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변증자료를 나누기 위한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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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궁금하다" 책자에 대한 반박문

첨부 1

 

이 서신은, 미국에서 이미 지방교회측에 의해 반박되어 거짓된 내용으로 드러난 위트니스 리 관련 비판 자료들을 번역하여 자신의 연구논문인 것처럼 국내 여러 지면에 중복 소개한 정동섭 교수와 해당 출판사인 하나출판사에게 보낸 지방교회측의 반박문입니다. 정동섭 교수는 동일 내용을 1992년 8-10월호 현대종교에 지방교회 특집으로, 1993년 4월 침신대 출판부에 의해 '이단과 정통 무엇이 다른가'로, 1993년 10월 '도서출판 하나'에 의해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단행본으로, 그리고 월간 목회와 신학 94년 7-9월호에 명 논문으로 각각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정동섭 교수 글 반박자료(일부요약)

 

다음 글은 현대종교 홈페이지 자료실의 '지방교회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라는 글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문이기도 하다. 원래 현대종교 1992년 10월 호에 소개된 이러한 내용은 미국에서 지방교회의 인수증가에 위협을 느낀 한 단체가 거짓되고 왜곡된 내용을 배포한 것을 정동섭 교수가 국내에 번역 표절하여 소개한 것이다. 그는 이 자료를 자기의 논문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지방교회는 회개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지방교회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는 등의 몇 가지 거짓 사실을 추가했다. 지방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이 혼합해 새로운 본질을 가졌다고 가르친다', '사위일체라는 해괴한 교리를 믿는다'는 등 전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터무니없는 거짓말들에 대해 우리는 이미 철저하게 반박했고 그 거짓됨을 폭로시켰다.

 

즉 1977년 10월부터 미국 남가주 유력 일간지인 'Orange county Register'에 약 6개월간 전면광고를 통해 위 거짓비난의 모든 항목들에 대해 철저하게 반박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자료들을 보관중이며 필요하다면 이 방대한 문서들을 번역 소개할 것이다. 다음 글은 신문광고 이외에 단행본으로도 만들어졌던 별도의 반박자료들 중 한 권(총 210쪽)을 요약한 것이다.

 

I. 한 도시 한 교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 '본질적으로(in essence)' 다 그 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임(고전1:2, 롬1:7).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은 인정하지만(고전12:27), 분열(고전1:10-13, 롬16:17-18)이나 편당적 실행(고전11:17-20)은 성경이 정죄함으로 우리도 찬성하지 않는 것임. 예루살렘이나 로마에서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한 도시에서 많은 유기적인 모임들(harmonious gatherings)을 갖는 것은 인정하나(행2:46-47, 롬16:5, 10-11, 14-15) 다른 이름들을 가짐으로(고전1:2, 10-13) 분열되거나(롬16:17-18) 교파를 이루는 것을 성경이 금하고 있는 것임.

 

II. 천주교, 개신교에 대한 언급

 

로마 천주교는 음녀의 어머니, 개신교는 그녀의 딸들이라는 지적은 그들의 비 성경적인 '조직'을 말한 것이지 '소속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 이것은 1)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계시록 1:20 각주 3, 옥스포드대학 출판사 1945 pp.1331-1332(이사벨=로마 천주교, 사데=개신교)의 관점을 따른 것임 2) 'L.E. Froom,은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 Vol 2 에서 마틴 루터, 요한 웨슬리 존 넬슨 다비, 알포드 외 다수가 '교황을 바벨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음.

 

유대교는 사단적(계2:9), 천주교는 마귀적(계2:20), 개신교는 그리스도가 밖에 계시다(계3:20)는 지적도 1) '스코필드 주석 성경' 계 1-3장의 각주 2) Dr. C.A. Auberlen of Basil의 'The Prophecies of Daniel and the Revelation of St. John', Adolph Saphir 번역 pp.291-293(바벨론=로마 천주교) 3) Dr. Geoffrey Bromiley의 'The Unity and Disunity of The Church' Grand Rapids Mich: Wm. B. Eerdmans, 1958, p.29 (중세교회(the medieval church)를 '사단의 회'로 봄)의 관점을 따른 것임.

 

III. 로마서 16장 5절

 

1. '로마시 안에 여러 개의 교회가 있었다'는 마틴(정동섭)의 주장은 옳지 않음.

 

a)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한 것이 아니고, '로마에 있는 모든 자'(롬1:7)에게 편지 했음(고전1:2, 고후1:1, 갈1:2, 살전1:1, 살후1:1). 그리고 그 목적은 성도들을 견고케(established) 하고(롬1:11, 16:25), 서로 받아 하나 안에 있게 하고(롬14:1-10, 15-20, 2페이지 15:1-7), 분열을 책망하기 위함이었음(롬16:17).

 

b) 또한 마틴(정동섭)이 인용한 A.T. Roberson,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Vol. 4, New york: Harper & BrothersPublishers, 1931, p.426 의 "The Roman Christians had probably several such homes where they would meet."에서 '여러 개의 가정들''여러 개의 교회들'을 가졌다는 증거로 본 것은 옳지 않음. 오히려,

 

c) Frederick L. Godet는 그의 로마서 16:3-16에 대한 주석에서 15차례의 'Greet'는 'the whole church'를 위한 것임을 지적함(F. Godet,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Grand Rapids, Mich.: Zondervan, 1970, pp.488-489).

 

d) 필립 샤프의 '기독 교회사' 제1 권에서, '크리스챤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예배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로마서 16장이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새로울 것이 없고, 다만 'may... or rather two sections(공동사회의 두 부분을 형성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의 proposals 일 뿐임. 오히려 Edward D. Yeomans이 번역한 그의 'History of the Apostolic Church'(New York: Charles Scribner, 1856, pp.526-528)에 따르면, 필립 샤프는 로마에 있는 교회는 '장로단의 인도아래 유기적인 구역 모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음(...Such an arrangement was perfectly consistent with the organic union of these congregations as one whole, under the superintendence of a comman presbetery... p.526).

 

2. 입장(ground)과 기초(foundation)의 차이점

 

a) 교회의 기초는 모퉁이 돌이신 주님 자신이나(고전3:11, 마16:16,18), 교회의 터(입장)는 시온임(벧전2:6-7). 신약은 성도들이 분열 없이(롬16:17) 지방입장 위에(롬1:7)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함께 모여야 함을 계시함.

