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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틀렸었다―제 4부, 공개 서한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 "복음주의 교회와 교파의 적법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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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틀렸었다―제 4부, 공개 서한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

 

"복음주의 교회와 교파의 적법성에 관하여"

 

 

공개 서한에 제기된 세 번째 항목은 복음주의 교회와 교파에 대해 위트니스 리가 한 진술들과 관련된다. 공개 서한에서 앞의 두 단락과는 달리, 이 부분은 서한 작성자들의 짧은 논평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우리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이 일관되지 못하고 정당화 될 수 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복음주의 교회 및 복음주의 사역 협회의 회원 자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래에서 보듯 복음주의 교회 및 복음주의 사역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명예 훼손적 평가를 계속 선전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변절한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들로 구성된 기독교계 안에서는 교회를 건축하지 않으신다. 이 예언은 주님의 회복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참된 교회 건축은 이 회복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위트니스 리, 신약 성경 회복역
마태복음 16장 18절 각주 5
(2007년 한국복음서원 발간) 112쪽.
http://rv.or.kr/include/flex2/viewer2/recovery.php


“변절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 이단이 되었다. 개혁 교회는 어느 정도 주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었지만, 다른 많은 이름, 예를 들면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 같은 이름을 취하여 스스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인했다…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은 변절이고, 주님의 이름 외의 다른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영적인 음행이다.”

위트니스 리, 신약 성경 회복역 요한계시록 3장 8절 각주 3
(2007년 한국복음서원 발간) 1345-1346쪽.
http://rv.or.kr/include/flex2/viewer2/recovery.php


“나는 우리 중 상당수가 아직도 기독교계의 부정적인 영향 아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회복하시고 기독교계에서 완전히 끌어내시기 위해 오늘날 계속 전진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 교회의 역사와 지방 교회들
(1999년 한국복음서원 발간) 155쪽.


“로마 천주교회를 포함해 모든 교파에는 구원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교파의 조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교파 조직은 합당한 교회 생활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시키기 위해 사탄적인 조직을 세우는 사탄에게 이용되었다.”

위트니스 리,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34
(1989년 한국복음서원 발간) 제1권 491쪽.


“우리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기독교계를 주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로마 천주교회에도 관심이 없고, 모든 교파에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선포된 것이다. 기독교는 무너졌다. 기독교계는 무너졌다. 천주교 체계가 무너졌고 모든 교파가 무너졌다. 할렐루야!”

위트리스 리, 지방 교회들을 위한 일곱 영
(1989년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발간) 영문판 97쪽.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심지어 교회를 아는 것도 충분치 않다. 우리는 지방적인 교회들을 아는 데까지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최신의 흐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오늘날이 지방 교회들의 시대임을 깨달을 것이다.”

앞의 책 23쪽.


우리는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에게 위트니스 리의 이러한 말과 같은 종류의 다른 선언들을 거부하고 중단할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거의 사십여 년 동안 이단 연구가로 활동해 온 나는 위트니스 리가 사용한 ‘바벨론’, ‘기독교계’ 등의 언급에 대해, 또 심지어 ‘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 지방 교회들과는 전혀 분리된 단체인 양 말하는 것에 대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게 될 반응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판자들까지도 지방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신학이 정통적이라고 인정하는데, 지방 교회 같은 단체가 위의 용어들을 사용할 때 이단 단체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위트니스 리는 우리가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와 연관된 논쟁적 용어로 알고 있는 용어들을 비이단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지방 교회들이 이 용어들을 사용할 때의 문맥을 더욱 부지런히 살펴보아야 한다. 리빙스트림 인도자 중 한 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교파들이 바벨론이라고 선포하려고 나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위트니스 리가 앞의 용어들을 사용했을 때 내적인 적용에 더 강조점이 있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교파와 분파는 엘리트 의식과 정죄의 눈길과 분열성에서 ‘파생되어’ 비난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파와 분파가 엘리트 의식과 정죄의 눈길과 분열성을 ‘산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이고, 지방 교회 소속원들은 이런 태도를 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의 진술을 문맥에서 이해함

 

