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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수호―복음주의 교회들과 교파들의 정당성에 대해

첨부 1

 

‘복음주의 교회들과 교파들의 정당성에 대해’


인용구 12

 

주님은 변절한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들로 구성된 기독교계 안에서는 교회를 건축하지 않으신다. 이 예언은 주님의 회복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참된 교회 건축은 이 회복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신약 회복역 성경, 각주 185, 마태복음 16:18)


인용구 13

 

변절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 이단이 되었다. 개혁 교회는 어느 정도 주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었지만, 다른 많은 이름, 예를 들면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와 같은 이름을 취하여 스스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인했다…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은 변절이고, 주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영적인 음행이다. (신약 회복역 성경, 각주83, 요한계시록 3:8)

 

인용구 14

 

나는 여전히 우리 중 일부가 기독교계의 소극적인 영향 아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기독교계에서 완전히 끌어내시기 위해 전진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와 지방교회들의 역사, 155쪽)

 

인용구 15

 

로마 카톨릭을 포함한 모든 종파 속에도 참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종파들의 조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종파 조직은 합당한 교회생활의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시키고 사탄의 조직을 세우기 위해 사탄에 의해 이용되었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II, 501쪽)

 

인용구 16

 

우리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고, 기독교계에 관심이 없으며, 로마 카톨릭에 관심이 없고 모든 종파들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선포이다. 기독교가 무너졌고, 기독교계도 무너졌으며, 카톨릭도 무너졌고, 모든 종파들도 무너졌다. 할렐루야! (지방교회를 위한 일곱 영들, 111쪽)

 

인용구 17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교회를 아는 것까지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지방적인 교회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가장 새롭다면, 오늘날이 지방교회들의 시대임을 깨달을 것이다. (같은 책, 26쪽)

 

논쟁 중에 있는 현재의 기독교의 특별한 방면 : 복음주의적 분파주의


공개 서한은 “복음주의 교회들과 교파들의 정당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제시된, 위트니스 리의 자료로부터 가져 온 인용문들의 세 번째 부분에서 주목할만한 전환을 한다.

 

우리는 위트니스 리가 그러한 교회들과 사역들의 특성들을 모욕하도록 다음과 같이 지속적으로 부축이면서도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이 복음주의 교회들과 사역들의 연합체로부터 회원자격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모순이고 도리에 맞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한다: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인용문 12에서 17까지가 포함된 진술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출판을 중지하라”고 반복해서 권고하면서도, 그들은 인용문 1부터 11까지에서 논쟁했던 것처럼 인용문 12에서 17이 “그리스도인 신앙의 본질적인 교리들에 모순되거나 손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정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이 사례를 놓고 은근히 정죄하는 것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측 사람들이 교파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바라면서도 위트니스 리가 기독교계 조직에 관해 부정적으로 말한 것을 선전하는 것은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공개 서한은 아래와 같이 추가하여 말하고 있다.

 

만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이 복음주의 기독교와 기관들과 사역들을 정당한 기독교 단체로 간주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들이 복음주의 교회와 사역단체들의 모든 연합회의 회원자격을 공개적으로 사임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공개 서한에 대한 간략한 답변에서도 지적했듯이, 서명자들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은 본질적으로 어떤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사역단체들의 연합체”에도 속한 적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해 왔다. 지방 교회들은 복음주의적이든 그 반대이든 어떤 교파적인 “교회들”의 연합체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우리가 아래에서 보겠지만 지방 교회들의 존재 자체나 위상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기독교 출판사로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지방교회들은 아니고―는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사 협의회(ECPA)와 기독교 신용조합(Christian credit union)과 같은 조직의 회원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사업 상의 조직이고 교회들의 연합체가 아니며,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출판사로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는 교회의 어떠함의 기초가 아니라 기독교 출판과 재정을 위한 공통점의 기초에 의해 이들 단체들과 제휴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도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를 “적법한 기독교 단체”(그러나 교회들로서가 아닌)로 보아주기를 희망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는 참으로 이러한 단체들을 “적법한 기독교 단체”(그러나 교회들로서가 아닌)로 간주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적법한 기독교 단체들로 간주하기 때문에, 우리는 출판과 재정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수준에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앞서 답변했던 것처럼 복음주의적인 “교회들”(문자적으로, “복음주의”라는 기치아래 일컬어지는 교회들)은 신약이 묘사하는 교회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확신을 무효화 하지는 않는다. 신약에 따르면, 교회는 위대한 성경교사들, 합당한 교리들, 옳은 실행들, 또는 그 밖의 기초들에 따라 불려지지 않으며,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은 그렇게 이름붙여진 교회들의 연합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복음주의 “교회들” 안에서 모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의 형제와 자매로 받으며 그들과의 교제를 위한 기회들을 환영한다는 우리의 서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과 실행에 있어서 “불일치와 도리에 맞지 않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참으로 우리의 실행은 교회의 합당한 성격에 관한 우리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고, 그러한 입장에 의하여 정당화될 뿐 아니라 또한 그것에 의해 심지어 더욱 중요하게 강제된다.


우리의 관점이 비록 소수인 것은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의 관점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는 것을 이단적이고, 극단론이며, 또는 배타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인용문 12부터 17까지를 따로 떼어낸 것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위트니스 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매우 배타적이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도 여전히 배타적이다 라고 믿게 하려했던 것은 아주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위트니스 리와 전혀 관계가 없고 오늘날 우리와도 무관하다. 큰 충격을 주도록 따로 떼어내어진 채 제시된 위트니스 리의 진술들이 서명자들이 자신의 독자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대로(그리고 이것에 대해 그들 자신이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게될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가 누구이건 우리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답변이 합당하게 이해되고 또한 공정하게 받아들여 지기를 바라는 갈망이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보다 충분한 인용문들의 내용들과 아래에서 제시될 위트니스 리의 더 많은 사역물의 내용이 말해 주듯이,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기독교 내의 믿는이들이 아닌 기독교 조직의 어떤 방면을 반대하여 말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구분을 이해한다고 믿는다. 또한 그들은 조직 안에 있는 사랑하는 믿는 이들은 존중하지만, 조직은 비난을 초월해 있지 않고,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포함한 몇 가지 점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에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일 인용문 12에서 17까지의 내용이 원문으로부터 따로 떼어진 상태로 제시되지만 않았다면 기독교의 하락을 매우 타당하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임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했을 것으로 믿는다. 더 나아가 인용문 12에서 17까지는 이 주제의 한 방면 즉 분열된 조직을 고발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을 뿐, 그들은 기독교 내에서 조장되는 분열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분열의 원칙 그 자체를 반대하는 한 간증으로서의 하나를 위한 위트니스 리의 입장을 균형있게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용문 12에서 17까지를 의도적으로 함께 모아 놓은 것은 위트니스 리에 대한 불완전하고, 불공정하며, 궁극적으로 부정확한 또다른 인상을 창출해 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기독교가 일부 더럽고 악한 것들이 그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해 왔다는 것을 동의할 것이다. 그 결과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려져야 할 교회(고후11:2-3, 엡5:25-27)가 불순한 요소들에 의해 침해 당하고, 세상을 향해 교회가 짊어져야 할 순수하고 썩지 않은 그리스도의 증거는 약화되어 왔다. 성경은 그러한 타협에 의해 산출된 혼잡을 정죄하며(고전5:6-7), 계시록 17장 1절과 5은 그러한 혼잡의 궁극적인 산물을 “큰 창녀”와 “비밀, 큰 바빌론”으로 여긴다. 특별히 배도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최소한 14세기까지 큰 바빌론으로 여겨져 왔고(소위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들의 영성을 가진 일부 중에서[38]), 그 무렵의 개신교 성경교사들도 동일하게 평가했다.[39] 그러나 큰 창녀는 혼자가 아니고 “창녀들의 어미”라고도 불리는데(창17:5), 이것은 그녀가 그 어미의 악행들을 따라하고 어미가 하는 것처럼 창녀로서 행동하는 후손들을 낳았음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처음 듣는다면 충격을 받고 심지어는 깊이 괴로워 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개신교 전통 안에 있는 일부 조차도 기독교계 내의 많은 종파들이며, 특별히 개신교주의 내에서 그들은 창녀의 딸들로 여겨진다는 것은 진실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단적인 가르침들과 이방의 실행들과 비성경적인 전통들과 심지어 우상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창녀의 어미 안에 그 근원을 가지고 있는 창녀의 딸들은 그들의 어미로부터 다양한 정도로 더러운 것들을 섭취해 왔다. 그런 점에 대해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창녀들의 어미가 변절한 교회이기 때문에, 창녀들, 곧 변절한 교회의 딸들은 변절한 로마 천주교의 가르침과 실행과 전통을 어느 정도 고수하고 있는 기독교의 여러 종파들과 단체들임에 틀림없다. 순수한 교회생활에는 변절한 교회에서 전달된 악이 전혀 없다. (회복역 신약 성경, 각주 52, 요한계시록 17:5)

