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지고 파쇄돼
-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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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편안하기를 원하나 주님은 우리의 삶에 풍랑이 일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배가 부두에서 안전하기를 원하나 주님은 하늘의 바람과 바다의 파도를 통과하게 하십니다(마 8:23-27). 다만 작은 안식이 아닌 그분 안의 더 깊고 완전한 안식을 향해…
1. 깨어지고 파쇄돼 주의 품에 안겼네
작은 배가 부두에 가까울 때 편안하니
파선된 후 주 안의 참된 안식 못 누려
작은 배가 부두에 가까우면 편안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환경을 주셔서 우리의 작은 안식을 깨뜨리실 때가 있습니다. 역대로 많은 경건한 믿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바람과 풍랑이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어떤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욥 10:13).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 행사가 형통한다고 고백했지만 성경은 또한 악인의 형통함과 믿는 이들의 고난을 말하기도 합니다(시 1:1-3, 시 73:1-15). 성경은 신약에 와서야 욥이 궁금해 했던 하나님의 마음속에 품으신 뜻에 대해 밝혀 주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겉사람을 헐어버리심으로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를 누리고 그분의 몸으로 건축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고후 4:16, 엡 3:9).
2. 깨어지고 파쇄될 때 우린 애타했지만
풍랑 인해 주 품에 양육얻게 되었네
주 안에 안식하니 다시 요동함 없네
모든 믿는 이들은 주님의 몸의 지체들로서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해야 하지만 많은 믿는 이들이 기본적인 일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겉사람이 아직 파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우리의 속사람과 일치되지 않으며 속사람 안에서 받은 주님의 부담을 흘려보낼 수 없고 우리는 겉사람 안에서 연기자와 같이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나 성도들을 양육할 때 우리의 속사람이 겉사람을 통해 흘러나와야 사람들은 주님을 접촉하게 되고 구원을 받으며 목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 6:63).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겉사람이 아직 만져지지 못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거나 성도들을 양육할 때 겉사람의 생각과 감정 안에서만 열렬할 뿐 그의 속사람 안에 있는 영이 흘러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3. 파선한 후 내 닻을 하늘 위에 던졌네
계속 항해하지만 내가 조종 안하네
근심 필요없다네 주와 함께 거하니
주님은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됨으로 우리의 속사람과 분리되고 우리의 속사람이 겉사람을 통해 흘러나오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환경을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밖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주님 안에 머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속사람의 부담을 겉사람의 방해 없이 자유롭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야곱은 일생 고난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생명의 성숙 안에서 빛이 청청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앞에 섰을 때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책략을 쓰는 야곱이 아닌 하나님의 왕자 이스라엘이었습니다(창 47:7-10). 수년의 다룸을 통해 하나님이 얻기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사람이 헐어짐으로 그분의 분배의 그릇이 되고 그 풍성을 흘려보내는 생명 안에서 성숙된 한 사람입니다.
4. 깨어지고 파쇄돼 내게 유익되었네
사람들은 놀라나 파선 내게 은혤세
주님 안에 거하니 주가 친히 지키네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될 때 더 이상 기억을 의지해 주님의 임재를 유지하려는 것도 없게 되고 주님의 임재를 유지하기 위해 그에 맞는 환경을 찾을 필요도 없게 됩니다. 로렌스 형제는 분주한 주방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임재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겉사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의 속사람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속사람 안에서 살 때 우리는 한 면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만 동시에 속사람 안에서는 주님과 교통을 나눌 수 있습니다(살전 5:17).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일은 생명의 넘쳐흐름이 될 것이고, 속사람 안의 주님의 부담을 우리의 겉사람을 통해 자유롭게 흘러나오게 할 것입니다.
기도 : 우리의 타고난 사람이 주님의 일의 가장 큰 장애임을 보게 하소서. 우리는 사람들과 환경을 원망하지만 우리의 속사람 안에 있는 풍성을 가장 저지하는 것은 우리의 겉사람입니다. 우리는 많은 때 이러한 주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다만 환경과 사람만을 봄으로 주님의 뜻을 저지하기도 했습니다. 주여 북쪽에서 바람이 불 때 주님의 원하심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뜻과 동역해 드림으로 주님이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얻으소서. 다만 지식과 자신의 느낌 안에 사는 사람이 아닌 속사람 안에서 사는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겉사람은 비록 파선할지라도 주 안에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이 찬송은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471 장입니다. 가사는 마가렛 E. 바버 자매님에 의해 지어졌고 곡은 Dimitri Stepanovich Bortnianski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 좋은 찬송시에는 다만 진리와 시적인 형식과 구조만이 아닌 영적인 접촉과 실재를 만질 수 있는 체험이 녹아 있습니다.
* 우리가 주님이 안배하시는 우리의 겉사람을 헐어버리는 많은 환경들을 통과할 때 우리는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찬미의 제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 주님 안에서 체험이 있는 한 형제님은 “나는 45세 정도의 형제들이 찬송을 작사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주님을 앙망하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 가운데 훌륭한 작곡가와 작사자들이 필요합니다. 45세인 사람은 70세가 될 때까지 25년간 작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찬송을 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긴 하나,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실행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 역대로 많은 성도들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유익을 얻었듯이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통해 우리의 다음 세대가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 http://www.btm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