 

b) WL는 교회가 분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고전1:10, 롬16:17), 한 교회가 여러 집회 장소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함(행2:46).

 

c) 마태복음 7:24-27절에서 'Rock(반석)'은 주님 자신이 아니고 그분의 말씀임. John. A.Broadus, An America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Matthew, 1886, p.170과 G. Campbell Morgan,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New York: 1929, p.80를 보시오.

 

d) 마 18장 20절은 교회의 정의가 아님. 마18:15-17에 의하면, '2-3명'은 '교회의 단위'가 아니고 교회의 한 부분임(a part of the church)을 알 수 있음. 동일한 해석을 (a) 3세기에 Cyprian이 쓴 'The Unity of The Catholic Church'(De Lapsis and Ecclesiae Catholica Unitate를 Maurice Benenot이 번역) Oxford, The Clarendon Press, 1971, pp.75-79 와 (b) Archibald Henderson, The Expository Times., vol. 28, no. 3, December 1916, Edinburgh : T.&T. Clark, p.140을 보시오.

 

3. 워치만 니의 교회에 대한 입장

 

Nee의 'What shall This Man Do, Fort Washington Penn: CLC, 1961, pp.138-140(한글제목: 주여 이 사람은)'에서 Nee는 본문에 나타난 '지방입장 진리'의 취지에 있어서 Lee와 전적으로 동일함. 그는 다만 지방주의적인(배타적인) 태도를 경계한 것임. 이점은 Lee도 동일함. 교파와 지방 입장에 대한 그의 가르침과 느낌은 Nee의 일생동안 전혀 변함이 없었음. 그 증거로 Nee의 투옥 직전(1950-51) 메세지인 'Further Talks on the Church Life', Los Angeles, Calif.: The Stream Publishers, 1969, pp.20-22, 133-135(한글제목: 교회의 길)를 보시오.

 

IV. 권위주의적인 다스림(Authoritarian Rule)

 

마틴(정동섭)이 인용한 WL 책자 내용이 'WL가 교회의 우두머리(Supreme Commander)'라는 그의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음. 왜냐하면,

 

1. '자신(개성)을 부인하고 조직을 높인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은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89 pp.1156-57) 해당 부분은 '전제물'(창35:7, 14-14, 딤후4:6 바울의 예)에 대한 설명 부분인데 이것을 저자의 의도 및 문맥과 상관없이 엉뚱하게 왜곡 인용한 것임.

 

2. '교회 일에 바빠서 가정을 위한 시간이 없다.'는 비판(WL, Young People's Training, #4 p.51)은 1976년 특별한 환경 가운데 헌신된 '청년 훈련생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엉뚱하게 일반 교회 성도들에게 적용시킨 억지 비판임. 이 내용은, 일주일 중 낮 시간은 공부, 직장 생활, 가정생활 등에 할애하고 3일 밤은 교회예배에, 3일 밤은 복음전도에, 1일 밤은 개인 일에 할애할 수 있다는 WL의 제안임. 청년들에게 복음전파를 격려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헌신된 청년들에 대한 '네비게이토' 나 C.C.C 등의 선교단체의 가르침(권면)과 전혀 다를 것이 없음.

 

3. '실수를 보았을 때... 이를 거론... 낭비할 시간 없다.'(WL 창세기 LS #88 pp.1144-45)는 비판은 남의 실수를 거론하지 말고 그의 좋은 점만 취하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성경적인 권면(마18:21-22, 엡4:29-32, 골3:12-14)임에도 왜곡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함.

 

4. 'Lee는 그의 가르침이... 추종되길 기대한다.'(WL, The Vision of The Church p.10)는 비판에 대해 : Lee는 본문에서의 자신의 가르침이 1) 하나님의 갈망인 교회 2) 교회의 실지성 3) 지방성 4) 지방입장의 단위에 대한 '실행과 체험'에 따른 것이지 '단순한 교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임에도 저자의 의도를 엉뚱하게 왜곡시킴.

 

5. '나의 가르침이 아니다. 주님의 계시이다.'(Christ versus Religion p.13) : 이것은 마9:14-15, 눅5:33-35에 대한 설명임. 이것은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왜곡 비판한 것처럼 'LC의 전체 개념이나 지휘 체계에 대한 것'이 결코 아니다. 본문은 '신랑이신 주님 자신을 기도 안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성경해석을 말하고 있음.

 

V. 지방교회 구성원들(Local Church Members)

 

1. Fuller 신학 대학의 Dr. Maloney 의 '지방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연구'를 참고(God-Men 재판 시 증언집 pp.3-16, 29-33, LC 안에 'unhealthy'한 상태 없음을 증언하고 있음).

 

2. 'LC 떠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벌주실 것이다.(소위 Divine Threat)'라고 위협한다는 거짓비난에 대해 : Dr. H. Newton Maloney의 연구 조사 후 증언한, 법정 증언집 pp.61-67('There was none'-그런 사례가 전혀 없다)을 참고.

 

3. '회복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사단의 도구라고 가르침 받는다.'는 거짓비난에 대해 : Dr. J. Gordon Melton의 'An Open Letter Concerning the Local Church, Witness Lee and The God-Men Controversy' 미국 종교문제 연구소, 1985, pp.11-13 '교파 구조와 연합하지는 않으나 거듭난 그들을 형제 자매로 인정하고 개인적인 교통을 막는 어떤 장애도 없다'는 증언을 참고.

 

4. '멋 모르고 빠져 들어간...' 등의 거짓 비난에 대해 : 전적으로 거짓된 비판임을 폭로시킨 위 멜튼 박사의 증언 pp. 50-51를 참고.

 

5. 진 포드의 간증 중 '그리스도'에 대한 것은 없고 '교회'만 말한다 는 거짓 비난에 대해 : 그가 'WL & LC' 라는 책에 대한 반박문의 서문만을 참고한 결과이며, 오히려 뒷부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누림에 대한 간증으로 충만하여 오히려 비판과 정반대임.

 

VI. 지방교회와 마음(The Local Church and The Mind)

 

1. 성경을 대할 때 '마음을 닫으라고 한다. 성경을 소홀히 한다.'는 등의 거짓비난에 대해 :

 

a) 'The Beliefs and Practices of the LC' p.8 에 의하면, WL는 오히려 성경 읽기를 권면하며 심지어 1년에 성경을 1독할 것을 제안하고 있음.