 

하지만 위트니스 리만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널리 존경받았던 학자이자 복음주의 협회(The Evangelical Foundation) 창시자인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1895-1960) 또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계시록 17장 5절에 나오는] 이 여자는 창녀들의 어미라 불린다. 어미 창녀가 있고 딸 창녀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이 우상숭배의 기원이 되는 조직은 많은 하부 조직들을 만들어내며 발전해가고 있다. 종교개혁 시기에 활동하던 개신교 주석가들은 언제나 이 큰 창녀가 로마 교회라고 말했다. 성경은 개신교 단체들을 창녀의 딸들에 포함시킨다… 하나님은 오늘날 모든 교파들 안에 참된 증인들을 소유하신다. 그러한 조직 안에 있는 것과 상관없이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40]

 

월터 윌슨(Walter L. Wilson)(1881-1969)은 그의 저서 <윌슨의 성경 예표 사전>(Wilson’s Dictionary of Bible Types)에서 ‘창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벨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표이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많은 역사 학자들과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했다. 많은 큰 교파들이 이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왔고 동시에 어미 교회로부터 많은 전통과 실행을 함께 가지고 나왔다. 많은 교파들이 세상의 입맛과 물질을 추구하면서 어미 교회의 실행을 따르고 있다.[41]

 

윌슨과 같이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전 달라스 신학교 교수였던 메릴 엉거(Merrill F. Unger)(1909-1980)는 아직까지 인기 있는 그의 저서인 <엉거의 성경사전>(Unger’s Bible Dictionary)에서 바벨론이 비단 로마 가톨릭 교회일 뿐 아니라 모든 “변절한 기독교계” 라고 말했다.[42]

 
공개 서한이 내포하고 있는 것과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주장하고 싶어 했던 의도와 달리 위트리스 리만이 이러한 기독교계의 오류에 의의를 제기한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현재 기독교의 상황은 참담하다. 교회는 쪼개져 나뉘었으며 교회 간증의 순수성은 세상과 타협되었다. 위트리스 리는 이 상황에 대해 경종의 메시지를 전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위트니스 리가 믿는 이들의 하나를 옹호하고, 세상적이고 우상적이며 사탄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들을 버리라고 한 것이 틀렸는가? 우리는 그가 취했던 태도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만일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위트니스 리가 위에서 한 말들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면, 그들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는 잘못을 용납하거나 적어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우리는 인용문 12부터 17까지를 부적절하게 잘라 낸 것이 위트니스 리가 조직의 오류를 비평할 뿐 아니라 그 조직 안에서 모이고 신앙 생활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공격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것을 염려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조직의 일탈은 단호하게 폭로하지만, 그의 사역의 메시지에서 발췌한 아래 글이 증명하듯이 주님 자신에 의해 정죄된 조직 자체와 영원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은 명확히 구별했다.

 

우리는 물론 어떤 분파들과도 함께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교통을 저지시키지 못한다. 그들이 분파 안에 있든지 있지 않든지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형제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의 분파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성도들은 사랑해야 하며 그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 있는 이들이라도 사랑해야 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도 참 신자들이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다. 그들이 성직자의 긴옷을 입고 있더라도 우리는 구속 안에서, 생명 안에서 똑같다. (교회의 실제적인 표현, 112쪽)[43]

 

공개 서한은 위트니스 리가 편협하고, 차별적이며, 분파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우리가 위트니스 리는 부당하게 표적이 되어 왔다고 믿는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고 앞으로도 좀 더 명확히 보겠지만 저명한 학자들 그리고 서명자들이 소속된 기관과 교파에 속한 일부 사람도 논쟁이 된 주제들에 대하여 위트니스 리와 놀랄만큼 비슷하게 말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위트리스 리가 주장했던 것과 동일한 우려의 목소리를 낸 다른 저자들은 비판을 받지 않는가? 위트니스 리만 기독교의 오류를 비판하고 그 하락한 상태에 대해 통탄해 한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난 받아야 한다. 또한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 안의 동료 믿는 이들과의 접촉을 회피하고 그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쁘게 말했다는 암시를 주는 것도 잘못 인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공개 서한은 이러한 잘못된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인용문 자체에 돌이켜서 위트니스 리가 집중했던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의 건축에만 계속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인용문 12부터 17까지에서 인용된 위트니스 리의 언급들이 그것들이 발췌되었던 문서들의 문맥 안에서,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의 그의 책들 안에서 합당하게 이해되려면, 그런 인용문들은 반드시 이러한 관점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위트니스 리가 비판했던 기독교의 상황은 특별히 오늘날 기독교를 특징짓는 만연된 분열들이었다.[44] 물론 이러한 많은 분열들은 다양한 가르침과 분열된 실행과 같은 구체적인 근거들로 나눠지고 있다. 종종 이러한 가르침과 실행은 그 자체로는 합당할지 모르나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근거가 될 때는 이미 합당한 것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어떤 합당한 가르침에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거나 실족하게 하는 원인들은 담대하고 정직하게 비난했다(롬 16:17참조). 또한 그는 기독교 내의 불순하고 더러운 요소들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비평했다.


인용문 12


인용문 12는 주님 자신의 말씀을 기록한 유명한 구절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인 “또 내가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각주들 중 하나에서 발췌한 것이다.


인용문 12

 

주님은 변절한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들로 구성된 기독교계 안에서는 교회를 건축하지 않으신다. 이 예언은 주님의 회복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참된 교회 건축은 이 회복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회복역 성경, 각주 185, 마태복음 16:18)

 

우리는 인용문 12의 내용이 위트니스 리가 기독교계 내에 있는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한 참된 교회의 지체들임을 부인한다는 인상을 주어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의도적으로 선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상 위트니스 리는 성경에 따라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모든 믿는 이들이 교회를 구성하며, 그들은 교회의 지체들임을 매우 분명하게 선포했다. 그는 아래에서 보듯이 인용문 12를 발췌한 것과  동일한 출처인 회복역 성경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의[에베소서] 주제를 나타내는 ‘교회’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이며, ‘부름받아 나온 회중’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로 이루어진다. (신약성경 회복역, 에베소서 1:22 각주 3)

 

하지만 위트니스 리는 인용문 12에서는 모든 진정한 믿는 이들로 구성된 교회의 존재가 아니라, 합당하고 진정한 표현 안으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는 인용문 12를 발췌했던 각주 이전 문장에서 교회의 건축이 “오순절날에 시작되었다(행 2:1-4, 41-42)”고 말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주님이 예언하신 것은 “이십 세기가 지나도록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오순절날에 시작된 교회의 건축은 아직 진행 중이며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위트니스 리는 이러한 교회 건축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파들 안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스스로 “로마”, “루터파”, “복음주의파”와 같은 이름들로 표시되는) 교단들로 특징지워지는 암시된 분열은 음부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는 교회의 특징인 하나의 상태와는 반대되기 때문이다(마 16:18). 그러므로 하나 그리고 순수한 기초 또는 하나가 놓일 터로 돌아갈 매우 확실한 필요가 존재하며, 그럴 때 교회 건축이 합당하게 실현될 수 있다. 신약 성경 회복역의 각주들을 그 확장된 주석에 포함시킨 자신의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Life Study)에서, 위트니스 리는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분이 ‘이 반석’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반석’이라는 말은 다만 그리스도를 가리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이 계시, 즉 베드로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계시를 가리킨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 계시 위에 세워진다.


