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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열매를 맺음의 비결과 교회 건축의 상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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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글은 책에서 본 이상만이 아니라, 체험성 짙은 방식으로 전개해 본, "남아 있는 열매를 맺음의 비결과 교회 건축의 상관성"에 대한 글로서, 수년간 제가 써 보기를 갈망했던 것인데, 제 맘의 저수지에 어느 정도 고인 것이 있어서 적어봅니다. 봉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필독을 요청합니다. *


16년째 접어드는 교회생활에서 늘 제 맘 한구석에서 씨름해 오던 문제는 바로 남아 있는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함이 대단한 것이지만, 명석하고 유연성 있게 교회 봉사를 해 가는 것이 놀라운 것이지만, 합당한 성격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풍성한 공급의 마디가 되는 것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낮은 맘으로 어느 누구와도 잘 건축함이 매우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나타남이 열매를 맺음이고 이 열매들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교회 봉사를 한다고 하면서, 기존의 지체들을 상대로 이것저것을 해보고, 무슨 훈련도 다녀보고, 시켜도 보고, 본이 되려고 해보기도 하고 그냥 살아보기도 하고, 기도가 길인가 해서 열심히 기도를 해보려고 해도 결국은 주저앉게 되고, 하나님 사람의 생활이 길인가 해서 시도해 보지만 결국은 실패를 거듭하는 자신을 보게 되고...이 모든 것들을 열매 맺기 위해서 해 보았는데, 어느 정도 되는 듯하다가는 다시 주저앉게 되는 것이 제 삶이었습니다. 제 말은 이런 실행이 불필요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이런 실행들은 일정 부분 나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음), 이런 것들을 수렴하고 붙잡아 주는 최종적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스틴 교회로 이주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습니다. 올해를 포함하여 오스틴에 산지도 어언 몇 개월 부족한 2년이 되어 갑니다. 이곳에서도 관심사가, 남아 있는 열매를 맺음이다 보니 이런 안목에서 상황을 늘 관찰하게 되고 실험하게 되는 자신을 말릴 수가 없습니다.


주로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도 하고 내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본격적으로 생양교건의 길을 가면서, 다양한 교통을 접하면서 "눈이 활짝 열리는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오스틴 장로들이 수 시간을 교통한 후에 오전 전시간자 코디에서 해방한 부담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요지는 바로 "지금부터 우리는 양육 약속을 잡아서 실행하는 것으로부터,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육 약속을 잡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뭘 좀 읽고 기도하고, 다음 주에 다시 한번 연락해서 만나고, ... 이런 관계를 계속하는 것은 진정한 관계 형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양육 약속 중심의 실행이 효과가 없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떤 학생은 바로 그것을 원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 사정상 그것밖에는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식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지, 당장 모든 양육 약속을 파기하고 관계 형성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매우 강조드립니다.)


이후의 모든 발언은 오스틴 교회에서 논의된 것을 인용함이 아니라 본인의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스틴의 부담을 소화하려는 본인의 부담임으로 오스틴 교회는 이곳에 제가 쓴 글의 내용에 대해서 전혀 책임이 없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나, 내 자신만 알고 있는 어떤 결함에 대해서 상담을 받고 싶을 때, 아니면 원정(?)이라도 할라치면, 교회 주소록을 다 펴고 아무리 찾아도 딱히 전화할 만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해서 탄식할 때가 없었나요? 매주 그렇게 섞인다고 다니고, 집회를 그렇게 해도 정작 자신의 피곤한 머리를 둘만 한 상대를 교회 안에서 찾기가 그렇게 녹녹한 일이 아니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았나요?


우리는 교회생활에서 무엇을 목말라 합니까? 바로 "예수답게 인간적인 관계"를 목말라 합니다. 우리 사람은 교회 안에서든지, 세상에서든지 관계를 목말라 합니다. "인간적인 관계" 말이죠. 다만 인간적인 관계를 말함이 아닌, 인간관계이긴 한데 "예수다운 인간관계" 말입니다. 육체가 개입이 안 된 순수하고 참된 인간관계에 성령의 흐름이 있는 인간관계, 기도 말씀 그 영이 충만하지만 인간적인 그런 관계 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그들과의 인간적인 관계에 호소했습니다(갈4:11-20).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은 전체가 안부를 묻는 "예수다운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요한 2서에서 요한은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잉크가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가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서 말을 함으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예수답게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곳에서 봉사를 하면서 이런 인간관계야 말로 건축의 실재라고 느꼈습니다. 골로새서 2장 2절은 "성도들의 마음들이 위로를 얻고 함께 사랑 안에서 짜여져서 이해의 온전한 확신의 모든 충만에 도달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최고봉의 계시를 말하는 골로새서의 마지막 장인 4장 7-18절도 예수답게 인간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정다운 안부가 가득합니다.


