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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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나이에 불과하던 요셉이
형들의 단이 자신의 단에 절하는 꿈을 말했을 때
다 비웃었을 뿐 아니라, 시기하여 구덩이에 넣고 노예로 팔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손에서부터 고난을 당하기 시작하여
삼십 세가 될 때까지 십삼 년을 계속하여 과정을 통과했습니다.
후에 요셉이 애굽 땅의 통치자의 지위에 앉았을 때,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음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를 가장 사랑해주던 아버지가
그의 맘속에 누구보다도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의 아비 이스라엘을 보기를 사모했지만
그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조용히 구 년을 더 보냈습니다.
위엄을 나타내는 병거와 함께 시위병을 대동하고
'아버지, 보십시오. 잃어버렸던 그 아들 요셉이
이렇게 성공하여 돌아왔습니다'라고 금의환향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정도는 안된다 할지라도 사람을 보내 애굽으로 모셔오라
하기는 커녕 그의 살아있음 조차도 기별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십여 년 가까이 감옥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아래 있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주여, 여기까지 보내신 분이 주님 당신이십니다.
나로 하여금 모든 고난을 통과케 하시고,
오늘 이러한 지위에 앉게 하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아버지와 헤어지게 하신 분이 주님이시며
주님의 주권적인 때에 다시 아버지를 만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요셉은 비록 통치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자신이나 자신의 누림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감옥 생활은 그를 주권적인 기다림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법을 훈련케 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꿈이 모두 이루어졌지만,
아버지 이스라엘의 임재 한가지만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는 제한 가운데 있었으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인내하며 합당한 때를 구할 줄 알았습니다.
결국 어느 날 그의 확신과 같이,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나타났습니다.
오... 이런, 빨리 형들을 시켜 아버지를 모셔와야지..
그러나, 요셉은 여기에서도 쉽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반대로 그의 형제들이 교훈을 받고 온전케 되기를 다시 기다렸습니다.
결국 형들의 두 번 왕래 끝에 아버지를 모시러 갈 적당한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여전히 자신이 아버지를 만나러 직접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의 마음이 아버지를 만나기를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고센에 도착한 후에야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었습니다'(46:29)
그토록 매우 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아버지를 너무 그리워하였던 사람입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제한 아래 통치자로서 왕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 사람, 제한받지 않는 사람은 장래 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생활이
왕국 생활로 인도하며 왕국 생활을 실행하는 열쇠이었던 것입니다.
강한 나라의 총리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해 그의 꿈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의 아비 이스라엘을 만날 것이라는 강한 믿음,
그 영역을 뛰어넘어 가볍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안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을 할 힘과 지위와 기회가 있지만 여전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며
자신의 갈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자격과 힘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며,
은혜시대를 사는 오늘, 교회 안에서 왕국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아, 우리 주님은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 군단을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요구할 수도 있는 분이셨지만,
친히 십자가의 생활로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한번은, 아흔이 되도록 신실하게 주님을 섬긴 형제님이
자신이 전하고 가르치고 세운 형제가 배역의 깃발을 세웠을 때
다만 스스로 자신은 떨었다고 간증하시며,
자신이 떤 것은 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어떠함이 나올까 떨었다는
간증을 하실 때 얼마나 인상이 깊었는지...
여전히 왕국생활로 인도하는 이런 사역 안에 있으면서도
아침, 초등학교 3학년 된 아이 밥을 혼자 먹도록 해야지,
할머니가 언제까지 그렇게 먹여주실 거예요 하면서
(내심 내 속으로 합당한 이유였지만)
말소리를 높이며 제한받지 못한 제 자신, 내내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마지막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십여 년을
감옥에서 기다릴 줄 아는 어떤 분이 있는가 하면,
신호등과 같은 잠시 멈춤에도
브레이크 밟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 주여...
글쓴이 :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