로마 천주교는 18절에 있는 이 반석이 베드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비해 근본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반석이 그리스도를 암시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지만 이러한 이해도 충분하지는 않다. 여기에 있는 반석은 다만 그리스도를 가리킬 뿐 아니라 더욱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도 가리킨다. 이 장에서 아버지는 베드로에게 하늘로부터 무언가를 보여 주셨다. 이 아버지로부터 온 하늘에 속한 계시가 반석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둘 다 위에 세워진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교파들은 이 반석 위에 건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남침례교파는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위에가 아닌 수침에 관한 계시 위에 건축된다. 동일한 원칙으로 장로교파는 장로에 대한 교리 위에 건축된다. 마찬가지로 은사주의 교회들이나 무리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위에 건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은사주의적인 것들에 대한 지식이나 그러한 체험들 위에 세워진다. 이와 같이 오순절 교파는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위에가 아닌 오순절의 복음에 대한 계시 위에 건축된다.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위에 건축된 교회는 참된 교회요 분파가 아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관념과 관점에 따라 무리나 또는 소위 교회들을 구성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념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가 아니다. 교회는 ‘이 반석’, 즉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본다면 우리는 분열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 위에 세워진 것만이 교회이다. 교리들이나 관점들이나 실행들이나 관념들 위에 세워진 어떤 무리도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가 주 예수께서 그 위에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고 계시는 반석이다.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47장, 쪽)

 

위트니스 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교리와 관점과 실행과 관념이 분열의 요소들이 되지 않도록 하고, 또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를 건축하도록 참된 하나의 터로 회복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이것을 바라되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들 중 그 어떤 것도 어떤 식으로든지 타협되거나 간과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45] 오히려 그는 본질적인 신앙과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믿는 이들 사이에 많은 분열을 가져온 비 본질적인 문제들에 관한 다수의 교리적인 불일치와의 차이를 구분했다. 그는 모든 믿는 이들이 분열을 일으키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과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 같은 몇몇 사람들은 우리의 이러한 입장을 비판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다른 믿는 이들을 향해 배타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음의 발췌문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위트니스 리의 포용력과  합당한 지방적인 터 위에서 그리스도의 몸 안의 하나를 실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그의 관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발췌문에서 공개 서한이 인용문 일부를 비합리적으로 삭제하고 짜깁기하여 만들어 낸 거짓된 인상과는 정 반대의 인상을 받는다.

 

우리의 터(ground)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시대의 시작으로부터,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터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이며 이것은 각 지방에서, 지방 교회 안에서 지켜지고 표현된다(계1:11). 즉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가 어느 지방에 있든지 그 곳의 교회가 되기 위해 함께 모인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 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 지방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의 표현이다. 교회는 우주적으로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이 하나는 많은 지방에서 표현된다. 여러 성도들이 있는 각 지방에서 성도들은 그곳의 교회로서 함께 모여야 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방적인 표현으로서 모이고 있는 모든 다른 믿는 이들과 하나가 되는 것 외에 수침에 의한 침례나 방언이나 장로회나 방법이나 감독 제도 등 어떤 다른 터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이 유일한 하나가 우리가 건축되어 가고 있는 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편당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배타적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열려져야 하며,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사랑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인 한,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우리 형제들이 많은 교파로 흩어져 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싸우거나 반대하거나 따지는 태도나 그러한 영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영과 자세를 항상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고 주 예수님을 믿는 한, 그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이다. 지방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벽도 없다. 우리에게는 울타리가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랑스런 그리스도인들을 우리의 형제로 생각한다. (성경의 기본 계시,  80-81쪽)

 

인용문 14



나는 여전히 우리 중 일부가 기독교계의 소극적인 영향 아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기독교계에서 완전히 끌어내시기 위해 전진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와 지방교회들의 역사, 155쪽)

 

위트니스 리가 인용문 14에서 언급하고, 우리가 믿기에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특별히 불쾌하게 생각했던 부분인 “기독교계의 소극적인 영향”은 분열,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한 것에 악한 것들을 섞은 것이다. 위트니스 리가 성경에 따라 솔직하게 가르쳤던 것처럼 기독교계는 이 두 가지 악한 것에 의해 피폐해졌다. 우리는 기독교계는 타협된 조직이며 그곳으로부터 나와서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에 확실히 동의한다.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느끼는 것을 존중하며,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끼는 바대로 실행하는 것도 존중한다. 하지만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내용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위트니스 리가 인용문 14에서 말한 것에 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가 진술하는 내용을 이곳에 제대로 제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위트니스 리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하나의 필요성 대 분열이 가져온 손상과 주님의 간증의 순수성과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조건에 관해 다룬다(요3:29, 계 21:2, 9, 22:17). 우리는 아래에서 공개 서한이 포함하지 않았던 부분은 꺽쇠로 표시하되 인용되었던 부분을 적당한 분량의 앞뒤 내용과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로마서와 에베소서와 같은 책들에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지만 계시록에는 단지 영, 즉 하나님의 칠 배로 강화된 영과(계1:4, 4:5, 5:6) 사람의 영이 있다(계1:10; 4:2; 17:3; 21:10). 요한은 영 안에서 금등잔대, 즉 한 도시에 한 등잔대를 보았다(1:10-12). 그는 수천의 믿는 이들을 보지 않았다. 그는 한 도시에 오직 한 등잔대를 보았다.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한 도시에 있는 많은 믿는 이들은 논쟁이나 의견이나 다른 관념이나 분열이 없이 한 마음 한 뜻 안에서 다만 한 등잔대로 서 있어야 한다. 주님께 감사한 것은 오늘날 여기서 우리는 하나 안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속에서 여전히 우리 자신에 속한 것과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을 붙잡고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보실 때 지방교회는 반드시 아주 단순해야 한다. 그것은 혼합이 없이 아주 단순하고, 단일하고, 순수한 정금 등잔대이어야 한다.


계시록 2, 3장에서 주님은 일곱 교회 모두에게, “귀가 있는 사람은 그 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2:7, 11, 17, 29; 3:6, 13, 22)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그 영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아주 명료하게 말한다. 최종적으로 성경 전체는 그 영과 신부로 최종 종결될 것이다(계 22:17상).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매 시대마다 모든 성도와 그 영이 똑같은 것을 말한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의 신부이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의 신부인가?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마음 한 뜻을 손상시키는 우리 자신의 관념과 의견을 붙잡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구출과 회복이 필요한 상황에 있다.] 나는 여전히 우리 중 일부가 기독교계의 소극적인 영향 아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기독교계에서 완전히 끌어내시기 위해 전진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계시록은 그 영과 신부의 책이다. 교회는 절대적으로 그 영 안의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람의 영으로 돌이켜 영 안에 머물러야 한다. 영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다. 신약에서 믿는 이들의 하나만큼 중요하고 전략적인 것은 없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를 기도하셨다(요 17:21). 어떤 이들은 성경적이기를 원하면서도 그 실행에 있어서는 성도들을 분열시킨다. 성도들을 분열시키는 것만큼 비성경적인 것은 없다.] (교회의 역사와 지방교회들, 154-155쪽)

 

‘복음주의 크리스천 학자들과 사역의 인도자들’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비성경적이라고 단체로 비난하는데 열심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스스로를 복음주의적인 기초 위에 견고하게 서 있다고 함으로써 분열적인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다. ‘복음주의’라는 용어로 스스로를 정의한 것도 그들이고, 심지어 하나님이 받으신 사람들(롬14: 1-15: 13 참조)을 포함하거나 배제시키는 잣대로 이런 용어를 사용한 것도 그들이다. 위트니스 리는 인용문 14에서 이러한 분열적인 성향에 맞서서 영 안의 하나, 즉 주님 자신이 내주하시는 곳이자 그분의 살아있는 거처가 되는 거듭난 믿는 이들의 영 안에서의 하나를 강조한 것이다(고전 6:17, 딤후 4:22, 엡 2:22).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분열의 손상과 하나에 관한 큰 필요성을 다룬 위트니스 리의 실제 메시지를 감추어 온 것은 우리가 보기에 그들이 위트니스 리의 이런 주장이 진실함을 인정한 것이고 또한 그런 주장에 의해 그들이 정죄받은 증거이다. 다른 사람에 관해 증언할 때는 진실함이 요구된다는 그리스도인의 믿음(마 19:17-18; 막10:18-19; 눅18:19-20)을 실행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왜 공개 서한에 따로 떼어 내어 소개했던 부분에 합당한 이해를 줄 수 있는 몇 개의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가?


