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역 대합실도 처지에 따라...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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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여행을 동경해왔던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에 설악산을 등반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그 해 겨울
설악산 등반은 젊은 날 기억에 남는 일 중에 한 가지 입니다.
그 때는 완행열차로 여행을 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으로,
오후 늦게 동대구역을 출발한 저는
다른 기차로 갈아타기 위해서인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대구 인근 영천역 대합실 바닥을 안방처럼 편안하게 누리며
여행으로 흥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한가롭게 혹은 바쁘게 오고가는 그 중에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처럼 보이는 한 청년도
나처럼 영천역 대합실 바닥을 안방삼아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몇 십분이 흐른 다음, 기다리던 기차를 타기 위해
개찰구를 빠져 나가던 나는 아까 보았던 그 청년으로 인해
잠시 생각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나는 설악산 가는데 저 사람은 왜 저기 계속 있어야 하지?
그래 갈 곳이 없구나...
언제까지 저 차가운 대합실 바닥을 앉아 있어야 하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같은 대합실 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나와 저 청년의 처지는(그 청년이 갈 곳 없는 신세라면)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 청년과 내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둘 다 청바지 차림에 나는 등산 점퍼를,
그는 진한색의 외투를 입었을 뿐,
차이 나는 것이라곤, 나는 오늘 아침 세수를 했고
그는 몇 날 세수를 하지 못한 것 뿐 아닌가?
내일이면 나도 세수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처지라,
실제로 외관상 그와 내가 다른 것은 없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는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나는 즐거운가?
나는 지금 여행 중이며 차가운 영천역 대합실 바닥은
여행 중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 아니라
나의 여정은 눈 덮인 아름다운 설악산과
끝없이 펼쳐지는 태백 산맥의 장엄함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그뿐 아니라 나의 여행이 끝나고 나면 부모님이
나를 반기시는 따뜻한 방이 있는 내 집이 있지 않는가?
아무리 추운 설악산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기대와 설레임을 줄 뿐,
나에게 슬픔을 주지는 못하리라.
여행이 끝나는 내 집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안식을 주는 것인지.....
그러나 그 청년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그는 소망이 없다.
아니, 그에게도 소망은 있었다,
바로 영천역 대합실이 그의 소망이다.
영천역 대합실이 그의 소망이요,
더 이상 갈 곳도 바랄 곳도 없는 종착역이었다.
차가운 영천역의 대리석 바닥은 얼마나 그에게 고통이며 슬픔일까?
젊었을 때 체험한 이 장면은,
세월이 흐른 다음 구원받고 새 예루살렘의 소망을 간직한
내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 되었다.
나는 이 땅에 소망을 둔 사람이 아니다.
내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누림이 있는
새 예루살렘 이라는 안식처가 있다.
어찌 차가운 대리석이 깔린
영천역 대합실 같은 이 세상이 나를 슬프게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곳에 소망을 두지 않았는데...
글쓴이 : Antipa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