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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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기반은 높은 지지율이었습니다. 열두 지파 중에 열 지파가 따랐으니 80%가 넘어 압도적입니다. 그렇게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 많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것은 그에게 분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심지어 여로보암을 따랐던 열 지파는 그 후, '이스라엘 왕국'이라는 보편적인 이름을 얻기까지 합니다.
여로보암과는 달리 르호보암은 그의 아버지가 왕이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왕의 위치를 물려받았습니다. 그가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그 위치는 <흔들 수 없는 정통>이란 이름이며 그것이 그의 기반입니다. 그는 그것에 집착하고 확신을 갖다가 하나님과 생명이 성숙한 노인들의 말을 외면하여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분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르호보암보다는 여로보암의 죄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보암은 그의 왕좌를 지키겠다는 야심 때문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왕상12:28) 또 다른 중심지를 세워 하나의 입장을 손상시키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분열을 야기했으며 절기의 날짜를 마음대로 바꾸고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기도 했습니다(왕상12:31,3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왕상16:26)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왕하3:3)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왕하15:24) 등등... 수도 없이 여로보암의 죄를 말하며 분열에 관하여는 항상 그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잘못의 핵심은 하나님의 정하심을 무시하고 또 다른 경배 중심지를 세워 하나를 깨뜨린 것이며 그 잘못의 근원은 그의 야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여로보암은 언제든지 분열과 야심의 대명사로 동일하게 제 마음 안에도 낙인찍혀 있으며 항상 정죄의 대상이었습니다. 분열의 길을 간 여로보암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가증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역시 그 하나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결코 합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중심은 결코 르호보암도 아니요, 여로보암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통이라는 이름, 과거에 누리며 정당함이 되었었던 어떤 것,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압도적으로 따르게 할지라도, 그 어떤 근거도 그 사람을 중심의 위치에 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분열은 <우리가 옳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때 조심해야 하고 어떤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 주의해야 하며 과거에 어떤 것을 체험했다고 생각할 때 경계해야 하며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고 생각할 때 더욱 경계에 경계를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 눈에는 하나를 깨뜨린 사람과 하나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사람이 일반이며 걸리게 한 사람과 걸린 사람이 일반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정당함을 근거로 그 하나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 안에는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는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 같이, 믿은 이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한 바로 <그 하나>입니다(요17:11,21). 그러므로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요"(요17:23)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의 그 하나가 내 안에서부터 확대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가 점점 나를 점유함으로써, 그 하나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글쓴이 :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