인용문 13


인용문 13은 위트니스 리가 쓴 신약 성경 회복역의 또 다른 각주에서 가져온 것이며, 주님께서 계시록 3장 18절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에 대한 주석이다.[46]


인용문 13



변절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 이단이 되었다. 개혁 교회는 어느 정도 주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었지만, 다른 많은 이름, 예를 들면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와 같은 이름을 취하여 스스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인했다.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은 변절이고, 주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영적인 음행이다. (신약 성경 회복 역 계3:8 각주 3)

 

위트니스 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계시록 2장과 3장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들을 1세기에 소 아시아에 있는 글자 그대로의 일곱 개의 교회들과 일곱 단계들 안에 있는 기독교의 역사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계시록 3장 8절은 주님의 원래의 목적으로 회복된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칭찬이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좋게 말씀하셨고 어떤 책망의 말도 없으셨다. 일곱 서신들의 순서를 볼 때 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은 많은 이들이 변절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가리킨다고 한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과 또한 많은 이들이 개혁 교회를 가리킨다고 한 사데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 뒤에 온다. 그런데 그 두 교회들은 각각의 하락의 정도에 따라 주님께 심한 책망을 받았다.[47]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위트니스 리가 그런 식으로 개신교를 특징 지은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께서 그의 행위는 죽어 있고, 그 상태는 불완전하다(계3:1-2)고 선포하셨던 사데에 있는 교회를 개신교로 보았던 같은 개신교 전통 내의 사람들의 통찰을 거듭 제시하고자 한다. 서두에서 계시록 2장과 3장에 대한 “역사적인 해석에 추가하여 영적인 적용”[48]도 제시하고 있는, 달라스 신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던 드와이트 펜티코스트(J. Dwight Pentecost)는 널리 알려진 자신의 책인 <다가올 것들>(things to come)에서 사데에 있는 교회에 대한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의 다음과 같은 해석을 그의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종교개혁은 은혜와 능력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간섭하심이며 교황권을 무력화시켰고 300년동안 많게 혹은 적은 불빛으로 불타왔던 빛을 유럽에 소개했다. 개신교가 분열되고 죽어 있는 것은 개신교가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에 대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준다.--사데(3:1-6)[49]

 

또한 무디 성경 연구소 부원장을 역임한 윌리엄 니웰(William R. Newell)은 “죽은 ‘개신교’”라는 제목 아래 사데에 있는 교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스코트(Scott)보다 더 귀에 거슬리는 말투를 구사한다.

 

알려진 상태 :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개신교”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다! 로마 천주교의 흑암과 무지에 대항하여 넘어선, 개신교는 다음과 같은 계몽과 외적인 행위를 가지고 있다: 신조와 역사를 가진 위대한 “국가 교회” 또는 “교단”, 호화스러운 교회당과 대성당, 대학과 신학교, “위원회”, 출판국과 선전, 국내외 선교를 포함한 조직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 심지어 법정에서(at court)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 전문가들! 여러분과 나는 교회를 바울의 시대에 오순절에 주어졌던 성령 이외의 다른 모델에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사데 교회가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는…” 상태가 아님을 말한다. “너는 죽어 있다.” 무시무시한 상태! 배교의 시대이래 하나님의 영의 가장 강력한 역사 속에서 종교개혁 당시에 진리에 대한 회복이 있었지만, 기독교계는 영적인 사망 속으로 가라앉아 왔다.[50]

 

전국에서 시청이 가능한 라디오 프로그램인 바욜라의 시간(The Biola Hour) 진행자이자 널리 존경받는 성경 교사인 리만 스트라우스(Lehman Strauss) (1911-1997) 역시 사데가 기독교계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기독교계 내의 개신교에 대한 그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충격적이다.

 

오늘날의 개신교는 활력을 잃고 지쳐있다. 우리 중에 가장 낙관적인 사람도 개신교는 지난 350년간 인문학과 지성주의(知性主義)에 대해서는 자신하지만 성령의 인격과 능력에 자신을 내어 맡기지는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탄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에큐메니컬 교회에 대해 개신교가 보여 주는 광범위한 묵인은 경보를 발하고 있고, 줄잡아 말하더라도 …. 사데에 있는 교회에게 하신 말씀은 예언적으로 기독교계에 적용된다. 교회들은 영적인 능력에서 쇠하여 가고 있고 질에 있어서 결함이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교회에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개별적인 믿는 이들에게 성령의 인격성과 그분과의 관련성이 희미하게 이해되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51]

 

환영받는 복음주의 저술가인 A.W. 토우저(A. W. Tozer) (1897-1963)는 사데에 있는 교회에 관하여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주목 할만한 소논문인 <교회 안에서 기울어가는 그리스도의 권위>(“The Waning Authority of Christ in the Churches,”)에서 스트라우스가 비방했던 동일한 풍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내가 내 부담의 이유를 좀 말해 보겠다. 그것은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그분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임들 가운데서 거의 권위가 없으시다. 나는 로마 천주교나 자유주의자들이나 유사 크리스천 이단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반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의미하며,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사도들의 영적인 후예임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52]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들은 확실히 날카롭고 위트니스 리가 말한 것과도 일치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용문 13 내용 중에 특별히 어떤 부분이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반대하게 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만 한다. 서명자들을 특별히 격노케 한 내용은 아마도 위트니스 리가 교파들이 특정 이름을 갖는 실행을 교회의 남편(고후 11:2; 엡 5:23; 계 21:2)이신 주 예수님께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인 것같다. 그러나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소동을 일으켰는지와 상관없이, 확고한 사실은 성경에는 어떤 교파도 없고 교파적인 이름을 붙인 교회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거주하는 지방과 일치된 지방적인 교회들만 있다(행 8:1; 13:1; 롬 16:1; 고전 1:2; 계 1:4, 11).

 

교파(denomination)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이름에 의해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교파적인 단체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어떤 이름들을 취하는가? 그런 이름들은 대개 예를 들어 루터교인과 웨슬리안처럼 자신들이 존경하는 창시자의 이름에서 유래했거나 혹은 침례교인, 감리교인, 장로교인처럼 자신들이 다른 이들과 구별될 만한 실행이나 교리에서 유래된 이름들이다. 그러나 정결한 아내가 가져야 할 유일한 이름은 자기 남편의 이름뿐이며 다른 어떤 이름도 아니다. 그러한 교파적인 이름들 자체가 교회의 유일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아니고, 그 단체들이 다른 단체와 나뉘어지는 공통된 역사, 실행 또는 교리적인 강조점과 같은 것들에 속했음을 간증한다. 이것은 위트니스 리가 말해 온 것처럼 일종의 영적 간음이다. 더 나아가 특별한 이름으로 교파를 형성하는 것은 성경의 계시와는 동떨어진 입장을 실행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갖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간 것이고 사실상 배교의 한 형태이다. 인용문 12가 묘사한 내용에 바로 이어진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대한 또 다른 각주에서,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취하는 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 교회란 교회가 주님께 속한 것이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는 교파들과 같지 않은데, 왜냐하면 교파들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어떤 것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회복역, 마16:18 각주 4)

 

아래 내용은 위트니스 리의 각주 전문이다. 인용문 13에서 부당하게 삭제하여 제시되지 않은 부분은 괄호로 표시를 했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표현이고, 주님의 이름은 주님 자신이다.] 변절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 이단이 되었다. 개혁 교회는 어느 정도 주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었지만, 다른 많은 이름, 예를 들면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와 같은 이름을 취하여 스스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인했다. [회복된 교회는 완전히 주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이름을 버렸다. 회복된 교회는 절대적으로 주님께 속하며, 어떠한 교파(어떤 이름)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은 변절이고, 주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영적인 음행이다. [그리스도와 약혼한 순수한 처녀(고후11:2)인 교회는 자기 남편의 이름 외에는 어떠한 이름도 가져서는 안 된다. 다른 이름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회복된 교회생활 안에는 발람의 가르침(계2:14), 니골라당의 가르침(계2:15), 이세벨의 가르침(계2:20), 사탄의 비밀스러운 교리가 없다(계2:24). 다만 주님의 순수한 말씀만 있을 뿐이다. 회복된 교회에는 어떠한 교파들(이름들)이 없다. 다만 유일한 이름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있다. 말씀에서 이단으로 빗나가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많은 이름을 높이는 것은 타락한 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표시이다. 모든 이단과 전통에서 순수한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다른 모든 이름을 버리고 주님의 이름만 높이는 것이 회복된 교회의 가장 고무적인 증거이다. 이것이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에 주님의 계시와 주님의 임재가 있고, 살아 있는 방식으로 주님이 표현되고, 빛이 충만하고, 생명의 풍성이 가득한 이유이다.]