위 인용문들을 문맥에 따라 이해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어느 것도 이단으로 여겨질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는 개신교 교파뿐 아니라 로마 천주교회 안에도 ‘구원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로마 천주교에 대한 그의 진술은 오늘날 대다수 복음주의자들의 관점을 대변한다.[1] 위트니스 리는 또한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를 차별화하여 가장 혹독한 비평은 로마 천주교에 대해 제기한다. 그는 또한 다른 개신교 단체의 적법성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개신교 단체의 인도자는 아니다. 사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종교 개혁 초기부터 있어왔던 개신교의 부정적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루터교와 다른 개혁교회 지도자들이 알미니안주의 신봉자들과 재침례파들을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비난한 데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형성된 교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많은 장로교인들과 루터교인들과 침례교인들과 개혁교회 교인들이, 창립자들의 분열적 진술을 철회하라는 요청을 받아왔던가?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있다. 공개 서신에 인용된 위트니스 리의 진술들은 지방 교회 측이 그들 자신 이외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에 대해 취하는 입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가?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의 전반적인 맥락에서 이런 진술들을 이해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위트니스 리가 거절한 것은 교파주의 자체였다’는 점이다. 그가 이렇게 교파주의를 거부한 것은 한 지방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교회의 소속원들이며 그에 걸맞게 조직되고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운동이 그 지방에서 나타났든 나타나지 않았든 이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라고 믿었다.


다음 항목을 기억하기 바란다.(사실 이 점이 이 주제에 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접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간과한 부분이다.) ‘위트니스 리가 반대해 말한 것은 교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믿고 실행하고 행한 것도 아니었다.’ 실지로 위트니스 리는 종종 다른 그리스도인 인도자들이나 단체의 가르침과 복음주의와 선한 행실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했다.[2] 그리고 교파주의를 확장하는 것과 무관한 다른 분야에서는 지방 교회 성도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신앙의 대의를 위한 공동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가 지금껏 해왔듯이 여러 복음주의 협회에 가입하려 한 것은 분명 그들의 기본 신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지방 교회의 놀라운 포용성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파주의에 반대하는 이러한 입장은 분열적이고 엘리트 의식에서 비롯된 배타적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래 의도는 사실 정반대의 것이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일치와 그들을 향한 겸손과 그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일관되게 장려된다. 사실 이것이 ‘지방 교회들’에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태도이다. 예컨대,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썼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여러 다른 배경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장로교의 배경을 갖고 있고, 어떤 이들은 침례교의 배경을, 또 어떤 이들은 또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이 어떠하든 간에 그들이 구원받은 이들이라면 그들은 모두 동일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같은 피로 구속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안에 동일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다 모든 것을 포함한 이 믿음 안에서 하나이다.


교통은 이 하나에 근거한다. 우리가 서로 교통을 갖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신성한 생명을 갖고 있고, 우리 모두에게 한 주님이 계시며, 우리 모두가 동일한 구속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침례를 받았느냐고 물어보지 말라. 그런 모든 교리들에 대해 말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5장에 제시된 죄들을 짓지 않는 성도들이라면 우리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는 형제자매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배경이나 기타 여러 가지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들은 일부 성도가 먼저 휴거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 반면 우리는 그 교리를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휴거에 관해 어떤 교리를 믿든지 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육체를 입은 사람이 되시고 우리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을 믿는 한, 우리는 모두 구속받고, 의롭게 되었으며, 거듭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안에 신성한 생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한 몸에 속한다. 우리가 서로 교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사실에 근거한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특정한 견해를 표명할 수 있지만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논쟁에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교통의 근거를 오직 주님 자신에게만 두어야 한다.[3]


지방 교회들은 풀러 신학교에 보낸 그들의 진술문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힌다.


