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아들이 분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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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이야기 마지막은
아버지와 맏아들과의 대화로 끝이 납니다(눅15).
맏아들은 밭에서 열심히 일하다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풍류와 노래 소리를 듣고
'맏아들인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집에 무슨 잔치가 벌어졌나..?'
하면서 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게 됩니다.
종의 대답 왈,
'집 나갔던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그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되어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은 그 소리에 분을 내게 됩니다.
사실, 맏아들의 분노는
[살진 송아지]로 인한 것이었고
그 분노가 그를 잔치에 참여치 못하게 하고
그 분노가 그를 밖에서 서성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아버지에게 불평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15:30)
이미 이 불평의 말 중에 무엇 때문에
그가 원망하는가 마음이 표현된 것입니다.
물론, 맏아들의 위치와 그가 한 일 등등
다른 여러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그의 말의 표현으로 볼 때
주된 이유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맏아들의 원망은 옷이나 가락지나 신과 같이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선물보다도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이
그를 더욱 분내게 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옷과 가락지와는 반대로
먹으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그것으로 인해 화를 낸 것입니다.
그런 후에 아버지의 사랑스런
권면의 말이 있게 되지만
과연 그가 나중에라도 잔치에 참여했는지는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합니다.
종교는 잔치 밖에서
여전히 무엇인가 일하고 있습니다.
땀을 흘려 뻘뻘 일하지만,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살진 송아지]로 취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은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은 반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우리의 음식과 음료로 취한다고 하면,
유달리 펄펄뛰며 반대하고
분을 내며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들이 분을 내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면
[살진 송아지] 한가지 때문입니다.
아니, 어떻게 근엄하신 하나님이
조그만 사람 안에 제한되어 들어갈 수 있는가?
더군다나 그리스도가 사람에게 먹혀진다고...?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맛을 보았고,
진정으로 그 맛을 본 사람은 영원히
[살진 송아지]를
먹는 잔치집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위치와 한 일을 따지고
분내는 것보다 잔치에 참여하여
[살진 송아지]를 먹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살진 송아지]로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소화되고 동화되어
우리 존재 조직의 일부분이 되어
우리를 속에서 강화시키고,
능력을 주고, 떠받치고, 안위하고,
깊은 속에서부터 만족을 주십니다.
글쓴이 :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