 

인용문 15와 16


인용문 15



로마 천주교를 포함한 모든 교파 속에도 참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교파의 조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교파의 조직들은 합당한 교회 생활의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시키고 사탄의 조직을 세우기 위해 사탄에 의해 이용되어왔다. 교파들 속에나 로마 천주교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다 하더라도 구원은 받았으나 그 체계, 그 악한 조직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보급판 II), 145쪽)

 

인용문 16



우리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고, 기독교계에 관심이 없고, 로마 천주교에 관심이 없고, 모든 교파에 관심이 없다. 성경이 큰 바벨론은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선포이다. 기독교계가 무너졌고 가톨릭교가 무너졌고 모든 교파가 무너졌다. 할렐루야! (일곱 영, 111쪽)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인용문 15와 16 내용에서 매우 불쾌하게 여긴 것은 위트니스 리가 교파적인 조직들을 사탄과 바벨론과 연관짓고, 그러한 조직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비난하고, “타락한“ 기독교에 대한 승리를 선포한 것이다. 그것은 냉정한 상황 묘사이며 교파 조직에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인용문 15에서는 삭제되어서 공개 서한의 독자들이 읽지 못했지만, 위트니스 리가 해당 장(章)에서 말하고자 한 요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인적인 선호와 신학적인 관념과 의견의 차이와 관할 지역들에 의해 분열되어 왔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지셨던 원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은 하나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트니스 리는 그의 사역에서 하나됨을 위해 지속적으로 분투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열되어 왔고, 하나되어 대적에게 수치를 돌리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어야 할 교회는 분열됨으로써 교회 안에 거주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합당하게 증거할 수 없었기에 세상을 향하여 간증을 상실해 왔다(요17:21-23). 오늘날 교회 안의 분열은 그 수를 셀 수조차 어려울 정도이고, 분열의 형태도 가지각색이지만, 그러한 거대한 찢겨짐들은 하루 밤 사이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분열은 수 세기에 걸쳐 발전되었다. 인용문 15를 발췌해 낸 동일한 장(章)에서, 위트니스 리는 창세기에 대한 다른 많은 주석가들처럼 노아의 홍수 이후에 있었던 열국들의 발전을 교회 시대에 많은 교단들이 발전할 것에 대한 전조(前照)로 해석했다. 많은 열국들이 바벨론으로 완성된 반면에, 많은 교파들은 큰 바벨론으로 귀결된다.

 

열국에서 바벨이 일어났다. 이것은 교파 가운데서 바벨론이 나온 것을 상징해 준다. 모든 분열과 교파가 큰 바벨론에서 완성될 것이다. 바벨론(Babylon)은 히브리어 바벨(Babel)과 같은 헬라어 단어이다. 만일 당신이 신약을 읽는다면 기독교의 분열들, 즉 모든 교파들 중에서 바벨론이 나왔음을 볼 수있다. 고대에 모든 국가들은 바벨을 산출했고 기독교 안의 모든 교파들은 결국 큰 바벨론으로 완성될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창세기가 씨앗의 책임을 본다. 왜냐하면 이곳  창세기 10장에 바벨론의 씨가 있고 계시록 17장, 18장에 큰 바벨론의 수확이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보급판 II), 144쪽)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그리고 독자들)이 자신들의 교파적인 연합을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보다 우위에 둔다면, 자신들이 귀히 여기는 전통들이 빛가운데서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만 그러한 평가를 내렸던 것은 아니다. 찰스 스코필드(Charles I. Scofield)는 널리 유행했던 자신의 스코필드 주석성경(The Scofield Reference Bible)에서 다음과 같이 위트니스 리가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에서 바벨의 역사와 교파들의 발전 사이의 유사성에 관하여 주석을 달았던 내용과 똑같은 주석을 달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스코필드가 죽은 후에, 나중 편집자들은 개정판에서 창세기 11장 1절에 관한 다음의 각주들을 삭제했다.

 

바벨(“혼돈”)의 역사는 충격적이게도 고백된 교회(the professing Church)의 역사와 일치한다. (1) 연합(창11:1)-배교한 교회(행4:32-33), (2) 야심(창11:4), 세상적이고 영적이지 않은 수단을 사용함(창11:3), 사람이 만든 연합으로 끝남-교황 제도, (3) 언어로 인한 혼돈(창11:7)-셀 수 없는 종파들로 이뤄진 개신교.[53]

 

위트니스 리는 그의 저서 여러 군데에서 스코필드 주석 성경에 편집된 내용들을 높이 평가했다. 위트니스 리는 20세기 초반에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기 때문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성경 학자들이 쓴 서적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 성경 학자들은 혼란스럽고 분열된 기독교계의 상황에 대해 요즘의 성경 학자들보다 더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상황은 비록 종파 구분에 대한 태도에서는 이전보다 유연해지고 너그러이 수용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에 관해서는 지난 세기 동안 나아지지 않았다.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과 공개 서한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분열된 상황 자체보다 분열에 대한 비난 때문에 불쾌해 했다.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복음주의’(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단지 믿는 이들이어야 한다는 것 대신에)라는 자신들의 입지를 보호하려고 인용문을 문맥과 다르게 인용하고 공개 서한의 독자들에게 최대한 나쁜 인상을 주도록 편집했다. 물론 우리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은 이런 식의 학문적 접근 방식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독자들이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현 기독교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기 바라며, 오늘날 기독교계의 참된 상황을 솔직하게 묘사한 위트니스 리의 적나라한 표현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위트니스 리와 다른 이들이 했던 것처럼 기독교의 이러한 분열을 지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교회의 하나를 유지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본을 회복하는 것은 더욱 절박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몇몇 독자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계는 분명히 분열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또 다른 종파인 지방 교회들, 즉 ‘지방 교회’ 파를 만들어 혼란을 가중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은 분명히 합리적이고, 이런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위트니스 리가 15번 인용문에서 한 답변이 좋은 설명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여기에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모든 교파, 모든 이름이 분열이다. 우리의 이름을 <지방 교회>라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달(moon)에는 어떤 이름이 없다. 그것은 그저 달이다. 우리는 단지 달을 <달>이라고 불러야 한다. 어떤 이들은 미국달이 중국달보다 더 밝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달이나 중국달같은 그런 것은 없다. 당신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에 있는 달, 중국에 있는 달이다. 그것은 하나의 달이다. 오직 유일한 하나의 달이 있다. 이처럼 교회는 단지 교회이다. <지방 교회>라는 용어는 우리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열적이지 않고, 소위 교회들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어떤 지방에 있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지방 교회>라는 용어는 우리의 본성을 나타낼 뿐 우리의 이름이 아니다. <지방 교회>를 이름으로 생각지 말라.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어떤 지방에 있는 교회 즉 로스엔젤리스 교회, 아나하임 교회 등과 같은 것이다….


