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를 돌리면서
- 관리자
- 20799
- 0
저희 집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세탁기를 돌리는 편입니다.
물론 아파트 내에 있는 공동 세탁기와 드라이어를 사용합니다.
요즘은 조금 올라서 세탁은 25센트 쿼러 6개, 드라이어는
네개를 넣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세탁일은 주로 제 몫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도 락스에 담가 두었던 빨래가 있어서 새벽 집회
갔다 온 후 시간이 좀 애매하지만 일단 세탁기에 넣고, 그동안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후 꺼내어 드라이어에 옮겨 놓는
것까지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주중에 그것도 낮에는 거의 사용을 안 하니까 다 말린 세탁물이
드라이기에 조금 더 담겨져 있어도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니까....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 난생 처음으로 세탁을 하면서 물빠지는
셔츠와 다른 빨래를 함께 빨아서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락스 자국이 듬성 듬성 난 검은 양말을 신고 다녀야 했습니다.
안 해보던 일을 제대로 하기까지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고
또 어느 만큼은 시행착오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저녁에 아내와 산책을 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는 걷기
운동이 좋다고 해서 기회가 되면 많이 걸으려고 합니다.
걸어서 좋고 둘이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이
있어 좋습니다. 분위기가 좋은 날은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산책하다 꼭 고구마 잎사귀같은 정원식물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당신 우리 신혼 때 그 일 기억나? 뭐? 우리 그 집에 살 때...내가
고구마 줄기 일일이 다 까서 무쳐서 그 다음날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그 이상한 주인 아가씨(우린 그때 주인 딸이 방하나 그 옆방을
신혼인 우리가 쓰는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았었습니다)가 우리
냉장고를 허락도 없이 냉장에서 냉동으로 바꿔서 ..그 고구마
줄기가 다 얼어버려 못 먹고 버렸잖아.
그래서 내가 그 이야기를 하니까 당신이 '뭐 그런 것가지고
그래' 라고 해서 내가 마음에 상처가 있다구. 차라리 그냥 '아
그랬어?' 라고 만 했어도 그냥 넘어 갈 수 있었는데...
글쎄 말이야 지금 만 같아도 그럴 수 있었을텐데...저는 기억도
안 나는 일을 집 사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상황은 그야말로 예수만을 주목하고 뚜벅뚜벅 걷는
황소같은 모습이었기에 정말 제 안에서는 그런 일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내의 섬세한 마음을
만지고 위로할 만한 영적인 노련함은 턱없이 부족했었습니다.
저같이 이론적으로는 다 맞고 심지어 영적이기도 한데, 사람을
상하게 하고 눌리게 하는 사람이 제일 딱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 당시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머리 속에 들은 지식이 가슴으로 그리고
존재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야말로 인성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나마 지금은 자기의 약함과 부족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으니
아내도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너무 시간의 간격이 느껴집니다.
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승천의 과정을 거치신 신약의 하나님도
우리 밖에만 계신다면 여전히 객관적입니다.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인성을 통하여 살아 표현되시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공급이 되시는 그분이 참된 우리의
실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이런 저런 삶의 현장 속에
함께 하시고 또 표현되십니다. 친근하신 그분을 더 누림으로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 주 안에 서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위대한 사역이 없을 것입니다.
글쓴이 : 갓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