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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추구하고 발견하는 길

 

"주님을 추구하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다가와요.

어떤 것이 제가 추구하는 것인지 말이지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고, 주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면 되겠지요.

소위 말하는 구원간증 차원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길이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주님과 다른 분의 도움으로 알고 실행해 온 참고가 될만 한 몇 가지 팁을 적어보겠습니다.

 

1.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가장 기초적으로는 '오 주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입술의 고백이 있어야 하겠지요. 또한 '당신을 더 사랑하기 원하오니 구체적인 길을 알려 달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이 마음 안에 있는 그대로를 기도하면 됩니다.

 

체험에 따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일 꾸준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지금보다 더 많이 진지하게 갖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첫 단추입니다.

 

그러다 보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레마의 말씀들이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 다음 항목인 회개와 자백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끌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2. 철저한 회개와 자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 옛사람은 그 자체가 어둠입니다. 이론적으로 또 사실에 있어서는 이미 거듭나서 침례받음으로 빛의 영역으로 옮겨졌지만, 체험적으로는 여전히 어둠의 영향력아래 있는 믿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간혹 자기기 뭘 잘못했는지, 현재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인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깊은 어둠가운데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의 양심이 조금씩 무디어진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 빛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할 때, 때로는 성경을 읽어 나가다가, 때로는 길을 걸어가다가...문득 마음 안에 떠오르는 모든 불의와 불법과 죄들, 즉 하나님의 본성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철저하게 입술로 시인하고 자백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요한 일서 1장을 천천히 여러번 읽고 그 말씀이 비추는 것들을 자백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오늘날 이 <자백의 실행>조차도 너무나 오염되고 혼잡되어 있습니다.  어떤 단체는 거듭났으면 자백할 필요가 없다는 비진리를 노골적으로 가르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경 교사(워치만니)는 자백의 깊이를 영적인 성숙도와 연계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빛이 더 강해지면 예전에는 이런 것도 죄인가 싶은 것들까지도 빛가운데 폭로됨과 책망아래 놓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실 이런 실행은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치 않은 즉 일상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것들입니다. 무심결에 한 실없는 한 마디 말이 즉시 기름부음을 앗아갈 때도 있습니다. 이 때 어찌 그것을 자백함으로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나갈 수가 있을까요....

 

3. 사람 안에 영이 있음을 알고, 사람의 영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이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철학자나 이론가들처럼 생각하고 분석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려하면 그것만으로는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의 머리 좋은 재능으로 아는 하나님을 묘사할 뿐입니다. 오늘날 상당수의 불신자들 심지어 신자들까지도 영이신 하나님을 지식적이고 이론적인 영역에서 만나려고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밥을 코로 먹으려 하고, 입으로 사물을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은 합당한 기관을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의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할 때 (예를 들어 설교를 들어 볼 때) 저 사람이 자기의 혼 안에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 안에서 영을 사용해서 하는 것인지를 금방 알수 있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영역으로서의 혼 안에서 하는 말은,  메마른 정보만 전달되어 옵니다. 이것이 사람의 혼 안에서 격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으되 우리의 영을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연합된 영 안에서 비롯되어 새로워진 혼을 거쳐 나오는 말에는, 생명의 흐름과 적셔짐이 있고 빛이 전달되어 옵니다. 듣는 사람의 영을 시원케 합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주님을 만나게 하려면, 여러 말로 주님의 인격과 그 역사를 설명할 필요가 있더라도 가장 좋은 것은 그로 하여금 정직하게 진심을 담아 기도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저는 어떻게 당신을 추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님, 제게 길을 알려 주세요.

오 주님, 저는 지금 잠시 혼돈에 있는 것같습니다. 주님 이 상태에서 저를 구원헤 주세요.

당신과 깊은 교제와 연합 안으로 더 이끌리기를 사모합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할 때 주님은 그러한 참된 기도에 침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강조하며 말하자면, 사람의 영을 사용하는 가장 쉬운 길은 그로 하여금 참되게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속되고 허무맹랑한 꾸며낸 이야기를 거절하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하라고 말합니다(딤전4:7).

 

4. 주님과의 교제/교통을 계속 유지하도록 매사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한 일서 1장 3절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매우 심오하고 민감한 영역입니다. 요한은 생명이 무엇인지, 교제(코이노니아)가 무엇인지는 각각 두 구절로 설명하나, 그 교제를 유지하는 길에 대해서는 17개 구절을 할애하여 설명했습니다.

 

어떤 이는 거듭났다고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이 임재하는 영역에 있어 본 적이 없고 그저 종교적인 프로그램과 습관을 따라 살면서 그것이 신앙생활인양 오해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 생활은 삼위 하나님이 참여하시는 그 교제의 영역 안에 먼저 사도들이 초대되었고, 그후 참되게 거듭난 몸의 지체들이 초대된 바로 그 영역 안에 들어가 그 영역 안에 머무는 생활입니다.

 

이 영역은 빛과 사랑의 영역입니다. 즉 하나님의 본성이 미치는 범위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이나 거짓말 또는 죄들(sins)이 개입되면 그 신성한 교제는 즉시 끊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요일4:8), 어떤 이유에서건 형제/지체를 미워하면 이 또한 교제가 즉시 끊어지게 하는 주된 원인입니다.

 

죄들을 범하고도 자백치 않은 사람들,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람들이 주님을 섬긴다고 하고 하나님이 자기와 가깝다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그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한 1서 1장 전반부와 2장 초반부가 말하는 요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빛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그분과 사귐(교제)이 있게 됩니다. 그 영역 안에서 살면서 빛의 권위에 순종하고, 사랑으로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다른 어린 자녀들을 목양하여 온전케 세워주는 삶을 사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살고 있으며 내일도 산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롬8:28-29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체험,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가는 체험을 실제 생활 속에서 매일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머리되신 주님과 몸 안의 다른 지체들을 통해 배우고 실행하는 대강의 요지입니다. 위 질문을 하셨다는 자매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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