1930년대에 나는 이런 교파 문제에 대하여 많이 말했다. 어느날 잠시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나의 몇몇 친구들은 나를 잘 알고 있는 나이 든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연회에 나를 초대했다. 그곳에 있었을 때 서른 살이 조금 넘은 나는 모두 육십 세 이상 되는 노인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알았다. 그들 중 한 분이 말을 시작하며 나에게, “이 선생님, 과거에 당신은 설교 중에 교파를 유죄판결했습니다. 당신이 교파를 거슬린 설교를 하여 당신 자신이 또 하나의 교파를 형성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이미 패배시켰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답했다. “여러분 모두와 이곳에 함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나로서는 모든 문제를 명확히 하게 될 최적의 시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고 말한 것을 꾸짖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이러한 모든 분열적인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고전1:11-13). 여러분 모두는 자신이 침례교나 장로교나 중국독립 교회파 등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양심에서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사도 바울이 여기에 있다면 여러분은 사도 바울에게 인정받을 것같습니까?” 그들은, “아닙니다. 물론 바울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직했다. 내가 그들을 이미 압도했기 때문에 그들은 정직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침례교인이다’, 아니면 ‘나는 장로교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동의하셨으면 여러분은 나를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는 당신을 어느 곳에도 두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나를 어느 곳엔가 두셔야 합니다. 내가 어느 곳엔가 머물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자 나는 계속했다. “주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나는 분명히 그분을 사랑합니다. 내가 그분을 사랑하므로 나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의 전파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내가 그들을 어디에 둘까요? 어느 교파로 내가 그들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침례교입니까? 장로교입니까? 아니면 중국 독립 교회입니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말했다. “상황을 보십시오. 이제 왜 내가 분열을 거스려 전파하는지, 다른 한편으로 내가 또 하나의 분열을 형성하는 것같아 보이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함께 올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여러분과 하나되게 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분과 하나가 아닌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내일부터 여러분의 모든 간판을 내려 놓고 여러분의 모든 이름들을 잊어버리기로 약속한다면 나는 오늘 저녁 모든 형제들과 교통하여 즉시 우리 집회소 문을 닫을 것을 여러분과 약속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도시에서 한 교회로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지점에서 그들은, “안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결론을 맺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 분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날 밤부터 내가 중국 대륙을 떠나던 날까지 누구도 다시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에 속한 법정에서의 입장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분열적이고 종파적인 이름들을 유지하기 원했다. 몇 사람은 “우리는 중국 독립 교회파입니다. 어느 것도 이것보다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는 삼대째 장로교인들입니다. 어떻게 이 이름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몇몇 다른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침례교인들입니다. 침례교는 장로교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장로교는 세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침례를 줍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싸움에 익숙하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보급판 II), 137-140쪽)

 

위트니스 리가 인용문 15번 내용처럼 교파 조직들이 ‘사탄에 의해 이용당해 왔다’라고 말하고, 인용문 16번에서와 같이 기독교계가 ‘타락했다’라고 말한 것이 지나친 것인가?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위트니스 리가 확실히 지나쳤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의 주장이 담긴 내용들에서는 매우 분명했던, 위트니스 리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독자들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인용문 16번의 문맥은 이 점을 매우 분명히 보여준다. 위트니스 리는 이 장에서 요한계시록이 승리의 책이며, 이 책에서 보여진 모든 것은 주님께는 이미 성취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위트니스 리는 요한계시록이 승리하신 그리스도(5:4-5)와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왕국(11:15), 마귀의 참소를 이긴 성도와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12:9-11), 큰 바빌론의 타락(14:8), 큰 음녀(19:1-6), 어린 양의 결혼 만찬(19:7), 사탄, 짐승, 거짓 선지자, 죽음, 음부가 불못에 던져짐(20:10,14),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인 거룩한 성의 예비(21:2)에 관해 증거하는 책임을 지적했다. 그 장은 승리에 찬 생활 안으로 들어가려면 찬양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교통으로 결론을 맺는다. 물론 이것들 중 어떤 것도 공개 서한의 독자들에게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위트니스 리와 다른 이들이 논쟁하는 것처럼 큰 성 바벨론이 단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니라 일반적인 기독교계를 예표하는 것이라면, 바벨론에 대한 주님의 승리는 분열적인 조직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는 것인가? 인접한 구절의 문맥에 따르면, 인용문 16번은 요한계시록의 해당 구절들의 선포에 반향하는 감탄의 말이다. 거듭해서 우리는 공개 서한이 포함하지 않은 부분들을 괄호로 묶어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

 

[또 다른 둘째 천사가 뒤따라와서 말하였습니다. “무너졌습니다! 자신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하던 큰 성 바빌론이 무너졌습니다.”(계 14:8)] 우리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고, 기독교계에 관심이 없고, 로마 카톨릭교에 관심이 없고, 모든 종파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큰 성 바벨론은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선포이다. 기독교가 무너졌고, 기독교계도 무너졌으며, 천주교도 무너졌고 모든 종파가 무너졌다. 할렐루야!


[“이 일들이 있은 후에 나는 하늘에 큰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왜냐하면 음행으로 땅을 부패하게 한 큰 창녀를 그분께서 심판하시어, 그 여자의 손으로 흘린 그분의 노예들의 피에 대해 복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두번째로 “할렐루야 “라고 말하니, 그 여자를 태우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갔습니다. 또 스물네 장로와 네 생물이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아멘 할렐루야”라고 말하니, 보좌에서 “하나님의 모든 노예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작고 큰 모든 사람들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라고 하는 한 음성이 났습니다. 또 나는 큰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큰 천둥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분 주 우리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계19:1-6).] (일곱 영, 111-112쪽)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위트니스 리가 큰 성 바벨론과 기독교의 하락을 초래한 창녀들을 동일시했던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또한 이러한 동일시를 허용한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예언에 따라, 기독교계의 하락한 상황이 무너질 그 날이 있게 될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중 누구라도 이것에 대해 애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중 누구라도 기독교계의 이러한 하락한 상황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위트니스 리는 여기에서 기독교계와 천주교와 교파들이 타락했음을 강하게 선포했지만, 문맥을 볼 때 그는 기독교계의 부정적인 방면들을 가리킨 것이다.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인의 신앙, 그리스도의 몸과 신부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 심지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윤리 전체가 타락했다고 선포한 것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의 사역이 이러한 적극적인 문제들에 관해 능력있고 인상적으로 변호한 것은 그 범위와 분량에 있어서 공개 서한에 서명한 모든 이들의 노력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능가한다. 대신에, 위트니스 리는 음행으로 땅을 더럽히는 기독교 분파들의 타락과 창녀의 많은 딸들로 분열되어 온 기독교계 분파들의 타락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 전반은 기독교계의 이러한 부정적인 방면들이 긍정적인 방면들 만큼이나 엄연한 사실임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고,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런 부정적인 방면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가 그러한 부정적인 방면들을 옹호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선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위트니스 리가 인용문 16번에서 한 것처럼 큰 성 바벨론과 창녀에 관해 예언한 승리를 주시하고 그 편에 함께 서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큰 성 바벨론에 대해 하늘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18:4-5).

 

인용문 17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교회를 아는 것까지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지방적인 교회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가장 새롭다면, 우리는 오늘날이 지방 교회들의 시대임을 깨달을 것이다. (지방 교회들을 위한 일곱 영, 26쪽)

 

우리는 인용문 17이 공개 서한에 포함된 이유를 추측할 뿐이지만, 적절한 문맥을 무시한 채 떼어 낸 내용이 주는 인상은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우주 교회보다도 지방 교회들을 더 높인다는 것이다. 인용문 17이 “복음주의 교회들 및 교파들의 적법성에 대하여”라는 전체 제목 아래 배치된 것을 보면,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독자들에게 지방 교회들을 모르면 기껏해야 2류 그리스도인일 뿐이라고 위트니스 리가 가르쳤음을 확신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인상들은 심각한 오해이다. 위트니스 리는 인용문 17이 인용된 장(章)에서 성경에 나타난 네가지 주요 항목들인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와 지방 교회들을 강조한다. 그는 성경 안의  계시의 점진성과 요한계시록에 있는 지방 교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어떤 식으로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우주 교회의 중요성을 얕보거나, 지방 교회들 안에서 모이지 않는 그리스도 안의 참된 믿는 이들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암시하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만 오직 소수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겸하여 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참으로 비밀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이 땅 위에서 육신 안에 계셨을 때 작은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작은 사람이셨지만, 그 작은 사람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그분 안에 체현되셨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부터 계속 나아가서 교회를 안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알지만, 교회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교회를 아는 것은 더 큰 진보이다. 우리 모두는 거듭거듭 진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을 알 필요가 있으며, 둘째로 그리스도를 알 필요가 있고,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 교회를 알아야 한다. 교회 또한 하나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그리스도는 오늘날 교회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시며,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실재화 되신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교회로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교회들을 보아야 한다. 교회를 아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교회들을 아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알지만 교회들은 모른다. 그들은 교회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만 교회들은 보지 못했다. ( 같은 책, 24쪽)

