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주님의 영을 갖는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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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주님의 영을 갖는 문제임
주님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몸을 회복하는 것이다. 주님의 회복은 유기체를 회복하는 것이지 조직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동역자들과 교회들이 있고, 전 시간으로 주님을 섬기도록 청년들을 기르고 있다. 우리에게는 자원이 있지만, 우리는 조직의 길, 즉 어떤 단체의 길을 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유기적인 길, 곧 몸의 길을 취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단체의 길을 취한다면 우리는 교파가 될 것이다. 이 중요한 문제가 반드시 형제자매들에게 분명히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뒷걸음질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길, 즉 유기적인 몸의 길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담대하게 전진해야 한다.
유기적으로 하는 것은 주로 장로들에게 달려 있다. 장로들은 반드시 그들의 행동과 의도와 관념에서 자신이 장로라는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장로들은 관직을 관장하는 관료들이 아니다. 장로들이 존재하는 것은 교회 봉사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안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신언자들이나 교사들을 대치해서는 안 된다. 장로직분은 계급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만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로들의 기능을 단지 칭호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장로는 교회의 일을 돌보는 청지기이다. 예를 들어, 장로들은 집회 시간이나 집회에서 성도들을 인도하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종류의 집회를 안배한다. 성경은 장로들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양 떼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벧전 5:3).
장로들은 지위와 신분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들은 자신을 장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기독교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고 조직의 길을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입지를 가지시어 우리의 유기적인 기능을 일으키시도록 해드릴 것이다.
덧붙여, 청년 전 시간 봉사자들은 교회와 협력하는 합당한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복종에는, 그들 자신의 부모나 스승에게 인간적으로 복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유기적인 운행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이것이 가능하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살아 계신다. 그분은 매순간 우리의 내적 인도가 되실 수 있으시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기를 훈련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종교적인 조직 안에 있기보다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몸의 살아 있는 지체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행동은 유기적인 기능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조직적으로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유기체의 살아 있는 지체들이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함과 행동은 유기적인 기능에서 나온 결과여야 한다.
주님과 한 영이 되어 몸의 유기적인 기능을 수행함
고린도전서 7장 12절에서 바울은 “그 밖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지 주님의 말씀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바울은 12절에 있는 그의 말이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담대하게 선포했다. 그의 이러한 선포는 유기적인 것인가, 조직적인 것인가? 조직적인 생각에 따르면 고린도의 믿는 이들은 바울에게, 머리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봉사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철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영적이지만 사실은 조직적인 관념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지 않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조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철저히 기도하고 교통하기 전에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종종 말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철저히 기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말하는 이가 주님이 아니라 바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관념을 바꿔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그러하듯 영적이지 않았고, 영적인 체 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하고 있는 이가 주님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다가 25절에서 동정 남녀에 관하여 그는 “내가 주님께 받은 명령은 없으나, 주님께 긍휼을 받은 신실한 사람으로서 나의 의견을 말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의견은 파괴적인 것이지만, 바울은 주님의 명령이 없이 그의 의견을 제시했다. 만약 내가 “형제님들, 나는 주님께 받은 명령은 없으나 나의 의견을 말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모두가 나를 반대할까 두렵다.
고린도전서 7장 40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내 의견에는 ... 나는 나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놀랍다. 바울에게 주님의 말씀은 없으나 하나님의 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의 말의 의미는 우리가 조직적이어서는 안 되고 “내가 이것을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말했지만 주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다. 바울에게 주님의 명령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바울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그가 영 안에서 행했으므로, 조직적인 위치나 종교적인 관념을 무시했다. 그는 주님과 하나로 합했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몸의 유기적인 기능이었다. 바울에게는 그 어떤 지위도 없었고, 아무것도 종교적인 가르침에 따라 행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주님과 한 영으로 합했으므로 몸 안에서의 유기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영적인 일들에 관한 보다 깊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다만 지위를 지키고 질서에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것은 조직적인 것이다. 내가 말할 때 나의 온몸이 움직인다. 나의 몸에서 위치를 지키는 것이나 명령에 순종하는 관념이나 생각을 가진 지체는 없다. 내 몸의 움직임은 유기적이다. 이러한 교통 후에 우리는 우리의 봉사가 위치를 지키거나 명령에 순종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분명해야 한다.
우리의 봉사는 하나님의 영, 주님의 영을 갖는 문제이다. 이것은 “나는 나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울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한 영이라면 위치를 지키거나 명령에 순종하는 대신 우리의 유기적인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가 이에 관해 분명하다면 크게 축복을 받을 것이고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몸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알 것이다. 즉 우리는 몸의 유기적인 기능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우리의 생활은 몸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주의 회복 안에서의 인도에 관한 중요한 말씀 3권 - 주님의 회복의 장래와 유기적인 봉사의 건축,
17장 그리스도의 몸의 유기적인 기능(1),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