 

b) '생명의 체험' p.170(영어판) 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넓어지기 위하여 '우주(Universe)'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권면함.

 

c) We need to study the Bible (생명의 체험 p.174)

 

d) 같은 책 250쪽에서는,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이시므로, 그분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혜와 지능이 요구된다.'고 했음.

 

e) Life Message #43에서는 '우리는 이해함으로 뿐 아니라 기도함으로 읽어야 한다.'(p.375) # 48에서는 '읽기 위해 눈을 사용하고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사용해야 한다.(p.413)고 가르침.

 

f)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85 4페이지에서, 젊은 학생들은 배우는 것을 중단하지 말라. 공부해야 한다. 대학은 물론 박사학위를 받도록 권면 하고 있음(pp.1103-05).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 22, pp.277-280, #24 p.298, #63 p.740 도 같은 내용임.

 

g) '이 사역 안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은 철저하고 주의 깊게 고려된 것들이다... Nee 형제님의 인도 아래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역사, 전기문, 유명한 기독교 교사의 저서들을 연구 조사했다'(WL, 'What a Heresy' p.31).

 

2. 본문에서 왜곡하기 위해 '떼어낸 인용''잘못된 적용'에 대해 :

 

'예수께서 함께 계시는 한, 규율이나 교리나 형식이 필요 없습니다.' : 이것은 '그리스도냐 종교냐' pp.14-15 에서 '신랑'이신 주님과 함께 누리는 잔치로서의 집회를 설명한 것임(마22:1-10, 25:1-13, 계19:9). 그러나 이러한 본문을 엉뚱하게도 '생각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글로 왜곡시킴.

 

3. 본문을 왜곡하여 한 면만을 제시함에 대해 :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는) '말씀을 읽고 깨닫고 연구하고 배우는 것에 대해서 잊어버리십시오.'(A Time with the Lord, pp.10-11, Pray Reading the Word, pp.7-9) - 이것은 기도를 '작문'하거나 억지로 '창조'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임. Lee는 다른 책에서 생각을 사용하고 연구할 필요를 충분히 말했으며, 이 부분은 기도로 말씀 읽기에 대한 설명일 뿐임. '말씀으로 기도하는 실행'에 대해서는 달라스 신학교 창설자인 그리피스 토마스도 'Life Abiding and Abounding' p.15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의 연료(the fuel)이다...'라고 역설한 바 있음. 여기서 Lee의 '... 잊어버리라.'는 표현은 말씀 안으로 몰두하도록 '과장법'(hyperbole)을 구사한 것임. WL가 말씀을 연구하는 것을 부인한다는 비판은 21년 동안 신구약 성경 전권을 연구한 것만 보아도 명백한 거짓임이 드러남.

 

4. 성경에 대한 WL의 참된 의도를 왜곡한 것에 대해 :

 

a) 마 6:7 '중언부언하지 말라' : 이 말은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지, 성경 말씀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아님(마태복음 회복역 6:7 주석, 마26:44 (주님), 고후12:8 (바울), 계19:1-6을 참고).

 

b) 딤후 2:15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 '선명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조각'인 말씀의 합당한 이해 안에 들어가는 것이 필요함.

 

c)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니라.' : 베뢰아 사람은 'nobel mind'(Vine의 사전)와 '편견이 없는 사람들'(F.F. Bruce)이었다 - 성경 읽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무지로 인한 비판임.

 

5. 이성과 경험과의 관계에 대해 :

 

'지성은 혼적인 활동이므로 영적인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가르친다'는 비판에 대해 : '하나님의 경륜, pp.81-82,' 에서 '생각으로 이해함의 필요성'을 강조함('생명의 체험' pp.83-184 에서도 동일한 가르침), 'The Parts of Man' pp.17-18 에서는 '생각이 새로와짐으로 변화 받음'을 가르침(하나님의 경륜 pp.83-84 도 동일), 생명의 인식 p.167, 생명의 체험 pp.143-144 는 변화된 생각(혼)의 영적인 문제를 이해함을 가르침.

 

VII. 교리(Doctrine)

 

1. 삼위일체(The Trinity)

 

역사적으로 마틴이 말한 독재론적 양식론(monarchianistic modalism)이라는 이단은 없었음. 역사적으로 알려진 이단은 양식론적인 독재론(modalistic monarchianism)이임. 벌콥의 기독교리 역사 p.78(1975)를 참고.

 

1) 삼위 일체에 대한 정통 신앙의 주요 영역

 

a)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심(신6:4, 사44:6, 요17:3, 딤전1:17, 2:5).

** 세가지 이단 : (a) 삼신론 (분리된 세 하나님) (b) 아리우스주의 (예수는 아버지보다 열등하다) (c) Macedonianism (성령은 하나님의 본체 아니다)**

 

b) 구별되는 '셋'(창1:1, 1:26, 사6:8, 마28:19, 고후13:13; 요17:5-6, 24-25(아버지), 요5:25-27(아들), 요16:7, 13-15(성령) - not 'seperately' but 'distinctly')

 

c) 셋 모두 영원히 하나님이심(벧전1:2상, 히1:8, 행5:3-4, 사9:6, 요17:5, 히9:14) : 3세기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은 '셋의 영원한 동시 존재'를 믿지 않음.

 

d) 삼위일체 안에서의 관계 : 상호 침투 혹은 상호내주(a mutual interpenetration or indwelling). 요14:7-11, 사9:6, 고후3:17 Jamieson, Fausset, and Brown's commentary(요14:10) Augustine 의 On the Trinity 6.10.12.을 참고.

 

e) 그분의 경륜 안에서의 삼위일체(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과정을 거친 것을 말함) : 사람의 창조(창1:26-27), 성육신과 구속(요1:1-2,14, 7:37-39, 14-17장, 19:30, 20:22), 침례(마28:19), 내주하심(롬8:9-11, 갈4:6), 교통과 누림(고후13:13), 성화(벧전1:2), 새 예루살렘(계21:22-23, 22:1-5) - 삼위의 동시존재를 인정함으로 양태론(삼위양식론)과 다름.

