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를 다루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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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역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합니까?"라고 물으시니,
제자들 중 어떤 사람은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신언자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라고 말할 때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마 16:13-16).
모든 사람이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육체로 오심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혈육이 있는 사람의 도움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계시로 말미암아 합당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하나님께 그러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그것이 곧 자신의 생명의 성숙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는 곧이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제삼 일에 살아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니,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하며 책망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지금까지 주님을 따랐던 목적이
자신의 일신의 영화를 위한 생각으로 가득했었나 봅니다.
주님은 이것을 사탄의 일로 규정하시고 드러내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우리가 본 계시라 할지라도 하루만 지나면 잊혀지고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에 빠지기가 일쑤인가 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의하면 6일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어,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고,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또다시 주님을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지어 그곳에 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를 기쁘게 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심으로서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주 예수님과 구분하시었습니다. 계시에 이어 이상을 보았지만,
베드로는 이때도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다루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가버나움에 왔을 때,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에게 "그대의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베드로는 또 "내십니다."라고 섣불리 대답해버렸습니다.
성전세는 성전을 위한 유대인의 인두세로서, 반 세겔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다루시기 위해 집에 들어온 그에게 먼저
주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시몬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땅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인두세를 받습니까?
자기 아들들에게서 입니까, 아니면 남들에게서 입니까?"
베드로가 "남들에게서 입니다."라고 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들들은 면제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되니,
그대는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으십시오.
그리고 그 입을 벌리면, 은화 한 닢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그대를 위하여 그들에게 주십시오."
성전을 위한 세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니, 하나님은 왕이시고
예수님은 그분의 아들이므로 베드로의 말은 틀렸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주님은 낚시한 물고기 입에 있는 은화를
그들에게 주라고 했으니, 베드로의 말은 맞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낚시를 하던 중, 한동안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은 율법에 기록된 성전세(출 30:12-16)를 낸다고 말했지만,
낸다고 말하거나, 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다 무익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의 말을 직접 들어보았어야
했다는 것을 이제야 그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율법이 아니라 신약의 주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 성경이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방식이 아닌 의식적으로 취한다면
그 성경도 죽은 의문 문자가 되어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다루시던 그 주님께서 지금은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오늘날 우리도 다루고 계심을 느낍니다.
글쓴이 : 생명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