“우리는 실제적인 하나에 관하여 우리가 이해하는 성경의 가르침이 다른 모든 기독교 단체의 입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방 교회가 교회의 합당한 표현이라는 이러한 관점은, 결코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믿는 이들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의 내재적인 방면을 문제삼거나 축소시키지는 않는다. 물론 ‘한 도시 한 교회’의 원칙에 따른 모임이 교회의 합당한 표현이지만, 이러한 원칙은 참된 믿는 이라면 누구나 갖는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교회에 포함되는 자격을 무효화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의 구원 여부를 좌우하거나,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지를 결정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지방 교회’만이 한 우주적인 교회의 참되고 합당한 유일한 표현이라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은 펄쩍 뛰며 성급한 결론을 내려, 우리가 지방 교회들만이 참된 교회라고 가르친다거나, 더 확대하여 우리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기독교 안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도 못 받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진다고 가르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우리가 믿는 바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다른 믿는 이들과 교제를 나누는 방식에 상관없이, 참된 믿는 이로 간주하며, 우리의 참된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 만일 우리가 각 교단에 있는 믿는 이들이 참되게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한다면, 그 자체가 교회의 실행적인 하나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배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비록 오늘날 기독교계가 잘못된 방식으로 분열되었지만,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자체는 여전히 하나님께 구속받은 보배로운 백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더 나아가 모든 지방 교회들 안에서 우리가 실행하는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우리의 교통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과연 우리의 실행이 그러한지를 직접 시험해 보도록 정중히, 또 담대하게 여러분 모두를 초청한다. 어떤 지방에서든 그곳에 있는 지방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여 그들이 여러분과의 교통을 받아들이는지, 여러분이 주님의 상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는지, 여러분이 다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환영을 받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우리는 반드시 특정 교리 문답을 배워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반드시 특정 신조를 선포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반드시 특정 실행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고, 특정한 범주의 사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죄들에서 구원하시고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소재한 교회의 소속원이 되기에 충분하며, 해당 지방 교회의 교통에 온전히 참여할 자격을 얻기에 충분하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이상과 실행은 전혀 배타적이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실제적으로 받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든 믿는 이들을 포함한다.[4]


공개 서한에 대한 답변에서, 지방 교회 측은 일부 성도들이 때로는 이런 원칙에 부합하지 않게 행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행위들이 위트니스 리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실로 지방 교회 인도자들은 우리와 대화하는 가운데 위트니스 리가 ‘지방 교회들’의 성도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분열적인 방식으로 행하는 것에 대해 종종 꾸짖고 교정하였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었다. “한번은 육 개월 동안이나 계속 그렇게 했다.”고 한다!


우리의 문과 마음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열려 있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교파 모임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안다. 그런 선택은 개인적인 양심의 소관이다.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쓴 것처럼 이 문제에서 우리는 “각각 자기의 마음에 확정해야 한다”(5절)고 느낀다. 정상적인 교회 실행을 하기 위해 우리는 간절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어떤 미성숙한 이들, 심지어 우리 가운데 있는 어떤 이들도 열심이 지나치다보니 다른 이들을 자신과 동일한 체험 안으로 이끌어들이려 한 경향이 있음을 인정한다. 아마도 위트니스 리는 이런 경향을 사전에 막기 위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합당한 태도를 갖는 것에 대한 일련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음 사항들을 강조해 말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을 우리에게로 끌어오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섬기는 주님 앞에서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 유익이 된다면 당신은 어디에 가서 집회를 해도 됩니다.”라고 계속 말하였다. 나는 특별히 형제들에게 부탁하건대, “여기 이 집회에 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교회의 세 방면 2권 교회의 발자취 126-127쪽)


우리는 다른 단체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와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한다면 거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가서 그들을 끌어올 필요는 없다. 나는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이러한 일을 하도록 위임하셨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우리가 각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며 그분의 많은 자녀들에게 생명을 분배하도록 위임하셨다고 믿는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을 갖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어디에서 집회하고 어떻게 주님을 섬기는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과 주님의 문제이다. 우리는 거기에 개입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접촉할 때 그들은 우리 안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어떤 것을 만져야 한다. 그가 어떤 길을 가야 되고 어떤 곳으로 가서 집회를 해야 한다는 것들에 관해서는 관여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의 모임이 기독교 안의 모임들보다 더 뛰어나다거나 우리의 모임이 수가 가장 많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위 책 344-345쪽)[5]