 

f) 사람의 체험 안에서의 삼위일체(세 위격이 하나로서 역사하심) : 요14:17-18(그 영=그리스도), 마10:20, 막13:11, 눅21:15(아버지, 성령, 그리스도), 고후 3:17-18(그 영=주님), 갈4:6(세 위격)

 

2) 누가 비논리적 삼위 양식론자인가? : 역사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아버지 아들 성령의 동시존재를 믿는 사람을 논리(또는 비논리)적 삼위 양식론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함. 역사적으로 양태론자의 범주는 성부고난설(Praxeas)부터 사벨리우스까지 다양했으나, 세 위격의 동시존재를 가르치는 형태는 없었음.

 

3) 삼위일체의 두면 - 본질적, 경륜적인 면 : 마틴이 Lee의 책을 인용한 내용은 모두 '경륜적 삼위일체'에 해당하는 부분임. 역사적으로 본질적 삼위일체 면을 견지하면서 경륜적인 삼위일체를 말한 것은 정통이요 성경적임. 삼위일체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이 성경의 주요한 강조점 임을 지적하고 있음. E.A. Litton 'Introdoction to Dogmatic Theology' pp.91-92, Franz Delitzsch, Old Testament History of Redemption, p.178, Dr. H. Martensen, Christian Domatics, 106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tian Church, vol.3, pp.680-681를 참고.

 

4) WL는 다음의 글에서 자신을 '양태론자'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음 : 삼신론과 양태론은 두 극단의 이단이며, 우리는 그 어느 쪽 극단도 아닌 가운데 즉 '순수한 성경적 계시' 위에 서 있다(WL, Young People's Training, #6, pp.73-76).

 

5) '마틴이 WL를 비난키 위해 잘못 인용한 내용들'에 대한 반박 :

 

a) '삼중성... 삼중 위격'(삼일 하나님에 관하여, 11쪽) : 삼중 위격(Threefold Person)은 '삼일 하나님'과 동의어임. 마 28:19에서 세 위격을 구별하여 말하나 단수의 '이름'을 말함. Lee의 본문은 결코 양태론적인 방법으로 말하고 있지 않음(10-11쪽을 함께 참조).

 

b) '...아들은 아버지시며 아들은 또한 성령이시다.'(위 같은 책) : 위 책의 앞 뒤 문맥을 함께 놓고 볼 때(pp.25-29), Lee는 '신격'의 행동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원칙을 말한 것이지 아들이 '본질적'으로 아버지라는 뜻이 아님. 역사적으로 이러한 이론은 'the doctrine of appropriations'이라고 불리었으며 '상호내재 교리'와 함께 신격 안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용어임. 이것은 물론 분명한 성경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요10:30, 38, 14:9-11, 17:21, 23, 고전12:4-6).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translated and edited by william Handriksen, Grand Rapids, Mich.: Baker House, 1977, p.317과 William G.T. Shedd, Dogmatic Theology, vol.1, Classic Reprint Edition, Minneapolis, Minn. : Klock & Klock Christian Publishers, 1979 pp.304-305를 참조.

 

요14:7-11, 고후3:17, 사9:6를 다룬 '삼일 하나님에 관하여'(pp.17-23)를 옳게 이해하기 위하여 신격 안에 존재하는 상호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은 추가 설명이 필요함. 세가지 형태로 '하나'를 설명하되 그것이 셋 간의 구별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님. 또한 여기서 구별(distinction)이란, 하나 안에서(within), 하나에 속한(of) 구별이지 하나를 파괴하는 그것이 아님( R.C. Moberly Atonement and Personality, p.155).

 

(a) The Interpenetration Scriptures : 세 위격 서로 간의 상호침투 혹은 상호내재 상태로서 '하나의 내적 관계'를 계시함. 요14:10의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는 이것을 가리킨다.

 

(b) The Identification Scriptures : 삼일 하나님의 외적 표현에 있어서의 하나를 보여줌. 사9:6, 요14:9-10, 10:28-30, 38 고후3:17절 (i) 아버지와 함께 한 아들 : '나를 본 자는(seen) 아버지를 보았거늘(seen)..' F.L. Godet의 요한복음 주석 p.274를 보시오(a union by which they live the one in the other...). (ii) 그 영과 함께 한 주님 : 고후3:17, 요14:16-18, 16:13-15 바울은 한 하나님으로서 서로 안에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상호침투(inseparaly interpenetrate)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그 영과 동일시했음. 어거스틴도 같은 주장함(Augustine, Migne's Patrologia Latina, vol 1. 42, p.941). 요16:13-15에서 성령의 말씀은 'not... from himself...' 'he shall take of(out of) mine...' 'what things he shall hear...' 등을 볼 때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들은 것이며 분리되어 있지 않고 '신격의 존재 안에서'(말틴 루터, Luther's Works, vol 24 p.364), '분리된 주체가 아니고 내적인 받음(internal receiving)'을 통해 '듣는' 것임(H. A. W. Meyer, 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Gospel of John, vol.3. p.450).

 

(c) The Interchangeable Scriptures : 사람의 체험과 관련된 삼일 하나님의 기능 또는 역사의 하나를 계시함. 마10:20(아버지의 영), 막13:11(성령), 눅21:15(나(그리스도))가 동일한 내용에서 상호 교환 가능하게 사용됨. 또한 요14:17-18에서 '그 영' 과 '내가(그리스도)'가 같은 원리로 사용됨.

 

위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아들이 아버지, 아들은 그 영'이라는 성경에 입각한 주장은 '세 위격 사이에 존재하는 구별'과 함께 말하여짐으로 '철회될 수 없는' 지극히 성경적인 설명임.

 

2. 그리스도(Christ)

 

'말씀이 성육신 하셨을 때, 하나님과 사람의 혼합체인 새로운 본질을 지니게 되었다고 가르친다'('하나님의 경륜', 10-12쪽, '부활의 하나님', 4-5쪽)는 비난에 대하여 : Lee는 'combine'(신성, 인성이 아들 안에서 combine 되었다. '하나님의 경륜' 11쪽) 또는 'blended'(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로 blended 되었다. '부활의 하나님' 4쪽) 또는 'mingle'이라는 말을 사용하나, 'a new nature' 또는 'a strange mixture of the two'를 산출하는 의미가 아님. 우리는 성경에 따라 그리스도가 성경의 중심(눅24:27, 44-45)이고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이시며 (엡3:8),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분(골2:9)이실 뿐 아니라 인자(마 16:13)이심.