 

요한계시록은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사이를 거니시며, 그분이 그들에게 일곱 서신을 쓰신(13절, 19-20절; 2-3장) 금등잔대인 지방 교회들로 시작하고 있다(1:11-12, 20). 그러므로 금등잔대로 나타난 지방 교회들은 요한계시록의 중심 항목이며, 성경의 마지막 책에 이러한 탁월한 표징을 포함시킨 것은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는데 지방 교회들이 매우 중요함을 가리킨다. 위트니스 리는 인용문 17을  발췌한 책에서 지방 교회들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가 한 이러한 강조는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이 자신들의 독자들에게 믿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비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반기독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사실상 위트니스 리가 관심한 것은 비성경적인 것과 무관할 뿐 아니라 성경을 합당하고 완벽하게 해석하기 위한 것이었고 성경을 고려한 것이었다. 인용문 17을 발췌했던 전후 본문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아래 제시된 것은 인용문 17이 담긴 전체 단락인데, 공개 서한이 포함하지 않은 부분은 이번에도 괄호로 표시했다.

 

[과거에 어떤 이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교회를 안다고 말했다. 그들은 에베소서로부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 그러나 그들은 지방 교회들을 갖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많은 서신서들 특히 그들의 성경의 마지막 책은 삭제한다. 그들의 성경은 단지 오직 육십 오 권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성경이 육십 육 권이 되려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질 뿐만 아니라 지방 교회들도 가져야 한다. 구약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갖는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갖는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는 우리는 교회와 교회들을 갖는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우리는 지방적인 것으로 강조되는 교회들을 갖는다. 그러므로 교회들, 곧 지방 교회들을 안다는 것은 성경에 계시된 네 가지 주된 그림들을 아는데 있어서 가장 큰 진보 것이다. 

 

가장 새로와짐


나의 부담은 우리 모두가 성경의 마지막 책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삼층천에 있는 한 교회가 아닌 지방 교회들에 대해 알려 준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교회를 아는 것까지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지방적인 교회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가장 새롭다면, 오늘날이 지방 교회들의 시대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마지막 시대에, 그분의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주된 것은 지방 교회들이다.] (같은 책, 25-26쪽)

 

문맥을 무시한 채 떼어낸 인용문 열 일곱개 중에 맨 마지막인 이 사례가 아마도 사람들에게 위트니스 리를 반대하도록 선동하려고 위트니스 리가 의미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가장 극명한 예일 것이다. 위에 제시된 더 넓은 문맥의 도움이 없었다면,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지식을 폄하하고 지방 교회들을 이 모든 것들 위에 두려고 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더 넓은 문맥은 다섯 문장으로 된 인용문 17 내용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이다. 여기에 제시된 더 온전한 내용을 담은 위트니스 리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당연히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며, 또한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구약과 복음서들과 사도행전과 서신서들과 계시록으로 구성된 성경 육십 육 권 전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성경 특별히 요한계시록이 교회들이 지방적이어야 함을 계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들이 지방적임을 아는 데까지 전진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구약의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는 그분을 아는 데까지 전진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복음서들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가?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고 그리스도의 참된 한 몸인 그분의 영광스런 교회가 창조되었음으로 우리는 교회를 이런 식으로 아는 데까지 전진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나타난 교회의 방면들만 아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가? 대제사장이신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방 교회들 가운데 서셔서 그들에게 사역하시고, 그들이 밝게 빛나도록(계 1:11-20) 돌보고 계시는데, 이 방면은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에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지방적인 교회들을 아는 데까지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지방 교회들이라는 이 문제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이것이 얼마나 낯선지 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자체가 지방 교회들을 계시하는 데까지 전진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방적인 교회들을 아는 데까지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동의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이유만으로 위트니스 리의 말의 의미를 정반대로 왜곡하지 말기를 바라며, 또한 우리는 우리의 독자들이 이 정도는 우리에게 동의해 주기를 소망한다.


위선이라는 암시는 타당한가?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로 모이는 사람들이 “복음주의 교회들과 사역들의 연합체”에서 회원 자격을 얻으려고 애를 쓰면서 서명자들이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잘못 소개해 온, 기독교의 오류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단호한 진술들을 계속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은근히 비난했다. 그런데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나 지방 교회들은 그러한 회원자격을 얻고자 한 적이 없다. 이런 비난은 비통할 만큼 무지한 것이며, 더 이상 고려할 가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실제로는 위트니스 리의 진술들을 계속 지지하면서 지방 교회들 밖의 그리스도인들과의 연합을 도모하는 위선을 행하고 있다 라고 의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러한 정황을 알면서도 추가 답변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런 비난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사실상 우리는 위트니스 리의 책들을 자세히 조사하고 우리와 함께 광범위한 대화에 참여한 몇몇 복음주의 단체들과의 우정으로 많은 격려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우리와 갖게 된 좋은 관계 때문에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왔고, 그들이 취한 입장 때문에 비난과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는 핍박을 피하려고 진리를 외면하기보다는 진리와 함께 고난받으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이 보여준 본에 의하여 상당히 고무되었다. 특히 그들의 1 차적인 관심은 신앙의 본질적인 것들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평가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위트니스 리와 우리가 그러한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 확고하게 정통(orthodox)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동료 믿는 이들로서 우리와 하나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비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불일치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상호 조화를 깨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리서치연구소(CRI)의 대표이자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인 '성경 답변자’(Bible Answer Man)를 진행하는 행크 해네그래프(Hank Hanegraaff)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환난의 때나 천년왕국의 의미와 같은 부차적인 논점들에 있어서는 이 운동과 심한 차이가 있지만, 성경적인 정통을 정의하는 본질적인 문제들에 있어서는 지방 교회들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서 있다.”라고 썼다. (지방 교회들 “진정한 믿는 이들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 10)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공개 서한과 이에 대한 우리의 답변에서 큰 현안이 되고 있는 삼일성(Trinity)의 교리를 예로 들어 추가적으로 언급한다. 우리가 밝혀왔듯이 공개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위트리스 리의 책들을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았지만, 행크 해네그래프는 자신이 “기본 연구계획에 착수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출판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에 관련된 프로그램들과 관련인들과의 상호 접촉과 대화를 포함한 것이다”(같은 책, 9쪽)라고 진술한다. 이단 변증 연구 단체인 '행동하는 답변들(Answers in Action)'의 창립자인 그레첸 파산티노(Gretchen Passantino)와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의 편집장인 엘리옷 밀러(Elliot Miller)도 그의 연구에 합류했었다. 해네그래프는 삼일성에 관한 우리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예를 들면, 삼일성(the Trinity)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영원히 구분되시는 세 위격 안에 계시된 한 분 하나님(one God)이 계시다는 실재 안에서 하나로 일치한다. 비록 우리는 특정한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에서는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앞에서 말한 전제는 손상될 수 없다. 오래 지속된 기간 동안 지방 교회들의 구성원들과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오늘날 복음주의 공동체의 대다수가 애석하게도 놓치고 있는 교리적 정확성에 대한 예리한 관심이 그들 안에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은 특이할만 하다. (같은 책, 10쪽)

 

그레첸 파산티노도 그녀 자신이 전문적이고 철저한 연구조사를 시행한  후에 아래와 같이 우리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

 

나는 그 운동의 모든 인쇄된 자료들과 녹음된 자료들을 아무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또 나는 갓 믿은 초신자이든 수십 년 동안 지방 교회들에서 봉사했던 인도하는 형제들이든 상관없이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수개월에 걸쳐 주의 깊고 철저한 연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제 나는 더 낫고 더 정확하고 더 충분한 정보 지식의 근거에 따라 이 운동은 그 가르침과 실행이 정통 기독교의 범주에 잘 들어맞는 크리스천 운동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앞의 책, 19)

