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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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한답시고 온 친구들과의 반복되는 논쟁과 변론으로 끝없이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욥16:1-6), 욥은 하늘에 계신 분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큰 계시를 얻었습니다(16:19). 그리고 이어서 그가 한 말이 있습니다. "My spirit is broken"(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욥17:2), 즉 '나의 영이 상했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51편에서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가 '상한 심령'(a broken spirit)이라는 것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영)'을 주님께서 멸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7절). 마태복음 5장 3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the poor in spirit" 즉 '영 안에서 가난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가난하다'는 말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겸손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영, 즉 우리 존재의 깊은곳이 비워지고 이전에 자신이 알거나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비워놓는다는 뜻입니다. 뭔가 자신 안에 가득한 사람 안에는 다른 것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비워진 사람만이 그 사람 안으로 주님을 모셔올 수 있습니다.
잠언 16장의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춘다"는 말은(19절) a lowly spirit with the poor, 즉 가난함과 함께하는 겸손한 영이며, 이사야서 57장의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영)을 소성케 함"(15절)과 66장은 "무릇 마음(영)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2절)는 모두 동일한 의미입니다.
소위 '강퍅'한 사람과 '완고'한 사람은 그 사람의 영이 상하거나 깨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안에 어떤 것이 가득하여 들어갈 여지가 없는 사람이 바로 '스스로 부요한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배운 하나님에 대한 어떤 것마저도, 무엇인가를 더 계시하려는 하나님의 빛비춤을 막는 두꺼운 수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체험해보고 조금 빛비춤 받은 사람이 더 완고합니다. 말하기가 더 두렵습니다. 설령 충분히 체험했고 충분히 빛비춤 받았으며 충분히 공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이 상하지 않고 영 안에 가난하지 않으면',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이 역사할 길이 없습니다. 각기 당대 의인이었던 욥과 다윗에게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상한 영'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영 안에 다른 무엇이 채워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영이 깨져야 합니다.
사람은 그 사람의 나이 만큼되는 개를 두 마리씩이나 키우고 사는데, 하나는 '선입견'이고 다른 하나는 '편견'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견고한 성을 지키는 개 두 마리이죠. 이것이 다 깨지고 비워져야 합니다. 사람 안에서 운행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로 막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깨지고 상해야만 합니다.
글쓴이 :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