이중적인 기준이 재현됨


지방 교회 측의 견해에 교파 교회의 소속원인 우리 모두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실로 지방적인 터 위에 모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그러하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많은 복음주의 전통은 그들 전통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 신앙들을 견지하고 있다. 예컨대, 전형적인 오순절파 사람들은 방언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 침례를 받지 않았다고 믿는다. 반면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견해를 갖는 이들은 오순절파 및 은사주의에 속한 사람들이 참으로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하고, 그들이 자기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되거나 심지어 귀신들에게서 비롯된 현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어떤 칼빈주의자들은 알미니안 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을 참된 복음이 아니라고 여기고, 반대로 알미니안 주의를 신봉하는 어떤 사람들은 칼빈주의자들이 믿은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언약주의 신학자들이 구약의 많은 부분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핵심 방면을 부인한다고,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육신적인 백성인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언약주의를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대주의자들이 구약의 상당 부분을 잘못 이해하여 신약의 의미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구약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심할 바 없이, 공개 서한을 작성한 사람들과 서명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런 대립되는 견해의 이편이나 저편에 속해 있고 다른 서명자들이 믿는 바에 대해 약간의 이해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그들은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취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신앙이나 실행을 거절하는 것에 마음 상하지 않으며, 여전히 함께 모여 공동으로 견지하는 핵심적 교리들을 강조한다. 또 어디에나, 즉 복음주의 신학 협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나 신흥 종교에 대한 복음주의 사역(Evangelical Ministries to New Religions)이나 어떤 다른 초교파적 연합체에 가입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공동의 대의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는 ECPA나 CBA 등의 협회의 회원들을 그리스도인들로 여기며,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적법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참고로, 그리스도인 연합체들에 가입한 것은 출판 기관인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이지 ‘지방 교회들’이 아니다. 곧 공개 서한이 주요 비판 항목의 하나로 제시한 것과는 달리, ‘지방 교회들’은 어떤 ‘복음주의 교회 협회’의 소속원도 아니다. 지방 교회들이 그런 협회에 가입하는 것은 그들에게나 협회 회원들에게나 논란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그들은 인정한다.


내가 볼 때, 공개 서한의 서명자들은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가 삼위일체나 믿는 이들의 신화(神化) 등의 문제에 대해 적법하게 그리스도인의 정통적인 신앙을 고백한다는 점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 같다.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는 서명자들의 정통 신학 고백의 적법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가 전적으로 거부해 온 것은 교파의 조직적 기반과 구조이다. 그것은 지방 교회의 믿는이들이, 그들의 운동이 교회를 조직하기 위한 성경적 근거인 ‘지방적 터’를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위트니스 리가 교파주의를 거절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들은 심한 표현들이었는가? 그렇다. 나는 심할 뿐 아니라 유감스러운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그는 ‘바벨론’, ‘영적 음행’, ‘사탄적 체계’ 등의 강경한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그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에 대한 모든 것을 부인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쉽게 만들었다. 그래서 신약 교회에 대한 그의 가르침에 끌릴 수 있었던 사람들도 그의 가르침을 거부하게 만든 면도 있다. 그렇지만 지방 교회들은 공개 서한이 요구한, 위트니스 리의 진술들을 거절하라는 요청에 응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지방적인 터에 대한 그들의 근본적인 신앙을 바꾸라는 것인데, 사실 그들은 그런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그들에게 이미 고인이 된 그들의 지도자의 진술들을 거절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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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CRI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 점을 알고 있다. 어떤 뉘앙스가 담긴 글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글을 실을 때마다, 그것이 그 어떤 측면에서도 천주교를 비난하려고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의도로 출간하지 않았느냐는 항의를 천주교 단체들로부터 받는다!


[2] 이에 대한 사례는 많다. 마르틴 루터, 요한 웨스리와 챨스 웨슬리, 죠오지 휘트필드, 조나단 에드워드, 플리머스 형제회, 찰스 스펄전, G. 캠벨 모건, A. J. 고오든, 앤드류 머레이, D. L. 무디에 대한 좋은 평가, 특별히 허드슨 테일러와 중국내지 선교회, 빌리 그레함이 포함된다.(위트니스 리의 장로 훈련 제4권 주님의 회복의 실행에 관한 몇 가지 중점 [2007년 개정판 한국복음서원 발간] 33쪽, 위트니스 리의 장로 훈련 제5권 주님의 최근의 움직임에 관한 교통 [2007년 개정판 한국복음서원 발간] 27쪽, 위트니스 리의 장로 훈련 제7권 주님의 움직임을 위한 한마음 한뜻 [2007년 개정판 한국복음서원 발간] 41-42쪽을 보라.)


[3] 위트니스 리, 교회의 실지적 표현(1989년 한국복음서원 발간) 104-105쪽.


[4] 풀러 신학교를 위하여 준비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가르침에 관한 진술서(2007년 1월 20일) (이 문서는 http://www.lctestimony.org/StatementOfTeachings.pdf. 에 올려져 있음)


[5]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와 ‘지방 교회들’의 인도직분에 보낸 공개 서한’에 대한 상세한 답변” 영문판 27쪽.
http://lctestimony.org/LongerRespons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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