 

1)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심 : 시102:24-27에서 'O my God...'이라고 한 동일한 내용을 히1:8-12에서, 또한 이사야7:14를 마1:20-23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음. 사9:6(Mighty God), 요1:1-2(The Word was God)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과 동등됨이며 신격(Deity) 자체임을 의미함(요5:17-19, 25, 빌2:6, 눅1:32,35, 마3:17, 17:5, 요1:49, 마27:54, 마14:33, 요20:28, 롬9:5, 빌2:5-6, 골2:2, 2:9, 딤전3:16, 요일5:20, 계22:1).

 

2)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심 : 창3:15, 갈4:4, 히2:14(여자의 후손), 신18:15, 행3:22-23(선지자), 사11:1(이새의 줄기), 이사야 53장, 단7;13-14, 슥13:7, 마26:31(사람), 마8:20, 9:6, 10:23 12:8, 막8:31, 38, 9:9, 14:62, 눅17:22, 24, 19:10, 22:22, 요1:51, 3:13, 6:62, 12:23, 13:31(인자), 마1:1, 1:16(아브라함, 다윗의 씨), 눅1:30-31(잉태), 눅2:21-24(아이), 눅2:40-52(성장), 마13:55(목수의 아들), 막6:3(목수), 눅24:36-43(살과 뼈 있는 분), 행7:55-56(하늘에 계신 인자), 고전15:45-47(둘째 사람), 롬5:15, 딤전2:5(중보이신 사람)

 

** 도세티즘(실제의 살과 피를 가진 것이 아님 'to seem to be') 아포로네리아니즘(예수의 영은 'the human spirit' 아니고 'the Divine Nature or Logos'로 대치됨) 이단**

 

3)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가진 한 위격임(One Person with Two Nature) : God-men 이라는 말은 초대교회 교부 Origen(185-254)이 만든 용어임(De Principiis, bk. 2, chap. 6, sec. 3). 두 본성이 '어떻게' 한 위격 안에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전통적인 신학 용어는 5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il of Alexandria)이 만든 'Hypostatic Union'임. 그러나 레위기 2:1-16에서 성경은 '소제'를 설명하면서 'ming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함(fine flour mingle with oil). 예표에 있어서, '고운 밀가루로 만든 누룩 없는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곱고 죄 없는 인성'을 뜻하며(고전5:7-8, 히4:15), '기름'은 '그 영'을 상징함(롬1:3-4). 이 mingle은 각 본성의 구별되는 성분을 파괴하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이 신성 안으로 흡수되지도 않으며, 두 본성의 단순한 association도 아님. 레위기 2:4의 그림은 그분의 한 인격 안에서 분리될 수 없도록 있으면서도 구별되는 구성 성분을 보존하는 관계를 잘 보여줌.

 

** 네스토리아니즘(5세기) : God-men이 아니고 'God and man'(분리된 두 인격)이라고 하여 두 본성간의 유기적인 연합을 부인함(431년 에베소 공회의에서 정죄됨), 유티키안(Eutychian) : 'mingle'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신성, 인성의 구별되며 동시 존재함을 부인하고, 두 본성이 하나로 되어(merged into one) 제3의 본성을 산출했다고 가르침. Monophysitism과 함께 451년 칼세돈 회의에서 정죄됨.

 

만일 에비온파나 아리안주의자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거짓말장이이고(요일5:10) 삼위일체의 진리는 무너짐(마28:19). 또한 도세티스트나 아폴로네리안 같이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은 소망이 없고, 참된 성육신(요1:1,14), 구속(히9:12, 행20:28), 구원(히4:14-16, 7:25)이 없음. 또한 네스토리안과 유티키안 같이 그리스도가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분'이시라면, 사람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형상을 본받게 하고 교회를 건축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될 수 없음(롬8:3-4, 29, 딤전2:5, 마16:13,16,18).

 

3. 인간(Mankind)

 

'육신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가현적 영지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 어느 곳에서도 육을 정의해 주지 않고 있다.'라는 비난에 대해 :

 

1) 인용한 '...몸은 육이 되었다(하나님의 경륜, p.108)'는 것은 '내 육체에 선한 것이 없다'라는 로마서 7장 18절에 근거한 것임.

 

2) 어느 곳에서도 육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임. WL는 그의 저서인 '생명의 체험' pp.196-198에서 '육'(the flesh)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임 - a) The corruptied body(더럽혀진 몸) - 롬7:18, 20-21, 23, 갈5:19-21, b) The whole fallen man(타락한 사람 자체) - 롬3:20, 갈2:16, 창6:3, 12, c) The good aspect of man - 빌 3:3-6

 

4. 죄(Sin)

 

'죄를 사단의 화신이라고 하며, 이 교리는 사단에게서 인격성을 취하여 내고 그를 '하나의 세력'으로 둔갑시킨 것이다.'라는 비난에 대해 :

 

1) 상징적으로 볼 때,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고, '선악 지식의 나무'는 사망의 근원(히2:14)인 사단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유명한 성경 주석가들인 Jamieson, Faussett, and Brown; Keil and Delitzsch; Patrick Fairbairn 등과 일치함. '선악과는 그 자체 안에 사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Patrick Fairbairn, The Typology of Scripture vol.1, Zondervan Publishing House, n.d, p.209) '사람의 타락한 본성'에 관한 최고의 해설은 로마서 5, 7장에서 볼 수 있음. 죄(Sin)가 세상에 '들어 왔고'(롬5:12), '주인'이 되고(6:6-7, 16,20), 왕 노릇하고(6:12), 삯을 지불하는 고용주이며(6:23), '살아나며'(7:9), 뱀같이 속임(7:11, 고후11:3). 특별히 롬7:15-20에서는 죄의 참된 본성이 최고로 계시됨. 이러한 죄가 그(바울)의 몸의 지체 안에 거함(7:23-24).

