이 : 갓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