 

풀러 신학 대학도 광범위한 연구를 시행했고, 또한 우리와 유익한 대화 가운데 직접 만나는 식으로 교류했으며, 그들은 믿음 안에 있는 같은 믿는이들로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했다. 풀러 신학 대학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풀러(Fuller) 신학 대학과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과 그 출판기관인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LSM)는 최근에 지난 2년 동안 해온 광범위한 대화를 마쳤다. 이 기간에 풀러 신학 대학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저서들을 특별히 강조하는 지방 교회들의 주요 가르침들과 실행들을 철저하게 검토하고 조사해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취한 이유는, 종종 이들 교회들에 관해 던져지는 여러 가지 많은 질문들과 비난들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하는 것이었고, 또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의 빛 안에서 이 두 사람이나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풀러 신학 대학이 내린 결론은, 지방 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책, 29-30쪽)

 

우리는 위트니스 리와 우리에 관한 진실을 찾아 내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 이런한 크리스천들이 보여 준 자비로운 우정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을 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관점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를 받음에 있어서 그들은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바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주와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신앙 고백과 믿음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우리의 동의를 근거로 우리를 받는다. 비록 각자가 교회의 실행에 관한 상대방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주님의 인도라고 본인들이 느끼는 바를 따라 실행하도록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에 있어서 어떤 부조화나 위선이 없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에 관한 빛 안에서 기독교의 오류를 지적한 위트니스 리의 진술을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것을 출판하는 일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이 주셨다고 우리가 믿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선이라는 비난은 "그리스도인 학자들과 사역의 인도자들”이라고 자신들의 자격을 선전하지만 본인들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저서들을 충분히 연구하는데 실패하고, 그 결과 자신들이 의문을 불러 일으킨 위트니스 리와 우리에 관해 다른 이들을 거짓되이 판단하도록 유도한 공개 서한에 서명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어울린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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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K.S. 라투릿(K. S. Latourette), 기독교사 1권: 초기교회부터 주후 1500년까지(A History of Christianity, Vol. I: Beginnings to A.D. 1500)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53, 1975), 영문 436쪽.


[39] 로마 가톨릭 교회를 큰 바빌론으로 본 여러 성경 해석가들 중에는 마틴 루터, 요한 칼빈, 매튜 풀리(Matthew Poole), 존 길(John Gill), 존 웨슬리,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 J. D. 다비, 앤드류 밀러(Andrew Miller), 윌리엄 켈리(William Kelly), 찰스 H. 스펄젼(Charles H. Spurgeon), 찰스 호지(Charles Hodge), 존 피터 랑(John Peter Lange), 로버트 고벳(Robert Govett), C. I. 스코필드, 아르노 C. 가이벨라인(Arno C. Gaebelein), 헨리 A. 아이언사이드(H. A. Ironside), 윌리엄 R. 네웰(William R. Newell), C. A. 코우츠(C. A. Coates), 루이스 탈봇(Louis Talbot), W. A. 크리스웰(W. A. Criswell), 레만 스트라우스(Lehmann Strauss), 존 F. 왈보드(John F. Walvoord),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 등이 대표적이다.


[40]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 계시록 주해(Revelation: An Expository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1971, 1982), 영문 324쪽.


[41] 월터 루이스 윌슨(Walter Lewis Wilson), 윌슨 성경 예표 사전(Wilson’s Dictionary of Bible Types)  (Grand Rapids: Eerdmans, 1957, 1979), 영문 241쪽.


[42] 메릴 F. 엉거(Merrill F. Unger), 엉거의 성경 사전(Unger’s Bible Dictionary) (Chicago: Moody Press, 1957, 1982), 영문 116쪽. 비슷한 견해로는 다음 참조: 로버트 자미슨(Robert Jamieson)과 A. R. 파우셋(A. R. Fausset)과 데이빗 브라운(David Brown)의 성서 주해 3권-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Bible Commentary, Volume 3: Matthew—Revelation)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2002), 영문 709쪽; 레만 스트라우스(Lehmann Strauss), 계시록(The Book of the Revelation) (Neptune, NJ: Loizeaux Brothers, 1964), 영문 291쪽; 루이스 탈봇(Louis Talbot),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 (Grand Rapids, MI: Eerdmans, 1946), 영문 199쪽, 201-202쪽, 207쪽.


[43] 비슷한 단락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신약 성경에 나타난 놀라우신 그리스도, 201-202쪽; 계시록 라이프-스타디, 제 54장,  630쪽; 그 영과 몸, 21쪽.


[44] 위트니스 리가 이 점과 관련해 가르친 바는 많은 방면에서 위대한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Philip Schaff)의 가르침을 상기시킨다. 필립 샤프는 1845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바울은 모든 고린도 사람들에게 같은 것을 말해야 하고, 그들 가운데 분열이 없어야 하며,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으로 완전히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한다. 그들은 분파나 종파를 이루는 방식으로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칭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나뉘어지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또 바울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아니고 아무도 바울의 이름 안으로 침례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 안으로 침례 받았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교회의 본질에 대해 가진 견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몸의 지체들 모두가 같은 피를 나눈 자요 서로를 돕도록 되어 있는 자라는 것이다. 모두가 한 부름의 소망을 갖고, 한 주님과 한 믿음과 한 침례와 한 분 하나님이신 모든 사람의 아버지를 소유한다. 모두가 화평의 매는 띠로 한 몸과 한 성령의 하나를 힘써 지킨다. 내가 말하건대  이런 견해는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종파 및 교파 조직 전체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다. 필립 샤프, 프로테스탄트 주의의 원칙(The Principle of Protestantism), Bard Thompson and George H. Bricker 편집(Eugene, OR: Wipf & Stock, 2004), 영문판,  152쪽.


[45] 믿음의 핵심 요소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 대한 간략한 답변(A Brief Response to “An Open Letter to the Leadership of Living Stream Ministry and the ‘Local Churches’)”, http://www.lctestimony.org/ResponseToOpenLetter.html에서 읽어볼 수 있다.


[46] “나는 너의 행위를 안다. 보아라, 내가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을 너의 앞에 두었다. 왜냐하면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7]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을 이렇게 예언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존 길(John Gill),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앤드류 밀러(Andrew Miller), 로버트 고벳(Robert Govett), C. I. 스코필드(C. I. Scofield), 아르노 C. 가이벨라인(Arno C. Gaebelein), H. A. 아이언사이드(H. A. Ironside), 루이스 수페리 쉐퍼(Lewis Sperry Chafer), 윌리엄 R. 네웰(William R. Newell), 루이스 탈봇(Louis Talbot), 레만 스트라우스(Lehmann Strauss), 존 F. 월보드(John F. Walvoord), J. 드와이트 펜티코스트(J. Dwight Pentecost), J. 버논 맥기(J. Vernon McGee),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 W. A. 크리스웰( W. A. Criswell) 등이 있다.


[48] J. 드와이트 펜티코스트, 장차 일어날 일들: 성경 종말론 연구(Things to Come: A Study in Biblical Eschatology) (Grand Rapids: Academie Books, 1958, 1964), 영문판, 151쪽.


[49] 월터 스콧(Walter Scott),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강해(Exposition of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London: Pickering and Inglis, 1948), 영문판,  55-56쪽. 위의 Pentecost의 책 152쪽에서 인용됨.


[50] 윌리엄 R. 네웰, 계시록(The Book of the Revelation) (Chicago: Moody Press, 1935, 1981), 영문판,  62-63쪽.


[51] 레만 스트라우스, 계시된 예언적 비밀들(Prophetic Mysteries Revealed) (Neptune: Loizeaux Brothers, 1980), 영문 197-198쪽.


[52] A.W. 토저, “교회 안에서 기울어가는 그리스도의 권위(The Waning Authority of Christ in the Churches)” (Harrisburg: Christian Publications, n.d.), 영문 6쪽.


[53] C.I. 스코필드, 스코필드 관주 성경(The Scofield Reference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09), 영문판,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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