 

'육체 안에 있는 죄와 사람의 본성'에 관하여 E.W. Henstenberg의 요한복음 주석(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1980. pp.167-168을 참조. 요일3:8a는 'He that commit sin is of (out of) the devil' 요8:44는 'Ye are of your father the devil'라고 하며, 롬8:12-13은 'the flesh'와 'the body'를 같은 뜻으로 말하고 있음. 또한 성경은 죄(Sin)가 사람 안으로 들어 왔을 때(롬5:12), 사람이 육체가 되어 죄에게 팔렸다고 함(롬7:14). 이것은 사단의 악한 본성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함(William Sanday and Arthur C. Headlam,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5thed., Edinburgh : T &T Clark, 1958, pp.145-146을 참조).

 

'죄의 몸'(롬6:6), '사망의 몸'(롬7:24), '죄의 법이 지체 속에 있다'(롬7:23)는 말씀은 다음 사실을 가리킴. a) 창조시 보기에 좋았던 몸(body, 창1:31)은 타락되었음. b) 그것은 하나님이 믿는 이들에게 주실 썩지 않을 부활한 몸과는 다름(고전15:38, 53-54). 즉 타락 이후 부활 전까지 '육체'인 몸은 죄 아래 팔렸으나(sold, 완료 수동태, 롬7:14), 구속하는 피와 내주하는 성령에 의해(고전6:19-20) 그리스도의 지체로서(고전6:15)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음(롬6:19).

 

2) '인간의 원죄는 윤리나 선행의 문제 아니고... 사단과 영합하느냐를 택하는 문제라고 한다.'는 비난에 대하여 : 죄는 불순종의 문제(윤리?)(롬 5:19)일뿐 아니라, '죄'가 세상(사람) 안에 '들어오는' 문제이기도 함(롬5:12). 참으로 이것이 사망을 가져 왔음.

 

3) '사단의 인격성을 떼어내고 하나의 세력으로 둔갑시켰다.'라는 비난에 대하여 : 그렇지 않음. 성경은 사탄이 '공중 권세 잡은 자'(사람 밖의 객관적인 인격)이며 동시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타락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과 사탄 자신이 함께 composed 된 주관적인 총체)임을 말함(엡2:2). (Hermann Olshausen, Bibl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vol.5, New York : Sheldon, Blakeman &Co., 1858 p.58)

 

H.A.W. Meyer도 그의 엡2:2의 주석에서 '타락한 사람은 그 안에 사탄 자신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그의 '에베소서 주해 핸드북', New York : Funk and Wagnalls Pub., 1884, pp.361-362를 보시오). 요한일서는 타락한 사람을 '마귀의 자녀'라고 하고(3:10), 요한복음 8:44은 '너희 아비' 마귀라고 함. 마귀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마귀의 'sin life'와 'serpentine nature of Satan'을 가져야 함. 그러나 그는 동시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임금'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 우리는 이 둘을 다 믿음.

 

5. 구원(Salvation) pp.243-247상단, p.242(믿음없는 구원)는 Mindbenders를 표절한 것임.

 

'죄와 사단을 동일시하므로 성경적인 십자가의 가치를 저하시켰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연합되지 않았다.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 죽음에 처해진 것은 사탄이 아니었다.'라는 비난(주장)에 대하여 :

 

1) 마틴(정동섭)이 인용한 '하나님의 경륜, 109-112'는 엡2:2, 롬8:3, 히2:14, 갈5:24, 벧전1:3, 엡2:5-6이 말하는 엄연한 성경적인 사실을 해석한 것임.

 

2) 사단이 십자가에서 죽음에 넣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사실을 부인하는 것임.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셨고, 고후5:21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죄(SIN)가 되셨다고 하며, 요3:14과 롬8:3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리스도는 '뱀의 모양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죽으신 것임. 이것은 요3:14에 대한 말틴 루터의 주석과 일치함(요한복음에 관한 설교, 1-4장, vol 22 of Luther's Work 1957, pp.338-345). 초대 교부중 하나인 Dr. B.F. Westcott, The Gospel Accorting to St. John, m.B. Eerdmans Publishing Co., 1973, p.64 과 Rudolf Stier, The Words of the Lord Jesus, vol 4, translated by William B. Pope, Edinburge : T. Clark, 1856, pp.444-449도 같은 내용임. 요3:14와 롬8:3은 뱀의 형태 안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십자가 위에서 끝났음(terminated). 또한 히2:14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마귀를 멸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음. 이에 대해 Henry Alford는 그의 'The New Testament for English Readers, vol 4, Baker Book House, 1983, p.1465에서 Lee의 해석을 확증해 줌.

 

3) 롬5:9-10, 행20:28, 히9:14, 10:10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롭다 하고, 화해케 하고, 거룩케 하기 위하여 죽으셨음을 주장함. 마틴(정동섭)은 '죄와 사탄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의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을 가지고 다른 항목으로 비판하고 있음. 그는 또한 성경의 사실을 부인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음.

 

6. 인간의 본성(The Natures of Man)

 

비난 내용은 a) 사람의 하나님과의 연합과 사탄과의 연합의 차이를 구분치 않았고, b) 주님의 성육신을 이단적으로 표현했음(Sinman - 정동섭은 국내에 표절 소개할 때 이 단어를 '죄사함'(247쪽)으로 오역함). c) '사단과의 연합을 상실하고 하나님과 연합되었다'는 표현은 잘못된 언급임. d) LC의 사람의 본성에 대한 신앙을 부정확하게 말했음. 마틴은 WL가 일반적으로 믿는 것에 '뭔가를 첨가했다'는 인상을 주려 했으나 다음의 글들은 Lee의 견해가 정통 가르침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음.

 

1) William Law, The Power of the Spirit or An Addrss to the Clergy, ed. Andrew Murray, Minneapolis, Minn. : Bethany Fellowship, Dimension Book, 1977, p.33, pp.39-40 '...타락후 그들의 지혜나 인간적인 선은 사단의 능력 그 자체이다...'

 

2) Johann Arndt, True Christianity, trans. Peter Erb, New York : Paulist Press, 1979, pp.65-66 독일의 경건파의 선구자인 Johann은 '사람의 본성이 가장 혐오스러운 악한 자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에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 자신에 의해 새롭게 될 필요가 있었음.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다'고 말함.

 

7. 교회(The Church), 교회의 구조

 

'LC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거나 하나님의 한 부분이 된다고 가르친다.'는 비난에 대하여 :

 

1) 6개의 인용문(pp.258-259)을 본문의 앞뒤 문맥과 함께 읽고,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 18쪽'을 함께 본다면 말틴(정동섭)의 LC와 WL를 거짓되게 왜곡하려는 악한 의도가 드러날 것임.