무엇이 건축일까요? 그것은 많은 단계를 함축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한 지방 내에서는 골로새서 2장 2절과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사람을 얻는 일은 확실히 기도와 그 영과 말씀과 건축입니다. 건축을 말할 때 그것은 외적인, 산술적인 실행적인 균분이나 짝지어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위로를 얻고, 함께 사랑 안에서 짜여짐으로 진리의 이해의 온전한 확신에서 오는 모든 풍성에 도달함의 문제입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왜일까요? 부모들이 학문적으로 잘나서가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식들도 부모를 향한 생각이 애틋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사이의 사랑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이곳 미국에서는 부모들에 대한 사랑을 한국 자녀들처럼 그렇게 애절하게 기억하지 않는 청년들도 다수가 있습니다.


불안정하고 무책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들일수록 한결같이 갈망하는 것은 그들의 맘을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책상에서 그럴 것이다 라고 수긍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쿠키 한 봉지를 사 들고 야심한 밤에 연결된 학생들의 기숙사를 방문해 보십시오. 야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파전" 몇 장 부쳐다가 가져다주고, 그날 누린 성경 말씀 한 구절 기도로 읽자고 해보십시오. "주님 안에서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해 주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 사이에서 선택을 함으로 자신들의 삶을 시작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선택으로 구성된다. 매일 매일 주님을 부름으로 그분을 선택함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렴. 일주일에 한번은 내가 전화를 하겠다. 너의 선택하는 습관을 도와주려고 한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야심한 밤에 공부하는 학생을 관심하려고 찾아옵니까? 열이면 열 명 다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안 될까요?


그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맘이 처리가 안 돼서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맘을 채울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함이 최고의 영적인 수준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사랑을, 형제 사랑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벧후1:5-7). 형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신성한 사랑 말입니다.


그가 무신론자라면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사랑하고, 그가 이교도라면 회개할 가능성으로 인해 사랑하고, 그가 다른 교파에 다닌다면 그를 빼 올 생각이 없이 그가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에 도달하려면 그 앞의 단계들을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겠지요.


저는 봉사를 하면서 "무엇이 예수답게 인간적인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해치는가?"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는 중에 있습니다.


1. 인간관계를 해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적 관계인 "계급 관계"가 대인 관계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인간관계를 해칩니다. 당신이 무슨 지위를 가졌는가를 교회 안에서 의미부여를 하고 사람을 주관하려고 할 때, 그것은 참된 인간관계를 저해하고 목말라 하는 사람들로 당신 주변에 있지 못하게 합니다.


2. 사람을 속에서부터 판단하고 선입견을 갖고 대한다면 이것은 그 사람을 열매가 부족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노련한 봉사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로 하지 않지만 동역자나 돕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속에 가지고 있고, 혹시 저자가 내 무엇을 침해하지는 않을까 견제하는 맘이나, 저자는 잘 성장하지 못 할거야라는 의심을 가진다면, 필히 그런 사람은 열매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있더라도 결국은 낙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것들보다 더 실제적인 것은 우주 가운데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가 자기를 진정으로 받아주고 사랑하는지 결국은 알게 됩니다.


3. 정해진 틀 속에서만 사람들과 관계를 가질 뿐 틀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융통성과 아이디어는 오직 사랑에서 나오는 관심에 달린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관심한다면 오늘 양육 약속을 잡아서 했더라도, 다시 오늘 저녁에 또 만나고, 내일도 점심때 또 만날 수가 있습니다. 관계 형성은 틀 속에서 이뤄지는 것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부분이 틀 밖에서 이뤄집니다. 양육 약속 중심에서 관계 형성 중심으로 나가게 되면, 저녁 시간에 점차 더 많은 양육 일정이 채워질 것입니다.


4. 결국 성격도 한몫하게 됩니다. 제가 관찰하는 바로는 어떤 전시간자들은 매우 영적입니다. 진리도 밝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피곤하거나, 개인적인, 가족적인 볼일이 있으면, 새 신자와의 양육 약속을 너무 쉽게 조정하거나 취소해 버립니다. 이런 성격은 결국 사람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단단한 성격, 뭔가를 유지할 수 있고, 지탱할 수 있는 성격이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남아 있는 열매를 얻고자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할 때", 성격도, 진리도, 기도도, 영도, 말씀도, 동역도, 추구도,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위한 깨임도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대학생, 특히 새내기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사역할 때, 그 초롱초롱 빛나는 순수한 눈들에서 발하는 그 생명의 내음보다 세상에서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복음만이 아니라, 내 가진 모든 소유, 내 시간, 내 남은 생을 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쏟기를 원한단다. 주님! 내게 이런 삶을 살도록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글쓴이 : 빛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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