 

2) '부활의 하나님' 중 pp.4-5 와 pp.14-15를 함께 편집(9 페이지의 간격)하여 왜곡하였음. 자그마치 9페이지나 떨어져 있는 각각의 문장을 함께 꿰어 맞추어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문장을 지어내고 이를 근거로 비난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의심스러울 뿐임. 그러나 그들이 꿰어 맞춘 본문 중 앞의 세 문장은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이고, 뒷 문장은 고후 4:16의 '사람의 내적인 새로움'에 관한 설명임. 이 한가지만을 보아도 마틴(정동섭)의 비난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을 것임.

 

3) '교회의 실지적인 표현' 중 'four in one'은 엡4:3-6에 대한 설명 중 '교회의 하나'를 말한 것이지 신격(Godhead)의 하나를 말한 것이 아님. '아버지는 아들 안에, 아들은 그 영 안에, 그 영은 지금 몸 안에 있음. They are now four in one.' 이것을 부인하면 엡 4장, 요 17장을 부인하는 것임.

 

4)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pp.102-104', '교회와 그리스도는 숫적으로는 다르나 성품상 똑같다.'는 표현에 대해 : 위 내용은 언약궤(그리스도를 예표)가 나무와 금으로 되었고, 성막의 널판(교회의 예표)도 나무와 금으로 되었는데 금은 신성, 나무는 인성을 예표한다는 설명의 결론 부분임. 이것은 요1:1,14와 벧후1:4, 엡1:22-23(한 몸), 요15:5(포도나무, 가지들), 고전6:17(한 영) 요1:13, 요일5:12, 4:15, 롬8:14에 근거한 것임. 물론 피조물인 우리가 경배 받는 대상인 신격에는 당연히 참여하지 못함. F. Godet, Lectures in Defence of the Christian Faith, Second Edition, translated by W. H. Lyttelton, Edinburgh : T.&T. Clark, 1883, p.310... 주님은 God-man, 우리는 a family of God-men...)

 

5)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1, p.3'의 개인적인 그리스도가 단체적인(정동섭은 이 단어를 '공적인'으로 오역하여 국내에 표절 소개함)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표현에 대해 : Lee는 고전12:12, 골3:11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음. a) 고전12:12의 (the) Christ가 '단체적인 그리스도'에 대해 같은 내용을 말한 사례 : John Peter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Corinthians, edited by Philip Schaff, Zondervan Publishing House, 1868, p.253 'the whole Christ includes both head and body' F.F. Bruce, New Century Bible, 1 and 2 Corinthians, Greenwood, S.C. : The Attic Press, 1976 p.120 '...think of them as members of 'Christ corporate'...' b) 골3:11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내용인 것에 대해 J.B. Lightfoot, Saint Paul's Epistle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Zondervan Publishing House, 1879, p.219 와 Russell Philip Shedd, Man in Community, London : The Epworth Press, 1958, pp.155-156, 그리고 Alan Richardson,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58, pp.242-243 'the whole Christ' T. Austin-Sparks, The Stewardship of the Mystery, vol 1, London : Witness and Testimony Publishers, 1964, pp.53-55를 참조.

 

6) 교회는 '점점 하나님으로 충만해져 가고 있어'라는 표현에 대해 : 엡1:22-23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ness of Him.'에 근거한 것임. 또한 Henry Alford, The New Testament for English Readers, vol 3, Baker Book House, 1983, pp.1211-1212 를 참조.

 

7) '교회는 육신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 : 딤전3:15-16절의 내용임. 위 Alford의 'Alford's Greek Testament, vol 3, 1980, p.333 을 참조. 이런 성경말씀 자체를 말한 것을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비성경적인 교회관을 가졌기 때문임.

 

8) '삼일 하나님과 부활한 인간이 하나의 표현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에 대해 : 롬8:29-30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충만한 표현이 되는 날(새 예루살렘)을 말한 것임.

 

9)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될 것이다.'라는 표현에 대해 : 이것은 요6:35 에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을 때' 먹은 그것이 우리가 된다는 말임. Andrew Murray, The Inner Chamber and the Tnner Life, Grand RapidsMich.: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58, p.111(...그것은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생명의 구성 요소가 됩니다...)

 

10) 교파와 분열이 '신약에서의 교회의 합당한 표현으로 정당화되지 못하며(고전1:10, 롬16:17), 그것이 분열된 몸이긴 하지만 모든 믿는이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함. '교회의 실지적인 표현' pp.66-67, 91, 103-104, 182(영어판 기준) 참조.

 

8. 결론(conclusion)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자(정동섭)의 글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의 신앙과 가르침'을 정확하게 대표하지 못하고 거짓되게 왜곡시켰음.

 

1) 학문적 관점 : WL 책에서 가져온 39개의 인용 문구를 본문에서의 저자의 의도와 문맥의 흐름과는 크게 다르게 왜곡해서 사용함. 이것은 그들의 비판 작업이 객관적인 토대에 의존하지 못하고 엉뚱한 비판을 했다는 단적인 증거임.

 

2) 해석적 관점 : WL 사역을 대변하는 합당한 자료(증거)를 확보치 못하므로 그의 가르침을 기독교 사회에 잘못 해석하여 제공할 수밖에 없었음.

 

3) 역사적 관점 : 교회와 삼위일체 분야에 정확한 사실 제시가 부족함. 예를 들면, 삼위일체의 경륜적 측면에 대한 영적 지식의 무지를 드러냄.

 

4) 주석적 관점 : 본문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고, 그것들을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임의로 인용, 해석 함. 마18:20(교회), 롬8:3, 요3:14, 요일3:10, 요8:44(사탄)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임.

 

5) 사회과학적 관점 : LC members를 분석함에 있어 분석대상의 균형을 잃었고, 결론을 도출함에 있어 통계적인 조사(자료)가 결여되었음.

 


The New Cult (그것이 궁금하다)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반박질문

 

정동섭의 논문(번역본)의 주요 원본 자료였던 월터 마틴의 The New Cult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또 다른 반박자료 중 일부인 역 질문 내용들이다. 반박문 원문은 90쪽 분량이며 마틴(정동섭)의 LC비난 내용들을 42개의 문항으로 분석하여 답변했으며, 말미에서는 오히려 네 가지 핵심진리(삼일 하나님, 교회, 성경, 죄와 사단)를 마틴에게 재 질문하고 있다. 마틴은 이에 대해 답변하지 못했다. 우리측이 마틴(정동섭)에게 질문한 내용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방교회 진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우리측의 질문에 성경을 근거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I. 삼일 하나님에 대하여

 

1) (정동섭 교수는) 이사야 9장 6절의 '영존 하시는 아버지'를 누구라고 보는가?

 

2) 요한복음 14장 9-10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를 설명하여 보라. 또한 요한복음 14장 17-18절에서 그리스도(내가)와 진리의 영을 가리키는 대명사들을 설명해 보라.

 

3)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의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구절에서의 "영"은 하나님의 영인가? 그렇지 않다면 누구인가? 또한 이 영의 성령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이제 주는 영이시니"라는 고린도후서 3장 17절의 참된 의미를 말해 보라. 이 구절에서 "주"는 주 예수, "영"은 성령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4) "예수의 영"(행16:7), "그리스도의 영"(롬8:9),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1:19)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라. 또한 예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예수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동의어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 전에도 존재했었나? 또한 그리스도의 영은 아버지의 영과 구별되는가? 구별된다면 어떻게 다른가?

 

5) 요한복음 7장 39절의 'The Spirit was not yet'의 원문상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엔드류 머레이의 The Spirit of Christ 5장을 보시오)

 

6) 로마서 8장 9-10절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가 이 구절들에서 상호 바꿔 쓸 수 있는 용어로 쓰였는가?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생명의 영(롬8:2)의 관계는 무엇인가?

 

7) 계시록 1장 4절의 일곱 영은 무엇이며 일곱 영과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어린양의 일곱 눈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삼위의 제3격이 어떻게 제2격의 '눈'이 될 수 있나(계 5:6)? 만일 계시록 5장 6절을 비유로 이해한다면, 그러한 비유에 의해 상징된 영적인 실제는 무엇인가?

 

8) 로마서 8장 10절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그러나 로마서 8장 34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이 두 구절이 어떻게 모두 진리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해 달라.

 

9)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고전 6:17)이라는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바울은 믿는 이들이 주님과 실제로 한 영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그와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II. 교회에 대하여

 

1) 신약에 의하면, 한 도시에 한 교회 이상 있어도 되는가? 계시록 1장 11절은 한 지방에 단 하나의 교회가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사도행전 4장 23절, 디도서 1장 5절을 함께 놓고 보면, 한 교회 안의 장로들은 한 도시 안의 장로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구절들은 한 도시 안에 단지 한 무리의 장로들(just one set of elders)만 있어야 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2) 고린도전서 1장 11-13절 말씀의 빛에 비춰볼 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교파가 있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그리스도인들 그룹들이 그들이 갖는 특별한 교파명칭들을 교회로 간주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3) '그리스도의 몸'은 실제인가 아니면 다만 은유(metapher)인가? 그리스도가, 주님을 영접한 모든 믿는 이들로 구성된 몸(유기체)의 실제적인 머리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인가? 바울이 '그리스도가 어찌 나뉘었느뇨?(고전1:13)'라고 말한 것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특별히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4) 교회와 삼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건대, '독생자'와 많은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형제들'(요20:17)이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히브리서 2장 10절이 언급하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시는...'은 무슨 뜻인가? 많은 아들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하나님의 독생자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히2:11)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위 구절에서 'of'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많은 아들들이 독생자와 같은 생명과 본성을 가졌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are all of one...)?

 

5) 히 2장 10절의 '많은 아들'과 11절의 '형제'와 12절의 '교회'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6) 계시록 2장 9절과 3장 9절의 '사단의 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7) 계시록 17장의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여자(6절)는 누구인가?

 

III. 성경 읽기에 대하여

 

1) 헬라어 원문에 따라 에베소서 6장 17-18절에 나오는 '성령'(the Spirit), '하나님의 말씀', (모든) 기도, 성령(the Spirit)의 관계를 설명해 보라.

 

2)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3)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마4:4)으로 살 수 있나?

 

4)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는'(렘15:16) 바른 길(방법)은 무엇인가?

 

5) 어떻게 '순전하고 신령한 젖(말씀)'을 받아들이고, 맛볼 수 있는가?(벧전2:2-3)

 

6)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의하면, 성경말씀도 문자로만 취할 때(taken as letter(의문))는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7) 요한복음 5장 39-40절(...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오늘날 이 구절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IV. 죄(Sin)와 사탄에 대하여

 

1) '죄''죄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2) 죄가 사람의 육체 안에 실제로 살지 않는가?

 

3) 로마서 7장 18절의 '육체(flesh)'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몸(body)'의 차이는 무엇인가?

 

4) '죄의 법'은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 지체 속에 있다'(롬7:23)는 의미는 무엇인가?

 

5) 생각을 육신에 둔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왜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가?(롬8:6-7)

 

6) 사단과의 관계는?

 

7) '죄'가 '왕노릇 한다'(롬5:21), 사람들을 '주관한다'(롬6:14), '속이고, ...죽인다'(롬7:11), '속에 거한다'(롬7:20), 우리의 뜻을 거슬려 무엇을 '행한다'(롬7:17)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만일 이것이 '비유'라면 이 비유가 상징하는 실제는 무엇인가?

 

8) 주님이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23:33)'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는 무슨 의미인가? 요일 3:10의 '마귀의 자녀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죄인들이 사단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만일 아니라면, 마귀의 자녀의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9) 요한복음 3장 14절의 참된 뜻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3장 14절과 로마서 8장 3절의 관계는 무엇인가?

 

10) 롬8:3에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의 의미, 특별히 '죄 있는 육신(the flesh of sin)'의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죄를 위해서' 보내졌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11) 사람은 타락함으로 어떻게 '주관적으로' 영향받았는가?

 

12) 창세기 2장 9절의 '선악 지식의 나무'가 사람의 영, 혼 그리고 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창조시의 사람과 오늘날의 사람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13)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사람의 영, 혼, 몸을 포함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한 면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면이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거한 수천 페이지의 자료들(책자, 소책자, 잡지, 팜플릿, 논문, 전단 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 질문들에 답변함으로 그들의 입장을 밝혀 줄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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